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철학학교] 서양철학사 19장 키에르케고르 후기

정군
2021-05-18 00:07
398

‘실존’이라는 개념
(기계적으로 구분하자면) 19세기 이전까지 철학의 메인 테마는 ‘존재와 인식’이었다. 물론 그 테마 안에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섞여있기는 했지만, 그 문제가 ‘문제화’되는 건, (최소한 우리가 읽는 텍스트 상에서는) 키에르케고르에 와서다. 말하자면, 여기에 와서 ‘인간’에 대한 다른 이해의 지평이 펼쳐지는 셈이다. ‘세계’ 또는 그것의 ‘역사’ 이런 것 말고, 도대체 개별자로서 ‘나’, ‘쇠렌’, ‘요하네스’ 같은 이 인간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것, 그리고 거기서부터 앞서 말한 커다란 것들을 설명하는 것, 그게 아마 ‘실존’ 개념을 통해서 ‘실존주의자’들이 말하고자 했던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고방식이 출발하는 시작점 어딘가에 키에르케고르가 있었던 것 같다. 니체나 현상학자들이 키에르케고르를 직접 참조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라는 시대가 어떤 점에서는 그런 사유를 추동하는 조건을 형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순전히 ‘개념사’적으로만 설명한다면, ‘절대정신’ 이래로 철학이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미 ‘세계’가 다 설명(?)된 마당에 그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다르게 말하면,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를 찾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다른 길’을 찾는 누군가가 ‘신앙인’이라면 가만히 머무를 수 없었을 것이다.

 

‘도약’이라는 개념
‘인간’은 과연 여러 정의(definition)들의 집합체인가? 만약 그렇다면, ‘개별자-인간’을 논리로 연역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인간’에게는 비논리적 부분이 있다. 스피노자를 제외한 17세기 이성주의자들에게 그 부분은 ‘정념’으로 표현되었고, 18세기에는 ‘의지’로 표현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약’은 바로 그런 부분에서 일어난다. 게다가 ‘인간’은 늘 어떤 ‘상태’ 속에 있지 않은가? 키에르케고르가 ‘진리’를 ‘일치’의 문제에서 ‘상태’의 문제로 전환할 때에는 바로 그 점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스타일’과 ‘진리’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키에르케고르가 ‘필명’을 사용하여 자신의 작업을 이어갔던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세미나 주제와 상관없이 ‘글쓰기와 자아’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령, 어떤 것이 되었건 글을 쓸 때, 가끔 기묘한 해방감 같은 걸 느낄 때가 있는데, 그건 내가 나 아닌 사람이 된 듯 한 기분을 느껴서다. 그러니까 어떤 글을 쓸 때면 항상 원래 쓰려고 했던 것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어떻게든 쓰려던 것을 쓰는 상태로 돌아오려고 애를 쓰는데, 가끔 그냥 그렇게 이탈하려는 힘을 놔둬버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뭔가가 나오곤 한다. 그러면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을 쓰는 나와 이상한 힘에 이끌려서 뭔지 모를 무언가를 쓴 나가 분리되는 셈인데,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이미 나와버린 그 글과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를 들어서 이런 게 ‘이중 성찰적 의사소통’과 비슷한 것 아닐까? 뭐,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시, 우리 주제로 돌아오자면, 키에르케고르가 했던 ‘필명 작업’은 거칠게 말해 ‘진리’를 드러내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걸 니체와 연관지어 설명하자면, 내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힘’들을 이용하는 방법인 셈이다. 그 힘을 이용해서 나는 ‘심미’, ‘윤리’, ‘종교’에 모두 가볼 수 있다. 물론, 나는 그 ‘힘’을 이용해서 더 멀리 가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니체도 그렇고, 들뢰즈-가타리도 그렇고, 푸코도 그렇고, 아니 어쩌면 ‘글’을 쓴 사람 모두가 그 ‘힘’을 이용하는 기술을 극한까지 연마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여하튼, 그리하여 그 부분이 나에게는 가장 자극적이었다.^^

 

이게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게 키에르케고르랑 딱히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만, 그건 우리 텍스트의 저자들 탓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뭐랄까....이렇게 알 듯 모를 듯 이게 무슨 소리야 싶은 이 느낌은, 우리 세미나의 키에르케고르 부분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그리고 나는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키에르케고르 관련 책 세권을 후다닥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댓글 12
  • 2021-05-18 01:56

    세미나시간에는 언급되지 않은 선택에 관한 얘길 하고 싶어요.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에는 선택의 문제, 즉 의지와 결단의 문제가 따르는 것 같은데요.

    단계별 인간/실존으로의 이행에는 "오직 자신의 삶의 자주적 선택(750p)"만이 중요하다고.  

    그런데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 어느 땐 탐미적으로 어느 땐 윤리적으로 또 심지어 종교적으로 살고 싶어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선택은 100%의 상태가 아니라 51%에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면 매번 선택받지 못하는 나머지 49%는 내가 아닐까? 겉으로는 내가 선택한 51%로만 표현되겠지만, 

    우리의 내면은 이런 선택들의 아수라장(아이러니의 연속/고통의 연속...)이 아닐까... ㅎㅎ 

     

    그에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책 제목... 키워드는 공포, 불안과 죽음, 이것이냐 저것이냐 등.

