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자연과학 후기

봄날
2021-05-25 00:41
364

친정부모님과 관련된 복잡한 심정 때문에 사실은 이번 시간은 아예 안들어오려고 했다. 기분도 언짢고 책도 주마간산격으로 휘리릭 읽어버린 참이었다. 뒤르켐 부분을 읽고 질문을 올릴 때까지는 괜찮았는데...하지만 동학들과 실로 열렬한 토론을 하는 가운데 기분이 적잖이 풀려서 같이 세미나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하여 정군샘은 나더러 후기를 올리라 하시는지...하마터면 울 뻔 했다.

 

콩트에서 ‘실증주의’와 ‘경험주의’의 차이를 가지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어쨌든 범주로 봤을 때 경험주의는 실증주의로 수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토크빌에서 질문한 가마솥님은 인천공항 정규직화 문제를 연관시켰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을 이론적으로 제시한 토크빌에 감정이입되신 듯...

퇴니스는 몰라도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데..어쨌든 이처럼 똑떨어진 유형은 실제로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뒤르켐은 ‘사회’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사회학의 종주’라고 한다. <증여론>을 쓴 마르셀 모스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 세미나에서 아렘샘이 뒤르켐을 꽤나 애정하시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짐멜. <돈의 철학>의 일부분을 읽으며 그가 매우 독특한 필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어려운 것은 기본이었지만, 뭔가 사물과 이론을 연결시키는 데 있어 독자로 하여금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론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니고 있으면 가치가 줄어드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 아주 참신했다.

사실 베버의 철학적 사유는 최소한 이 책에서는 너무 skip을 자주 해서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실재’와 ‘이념형’의 끝없는 술래잡기에 대한 정군샘의 질문은 후기를 쓰면서 비로소 (질문)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게 후기의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파슨스를 맡았던 재하가 소련의 붕괴가 파슨스의 이론을 더욱 뒷받침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 근대 서양사회가 최종적 산물이라는 이론을 그가 제시했다면, 소련은 근대 서양사회의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므로 지속한다면 그의 이론은 부적합한 것이 된다. 10대인 재하로서는 소련해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한국전쟁을 상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을 것이다.(아니 뭐 나는 아나?)

 

자연과학 부분은 아렘샘이 현대물리학의 과정을 정리하고 질문한 것으로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전회’라는 개념은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우리가 훑어온 철학의 이행단계를 이해하는데도 유용하다. 본격적으로 ‘과학’의 문제를 다루는 이번 장에서 요요샘은 발전의 사이클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했다. 철학사를 공부하는 가운데 등장한 자연과학은 오히려 ‘잘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막 던지며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국 철학조차도 AI가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고, 언뜻 나는 그런 시대는 바로 디스토피아일 거라고 생각했다. 과학기술은 이미 인간을 사이보그화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것에 대해 다소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는 정군샘은 슬슬 이미 다음 시즌의 주제에 대해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는 인상이....자연스럽게 이어진 방담시간은 거의 과학이 테마를 차지했다. 사실 스테레오 라디오가 주요 매체이던 시절에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즐거움에 빠지곤 했다. 주지하듯이 오늘날의 디지털기술은 ‘우리가 모르도록 모든 기술을 감춘’ 기판 하나를 그저 새로 갈아끼우는 방식으로 우리를 기술로부터 배제시켰다. CERN으로 상징되는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과 사람과 데이터를 가지고 과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과학기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 인식론이나 우주생성의 비밀이나 철학이나 과학기술이나 새로운 사고로의 전환이 없이는 서로의 틀을 넘을 수 없다. 베르그송이나 라투르를 읽는 것은 그 틀을 넘어보려는 우리 방식의 시도가 될 수도 있겠다.....

댓글 5
  • 2021-05-25 10:06

    사실 저는 어제 세미나를 시작하기 전에 약간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일단, 텍스트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휙휙 건너가는데다가, 발제 없이 각자 맡은 부분 질문으로만 하면, 큰 줄기를 놓치고 가게 되지는 않을까....싶었던 것이죠. 그런데 오히려 질문 하나에서 세부 내용을 더 잘 챙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참... 반대로 생각해 보면 '역시 존재론만 없으면 괜찮은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요. ㅎㅎㅎ

     

    더불어서 요요샘께서 제기해주신 질문은 여전히 오늘 아침까지도 제 머리속에 남아,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멀어져가는 저 기술 속에~ 좋아하는 우리 사이 멀어질까 두려워어~~'

    같은 노래를 부르게 하는군요.(죄송합니다) 그 질문을 주제삼아서 공부를 계속해봐야겠습니다.

     

    그리고...어쩐지 봄날샘께서 후기를 쓰신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감정은 그것과 반대되는, 그리고 억제되어야 할 그 감정보다 더 강력한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면, 억제될 수도 없고, 제거될 수도 없다."(스피노자, 황태연 옮김, <에티카>, 4부 정리7) 라는 말도 있지 않나....하는 변명을 남겨봅니다. ^^ 

    • 2021-05-27 11:54

      못살아...ㅎㅎ

      그런데 정말 세미나를 하면서 후기를 쓰면서 격앙됐던 제 감정이 조금 사라지더군요....그런데 그렇다면 저를 억눌렀던 슬픔의 감정을 없애버린 그 감정은 뭐란 말입니까?

  • 2021-05-25 20:13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툴을 잃어버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분석의 틀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렇기에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석이란 툴만 가진 시대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새 왜 그리 스토리에 집중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고....

    뭐... 이런 생각이 드는 세미나시간이었습니다.

     

  • 2021-05-25 20:17

    고전 사회학의 대가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내가 알던 사회과학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새삼 확인했습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과학적 사유'를 숭배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 과학이라는 게 또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었는지!!

    그리고.. 자연과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철학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과학도 테크놀로지도 문맹수준이니, 문해력을 높이려면 알지 못한다는 걸 알고, 공부-노동을 해야 하는구나!, 싶네요.

    이렇든 저렇든  군-닐이 쓴 서양철학사의 끝이 다가오고 있군요!! 다음주엔 자축하는 책걸이 세레모니라도 해야하는 것 아닐까요?ㅎㅎ

     

    *공부-노동이라는 말은 얼마전 읽은 정희진의 글에서 빌려온 단어입니다.^^

    "문해력은 자신의 가치관과 무지에 대한 자기 인식의 문제다. 때문에 문해력 향상의 첫걸음은 에포케(epoche, 판단 정지)이다. “나는 모른다”가 공부의 시작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력부터 의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 몸에는 이미 많은 의미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무지라는 가정을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가 중노동인 이유다. 잠깐의 판단 중지. 그 잠깐의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앎은 자기 진화의 과정이지 시비를 판단하는 행위가 아니다. 지식을 정보로 아는 이들은 타인을 ‘가르치려 들지만’, 아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들은 우리를 ‘가르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4641.html#csidx54e926fcd0b7ac39b1910602f53f03d "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4641.html#csidxb0bdd3743f3e8419d632955ad21554f onebyone.gif?action_id=b0bdd3743f3e8419d632955ad21554f

    • 2021-05-26 16:06

      그 중노동을 혼자해도 되지 않아 아무튼 이어갈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저 역시 이번에 본 사회과학이 제가 '알던'(뭘 알긴 했는지... 싶네요) 사회과학과 많이 달라 좀 놀랐어요. 철학책에 사회과학이 소개되었다기보다는 애초에 철학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녹아든 채 분리되어간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개관'에 그치지만 다음 시간에 읽을 현대철학을 다시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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