[2022 철학학교] 3주차 <차이와반복>후기

아렘
2022-03-1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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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가 없는 것인지, 정말 공부에 열심이고 진심이신건지…확진자가 이리 나오는데 어찌들 지내시냐는 이런 인사나 안부 이런거 없는 철학학교입니다. 시간 되면 바로 직진…ㅎ

 

한 페이지 아니 한 문단 안에서도 여러차례 불꽃을 튀기는 통에 들뢰즈를 따라가기 참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엄청난 공백과 도약은 서론이니까 용서 내지 이해를 해야 한다는 제 생각과  그리고 본문에 들어가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정군샘의 격려가 의미하는 바는 비슷하지 싶습니다. 이제 동일성이나 같다라는 말을 쓰기가 좀 무섭습니다. ^^  강독이 2회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목표(라는게 있었지만)에는 미치지 못하고 33쪽에서 52쪽까지 읽었습니다. 20쪽이면 훌륭한거지요?

 

매실샘, 세션샘,오이도샘,요요샘을 따라 자연법칙/도덕법칙보다 속깊은 반복을 훑었습니다. 니체보다는 키에르케고르에 더 많이 머물렀던 기억입니다. 항의와 체념을 지난 시간 반어와 익살에 붙여 보기도 했고, 초월적 상관항이란 말을 나중을 위해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칸트류의 형식주의를 전복시키는 들뢰즈가 해석하는 니체의 형식주의를 이야기하기도 했네요. (매개가 뭡니까하던 한스샘은 중간에 사라지셨습니다. 별고 없으시지요?) 개념과 재현보다 속깊은 반복을 부지런히 새기게 만들던 2절의 마지막은 좀 메롱이었습니다. 인용해볼까요? ‘지금으로서는 우리는 이 문제들 중 어느 하나도 해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다만 일반성과 반복 사이에는 어떤 환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연극의 차원에서 확증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뿐이다.’  단어 몇개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반복과 역량과 운동과 영원회귀와 기호가 들뢰즈의 긍정어입니다. (이리 말하면 또 정군샘이 지적이 있으실 거 알지만…아무튼 읽으려면 어디 비빌 언덕이나 발판 같은 게 있어야 하니까… 용서를…)

 

어려운 3절은 집단지성(이라 쓰고 대강 한 번 모아보기라 읽는)을 발휘하느라 오랜 시간 머물렀습니다. 제게는 좀 힌트가 드러난 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원리나 권리증명으로서의 ‘초월론적 논리학’ 그리고 이의 발현으로서의 ‘실존의 변증법’ 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를 정군샘은 우아하게 전개체적 상황과 개체화라는 말로 바꿔주셨습니다. 서삼풍 샘 요약부분의 그 함의에 대해서는 의견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저도 아리송 딱 떨어지는 개운함은 없습니다만, 세 개를 좀 이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연적 봉쇄로 명목적 개념(이산), 자연의 개념(소외), 그리고 다음 시간에 읽을 자유의 개념(억압).  호수샘의 정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명목적 개념은 유한한 내포를 지닌 개념입니다. 무한정한 내포를 지니지만 기억을 결여한 개념은 자연의 개념입니다. 무한한 내포를 지니고 기억도 있는데 자기의식을 결여한 개념이 자유(억압,무의식)정도로 일단 크게 정리를 하고 다음을 기약하거나 안나오면 말지 뭐 이렇게 여기기로 했습니다.

 

다른 세미나 같으면 좀 생각을 이어가가나 책을 좀 더 들여다 볼텐데….아 샘들 느끼셨는지요? 세미나 보다 강독이 두 배는 더 힘이 듭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댓글 11
  • 2022-03-18 09:32

    잠이 오지 않는 밤이란 이런 건가요? 어쩌면 독해가 이렇게 허술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 덕분에 놓친 부분들을 메꾸고 있습니다. 그래도 메꿔지지 않는 고단함... 

     3절 개념의 관점에서 반복과 일반성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그는 권리상으로 개념은 무한한 내포를 갖는다고 했는데요. 개념이 논리적으로 사용될 때는 인위적 봉쇄에 직면한다고 합니다.

    인위적 봉쇄란 무엇인가. 정군샘은 삼각형의 예를 들었지요. 그렇게 논리적으로 삼각형을 정의한다면 내포의 무한성은 깨져버리고 반대로 삼각형에 대한 외연의 무한성을 획득합니다. 소위 닮은(유사한) 삼각형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겠지요.  반복이 아니라 일반성을 획득하는 거죠. 

