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60. 수택절괘 - 절제에도 중용의 도가 필요하다

진달래
2019-10-22 03:58
1065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절제에도 중용의 도가 필요하다

 

 

“묵자가 송나라 국경에 들어섰을 때는 짚신 끈이 이미 서너 번 끊어진 뒤였다. 발바닥에 열이 나 걸음을 멈추고 살펴봤다. 신발바닥은 닳아 큰 구멍이 뚫렸고 발에는 몇 군데 굳은살이 박이고 물집이 생겼다.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냥 계속 걸었다. 길을 따라가면서 좌우의 동정을 살폈다. 인구는 그래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계속된 수재와 병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변하듯 그렇게 빠르게 변하지는 않았다. 사흘 동안 걸었으나 집 한 채, 나무 한 그루 보이질 않았다. 생기 있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고 기름진 밭 한 뙈기를 볼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묵자는 송나라의 서울에 도착했다.” - 루쉰의 『새로 쓴 옛날이야기』 「전쟁을 막은 이야기」 中

 

『주역』의 60번째 수택절(水澤節)괘는 연못(澤) 위에 물(水)이 있는 모양으로 연못이 물을 담는데 한계가 있다는 뜻에서 절(節)이라고 보았다. 절(節)은 원래 마디라는 뜻인데 절도, 절약, 절제, 제한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인지 수택절괘를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묵자(墨子)였다. 검게 탄 얼굴에 낡은 옷차림, 다 떨어진 신을 신고 입을 꼭 다물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사람. 묵자에게는 어떠한 치장도 없고 어떠한 나머지도 없이 심지어 감정도 낭비하는 일 없어 보인다. 루쉰의 이야기 속 묵자는 초나라와 송나라가 곧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묵자가 송나라와 초나라에 들어가 전쟁을 막는 이야기이다. 묵자는 당시 전쟁에 반대하며 비공(非攻)을 말했다. 묵자는 전쟁은 재화를 가장 크게 낭비하는 것으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택절괘의 단사(彖辭)를 보면 “하늘과 땅이 절도에 맞추어서 사계절을 이루니 성인이 법도를 제정하여 절도로 삼아 재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天地節而四時成 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고 하였으니 여기서 절은 곧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 것으로 묵자는 그것을 실현하는 가장 큰 방법이 바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절괘는 형통하니 억지로 제어하는 것은 올바름을 굳게 지킬 수 없다. (節 亨 苦節 不可貞)

 

그러니 당연히 절(節)은 형통하다. 절은 『논어』에서도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등장한다. 「학이」편 5장에 천승의 나라(제후국)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일을 성실히 하여 백성에게 믿음을 얻어야 한다. 비용을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는 때에 맞게 해야 한다.(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고 한 것이다. 비슷하게 묵자도 절용(節用)을 주장한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게 묵자가 살았던 시대는 훨씬 전쟁이 많았고, 혼란한 때였다. 묵자는 이러한 혼란은 이전보다 심해진 지배층의 사치와 낭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묵자는 물건이 제 쓸모 이상으로 쓰이는 것을 경계했다. 예를 들면 옷이 몸을 보호하고 추위와 더위를 막는 것 이상으로 사용되는 것, 즉 사치스러운 무늬를 넣는다던가하여 그 본래 목적 이외에 쓰임을 갖는 것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에서 이를 잘 지키면 곧 나라가 부유해 질 것이라고 묵자는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도 절(節)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기본적인 생활의 덕목이다.

 

 

그런데 괘사는 “절괘는 형통하다.”로 끝나지 않고 “억지로 제어하는 것(苦節)은 올바름을 굳게 지킬 수 없다.”고 단서를 달고 있다. 『주역』을 읽다보면 사실 이 정도는 기본이다. 앞서 본 뇌화풍(豊)괘에서도 ‘형통하다’고 하고 뒤이어 그 풍요로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단서를 달고 있으니, 절(節)도 그냥 형통하다고하고 넘어 갈리 없다. 연못의 물이 넘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은 중(中)을 바탕으로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하는 것으로 단순히 절약-무조건 아껴쓴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괘사에서는 중(中)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고 콕 집어 고절(苦節)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풍요롭게 살고 싶다고 말할 때 그 풍요로움이 어느 정도에서 머물러야 하는지 알기 쉽지 않은 것처럼 절제나 절약도 그것이 어느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좋은 지 아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묵자가 주장한 절용의 방법으로 절장(節葬)이 있다. 묵자가 살았던 당시 호화스러운 장례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후장구상(厚葬久喪)이다. 묵자의 묵가와 함께 전국시대를 휩쓸고 있던 유가(儒家)는 조상의 장례를 잘 치루는 것을 곧 효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이러한 지배층의 후장의 풍습이 갈수록 사치스러워져 백성들이 고통 받는 지경에 이른다.

