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반복> 1회차 후기 : ep.1 탐정단, 범죄현장에 들어서다

지원
2022-03-11 19:01
432

 

드디어! 강독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펼친 들뢰즈의 문장만큼이나 강독이라는 세미나 방식도 너무 오랜만이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참여했습니다. 역시 적응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더군요. 여울아 선생님 말씀처럼 저도 전반부에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읽는 것도, 빠른 속도로 점프하며 해석하는 것도 정신없이 좇아가기 바빴습니다. 그래도 한시간정도 지나니, 또 적응이 되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정군 선생님이 아렘샘 파트를 대독하시며 ‘크~’ 소리를 내던 시점부터였습니다. 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크~’소리가 절로 나던 곳들이 있었거든요.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라는 정군 선생님의 말에 격하게 동의가 되었어요. 가령 “모든 사유는 침략이 된다.(18)”거나, “철학은 반시대적이며, 언제나 그리고 오로지 반시대적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시대에 반하는, 도래할 시대를 위한 철학이다.(19)”라며 강하게 정의하면서도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아 의문을 가지게 하는 문장들. 혹은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 아니면 철학사에 대한 콜라주의 비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장이라도 내 입으로, 내 글로 써먹어버리고 싶은 문장들. 물론 내 입으로 내 글로 나오면 그렇게 멋있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어쨌든 이런 계기들이 저에겐 공부의 의욕을 확 태우도록 하는 입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호수 선생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서문을 읽으며 저도 ‘아, 이 책 전체가 하나의 추리 소설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론을 읽으면 읽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서문 첫 문단의 의미는, 아마도 추리소설의 서문으로 적절한 말이겠지요. ‘※경고: 앞에서부터 읽으시오.’ 같은. 이건 정말 뒤를 읽지 말라는 말이기 보다, 철학 책이 “매우 특이한 종류의 추리소설이 되어야(18)”한다는 그의 선언을 형식적으로 완성시키는 말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어차피 뒤를 읽어봐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기에..).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제 생각에 머릿말은 어떤 범죄현장입니다. 뭔가 멋지고 불길한, 매혹적이고 무시무시한! 어쩌면 살해 현장일 수도, 반란 혹은 ‘불법파업’의 현장일 수도 있고, ‘절도’현장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엔 수많은 힌트들과 복선들이 널부러져 있죠. 차이? 반복? 묵시록? 시뮬라르크? 에레혼? 수상한 사람들도 지나다닙니다. 니체, 새뮤얼 버틀러, 털투성이 헤겔도 보이고요, 면도한 마르크스도 보이네요. 이제 이 범죄현장이 의미하는 바가 조금씩 밝혀질 겁니다. 물론 아주 막막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 현장이 풍기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 어떤 ‘순수한 (긍정의) 차이들’, 어떤 ‘복합적 반복들’이 우리가 추적해야 할 방향이구나. 그리고 이들은 반-헤겔주의, 즉 동일자 혹은 그것의 대립 항으로 환원되길 거부하고 있구나. 우리는 탐정이 되어서, 혹은 탐정‘단’이 되어서 이 느낌들을 추적하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호수 선생님 말처럼 조심해야겠죠.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도구들(개념들)이 완전히 다른 의도로 놓여있을 수도 있고, 우리가 그것을 완전히 다르게 사용해야만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이 책이 드러냈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근접의 정합성이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단서들을 바로 이 현장에서 맞추어 보고, 짜깁기해보는 것, 이것과 저것의 관계를 밝히고, 그러한 관계들 속에서 직관을 밀고 나가보는 것.. 아, 갑자기 어렵던 문장들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서론 1절은 ‘반복’을 주제로 시작됩니다. 책 제목은 차이와 반복인데 반복부터 시작된다고? 벌써부터 한방 먹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심지어 이 반복이, 우리가 평소에도 자주 쓰던 말인 반복과 다르다는 말들로 이어집니다. 반복은 과학실험에서 그 반복도 아니고, 자연법칙에서 그 반복도, 스토아주의나 칸트가 말하는 도덕법칙의 그 반복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라고요. 아닌 것들을 합쳐보면, 반복은 ‘일반성이 아니’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법칙이나 자연법칙에서 반복을 마치 교환 가능한, 등가적이거나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반복은 절도와 증여 같은, 대체 불가능한 독특성과 관계한답니다.

 

그러고서는 “반복은 위반(27, 32)”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합니다. 법칙에 물음을 던진다고 하니, 신호 위반? 속도위반 같은 것일까요? 뭔가 말을 잘 듣는 것은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 반복에 대한 들뢰즈의 표현들을 보면 이건 ‘반복’이 아니라, 오히려 ‘반항’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한 번 바꿔 읽어보세요. 재밌습니다). 제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 수업이 지루해서 거의 잤는데, 불행히도 깨어있는 날이면 던졌던 질문들이 늘 선생님 말에 반대로 말하거나, 농담으로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것이었거든요(반어와 익살?). 그래서 제가 옛날 버릇 못 버리고 자꾸 채팅으로 농담을... 어쨌든 지금까지 확실한 건, ‘반복’이 뭔가 반항심 가득한, 수상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대단한 뭔가가 나타날 건가 봅니다. 다음 절부터 더 알쏭달쏭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려는데, 다행히 시간이 끝났어요.

