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64. 화수미제 -火水未濟 앞 날이 창창하다

2019-11-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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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책없는 여우?

 

 주역 64괘의 마지막은 어떤 괘일까? <서괘전>에서 말한다. “사물은 다할 수 없으므로 미제괘로 받아서 마쳤다.” 아직 이루지 않았으면 다하지 않은 것이니 다하지 않으면 낳고 낳는 뜻이 있다. 강을 건너며 완성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기제가 아닌 강을 건너지 않은 미완성의 상징으로 주역의 괘를 마무리 지었다. 다시 시작되는 듯 열려놓은 마지막으로 미완성 속에서 무궁구진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괘사> 미제는 형통하니, 어린 여우가 건넘에 용감하여 그 꼬리를 적시니, 이로운 바가 없다.

<단전>에서는 말했다. 미제가 형통함은 유가 중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우가 강을 거의 건넜다는 것은 아직 험한()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함이요, 그 꼬리를 적셔서 이로울 바가 없다는 것은 계속하여 마무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위치가 마땅하지 않지만 강유가 서로 응한다.

 

 강을 거의 건너갈 즈음에 꼬리를 적시니 여우는 강을 건너지 못한다. 마지막을 잘 끝마치지 못하니 이로운 바가 없다. 어린 여우는 두려워하고 삼가지 못하기 때문에 건넘에 용감한 것이다. 어린 여우가 건넘에 과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서 꼬리를 적심에 이른다는 것이고 이것은 알지 못함이 지극한 것이다. 초육은 꼬리를 적셨으니 부끄러우니라. <상전>에서 말하였다. “꼬리를 적심은 또한 알지 못함이 지극한 것이다.” 괘사의 어린 여우에게서 나를 떠올린다.

 이 에세이를 끝으로 어리바리 주역 글쓰기도 끝이 난다. 마지막을 잘 장식해야한다는 꼬임에 마지막 괘인 미제괘를 쓴다고 자신 있게 말하였다. 그러나 나의 요즘 상태를 보자. 셋째를 낳은 지 100일 정도가 되었다. 자신만을 바라보며 예쁘게 키우라는 생존 본능 때문인지 이 시기의 아가들은 미소를 머금으며 양육자의 자그마한 재롱에도 깔깔 웃으며 엄마의 모성애를 자극한다. 이 자그마한 존재를 키우기 위해 먹고 자며 젖을 먹인다.(모유는 참 예민하다.) 가사일, 다른 두 아이의 돌봄과 함께 내 몸 추스르기를 위해서도 먹고 자는 생존 본능에 충실하고 있다. 잠자는 시간이 아쉬운 요즘 글을 쓴다고 하다니, 그것도 주역을 가지고. 나는 정말 대책없는 여우다.

 

하지만 미제는 형통하다?

 

 미제괘의 여섯 효는 모두 위치가 마땅하지 않아 ‘부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는 왜 형통하다 하였을까? 미제는 미완성이다. 완성된 일에 대한 평가가 아니기에 미완성이라는 (완성을 향한)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미완성이라는 새로운 시작 앞에서 그 가능성은 무궁구진하지 않을까? 그러나 작은 여우가 강을 건너려고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꼬리를 적시는 것처럼 무작정 덤비는 것은 자중해야 한다. 또한 자중하며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면 형통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 주역은 긍정의 주문이다. 처음 주역 강의를 들을 때 ‘코에 걸면 코걸이 되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니 너무 나가면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았다. 나 개인의 상황과 맞물려 해석되기 때문이다. 임신해서 우울한 때를 보내고 있을 때, '산뢰이'와 '천산둔' 괘를 해석하게 되었다. 임신의 우울증을 임신하여 태아를 먹여 살리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석하며 나를 달랬다. 또한 갑작스런 임신으로 활동의 제약을 받아 속상할 때 잠시 쉬는 때도 있다며 또 나를 달랬다. '화택규' 괘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잘 화합되지 못하고 어긋났던 시기의 묵혀 두었던 감정이 주역 글쓰기를 통해 정리되고 해소되었다. 이 글을 마치며 “나 주역 공부 좀 했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 주역이라는 강을 건너지는 못하였지만 미제는 형통하다 하였다. 주역이라는 큰 강 앞에서 혹은 또 다른 도전 앞에서 혹은 이 끊임없는 인생 앞에서 여전히 미완성이고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이 육아가 시작되었다. 막막하고 끝없을 것 같은 육아와 공부의 험난함 앞에서 나는 또 나에게 긍정의 주문을 건다. 미제는 형통하다. 이 미완성 같은 나의 인생은 형통하다. 앞으로 나아갈 일이 창창하다.

 

댓글 3
  • 2019-11-20 17:21

    앞으로 유샘의 공부를 응원합니다.^^

  • 2019-11-21 10:48

    유, 등장할날을 손꼽아 기다릴께요..
    어리바리 주역 끝까지 마무리 해주신 어리바리팀 모두 감사합니다^^

  • 2022-12-16 23:33

    어린여우 ㅡ 어린왕자 ㅡ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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