     

    자연적 봉쇄란 인위적 봉쇄와 달리 우리의 통제를 넘어서는 봉쇄라고 합니다.(윌리엄) 

    제가 혼자 읽었을 때는 이산적 외연이 자연적 봉쇄의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건지 명목적 봉쇄의 경우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뿐 아니라 아렘샘 부분의 무.한.정.이라는 말을 잠재적 무한으로 표기된 책을 보고, 무한성으로 착각을 했지 뭡니까. 여기서 비개념적 차이 라는 말을 2차로 놓치게 됩니다. 다행히 칸트의 개념없는 차이는 좀 건져올렸는데, 이것이 다시 자연의 개념으로 연결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명목적 개념은 어떻게 봉쇄되는가? 이산적 외연

    그 사례는? 단어

    이 단어는 어떻게 반복을 획득하는가? 말하기와 글쓰기

     

    자연의 개념은 어떻게 봉쇄되는가? 비개념적 차이 혹은 개념 없는 차이 =>외면화된 개념 => 소외된 정신

    그 사례는? 인간의 정신 안에서 응시와 관찰되는 자연

    자연은 어떻게 반복을 획득하는가? 기억과 습관들

    가령 사과나무가 있다 치자. 가을에 수확하고 봄에 꽃이 피고 등등 그 나무의 기계적 반복, 순환주기 등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진짜 반복이 아니다. 그 사과나무를 바라보며(응시, 관찰) 가을을 기억해내고 나무를 돌보기 위해 새벽 잠을 설치는 것(습관) 등이 바로 참된 반복이다... (반복에 가짜 반복, 참된 반복이 있다는 게 눈에 띄더군요.) 사과나무가 반복하는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그 사과나무를 응시하면서 새로움을 훔쳐내는 인간의 정신안에 자연의 개념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볼려는데 어떤까요? 샘들~ 이런 도식화는 애초에 불가능한가요? 

    • 2022-03-18 12:36

      후기를 제가 달았으니   답도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적어보겠습니다. 여울아샘 질문이 개념에 집중되어 있으니 3절을 중심으로 제 뇌피셜을 풉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읽은 부분은 일반성과 반복의 대비입니다. 그 대비를 개념의 차원에서 살펴봅니다. 

      • 개념을 순전히 논리적으로 살펴보기(인위적 봉쇄)
        • 권리상이란 말을 동원하는 부분....46~48이고 인위적 봉쇄이고, 단순한 논리학을 배후로 하고 있다고 하죠. 
        • 여기도 유사성(일반성)을 문제 삼죠...(어떤 차이가 있는가=어떤 유사성이 있는가)
      • 개념의 자연적 봉쇄 - 여울아 샘이 말한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봉쇄, 그 배후에는 초월론적 논리학이나 실존의 변증법이 있다고 하죠. 이 부분은 정군샘이 전개체적 상태(원리나 아니면 뭐라고 해야할까요? 아무튼 원리로 기능하는 잠재적인?), 개체화로 힌트를 주셨고...  
        • 명목적 개념에서 일어나는 봉쇄 - 이산
          • 내포가 유한한 국면에서 포착한 개념이 이산적 외연을 가지는 것을 보여주죠...(원자와 단어를 예로 들면서) 그러니까 일반성을 규정한 것으로 여겼는데, 실제 드러나는 것은 반복이라는 거죠(49)
          • 무한정한 내포를 갖는 개념 (제가 예로 든 사과의 경우) 구별하는데 충분한 것으로 여겼던(일반성) 것이 어라...비개념적 차이가 있구나가 드러난다고 하죠 들뢰즈는 
        • 자연이란 개념에서 일어나는 봉쇄 - 소외 
          • 어제 글이 짧고 애매해서 계속 질문으로 가져가고 읽자고 한 부분입니다. 
          • 일단 소외되는 것이 자연입니다. 우리가 정신 안에서 자연이라는 개념을 갖는 순간(응시/관찰/표상) 자연은 소외되죠. 우리 인간은 기억 습관을 통해 일반 개념을 형성하는데, 자연은 아냐 반복이야 하고 들뢰즈는 말하죠...그러니까 이 부분 해석은 여울아샘과 좀 다릅니다. 기억과 습관은 인간 정신이 일반성을 획득할 때 쓰이는 거죠...자연은 자체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기억과 정신이 결여되어 있으니까요..자연은 일반화하지 않습니다. 그자체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뇌피셜)
        • 자유의 개념에서 일어나는 봉쇄 - 억압 
          • 이 부분은 아직 안읽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나오겠지요...