 

그러고 보니 ‘강독’이라는 방식 역시 우리 탐정단?에 매우 적절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제를 올리며 읽고, 세미나 하면서 읽고, 후기 쓰면서 읽고, 몇 번이고 읽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혼자서 의무감으로, 똑같은 마음으로 같은 책을 읽다보면 관성으로 읽고 넘기게 되는데, 짧은 시간을 두고도 매번 다른 조건들에서 다시 읽다보니, 내가 보지 못한 현장의 이상한 지점들을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고, 나도 이미 읽었던 글자를 다시 의심합니다. 아, 이게 반항 같은 반복인가? ‘반복’에 대해서 ‘그건 이런 거야’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그럼 ‘되풀이’와는 무슨 차이냐고 따지는 이 상황.. 끝내고 싶은데도 질문이 튀어나오는.. <차이와 반복>이 추리 소설이라면 우리 세미나는 추리 드라마인가 봅니다. 뭔가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찜찜한 엔딩..

 

 

 

아무튼 탐정단 여러분들과 함께 하게 되어 설레고 기대됩니다..♥

 

댓글 11
  • 2022-03-11 19:23

    반항같은 반복 ㅋㅋ

    후기가 재밌네요

    난 아직 책이 재밌지는 않은데 말이죠 ㅠ

  • 2022-03-11 19:37

    후기 감사합니다. 반항으로 한번 바꿔서 다시 읽어볼게요 🙂

  • 2022-03-11 19:38

    와우!

    잘  이해되는! 후기이네요.

    교실에서 실컷 자다가  양심에 찔려서 공부 좀 하렸더니 체육시간이라고 나가라고.....ㅎㅎ 

    책을 다 읽고나서, 이런 유사한 경험을 다시 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단서를 모으고  맞춰보고 확인하고 해야 할텐데...

    추신: 미분 갈쳐주까?

    • 2022-03-11 20:42

      샘 갈쳐주실때 저도 좀 끼워주세요. 저 아직 집에 정석 있어요. 

    • 2022-03-11 20:56

      미분도 미분이지만, 아예 여름특강으로

      "평생 수포자 갱생 프로젝트 - 가마솥의 1등 수학" 한 번 여시는 게 어떻습니까?

      금칙어로 '아니 이걸 왜 못해?' 정도만 지정해 놓으면 좋겠습니다.

    • 2022-03-12 15:55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 2022-03-12 17:18

        가마솥 저, <풀이와 반복>

        서문 강독부터 '수포자의 취약성의 배후에는 종종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객기들이 있다'

  • 2022-03-11 19:55

    ㅋㅋㅋㅋ웃겨 죽는줄. 지원쌤이 들뢰즈보다 100배 잘 쓰는데요 ㅋㅋ 대체 이놈의 책은 뭔 소린지ㅠㅠ  미로속에 있으니 솔직히 엄청 졸리지만 지원쌤의 반어와 익살때문에 계속 읽어야겠네요.  <차이와 반항>!!!

  • 2022-03-11 20:02

    와 재미있고 재미있습니다. 세미나도 재미있고, 후기도 늠나 재미있군요! (청년 약장수의 탄생?)

    그리고 진짜 소름끼치는 건 마지막 짤.... 저 짤을 보니

    "국가에서 정한 7월14일 축제가 바스티유 감옥의 점령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바스티유 감옥의 점령이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25쪽)라든가,

    "여기에 우리의 진정한 연극이 있다고 말할 때, 이는 각본을 아직 다 외우지 못했기 때문에 '반복'하는 배우의 노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생각되고 있는 것은 비어 있는 무대적 공간, 이 빈 공간이 기호와 가면들에 의해 채워지고 규정될 수 있는 방식.......이다"(43쪽) 같은 말들이 떠오르는 군요. 

    네... 세미나란 진정 쾌락적인 것임을 새삼 느낍니다. '진정한 연극'을 만들어 보아요. ^^

  • 2022-03-11 22:26

    오..n승의 역량에서 나오는 후기란 이런 건가요? ㅋㅋ 

    정군샘이 갑자기 크~  하실 때 제 책상에 소주잔이라도 놓여 있는 줄 알았어요 ㅎㅎ 평소 세미나가 11시가 다 되어가도 크게 힘든 줄 몰랐는데 어제는 어.. 이제 10시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 무거움을 날려주는 유쾌한 후기에 다시 힘이 나네요 ㅎㅎ 고맙습니다! 어제 처음 뵌 다나이솔샘과 임경원샘도 반가웠습니다.

  • 2022-03-12 09:30

    으윽.. 그 추리란게, 2시간 반동안 심신이 파김치가 되게 하는 일이더군요.

    세미나 하면서 쌤들이 '이건 무슨 말일까요?' 할 때마다 의문이 '더하기1'이 되는게 아니라 n승으로 배가되는 것 같았습니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눈도 귀도 침침해지고, 반복의 기관이 아닌 교환의 기관, 머리를 써서 그런지, 기운은 위로 치솟고..

    음.. 이러다 나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교환의 기관인 머리를  반복을 사랑하는 기관으로 바꾸어야겠다, 싶네요.^^

    어제 하루는 <차이와 반복>은 저 멀리 밀쳐두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후기와 댓글들을 읽고나니 다시 끌어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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