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농부를 만나다

요요
2022-01-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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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벽두에 '반골농부'를 만났습니다.

'반골농부'라니? 대체 반골농부가 뭐지? 궁금하시지요?

늘 좋은 책을 만드는 상추쌈 출판사에서 보내온 책, <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의 저자 진 록스던입니다.

 

 

진 록스던은 스콧니어링이나 웬델베리만큼이나 미국에서는 유명한 분이라고 합니다.

귀농을 생각하거나 생태, 환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이 분의 책은 아주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하는군요.

1931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진 록스던은 마흔 두살 되던 해에 고향으로 돌아가 땅을 일구기 시작했고,

자신의 삶의 기쁨과 즐거움, 소농의 자부심과 지혜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그이는 2016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작년 연말에 받은 책을 새해가 되어서야 읽기 시작했습니다.

얼른 읽고 책을 읽은 느낌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후다닥 읽을 수가 없는 책이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숲을 산책하듯이 천천히 공기를 들이마시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찬찬히 음미하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아주 천천히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던 거죠.

서둘러 페이지를 넘기면 그만큼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버리는 책,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을 만난 것입니다.

(아직 반밖에 못읽었습니다. 나머지는 느릿느릿 아껴가며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먼저 웬델베리의 말이 나옵니다.

 

"변명은 그만하련다. 반골이 본성이고 운명이라면 어쩌겠는가. 출구로 들어가서 입구로 나오는 게 사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나는 전문가들을 무시하고 별을 보고 씨를 뿌렸고, 주문과 노래를 외며 땅을 갈았다.... 어쩌겠는가. 사람들을 거스르면서, 그리고 사람들의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나는 그 뒤섞임 속에 무척 조화로운 울림이 스며드는 걸 듣곤 한다. 그것은 진리에 이르는 하나뿐인 길도 가장 쉬운 길도 아니다. 그것은 어느 한 길이다."

 

그래요..

반골농부란 바로 사람들을 거스르면서, 사람들의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그런 농부를 말합니다.

진 록스던은 산업경제학이 아니라 전원경제학의 길을 걸어갑니다. 돈벌이 경제가 아니라 살림살이 경제의 길을 냅니다.

그것도 아주 고집스럽게. 그러나 유쾌하고 즐겁게 말이죠.

그는 기업농이 아니라 소농으로서의 삶을 살며, 그것만큼 더 깊이 세상을 겪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소농의 가치를 이보다 더 실감나게 말해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페이지마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진실된 문장들이 그 다음 문장으로 얼른 건너뛰지 못하게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작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전원 경제학의 다음 법칙은 생산물의 값어치를 경제 잣대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잣대로 재는 것이다. "돈이 안 되는데 왜 양을 치십니까." 양을 치는 지인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음, 버는 돈은 얼마 안 되죠."하고 그이는 대답했다. "진짜 이유는 양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에요."(63쪽)

 

전원 경제학의 교리가 다시 힘을 얻어 지속 가능한 사회의 바탕이 되고, 주류 경제학에 다시 파고들 때까지, 아니 끝내 그러지 못하더라도, 소농은 작은 규모에서 말미암은 불리함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품질과 효율성을 드높이는 한편, 협력에 힘을 쏟아 불리함을 이겨내야 한다. 자신들만의 지하경제를 일구어야 한다."(72쪽)

 

자신들만의 지하경제라는 표현에서 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맞어, 우리들 만의 지하경제를 일구어야지!" 우리가 마을경제라고 불렀던 문탁의 소소한, 그러나 매우 급진적인 경제실험들도 진 록스던이 말하는 지하경제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이 책은 소농만의 이야기도, 전원경제에 관한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자연과 함께 이웃과 함께 협력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작년 연말에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를 읽었기 때문인지 네번째 챕터의 '집짐승 기르기'도 저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진 록스던은 돼지는 땅을 파헤치기 때문에 돼지를 풀어놓고 키우려면 꼴밭이 아니라 밭을 갈아야 하는 곳에 풀어놓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새벽이 생추어리에서 새벽이가 얼마나 땅을 파헤치는 것을 좋아하는지 읽었기에 실감이 팍팍 났습니다.

 

닭과 양과 소에 대한 이야기도 얼마나 흥미롭던지요? 집에서 키우는 짐승들도 다 개성이 있고 입맛이 다르다고 합니다. 진 록스던이 키우는 젖소는 먹이에 들어가는 재료가 달라지면 엄청 성을 낸다고 합니다. 그 젖소가 새로운 먹이를 먹도록 젖소와 밀당하는 과정도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진 록스던은 가축들과 대화를 나누고 교감을 나누고, 그러다가 또 그 아이들을 팔기도 하고 잡아먹기도 하는 이야기를 덤덤하고 담백하게 풀어 놓습니다. 

 

 

이 책의 뒷표지에는 윤구병 선생님의 짧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군요.

 

"기후위기와 난데없는 돌림병 앞에서 모두가 휘청이고 있다. 자연의 질서가 곧 삶의 질서라는 걸 깨달아야만 우리가 살 길을 찾을 수 있다. 파멸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 문명의 운전대를 이제라도 함께 되돌려야 한다. 우리가 지금, 새롭게 나아가야 할 곳은 진 록스던의 말처럼 '자연'이고, '땅'이고, '숲'이고, '바다'다."

 

오랜만에 윤구병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도 제게는 아주 큰 기쁨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다시 텃밭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고마리님, 도라지님, 생태공방의 친구들, 베란다에서 가드닝을 하고, 텃밭을 일구고, 녹색평론을 읽고, 귀농을 한번쯤 마음에 품은 적 있는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댓글 3
  • 2022-01-05 08:08

    음.... 우주소년에 책을 주문해서 책상 앞에 두고 저도 천천히.. 읽어보고 싶군요^^

    책상 위에 식물세미나 책도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ㅋㅋㅋ

  • 2022-01-05 08:11

    꼭 읽어보겠습니다~~~~

  • 2022-01-05 17:46

    별을 보고 씨를 뿌리고, 주문과 노래를 외며 땅을 가는 농부... 만나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