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세미나 1차시 후기

모로
2021-07-30 15:31
308

학교 방학이다. 아이가 학원도 안 다니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다보니 나 역시 아주 방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일어나고 싶을 때 늦게 일어나서 대충 아침을 챙겨먹고, 에어컨 바람 앞에서 하루를 보낸다.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문제집도 푼다. 하지만 딱히 정해진 일정은 없다. 오전을 나른하게 보냈으니 밤에 잠에 올 리가 없다. 그러면 또 새벽까지 미드를 연속시청하다가 잠이 든다. 과연 이게 동의보감 식 양생의 길과 맞는 것일까.

 

동의보감 책에는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고, 그에 따라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계절을 느끼고 계절마다의 뜻, 즉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는 번성하고, 가을에는 수확하고, 겨울에는 쉬는 그런 삶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 삶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같은 폭염에는 너무 시원한 에어컨 앞을 떠나기 어려워, 조금만 밖에서 걷는 생각만 해도 힘이 든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자잘한 병증 증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 복통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워낙에 자주 배가 아파 이제는 만성적으로 변해버린 질병이다. 큰 병이 있다기보다는 음식 섭취 습관이나 찬 걸 좋아하는 성향에서 온다. 알지만 방치하면서 약해지는 몸... 동의보감을 읽다 보니 자꾸 마음이 뜨끔거리며 반성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병에 대한 관점이었다. 잠복되어 있건 드러나 있건, 누구에게나 병은 있다. 그러므로 병을 박멸해야 할 적이라기보다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라고 이야기한다. 어릴 때의 나는 예민하고 우울증적인 특성을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뭐랄까.. 그런거 있잖나. 예술가의 우울이고 어쩌고.. 이것이 없으면 내가 없는 거 같고 그런 생각. 그러다 어떤 때는 이것을 꼭 고쳐야 할 병증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편하게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선 거 같다. 이렇게 태어난 것을 어쩌랴. 남들보다 예민하고 지랄같은 성격이 사실 좋은 점도 있고, 힘든 점도 있다. 모든 것은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제는 힘들 땐 조금 둘러가고, 너무 즐거울 땐 한 번 쉬어가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세미나 시간에 모든 것을 조금씩 덜어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겸목 쌤의 물음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나의 많은 부분을 덜어내며 살고 싶다고 말하자,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개념을 조리있게 표현하지 못했다. 어쩌면 덜어낸다는 것 조차 내 안의 어떤 선입견이었을까. 문자 그대로의 관념적인 개념일 뿐이었을까. 양생을 함께 공부하면서 이 점을 천천히 생각해 보아야겠다.

댓글 4
  • 2021-07-30 18:10

    네 천천히 생각해봐요~ 모처럼 천천히 라는 단어가 정감있게 느껴지네요^*

  • 2021-07-30 18:11

    천천히 생각할 거리가 생겼네요!

    그럽시다. 세미나하면서 생각해봅시다!

  • 2021-07-30 18:15

    저는 지금 내일 세미나 책을 읽고 있는데요. 나 이렇게 못산다고 조은이한테 징징대고 있었어요.

    모로쌤 글 읽고 겸목, 둥글레쌤 댓글 읽으니까 저도 마음이 같이 편안하네요 ~

  • 2021-08-01 21:07

    밤에 잘 때 더워도 꼭 배에는 무얼 덮어주어야 해요.

    큰 타월을 여름 이불로 대체해도 되죠.  그냥 배만 감싸게 덮어놓고 있는 거에요. 

    알면서도 습관 때문에 은근히 키워가는 병증은 반대로 은근히 줄여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린 양생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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