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학교 7회차 후기- 현존재의 존재는 염려 (그리고 나도 염려)

micales
2021-10-20 22:56
254

 

 분명 이번 주에 후기인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늦게 뒤로 미뤄질 줄이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마 변명같은 이유를 대자면,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바람에 후기고 뭐고 다 뒷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지난 주 수업의 후기를 다음주 수업 하루 전 날에 쓰고 있다. 도대체 현존재의 존재를 염려로 풀어보겠다는데, 나는 내가 부른 화에, 앞으로 또 힘들게 해나가야 할, 절반이나 남은 책에, 그리고 일주일이나 주어진 휴가를 허무하게 써버린 나 자신에게 '염려'가 된다(그래도 '자염'이라고 했으니까...).

 

 하이데거는 존재를 다루면서 '진리'의 개념을 존재와 연관지어서 설명하려 한다("철학은 예로부터 진리와 존재를 함께 놓아왔다(...)진리가 정당하게 존재와 어떤 근원적인 연관 안에 서 있다고 한다면, 진리현상은 기초존재론적 문제틀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앞서서, (언제나 그래왔듯이)'전통적인' 진리개념을 이야기하고, 분석한다. 

 전통적인 진리개념에 있어서 가장 핵심은 바로 "일치"개념이다. 즉, 주관과 객관, 대상과 그에 대한 판단과의 "일치"가 성립할 경우, 전통적인 철학에서는 이를 진리라고 보았다. 

 

 "진리의 본질은 판단과 그 대상의 "일치"에 있다(...)진리가 '인식과 그 대상과의 일치'에 성립한다면(...)만일 인식이 그것이 연관되어 있는 그 대상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그 인식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에 관한 일치의 문제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왜곡되어)"지성과 사물의 일치"가 진리인 것으로 전해져 왔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러한 "일치"의 개념을 문제 삼으면서 실제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 사이의 분리, 다시말해 지성과 사물 사이의 분리에 토대를 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이 분석에서 필요한 것은 인식이 이분법적이냐 아니냐를 떠난, 인식자체의 존재양식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하이데거는 인식이 현상적으로 분명해지는 때를, 즉 스스로가 참임을 증명할 때를 살펴보아야한다고 말한다. 

 

 "누군가 벽에 등을 돌린 채 “벽의 그림이 삐딱하게 걸려 있다”라고 참인 명제를 말한다고 하자. 그는 돌아서서 그림이 비스듬함을 지각하며 입증한다. 이 입증에서 “인식된 것”과 벽의 그림 사이의 일치가 확인되는 것인가? 대답은 “인식된 것”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에 따라 그렇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발언자가 그림을 지각하지 않고 표상하며 판단할 때, 그는 심리적 과정으로서 표상, 또 표상된 것의 의미(실제 사물에 대한 의식 속의 것)에서도 표상과 관련된 것이 분명 아니다. 그 발언은 벽에 있는 실제 그림에 관련되어 있다. 그 그림이 의미되고 있지 그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발언함은 존재하는 사물 자체로 향해서 존재함이다(...)발언에서 의미된 것은 존재자 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 외에 어떤 다른 것도 아니다.” 확증되는 것은 발언하며 향해 있음은 그것이 향해 있는 존재자를 발견한다는 것이다(판단작용이 있는 그대로의 존재자를 발견함)."(발제 중)

 

 이렇듯 여기에서 '입증'되는 것은 (주-객 일치가 아니고)다름아닌 존재자 자체(벽에 걸려 있는 실제 그림)이다. 발언이 참일 때, 그것은 존재자를 그것의 '발견되어 있음'에서 '밖으로' 말하고, 보게 해준다. 그것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개념, '아포판시스'이다. 

 사실 하이데거의 이러한 논의들의 기존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인식을 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자신이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존재자를 보게해줌'이 실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해했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또 하이데거는 이 발견함이 세계-내-존재의 하나의 존재양식이라고 한다. 진리는 현존재의 "참된" 행동관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나온다. 현존재는 발견하면서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세계내부적 존재자들을 발견하는 것은 세계의 열어밝혀져 있음(개시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존재의 근본양식으로, 그것에 따라 현존재가 세계내부적 존재자들과 관계한다. “이 열어밝혀져 있음과 함께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발견되어 있음이 있게 된다.”따라서 현존재는 이러한 열어밝혀져 있음(개시성)에서 진리의 ‘가장’ 근원적인 현상에 이르게 된다. 현존재가 본질적으로 자신의 열어밝혀져 있음으로 존재하고, 열어밝혀진 것(현존재)으로서 열어밝히고 발견하고 있는 한,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참(진리)”이다."

 

(........)

 

 사실 하이데거의 이와 같은 진리개념은 내가 가지고 있던 진리(뭔가 모르게 "진리!"하면 무언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깨달음 같은?)개념과는 확연히(비록 내가 이해를 잘하지는 못했어도) 차이가 난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전개하고 도출한 이 결론이 나에게는 아직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구석도 있다(아니, 전혀 와닿지 않는다!!). 말로는, 그리고 논리 상으로는 무언가 이해가 되는 듯하면서도, 막상 설득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그렇다고 답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초반 몇몇을 제외한, 가면 갈수록 복잡해지는 그의 사상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이런 느낌을 계속해서 가지고 가는 것도 있다. 분명히 논리 도식으로는 잘 넘어간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수긍'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아직 내가 하이데거를 덜 파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그럴 가능성이 매우 짙다). 어디서 부터가 막힌 것인지, 그리고 어디서부터가, 왜 와닿지 않는 것인지, 도대체 이 느낌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이번 주에 책을 일주일동안 열심히 읽어서 흐름을 타고 올라가서 끝내 알아내고야 말았다......고, 하고 싶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당장 책부터 제대로 펴보지를 않았으니, 그게 성공했을리가 없다. 대체 이놈을 어떻할련지....막막하기만하다....아, 해야되는데...해야 되는데....내가 '염려'된다.

 

댓글 2
  • 2021-10-20 23:08

    늦은 후기일 망정 정성스런 정리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주 잘 읽었습니다. 

     

    현존재가 자신의 열어 밝혀져 있음으로 존재하고, 열어밝혀진 것[현존재]으로서 열어밝히고 발견하고 있는 한 현존재는 진리이고 진리 안에 있다고 이야기한 부분을 말끔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현존재는 (눈앞의 것들에)  빠져 있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빠져 있기에, 그의 존재 구성틀상 '비진리'안에 있기도 하다네요... 

     

    현존재의 의미로 염려까지 왔는데,, 하이데거는 존재[일반]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대답은 여전히 주어져 있지 않다(309)고 합니다.  아직 할 얘기가 많이 남았나봐요...재하샘 말대로 절반이나 왔는데,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습니다. 

  • 2021-10-21 09:41

    하이데거의 '진리'가 어쩌면 우리가 읽는 이 텍스트의 백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면에서 이전 철학들이 흐르는 방향을 바꿔 놓았지만, 그 '진리'야 말로 가장 크게 바꿔놓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게 진짜 어렵습니다. ㅎㅎㅎㅎ(그리고 저도 염려) 그러고보니 어쩌면 하이데거가 현대철학을 어렵게 만든 범인일지도 모르겠군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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