      • 2022-03-18 12:37

        댓글에서 들여쓰기나 줄 삽입이 안되니 읽기가 너무 어려워지는군요...몇 번 해보다가 포기합니다. ㅎㅎㅎ 여울아샘 되는대로 읽어주셔요....

         

  • 2022-03-18 12:25

    와! 여울아샘, 잠도 안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셨나 봐요.

    여울아샘 질문을 보고 저도 복습 좀 해봤습니다. '봉쇄' 부분을 다시 복습하다보니 여울아샘! 아무래도 도식화하고 싶은 유혹을 좀 억눌러야 하지 않을까 싶사옵니다~ㅋ 

    1, 권리상 개념은 무한한 내포를 갖습니다. 물론 외연=1이지요. 호수샘이 예를 들었다시피 금속(외연1)=철, 금, 은, 구리, 주석등의 무한한 술어를 갖습니다.

    물론 철, 금, 은 등도 똑같이 무한한 술어를 가질 수 있겠지요. 

    2. 그러나 어떤 개념이든 논리적으로 규정되는 경우에는 각각의 개념에는 인위적 제한이 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들뢰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규정으로서의 술어는 개념 안에서는 고정되어 있지만 사물 안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들뢰즈는 같은 동물이라 해도 인간의 경우와 말의 경우는 다른 것이 된다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권리상 개념의 내포는 무한하지만 실제 논리적 사용에서는 인위적으로 제한(봉쇄)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인위적 봉쇄는 논리적으로 개념을 사용할 때 생겨나는 봉쇄이지만 자연적 봉쇄는 개념과 사물(대상)을 연결지을 때 생겨나는 봉쇄입니다. 

    4. 인위적 봉쇄에는 명목적 개념,자연의 개념, 자유의 개념 세가지 경우가 있다고 들뢰즈는 말하고 있습니다.

    5. 명목적 개념에서 자연적 봉쇄는 무한한 내포를 가진 개념을  내포가 유한한 개념으로 이행하게 합니다. 어떤 개념에 시간과 공간을 할당해 봅시다. 그렇게 되면 이 사과, 이 의자, 이 삼각형이 되겠지요. 이 사과는 수많은 저 사과, 그 사과들을 낳습니다. 개념으로는 사과라는 점에서 같지만 실존 안에서는 각각 독특성을 갖는 개체들의 번식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것을 이산적 외연이라고 하고, 이산적 외연은 자연적 봉쇄를 함축하면서 사유 안에서 유사성의 질서(사과 일반)가 아니라 독특성들의 반복(이 사과, 저 사과, 그 사과)을 형성하다는 거지요. 이런 봉쇄를 통해 일반성에서 실존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집니다. 원자나 단어들은 그러한 이행의 사례로 제시되었습니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단어들에 지금 여기의 실존을 부여한다.)

    6. 자연적 개념에서 들뢰즈는 무한정한 내포를 갖는 개념을 생각해보자고 말합니다. 무한정(indefinite)은 한정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가장 좋은 예가 자연인 것 같습니다. 자연을 우리는 어떻게 definition할 수 있을까요? 아마 자연의 사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들뢰즈는 자연적 개념들을 하나의 개념이 자신의 내포를 무한정 확장해가면서도 그자체가 무한정한 복수의 대상을 포함하는 경우라고 말하고 있네요. 가령 어떤 참나무의 나뭇잎을 생각해봅시다. 어떤 참나무 나뭇잎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나뭇잎들은 어느것 하나 같지 않습니다. 하나의 개념으로 불리지만 서로 다른 사물들은 개념적 차이가 아니라 비개념적 차이를 갖습니다. 시간상의 차이, 위치상의 차이 같은 것들이겠지요. (칸트는 장갑을 예로 들었나봅니다. 한짝의 장갑이 있을 때 오른장갑도 왼장갑도 개념은 동일, 그러나 두 장갑은 다르다. 이 차이를 비개념적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그런데 여기서 무한정한 내포라는 말이 다시 궁금해집니다. 저는 무한정은 한정할 수 없다로 이해했는데.. 좀 헷갈리네요.

