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두번째 후기 - 젠더, 그 모호한 상보성

곰곰
2021-10-24 00:50
257

이번 시간엔 3장 젠더로 이루어진 세상과 4장 토박이 문화 속의 젠더를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그렇지만 (^^) 여러 좋은 이야기가 많이 오갔는데, 오늘은 (스스로 정리하는 의미에서) 젠더의 '상보성'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비대칭적, 또는 모호한 상보성은 무엇인가. 

“두 젠더 사이의 상보성은 비대칭적이면서 모호성을 띤다. 비대칭성은 양쪽의 크기나 가치, 힘이나 무게 상의 불균형을 의미하지만, 모호성은 그렇지 않다. 비대칭성은 양자의 상대적 위상을 가르키지만 모호성은 양쪽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264-265p) 

 

일리치는 두 젠더의 상보적 관계를, 사회적으로 구축된 남녀 간의 교환관계와 비교한다. "상보성은 이념적으로 ‘자급자족적 관계’, 즉 은유적이긴 하지만 대립각을 이루지 않는 그런 관계를 지향한다. 반면, 교환은 사회적 배역들 간의 관계를 의미하며 실제로 벌어지는 교류와는 상관없는 일반적 결합을 뜻한다. 교환은 교환 당사자들을 점점 더 확고한, 즉 모호성을 남겨두지 않는 동질적 결합으로 몰아가며 따라서 그들 사이의 비대칭성은 위계와 종속으로 기울게 된다. 교환으로 관계가 구성되면, 양자 사이의 공통분모에 입각해 그들의 관계도 규정된다. 하지만 두 실체가 모호성의 관계를 이루면, 남녀 간에 끊임없이 생겨나는 부분적 부조화로 인해 위계와 종속으로 기우는 경향은 뒤집힌다.” (266p)

 

차이가 있는 두 젠더가 서로 만나 어울린다.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자본주의는 그 경계를 모두 밀어버리면서 젠더를 아예 폐기했고, 사람들은 이제 젠더가 아니라 해부학적 차이만으로 성을 구별하게 되었다. 젠더는 사라지고 성만 남았다. 

 

그렇다면 과거의 젠더 간의 차이는 어땠을까.

토박이 문화 속의 예시를 보자. 어느 곳이든 토박이 주민들은 멀리서 누군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얼굴이 안 보여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이 어느 절기인지, 농기구는 무엇을 사용하는지, 짐을 머리에 이는지, 어깨에 짊어지는지만 보고 젠더를 알았다. 거위가 들판에 돌아다니면 근방에 여자애가 있겠구나, 양떼가 나타나면 사내애가 나타나겠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만약 예외가 발생하면 그 사람은 타지에서 왔거나 체면 차릴 필요가 없는 자다. “젠더는 두 다리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행동거지마다 존재하는 것이다.” (68p)

 

젠더는 성과 다르고, 젠더에는 훨씬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젠더는 어느 곳에서도 동일하지 않은 근본적 이원성을 이루고 있었다. 일리치는 오른손-왼손 비유를 쓴다. 오른손과 왼손은 같은 손이지만 어쨌든 다르다. 지금처럼 버튼을 눌러 일하는 산업사회 이전에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양손을 다 써야 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오른손잡이다. 그러나 어떤 나라에서는 왼손잡이가 대접받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 다양한 규칙을 통해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쓰도록 가르쳤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어떻게 왼손 또는 오른손을 쓸지 섬세하게 정했다.  

 

그럼에도 ‘비대칭적’이라는 말과 오른손-왼손 비유가 조금 찜찜하다. 어쩔 수 없이 우열관계가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위계를 상정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일리치는 한 쪽이 없으면 한 쪽은 살아갈 수 없다고,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교환의 세계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차이가 발생하는 순간 둘의 우열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게 되고 권력이 작동하게 되는 거잖아… 의심이 자꾸 생긴다. 

 

 

이번 세미나에서 많이 얘기되었던 구절이 있다. “모든 토박이말은 형태가 다른 두 가지 언어에서 나온 것이다. 이 두 언어는 두 젠더 영역과 일치한다. 각각의 영역에서 남자와 여자는 젠더의 고유한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한다. 한쪽 젠더가 말을 하면 다른 쪽 젠더는 침묵을 지킨다. 상대방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역에 관해 말하기 위해 공동의 토박이말을 쓸 경우, 토박이들은 직관적으로 은유적 표현을 쓴다.”(263p)

 

일리치는 현대 물리학의 인식론을 예로 들면서 사회과학에서는 이러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고 언급한다. 오랜만에 과학책을 살짝 뒤져보면서 현대 과학에서 ‘상보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찾아 보았다. 그는 물리학자라기보다 철학자적 풍모를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자 이론에 대한 보어의 설명은 다소 철학적이다. 양자 역학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배타적 특성이 상보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빛은 입자이며 파동이다. 입자성과 파동성은 상보적(상호배타적)이지만, 실험을 하면 이 둘 중 하나의 성질만 확인할 수 있다.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 되는 실험은 절대 할 수 없다. 입자에 대한 실험을 하면 입자를 보게 되고, 파동에 대한 실험을 하게 되면 파동을 보게 된다. 하지만 둘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므로, 빛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둘 다 필요하다. 상보성이란 타협이 아니며, 빛의 실체가 입자와 파동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정의 여러 면을 보는 것과 같다. 내가 보는 것은 어떤 면을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어떤 부분이 강조되어야 하는가는 실험의 종류, 즉 자연에게 무엇을 질문하는가에 달려 있다. (<수학없는 물리>) 

 

보어는 더 나아가 문제는 우리가 가진 ‘언어’에 있다고 지적했다. 상보적인 두 개념은 일상에서는 분리되어 보인다. 우리의 언어는 ‘입자’와 ‘파동’과 같이 이들을 분리된 상태로 기술할 뿐이다. 문제는 전자가 이중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상보적으로 가지는 상태에 대한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어휘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 부재의 문제다. (<김상욱의 양자공부>)

 

이렇듯 젠더에 있어서도 각각의 영역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의 영역에 들어가거나, 자신의 언어로 상대방 영역을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 각각은 서로 다른 개념과 표현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므로, 언어 자체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은유적 표현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한 영역에 국한된) 토박이말(세계)를 통한다면, 상반되는 것이 비로소 모든 것(전체)가 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보어는 “진실과 명료함은 상보적”이라는 말도 남겼다. 오늘따라 '젠더'에 대해 명료하게 이해하려 들수록 원래의 의미(진실)에서는 멀어질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려 모호함을 조금 남겨둘까 한다. ㅎㅎ

 

다음 시간에는 <젠더> 5,6,7장을 다 읽고 만납니다~!

댓글 1
  • 2021-10-28 16:41

    공부엔 늘 진심인 곰곰샘이 내일은 결석을 한다니. 아쉽습니다.

    다음 세미나 후기를 누가 쓰든, 곰곰샘의 빠진 공부를 채워주어야 할텐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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