 

“만약 왕공대인들이 상을 당했다면 겉 관은 반드시 여러 겹으로 할 것이고 매장은 반드시 깊게 할 것이며 수의는 반드시 많이 입히고 무늬와 수를 화려하게 할 것이며 봉분은 크게 할 것이다. 그리고 금과 옥과 구슬로 시체를 덮을 것이고 비단 천과 비단 실로 시체를 싸고 묶을 것이며 수레와 말을 무덥에 묻을 것이다. 또 장막과 천막 솥과 그릇 탁자와 자리, 항아리와 접시, 창과 칼, 깃털과 깃발, 상아와 가죽갑옷 등을 무덤에 묻거나 침능에 버리고야 만족 할 것이다. 죽은 자를 이사 가는 것처럼 보내야 한다고 말하면서 천자와 제후가 죽으면 순장을 하되 많으면 수백 명, 적으면 수십 명을 생매장한다. 장군과 대부의 순장은 많으면 수십 명, 적으면 몇 사람을 생매장한다.” 『묵자』 「절장」

 

후장의 폐해 뿐 아니라 상례의 기간을 길게 함으로써 생기는 폐해도 지적하고 있다.

 

“보통사람과 천민에게 죽은 자가 있으면 가산이 모두 고갈될 것이며, 만약 제후가 상을 당했다면 나라의 창고가 텅 비게 될 것이다. … 이와 같이 후한 장례를 계산해 보면 거두어들인 재물을 너무 많이 묻어버리고, 오랜 상례를 계산해 보면 너무 오랫동안 생업에 종사하는 것을 막는다. 결국 생전에 이룬 재물을 무덤에 묻어버리고, 뒤에 남은 후생들에게 오랫동안 생산 활동을 금지한다. 이렇게 하면서 부유하기를 바라는 것은 농사를 금하면서 수확을 바라는 것과 같다.” 『묵자』 「절장」

 

묵자는 이에 지배층의 사치하고 낭비가 심한 장례제도를 반대하며 간소한 장례제도(薄葬)를 제시한다.

 

“관을 세 치로 해서 뼈가 썩게 하고 수의는 세 벌로 해서 살이 썩을 수 있게 한다. 묘혈의 깊이는 아래는 물기가 없게 하고 냄새가 위로 올라오지 않게 한다. 봉분은 그 장소를 표시할 정도가 되면 된다. 곡을 하고 갔다가 곡을 하면서 와서는 의식을 위한 재화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도움이 되게 하여 부모에게 효도를 다해라.” 『묵자』 「절장」

 

 

그러나 이러한 묵자의 주장은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다. 이 당시 장례문제는 정치와 관련이 깊었기 때문이다. 유가 쪽에서야 당연히 묵자의 주장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겠지만 장자(莊子)가 묵자의 주장이 매우 좋지만 세상의 인정과 거리가 먼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평한 것이 눈길을 끈다. 장자는 장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묵자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후세를 위해 사치하지 않고, 만물을 낭비하지 않고 예와 법도를 화려하게 하지 않고, 먹줄처럼 스스로를 바로잡아 세상의 필요에 대비했다. 옛 도술에 이런 것이 있었는데 묵자와 금골리는 그런 기풍을 듣고 설복 당했다. 일을 할 뿐 즐기지 않는 것을 ‘절용’이라고 말하고 살아생전에 노래하지 않고, 죽어도 상복을 입지 않았다. 묵자는 두루 사랑하고 평등하며 이롭게 한다고 주장하며 전쟁을 반대했다. 그의 도는 노엽게 하지 않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널리 펴 차등이 없는 것을 좋았다. 그래서 선왕의 도와 같지 않고 옛 예악을 훼손했다. 묵자의 도를 일부로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노래 할 때 노래하지 않고 곡할 때 곡하지 않고, 즐거울 때 음악을 않는 것이 과연 인정에 맞는 법도인가? 그들은 살아서는 근면하고 하고 죽어서는 야박하니 그들의 도가 크게 각박한 것이다.” 『장자』, 「천하」

 

장자는 결코 묵자를 폄하하지 않았다. 그는 묵자를 천하의 호인이라고 했으며 앞으로 다시 보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그가 주장한 것들이 좋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묵자가 하는 일이 평범한 사람들이 따라 하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풍요로운 시대를 맞았다고 해서 끝 갈데없이 그 풍요로움을 탐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절제에도 중용의 도가 없다면 사람들에게 고절이 될 것이라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효사에 등장하는 ‘절제에 편안함(安節)’, ‘아름다운 절제(甘節)’과 같은 말이 눈길을 끈다.

 

 

예전에 누군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시대에는 결핍을 견뎌내는 능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했다. 절제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택절괘를 살펴보면 이러한 절제를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은 이롭지 않다. 이 괘에서는 절제에 편안하게 되려면 지위가 높은 사람이 절제하는 것으로 안절, 감절 등을 이룰 수 있다. 묵자가 주장한 절용, 절장은 모두 절제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다. 나라 안이 사람들이 혹은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고루 잘살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들, 지배층의 절제가 우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논란이 되었던 묵자의 주장, 앞으로 절제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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