    7. 그런데 이런 자연의 개념들은 자연안에 즉자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응시하고 표상하는 정신 안에 있습니다. 자연을 자신과 대립하는 소외된 정신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자연의 개념들에 대응하는 대상들은 기억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 서삼풍님이 정리한 이 단락에서 정군님은 문제를 던졌습니다. 들뢰즈가 자연을 이렇게 말할 리가? 우리는 이 대목을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라고.. (네! 스피노자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은 일시적 정신도 아니고 부분 밖의 부분도 아닙니다.) 

    8. 4절에서 반복에 대한 이야기가 더 심화되면서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들뢰즈를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적 봉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반복들은 권리상 개념 운운으로 시작하여 그것을 봉쇄하는 경우들이니만큼 모두 개념의 동일성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봉쇄의 결과 발생하는 반복들은 모두 부정적 조건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가령, "자연은 왜 반복하는가. 그것은 자연이 부분밖의 부분, 일시적 정신이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스스로 표상하는 정신의 편에 속하게 된다.." 뭐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반복에는 그런 반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기대해봅니다!

     

    서론을 읽으면서 추리소설 맞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 번에 대충 보고 지나간 유리조각이 사실은 결정적 단서였어! 아, 그 때 그 사람의 말을 이런 각도에서 들었어야 하는데... 뭐 이런 느낌..ㅎㅎㅎ 앞으로 나갈수록 앞에서 읽은 모든 것이 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 2022-03-18 18:21

    여울아샘의 의문이 풀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분께서 잘 해주셨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요요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도식화 하고 싶은 유혹'을 접어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게 어쨌든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것처럼, 텍스트에는 자기 완결적인 '앎'이 있고, 우리는 그걸 '포획'하면 된다는 느낌으로 접근하는데, 그러지 말자고 한 사람이 들뢰즈 자신이고, 그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서술도 역시 그걸 허용하지 않는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획'하고 싶어지죠. ㅎㅎㅎ 저는 여울아 샘께서 일단 그려낸 그 도식을 잘 가지고, 그게 어디까지 통하는지 시험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막힐 때마다 수정하면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행하는 이 '읽기'도 '반복'일텐데, 아직 이게 헐벗었는지 옷을 입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도식화'해서 확 잡아내는 순간---, 어떤 반복이 될까요. 

    어쩌면 우리는 모르는 채로, 모르는 걸 견디면서, 모름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건 아마 우리가 얻어낸 말들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뜯어보고, 던져보고, 다시 조립하는 중에 될지-어떨지 모르겠죠. 그런 다음에도 '모르겠다!' 싶어도 또 어떻습니까. 한 번 더 읽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ㅎㅎㅎ '그때'는 스피노자에서 흄으로 칸트로 니체로 프루스트로 등등으로 경유한 다음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되면 아마 더 잘 시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도 아마 '모르겠네...'하게 될텐데, 저는 이게 '좋은 반복'이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ㅎㅎㅎ

    거의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말이지만, 제 말의 요지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는 한없이 희미한 것이니 당장 모르겠다고 초조해하지 말자, 뭐 그런 말입니다. 더불어 이렇게 '반복'이라는 말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ㅋㅋ

     

  • 2022-03-18 22:22

    아... 오늘 10시에 집을 나서서 이제 하루가 마무리됐네요. 노트북을 안 가지고 나가서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확인은 했어요.

    제가 자연의 개념이 어떻게 봉쇄되고, 정신안에서의 자연이라는 개념에 대해 한 줄 한 줄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오늘 마침 요요샘 옆자리에 앉아서 대면 코칭도 받았는데, 지금은 너무 졸리네요. 잊기 전에 댓글로 써두고 차이나는 반복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이 시간에 들어오면서 저녁을 먹지 않은 남편까지... 아무래도 기억과 습관에 의지해서 일반성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건가요. ㅠㅠ

    • 2022-03-19 00:36

      일단 좀 더 차분하게 읽어보아요. 

