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61 풍택중부-돈어(豚魚)에게도 어버이와 어진군주의 마음으로

바당
2019-10-26 21:38
789

    

중부(中孚)는 마음을 뜻하는 중(中)과 믿는다는 부(孚)로, 마음으로 진실하게 믿는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가끔 등장하는 이 부(孚)는 말이나 태도 등을 신뢰하는 믿을 신(信)자와는 뉘앙스가 좀 다른데, 손 조(爪)자와 아들 자(子)가 합해서 만들어진 글자로 새가 알을 발로 위치를 바꾸면서 품는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기꺼운 믿음처럼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음을 다해 믿는다는 뜻이 중부괘에 담겨있다.

 

괘 모양을 보면 가운데 3과 4효는 비어있고(中虛) 중심이 되는 2효와 5효는 양(中實)으로 꽉 차 있는 모양이다. 가운데 마음이 비어있어서 뭐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고 밖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굳게 지키는 상을 그려볼 수 있다. 더불어 바람(風)이 못(澤)위에 불어서 못이 감응하여 반짝이며 찰랑 찰랑 움직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괘사는 성질 급한 돼지와 눈만 껌뻑여 답답한 물고기(豚魚)에게 까지 마음을 얻어야 길()하고 그래야 큰 일을 해낼 수 있고(利涉大川),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쭈~욱 바름을 지켜야 이롭다(利貞)고 하니 이 괘를 뽑으면 부처님과 하느님을 여러 번 배알해야 할 각오는 단단히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쨌거나 해야 할 일이라면 사심을 내려놓고 배를 가벼이(舟虛) 해서 몰고 가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렇듯 윗사람이 지성으로 아랫사람을 헤아리고 존중(巽)해주어야 아랫사람이 진실로 믿어 기뻐(說)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부모가 자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집안이 편안해지고 지도자가 백성을 자식 보듯이 하면 온 나라를 감화(孚乃化邦也)시킨다. 그래서 상전(象傳)에서는 군자가 이 괘를 보고 백성을 긍휼히 여겨 재판하는 데 신중을 기하라고 하였다. 특히 처형할 때는 끝까지 혹시나 잘못 판단할 수 있는지 의심하여 여러 사람과 의논하고 관용으로 형을 집행(議獄 緩死)해야 한다 했다.     

 

   학이 어두운 곳에서 우는 데도(鳴鶴在陰) 그 아기 새가 알아차리고 화답하는구나(其子和之). 나에게 좋은 벼슬이 있으니(我有好爵) 너와 함께 누리리라(吾與爾靡之). 구이(九二)에 나오는 이 효사는 공자님이 <계사전>에 인용해서 유명한 구절이다. 마음이 진실로 통하는 사이는 상대가 멀리 있건 안보이건 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이런 관계는 둘 간에 수많은 사건과 마음이 오가지 않으면 맺을 수 없다. 이런 사람에게는 내가 가진 좋은 것은 뭐라도 나눠 갖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자식은 물론이고, 일터에서 만나 기쁜 일과 어려운 일을 함께 겪어내는 동료라도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니 좋은 기회가 생기면 나누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중부괘가 항상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육삼(六三)을 보면 정응인 상구(上九)가 북을 치라면 북치고 춤추라면 춤을 추는 꼭두각시가 된다. 따지지 않고 쉽게 믿게 되는 중부 때에는 이런 일도 벌어지는데 자기를 잃고 휩쓸려가기 쉬운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때론 어쩔 수 없이 윗사람에게 끌려 다녀야 하는 답답한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이것을 역(易)에서는 앉은 자리가 정(正)하지도 않고 중(中)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 육삼을 조정하는 상구(上九)는 어떤가. 날개소리(翰音)만 하늘에서 요란하게 울리니(登于天) 고집()하여 흉()하다고 하였다. 믿기 쉬운 때인 중부의 끝에 가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믿게 되는 터라 자기가 옳다고 자기가 한 일을 화려하게 드러내려한다. 이제는 타인에 대해 가졌던 관대함과 진정성은 사라지고 자기를 몰라주는 변해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꼰대짓을 하는 어른이나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우리가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켰는데’ 라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부모세대의 안쓰러운 모습이다. 주역을 읽다보면 상구의 자리에서 처신을 잘하는 언사가 드문데, 어른답게 나이를 먹는 게 어려운 일인 듯하다. 허니 항상 변(變)하여 통(通)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 있는 것 같다.

 

   육사(六四)는 보름이 가까웠으니(月幾望) 자기의 짝(馬匹)을 버리면() 허물이 없다(無咎)고 했다. 이는 군주(九五)와 일할 때가 되었으니 짝인 초구에게 향하는 마음을 버리고 구오(九五)에게 가서 공을 이뤄야 탈이 없다는 뜻이다. 마음을 다해 해야 할 일이 있는 때는 왜 항상 딴청을 피우고 싶은지, 또 하필 그럴 때 하고 싶은 일이 더 생기는지. 옛 사람들도 그랬나보다^^.

 

   구오(九五)는 군주자리로 믿음이 있으니 끌어당기기만(有孚攣如) 하면 허물이 없다(無咎)고 했다. 믿음의 시대여서 백성들도 기꺼이 따라주고 군주 또한 덕이 많아 신망을 얻고 있는 상태라서 그냥 갈고리로 수확하기만 하면 되는 좋은 때이다. 그러나 이건 뭐지? 이렇게 좋은 상황을 두고 길하다고 해도 아쉬운 판에 고작 허물이 없다니.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뜻을 새겨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진 군주라면 어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자기 백성을 위해 하는 일이나 자식을 위해 하는 일은 공치사(功致辭)할 것이 못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는 부끄러운 일임을 알라는 듯하다.

댓글 2
  • 2019-10-27 09:05

    자식에 대한 기꺼운 믿음이란 성질급한 돼지와 답답한 물고기를 품는 믿음이었군요. 확 이해가 될거같네요 ㅎㅎ. 바당님 잘 읽었습니다^^

  • 2019-10-28 10:01

    구오의 끌어당김에도 상당한 내공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세심하게 살피며, 그러나 바탕에는 한결같은 믿음으로.. 그런데 말하다보니 미션임퍼서블이군요. 헷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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