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62. 뇌산소과괘 - 헛되다 생각 말고 꾸준히 노력하며 때를 기다리라

우연
2019-11-05 09:59
951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헛되다 생각 말고 꾸준히 노력하며 때를 기다리라

주역의 62번째괘 뇌산소과는 조금 과過하다, 약간의 잘못이 있다라는 뜻이다. 괘의 구성은 산 위에 우레가 진동하고 있는 모양으로 위, 아래 음효 두 개가 가운데 3, 4의 양효를 둘러쌓고 있는 형태다. 전체적으로 추진력 있는 양효보다 조용하고 정적인 음효가 우세한 괘이다. 가운데 있는 두 양효는 자신의 입장과 뜻을 관철시키려 하나 바깥에 위치한 음효의 기운으로 상황이 그리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 괘의 中에 해당하는 2효와 5효도 모두 음효이기에 주어진 현실을 과감하게 바꿔나가기 어렵다. 자신의 역량보다 과하게 힘을 쓰게 되는 고단한 형국이 되나 그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소과의 괘사는 형통하다(小過 亨)라고 한다. 이는 바른 것을 지킬 때 그러하다.(利貞) 작은 일은 가하나 큰 일은 불가하다.(可小事 不可大事) 일상의 자잘한 일은 조금은 과하게 처신하는 것이 괜찮으나 국가대사와 같이 스케일이 큰 일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데 많은 희,노,애,락을 느끼며 관,혼,상,제 등의 여러 관행을 치루며 살아가게 된다. 이 때 조금은 과하게, 내 능력보다 조금은 지나치게 힘을 쓰는 것이 소과小過의 형통亨通이다. 상전에서 말하길(象曰) 행실은 공손함을 과하게 하고 장례는 슬픔을 과하게 한다(行過乎恭 喪過乎哀)고 하였다, 타인의 친절에 좀 과장되다 싶을 정도의 감사를 표하고 지인이 상喪을 당했을 때 충분히 같이 애통해 주는 것이 우리의 관계를 윤택하게 만든다. 우리 윗 세대들이 집안 잔치를 치룰 때 떠들썩하게 잔치판을 크게 벌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조차 음식을 대접했다는 것도 이런 소과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여기서 댓가와 보상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소과의 시대, 약간 과하게 힘을 씀은 바름을 지키기 위함이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조금 과하게 해야지 지나치게 과하면 역효과가 난다. 정도를 잘 알아 貞에 맞게 처신해야 형통한 것이다. 지나치면 비굴하게 보일 수 있고 가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
 
소과의 형통은 개인사나 일상의 작은 일에 해당하는 것이지 국가대사나 사회혁명과 같이 큰 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大事에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힘을 써야 한다. 뇌산소과괘와 더불어 함께 살펴볼 괘로 택풍대과澤風大過괘가 있다. 서괘전에서 보면 소과괘가 하경의 마지막 3번째에 위치하고 대과괘는 상경의 마지막 3번째에 위치한다. 자연의 순환은 한 획을 긋기 전에 크게 한 번 그 기세를 떨치고, 인간은 일의 마무리 전에 마지막 힘을 다하라는 뜻일까? 양효보다 음효가 많은 소과괘와 반대로 대과괘는 가운데 4개의 양효가 바깥의 두 음효를 뚫고 나와 자신의 세를 관철시키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런 대과의 시대에는 약간 과도하게 힘을 써 큰 일을 도모함이 가능하다. 하여 이천은 요순의 왕위선양, 탕무湯武의 방벌放伐 등이 대과의 시대라 보았다. 대과의 괘사는 `가는 바를 둠이 이롭고 형통하다`이다(利有攸往 亨). 과감하게 일을 추진해볼 만하다. 반면 소과는 그저 작은 일상사의 무탈함에 만족해야 한다. 음의 기운이 양의 기운을 누르고 있다. 겸허함과 온순함, 순응함으로 때를 기다려야 한다.
 
또한 소과의 형통은 이웃과의 일상적 삶의 원만함이지 나 개인의 이익에 관한 형통이 아니다. 개인 자체로 보면 다소 고단한 괘이다. 내 능력보다 조금 더 힘써야 하고 그 노력에 아무 댓가도, 인정도 주어지지 않는다. 조금 억울할 수도 있다. 시절이 그러려니 받아드려야 한다. 내 개인의 욕심과 성과는 내려놓음이 알맞다.
개별적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효사를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여섯 개의 효사 모두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특히 주체가 되는 오효五爻의 효사를 살펴보면 소과의 시대, 개인적으로 일을 추진하기 쉽지 않음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밀운불우密雲不雨. 주역에 이섭대첩 利涉大川과 더불어 빈번히 등장하는 사자성어四子成語이다. 이섭대천利涉大川이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로 과감하게 큰 일을 도모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 밀운불우密雲不雨은 구름이 빽빽이 모여있지만 아직 비가 내리지 않은 답답한 형국을 의미한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여 어둡고 습하기만 하다. 시원하게 비가 쏟아져 주면 좋으련만 그럴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기만 하다. 아직 때가 아닌 것이다. 섣불리 일을 도모하다간 망치기 십상이다. 조급함이 일을 그르친다. 소과의 시대에 사회변혁과 같은 큰 일은 불가하다. 작은 일에 마음을 다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밀운불우密雲不雨.... 하지만 나의 작은 노력은 언젠가 비가 되어 건조한 대지를 적실 것이라는 믿음을 져버리지 말자. 소과의 시대를 건너가는 우리의 자세는 이러해야 한다. 별거 아니라고 치부될수 있는 일상의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며 그 노력에 타인의 인정을 기대하지 말라, 겸손과 온순으로 바름을 지켜가야 한다.

 
위에서 보았듯 소과의 형통은 작은 일에 관한 것이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형통이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지더라도 바름을 지켜나가기 위한 다소 힘겨운 나의 노력이 이웃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씨앗을 만든다. 그것으로 되었다. 고단하고 지친 우리의 마음에 주역의 소과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댓글 2
  • 2019-11-05 17:14

    아, 소과괘 설명을 읽고 있자니 뭉클해지네요. 조금이라도 과한 힘이 필요하구나, 내가 그러했나 돌아보게도 되고요. 쌤의 소과가 있어서 가능한거겠지요?

    • 2019-11-05 17:15

      자누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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