      사실 '서론'은 '내가 이런 이야기들을 할거야'라는 식으로 설계도만 보여주기 때문에 완결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여울아샘의 의문은 2장 1절만 가도 풀릴 여지가 큽니다! (단번에 2장 1절까지 함 가보셔도 좋고요:))

      그리고 저희가 지금 무려 '강독'을 하지 않습니까. 이건 '아는 것'에 '아는 것'을 더해나가면서 읽거나, '풀렸던 것'에 '풀린 것'을 더하면서 읽는 게 아니라,
      의문들을 계속 모아가면서 가는거여요. 지금은 전혀 좌절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걍 힘들기만 하면 됩니다.

  • 2022-03-20 14:14

    ㅎ 우리의 공부에서 들뢰즈가 말한 법칙에 맞서는 반복의 두 가지 형식, 상승과 하강 또는 반어와 유머의 형식이 흥미롭게 충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상승과 반어, 그러니까 반항이 더 멋있지만 ㅋ 저는 거의 모든 경우에 하강과 유머의 형식을 취했던 것 같아요. ㅎㅎ 가끔은 의도적이기도 했지만 대개는 습성으로. 내게 부과되는 규칙을 최대한 그대로 따르는 것, 그것이 그 법칙의 한계를 만나고 결국은 뛰어넘게 되는 저의 방식이었던 것 같네요. 뭐, 이것도 그렇게 안 멋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ㅋ 암튼 뭐, 멋있자고 하는 일은 아니니 ㅎㅎ 그런데 들뢰즈에 오면 이게 좀 복잡하게 꼬이네요. 들뢰즈가 제시하는 '규칙'에 고분고분 따르자니 하던 방식을 뒤집어야 하는데.....이것은 상승인가 하강인가? ㅎㅎ

    모든 저자는 독자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어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들뢰즈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라면, 그는 '다양한' 장치들을 동원해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이끌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효과 중에는 당연히 '이해'도 있을 테고 '응시'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 같고... '완결적인 이해'가 주는 후련함을 느끼면 그 대가로 그걸 무너뜨리는 지난한 시간이 앞에 놓일 테니..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려고 해도 이거 원... 너무 답답해서 좀 속시원히 이해가 됐음 좋겠네요. ㅋㅋ. 그런데 이 혼란스러운 상태를 버티는 것이 사실 무던함보다도 오히려 더 강도 높은 치열함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역시나 저는 이번에도 들뢰즈가 의도한 효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애쓰며 하강과 유머를 실천하고 있는 듯합니다. ㅎㅎ

  • 2022-03-22 02:22

    여울아샘 덕에 복습을 좀 했습니다. 3절 시작부터 우리가 나간 부분까지, 텍스트의 내용을 따라가며 정리하였습니다.

    이렇게 해놓고 보니, 전개는 확실히 짜임새가 있는데, 군데군데 가림막을 쳐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


    1. '논리적 봉쇄' 현상
    1) '개념' 안의 '술어'는 '고정'된다. = '개념적 정의'에 묶인다.
    2) 그럼에도 '사물' 안에서 '술어'는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변한다. (개념 '인간됨'은 피에르와 폴로 나뉜다)
    3) '인간됨'은 폴과 피에르로 분할 되지만, 피에르와 폴은 '인간됨'의 정의 안에서 '유사한 것'이 된다. = '개념'에 합치하는 '사물'
    4) 따라서 '개념의 내포'는 '논리적 사용' 안에서 항상 '개념적 정의'에 묶인다(봉쇄된다).
    5)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 봉쇄'(개념적 정의) 아래에서는 어떤 사물도 '개념' 안의 '일반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일반적 인간들' = 피에르와 폴 등등)
    6) 그래서 '개념적 차이'는 각기 다른 사물들 간의 '유사성'을 포착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런데,
    7) '유사성'은 '부분적 동일성'이 아니다.
    8) 왜냐하면 술어는 '사물' 안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9) 술어는 사물의 한 부분이 아니다.

     

    2. '명목적 개념 : 유한한 내포-개념'이 유발하는 '이산적 외연'
    - '이산적'은 불연속, 연속성을 깬다는 뜻.
    1) '무한한 내포'가 '유한한 국면'에서 포착한 개념이 있다.
    2) 이 개념은 '유한한 국면에서 포착'된 것이므로 '취약한 내포'를 갖는다.
    3) '취약한 내포'는 원리상 '무한한 내포'를 요구한다.
    4) 이때 그 개념에 부과된 '외연=1'과 내포의 원리적 요구=무한 사이에 '불연속'이 발생한다.
    5) 이러한 외연-내포의 '불연속'은 개념의 '이산적 외연'을 보여준다.
    6) '이산적 외연'은 '개념'의 관점에서는 '절대적으로 동일'하지만, 실존 안에서는 '독특한 개체들의 번식'이다.

