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55. 뇌화풍괘 - 풍요로운 시대를 경계하다

진달래
2019-09-1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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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제목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자락이라고 훔칠 수 있을지^^

 

풍요로운 시대를 경계하다

 

 

풍(豊)자는 꽤 재미있게 생긴 글자이다. 豆(두/제수를 올리는 그릇)위에 음식을 높이 쌓아 올린 모양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의 농사가 끝나고 수확물을 가득 얹어 제사를 지낼 때,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을 보면서 이 글자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리고 옛날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올해는 풍년(豊年)이구나!”라를 외쳤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두가 바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풍년이 드는 것’이 아닐까?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도 이맘때가 되면 여전히 ‘풍년’을 기원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 삶은 이렇게 풍년을 소원하는 것과 별개로 여러 가지 면에서 ‘풍족해졌다.’ 여전히 어디에선가는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일상적으로 굶어 죽을 걱정을 하지 않으며,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온 식구가 매달려 있지 않아도 된다. 근 100여년 사이에 우리는 먹을 것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그 이외에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얻었으니 나름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

 

 

풍괘는 형통하다. 왕만이 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으니, 근심이 없으려면 마땅히 해가 중천에 뜬 듯이 해야 한다.(豊 亨 王 假之 勿憂 宜日中)

단전에서 말했다. 풍괘는 성대함이니, 밝음으로 움직이기에 풍성함이다. “왕만이 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음”은 지극히 큰일을 높이는 것이다. “근심이 없으려면 마땅히 해가 중천에 뜬 듯이 해야 한다.”는 것은 마땅히 세상을 고루 비추어야 함이다. 해가 중천에 뜨면 기울고 달이 차면 이지러지니, 하늘과 땅에 꽉 차고 텅 비는 것도 때에 따라 줄어들고 불어나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하물며 귀신은 어떻겠는가? (彖曰 豊 大也 明以動 故 豊 王假之 尙大也 勿憂 宜日中 宜照天下也 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虛 與時消息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풍괘의 괘사를 보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풍족함은 개인 차원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풍요로움이다. 따라서 이를 감당하는 것도 ‘왕’ 정도는 되어한다. 그래서 단전을 보면 이때에 이르러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그 풍요로움이 해가 중천에서 세상을 고루 비추듯이 모두에게 미치도록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풍요로움도 마치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어느 순간에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 때 텔레비전에서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가 인기가 있었다. 이후 사람들은 모두 “부자 되세요.”를 덕담처럼 주고받았다. 그 때 아마도 사람들은 80년대 풍요로움이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 같은 꿈을 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풍요로움이 끝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원은 무한한 것이 아니며, 내가 쓰고 버리는 쓰레기는 가난한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먹을 것이 남아도는 데도 한쪽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일어나는 환경오염, 핵과 같은 위험한 자원에 대한 경고, 풍요로운 시대의 미래는 결코 장밋빛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풍요로운 시대임에도 사람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품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풍요로움은 과연 무엇일까? 어찌 보면 인류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긴 시간 노력하며 살았고 그래서 우리는 이제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졌을까?  재작년 가을 <맑스의 철학> 강의에서 '부유하면서 궁핍한 사회'라는 표현이 있었다. 더 많은 것이 생산되고 부유한 사회가 되었는데 '소외'된 사람들은 궁핍한 사회를 살고 있다고 했다. "부자 되세요"를 다시 생각해 보자. 여기서 우리가 되고 싶었던 '부자'는 단순히 돈이 많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을까? 우리가 되고 싶었던 '부자'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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