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브 죽음 3회] 아미쿠스 모르티스

요요
2022-10-10 09:26
550

죽어가는 과정은 죽음이 아니다(Dying is not death)

(리호이나키, 『아미쿠스 모르티스』, 삶창, 2016년)

 

 

 

리 호이나키는 이반 일리치의 가까운 친구이다. 나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녹색평론사)를 통해 그 사람을 만났다. 이반 일리치를 읽고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리 호이나키는 논리 정연한 일리치와는 약간 결이 달랐다. 영적이고 빛나는 통찰이 넘친다는 점에서는 분위기가 비슷했지만 그는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믿음의 사람에 가까웠다. 그는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성찰적이고 실천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으며 과시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번에 읽은 『아미쿠스 모르티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겸목이 내게 리뷰를 부탁한 챕터는 리 호이나키의 동생인 버나드가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버나드는 식도에 종양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멀리 독일에 있는 형 리 호이나키에게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 이후로 리 호이나키는 버나드와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임종을 앞둔 동생의 마지막 날들을 곁에서 함께 했다. 첫 번째 편지를 받은 이후 버나드가 자신의 질병을 마주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리 호이나키는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의 제사에서 리 호이나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형제 버나드 호이나키(1929~1999)를 기억하며. 그는 죽어가는 과정이 삶의 방식과 다르지 않음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버나드는 급진적 지식인이었던 리 호이나키와 달리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는 tv 보는 것을 즐겼고, 시카고 베어스의 팬이었고,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푼돈 내기 포커를 쳤고, 가끔 아내와 하는 쇼핑과 외식을 즐기는 전형적인 미국 중하층계급의 사람이었다. 리 호이나키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진단받은 그의 지식인 친구들이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면서 의사들과 의학시설에 매달리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 보아왔다. 그러나 버나드는 달랐다. 버나드는 종양이 온 몸으로 퍼진 것을 알게 되자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더 많이 표현했고, 분노와 억울한 감정의 발산 대신 날마다 “깨달음과 평화, 지혜로 … 고마움으로 진보(86)”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리 호이나키는 버나드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여정을 함께 했다. 리 호이나키는 버나드가 죽어가는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삶과 죽음을 응시할 수 있는 선물을 받았다고 느끼고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내가 리뷰를 맡은 챕터의 제목이자 이 책의 영문 제목인 ‘죽어가는 과정은 죽음이 아니다’는, 중요한 것은 죽음(death)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의 일부인 죽어가는 과정(dying)에 있다는 리 호이나키의 성찰을 잘 드러내 준다. 그는 버나드가 죽어가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완벽한 균형 속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죽음의 균형을 맞이할 수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삶의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했을 것이다.

 

리 호이나키를 읽으며 나도 버나드처럼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죽기 원한다고 해서 그런 죽음이 허락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침상에 누워서 24시간 돌봄을 필요로 하는 내 어머니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전 나는 요양병원에 계셨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 2년 전 병원에 입원할 때 55키로 가까이 되었던 어머니는 33키로의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팔 다리는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뻣뻣하게 굳은 마른 나무막대기로 변했다. 장루 수술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는 남이 비워 주어야 하는 배변 주머니를 찬 상태에다가 감염의 위험이 높은 욕창을 가진 와상환자가 되었다. 게다가 요양시설에서 앓은 옴의 후유증 때문인지, 피부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그런지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려움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우울증과 치매로 어머니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면서 어머니의 거취에 대한 결정은 온전히 자식들의 손에 맡겨졌다. 의학적으로 새로운 진단이 내려질 때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거듭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대개는 의사의 진단과 처방에 따랐다. 그렇게 내 어머니는 제도화된 의료의 수혜자이자 관리대상이 되어갔다. 비록 온갖 기계장치를 달고 임종을 기다리는 상태의 중환자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가 되어 새로운 진단명이 하나씩 추가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이것이 이른바 연명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연명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결국 내가 찾은 대답은 집에서 먹이고 씻기고 돌보면서 어머니의 고통을 지켜보고 그 고통에 참여하자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퇴원한지 이제 2주.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리 호이나키가 동생 버나드의 마지막 곁을 지킨 것처럼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지난 주말에 어머니 간병을 하고 돌아와 녹초가 된 몸으로 정신없이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겠다. 깨어나서도 리 호이나키가 그랬듯이 정신이 투명하게 맑아지는 영적인 경험을 하기는커녕 멍한 상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반나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배움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 예전과 다른 어머니와 새롭게 관계를 맺는 데도 강약을 조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이런 시점에 마침 리 호이나키의 『아미쿠스 모르티스』을 읽게 되었다. 눈앞에 닥친 돌봄의 과제에 정신없이 쫓기던 내가 잠시 멈추어서 이 시간이 어머니의 죽음의 과정에 참여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버나드가 자율적으로 죽음의 과정을 맞이하면서 리 호이나키를 초대한 것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어머니 역시 자신의 죽음의 과정을 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애통해 하거나 비탄에 빠질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어머니와 지금 이 상황에 적합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추함, 정의와 불의, 기쁨과 고통, 사랑과 우정,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몸을 내게 준 어머니가 의심할 나위 없는 늙음과 질병 그리고 죽음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감히 바란다. 이제부터 쇠털같이 많은 돌봄 고행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 이 나날들이 어머니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아스케시스(askesis/수행)의 시간이었다고 기쁘게 회고할 수 있게 되기를!

 

 

댓글 6
  • 2022-10-10 09:43

    '아미쿠스 모르티스'는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친구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 2022-10-10 09:44

    애통해하거나 비탄에 빠질 것이 아니라 적합한 관계를 맺을 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 기억하고 싶습니다. 샘! 고맙습니다.

     

  • 2022-10-10 09:45

    요요샘 글이 아침에 반갑게 다가왔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다가, 

    지붕 아래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다가

    죽음을 문득 생각하게 된 아침이었습니다.

    죽음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요요샘 글을 읽고 들었습니다.

  • 2022-10-10 10:00

    어떤 마음의 계기, 결단으로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는지 기회가 되면 듣고 싶어요.

    저는 엄마 돌아가시고 3년이 되어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본인이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지내실 수 있게 해드리고 곁을 지켜드리자는 마음을 낼 수 있게 되었네요.

    그런데 이게 아버지 개인을 이해했다기보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날들이 어떠한지 조금 알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 2022-10-10 11:48

    요요샘~

    제게 꼭 필요한 때에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요샘 건강도 잘 돌보시길 바랍니다.

  • 2022-10-17 09:04

    죽어가는 과정이 삶의 부분임을… 고통에 함께 참여한다는 말씀…기억하고 싶습니다. 샘 몸 살피시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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