     

    3. '이산적 외연'과 개념의 '자연적 봉쇄'
    1) '자연적 봉쇄'는 '논리적 봉쇄'와 다른 본성을 지닌다.
    2) '자연적 봉쇄'는 [사유 안에] '유사성의 질서'를 구성하지 않는다.
    3) '자연적 봉쇄'는 [실존 안에] '참된 반복'을 형성한다.
    4) '일반성'은 '개념의 논리적 역량'을 칭한다.
    5) '반복'은 '개념의 무능력과 한계'를 증언한다. 2-6)의 '이산적 외연'의 효과에 따라 보자면 그렇다. 거기서 '개념'은 연속성을 잃는다.
    6) '반복'은 할당된 실존에 따라 '유한한 내포'로 봉쇄된 '개념의 순수사실'이다.

     

    4. '이산적 외연'과 '자연적 봉쇄'의 예
    1) 에피쿠로스 '원자'
    ① 에피쿠로스 '원자'는 개념적 정의상 '빈곤한 내포'(더이상 쪼갤 수 없는, 속성을 갖지 않는 물질의 궁극적 기초 : '내용'없음)만 갖는다.
    ② 그러나 그것은 원리상 '무한한 내포'를 요구한다 : 만물의 기초(다양한 '내용')

    2) 말하기와 글쓰기에서의 '단어'
    ① 단어는 '유한한 내포'를 갖는다 : 몇 개의 '유한한 단어'로 정의되는 '단어'
    ② 그러나 '단어'는 '말하기'와 '글쓰기' 안에서 '지금 여기'의 실존(구체성)을 할당 받는다.
    ③ 지금 여기의 글과 말 속에서 '단어'는 '유한한 정의'를 넘어선다. (단어 안의 '독특한 개체들의 번식')

     

    5. '자연의 개념 : 무한정한 내포-개념'
    1) '무한정한 내포를 갖는 개념'을 가정해보자.
    2) 이 개념은 '무한정한 내포'를 갖기 때문에 '완전히 동일한 대상'도 '내포' 안에 '포섭'할 수 있다.
    3) '무한정한 내포'를 갖는다고 가정된 이 개념은, 자신의 '내포'를 무한히 확장해 가면서도 '무한정한 복수의 대상'을 포섭할 수 있다.('개념'의 관점에선 동일하지만, 실재의 관점에선 이질적인 '명목적 개념 : 유한한 내포-개념'과는 반대다)
    4) 이때는 개념이 그 개념의 대상을 '권리상' 모든 다른 대상과 구별할 수 있다.
    5) 따라서, 이러한 '자연적 개념 : 무한정한 내포-개념'은 자신의 '대상'과 일치한다.

     

    6. '비개념적 차이'의 실재성 : 들뢰즈 주장
    1) '자연적 개념 : 무한정한 내포-개념' 논증에 따라 보건대, '개념'으로 식별되지 않는 '차이'가 있다!(왜냐하면 실제로는 '차이'가 있으니까?)
    2) 한편에서 개념은 무한정한 개념에 '대상을 포섭하는' 종별화로 나간다.
    3)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순수하게 실존(지금-여기)적인 비개념적 규정들이 있다.
    4) 이 '비개념적 규정들'은 '반복의 형태들'이다.
    5) '지금 여기의 실존'을 부여하는 '시간과 공간'은 '반복의 매체들'이다.
    6) 따라서 '개념적 차이'와는 다른 '실재적 대립'은 '최대의 차이'라기 보다는 '최소의 반복'이다.
    7) '최소의 반복'은 '개념적 차이'에서 벗어난 '차이'로 나타난다.
    8) 반복은 '실존하는' 존재자의 고유한 역량을 드러낸다. 그것은 '포섭'에 맞서 끈질기게 실존하려 한다.