    암튼 사춘기적 불안정성과 맞닿아서 저와 제 친구들이 뭣도 모르면서 홀릭했던 게 아닐까... 

     

    • 2021-05-19 11:30

      네, 정말 말씀대로 실존주의 하면 '자발적 선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세미나 때 명식샘 『68혁명』 책에 나오는 사르트르와 체 게바라 이야기를 한 것도 그 '선택' 문제와 관련해서 그랬던 것이고요. ^^ 이게 뭔가 '내 삶을 (실존적으로) 책임 진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하는 게 있는 듯 합니다 ㅎㅎ저

  • 2021-05-18 19:30

    키르케고르는 당최 따라잡기가 어렵게 텍스트가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라 좀 난감했습니다. 아니 어쩌자고 진정한 신앙인으로 길을 잡았는지 원전을 좀 읽어봐야겠습니다. 너무 재미가 없다는 정군샘 말을 듣고 선집이 아닌 단행본 ‘죽음에 이르는 병’을 구매해 봅니다. 

    • 2021-05-19 07:54

      오호.. 니체 읽기가 윤리적 읽기였다면(또는 복수적? ㅎㅎ) 키르케고르는 심미적 읽기가 되는 거 아닌가요? ㅎㅎ 힘내세요 샘

    • 2021-05-19 11:34

      아... 제가 『선집』과 『불안이라는 개념』 두 권을 이래저래 떠들춰 봤는데요... 저는 사실 양쪽 어디서도 '오!' 하는 느낌을 못받아서리... 『죽음에 이르는 병』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심미적 단계'에 거대한 닻을 내리고 꿈쩍도 안 하는, 뭐랄까 '심미의 공룡'이랄까요. 그런 저로서는 '불가해'와 '핵노잼'을 향해 자발적으로 달려가 보시는 그 (여울샘적 의미의) 선택에 리스펙을 보내옵니다.

      • 2021-05-22 21:12

        수십여 페이지를 읽어가고 있습니다. 핵노잼은 아닙니다. 노잼입니다. 

  • 2021-05-19 08:20

    세미나 끝나고 문득 든 생각이..  키르케고르가 개인의 진실 또는 진리를 강조한 것을 제가 '보편성이나 영원성을 담지한 진리' 개념에 대한 포기로 (오해하고)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키르케고르가 최종의 단계로 종교적 단계를 제시하는 것이 모순돼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게 제 오해였단 생각이 들어요.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각기 '나'의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도달하는 진리 역시 '보편성과 영원성이 담지되는 진리'로 보는 게 아니었을까. 그러니 종교적 단계로 도약한 자만이 '진리'에 접근한 것으로 본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진실에 몰두하는 것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했구나, 과연 이것이 실존주의라는 흐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거구나..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진리'라는 개념이 아무리 재정의되어간다고 해도 '보편성과 영원성'이라는 특성은 어떤 기본값처럼 중심추 노릇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붕붕 떠다니던 텍스트'가 샘들의 정성스러운 발제와 진지한 생각들 덕분에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하네요.

    • 2021-05-19 11:38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 그런 듯 합니다. 관점주의적 진리로 진리관의 방향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항상 '진리'의 개념 안에는 해소되지 않은 '보편과 영원'의 문제가 잔여처럼 남아있는 듯 보입니다. 어쩌면 이 모티프가 군-닐 철학사 이후에 공부하게될 '사변적 실재론'을 가능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 2021-05-19 10:03

    암만해도 우리 세미나에는 심미적 태도와 윤리적 태도가 우세한 것 같았어요.^^

    하하 개인적으로 종교적태도에 가중치를 두는 저는..뭔지 모르게 키르케고르가 재미있었거든요.

    심미적 관점에서 보면 내가 좀 철지난 실존주의적 자장 속에서 종교적 태도를 이해하고 있나? 이런 생각도 들었답니다.ㅎㅎㅎ

    • 2021-05-19 11:39

      ㅎㅎㅎ 후기 자본주의적 심성이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 2021-05-19 15:53

    이데아 같은 거대한 개념들을 다루다가 실존이라는 개념을 다룬 키에르케고르를 알게 되어 저는 좀 편했어요. 좀 소심하고 우울한 느낌이 들긴하지만 ㅋ

    처음으로 인간 내면의 실존에 대해 사유했다는 점에서 요즘 사람같은 공감같은 게 생겨요. 

    까뮈의 이방인을 읽었을때 이게 뮌가했는데,  실존주의가 어떤 건지 조금 알게되었으니 시간이 되면 다시 읽어볼까 합니다. 

    • 2021-05-19 19:29

      오! 말씀을 듣고 보니 진정 (20세기) 소설들은 '실존주의'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는 듯 합니다. 『이방인』은 하나의 전범인 것 같기도 하고요. 달리 말하면 어떤 소설들은 '내면'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 것들이 있습죠. 아... 저도 이번 주, 다음 주는 소설을 좀 읽을까 싶은데... 될까 모르겠습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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