     

    7. '무한정한 내포를 갖는 개념들'이라는 가정에서 본 '자연' : 소외
    1) '무한정한 내포'를 지니는 한에서 '자연의 개념들'은 항상 다른 사물 안에 있게 된다.
    2) 그것은 '자연'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응시하는, 달리 말해 '개념화'(재현)하는 정신 안에 있게 된다.
    3) 헤겔이 '자연'을 두고 '정신의 외화'라고 부르거나, '정신의 소외'라고 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4) 이러한 파악 속에서 포섭된 '대상'(으로서의 자연)은 '기억'을 결여하고 있다.
    5) 따라서 '자연'은 자신 안에 자신의 고유한 계기들을 모으지 못한다. 즉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6) 이런 가정 아래에서 '자연'은 '부분 밖의 부분, 일시적인 정신'이다.
    7) 따라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은 '정신'의 몫이다.
    8) 왜냐하면, '정신'은 '기억과 습관'을 가지고 '자연'을 '응시'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재료를 훔쳐내기 때문이다.

    * 참고
    문단의 위쪽 '외화'와 관련해서는 헤겔과, 기억-새로움과 관련해서는 베르그손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지각에 의해 밖으로부터 인식될 뿐 아니라 느낌(affections)에 의해 안으로부터도 인식된다는 점에서 다른 것보다 두드러진 상이 하나 있다. 내 몸(corps)이 그것이다. 나는 그 느낌이 일어나는 주변상황을 검토해 본다. 그러면 그 느낌은 항상, 마치 최후의 행동에 잘 결정되지 않은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할 것처럼, 밖으로부터 받아들인 진동과 내가 수행하려는 운동 사이에 끼어들기 위해 등장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나의 다양한 느낌들을 재음미해 본다. 그러면 그들 각각은 나름대로 행동으로의 초대와 더불어 동시에 기다려도 된다거나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가를 포함하고 있는 듯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러면 수행되지는 않았으나 시작된 운동들과 더하건 덜하건 유용한 결정을 내리라는 지시를 발견하지만, 선택을 배제하는 강요는 발견되지 않는다. 나는 내 기억들을 불러 모아 서로 비교해 본다. 그러면 자연이 생명체에 공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다음 종에게는 감각을 통해 자신을 위협하는 위험 일반을 알려주고, 개체들에게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취해야 할 주의점들을 일임한 바로 그 순간 전과 같은 감각이 나타나는 것을 유기체 세계의 어디서나 보았다고 믿고 있었음을 상기하게 된다. (중략) 나는 내가 느끼고 본 것을 간단 순수하게 다음과 같이 정식화하려 한다. 즉, 내가 우주라 부르는 상들의 총체 속에서는 내 몸이 내게 그 유형을 제공하는 어떤 특별한 상들의 매개에 의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새로운 어떤 것도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진행된다."
    — 앙리 베르그손, 최화 옮김, <물질과 기억>, 자유문고, 42-44쪽

     

    8. 자연적 봉쇄의 세가지 경우
    1) '명목적 개념 : 유한한 내포를 지닌 개념 : 명목
    2) '자연의 개념 : 무한정한 내포를 지니지만 기억을 결여한 개념 : 자연*
    3) 무한한 내포를 지니고 기억을 갖추었으나 자기의식을 결여한 개념 : 자유

     

    *'자연적 봉쇄'에서의 '자연'과 '자연의 개념'에서의 '자연'
    : 모두 '자연'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봉쇄'와 결합된 '자연'은 '관찰된 자연'이라고 할 때의 의미인 듯 하다. 그러니까 '개념'의 현상들을 관찰했을 때, '인위적 봉쇄'로 사용되는 현상과 '자연적 봉쇄'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구분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때의 '자연'은 '관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두번째 '자연의 개념'에서의 '자연'은 그간의 철학담론 안에서 다루어진 '자연이라는 개념'의 의미다. 이렇게 보면 지난 주 세미나 말미에 이야기된, 문단(서삼풍샘 요약 문단)에서 '자연' 개념이 사용되는 용법이 이해가 된다.

    • 2022-03-22 09:35

      정군샘~ 감사합니다~~ 역쉬 공부할 땐 자습서 히히. 말로 설명 듣는 건 휘발되더라구요. 완전히 이해된 게 아니라 그런가봐요. 그리고 읽어보란 2장1절 읽었어요. 거기 설명이 많이 되어 있더군요^^

      댓글 주신 분들.. 특히 호수님 너무 웃겼어요. 위로 감사해요~ 

    • 2022-03-22 09:38

      도식화에 조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 '포획'에 큰 도움을 주신 정군샘 감사합니다. 세마나가 다가오는군요...또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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