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3차시 후기

뚜버기
2023-11-02 05:09
151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마지막 시간엔 저자와 피터 스카피시(<식인의 형이상학>을 영역한 인류학자)와의 대담을 다루었다.

우선 인식론과 존재론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존재론은 세상이 혹은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서양에서 최초의 철학자들, 자연철학자들이라 불리던 이들이 탐구했던 과제이다. 플라톤의 사상이 메이저가 된 후 서구철학은 점차 인식론이 철학의 주요 과제가 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에 어떻게 가 닿을 것인가, 참된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등등의…. (<에티카>를 처음 읽을 때 힘들었던 것이, 본질…본성…이런 개념이었는데, 서양의 사유에 한정된 근본 개념을 마치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양 받아들여야 했던 탓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스피노자는 서양철학의 이원론적 존재론을 비판하는 철학이었지만서도…)

암튼 카스트루는 기존의 인류학이 “굉장히 칸트적인 학문이며 철학적 기획의 실증 부분”으로 여겨진다며 비판한다. “나는 우리가 공부한 것이 한 민족집단의 지식에 대한 지식으로 환원되는 것이 속상했습니다.”(159) 그는 인류학이 인식론으로 환원되는 문제를 풀고자 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 개념(즉 존재)는 서구의 것이 자명한 것이고 비서구의 자연에 대한 개념들은 모두 문화로서 취급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형이상학’은 서양의 전통 혹은 철학자들의 사유재산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형이상학은 모든 인간 존재의 필수적인 활동입니다. 또 비인간 존재들도 그러할 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는 아마존 사람들과 만나면서 이들이 지적으로 매우 세련된 형이상학적 사변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더니즘의 사유는 인간성(인간의 정신)은 가장 늦게 온, 그러면서 가장 독특하고 귀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면서 인간 신체를 비롯한 우주의 나머지 부분들은 자연의 법칙에 제약되는 유사한 것들로 더 낮게 취급한다. 반면 아마존 원주민들의 형이상학은 거꾸로다. 데스콜라가 만난 아추아르족은 동식물들이 인간 존재의 사회적 파트너라고 사유한다고 한다. 이들에게 인간성은 우주의 가장 근본적 형상이다. 카스트루는 데스콜라가 “원주민들은 삼라만상에 혼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애니미즘의 깨달음에 멈춰 버린 것, 사물과 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것을 한계로 생각한다. (<타자들의 생태학>에 실린 대담에서 데스콜라는 카스트루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효과를 중시한다고 여기는 듯 했는데….) 카스트루는 답은 신체의 차이에 있다고 말한다. 아마존의 형이상학에서 혼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으며 신체적, 물질적 장치의 차이로 인해 그 역량과 능력이 다르게 구현되는 것으로 인지한다. 요컨대 아라웨테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그렇기에 다른 자연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자연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카스트루는 강조한다.

퍼스펙티브주의에 있어서 모든 장소는 특권적이고 모든 지점이 주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상 특권적인 장소는 어디에도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퍼스펙티브주의는 존재론적 아나키즘을 전개시킨다는 점을 카스트루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카스트루는 로이 와그너를 빌어 서구사유는 먼저 점(주체)이 주어지고 어떻게 점들을 이을까(관계)를 걱정하지만 비서구는 관계가 항에 앞서 있으며 항은 생산되기 위해 관계로부터 추출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즉 이들에게 문제는 어떻게 정체성을 분리해 내는가라고 말한다. 관계와 함께 시작하여 관계가 사람을 생산한다고 말안다. 이런 관점에 설 때 우리는 누구인가를 질문하게 되며, 매 ㅁ우 생태학적으로 의미있는 실천 윤리로 나가게 될 것이다.

“정체성의 분리”라는 문제를 띠우는 긍정적으로 읽었고, 나 역시 그렇게 읽었다. 하지만 자누리쌤은 이는 “주체의 추출이라는 점에서 어떤 중심성의 사유가 잔존”하는 것이고 “스트래선의 다수성의 인류학과 다른 지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기에 비관계성을 확립하는 것이 과제이며, 주체의 위치를 누구나 차지할 수 있으므로 매우 위험한 세계라는 카스트루의 말이 홉스의 자연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게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둘의 배경에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지 않다고 본다면 홉스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인 자연상태와는 다르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논의가 정리될 수 있을까?

카스트루는 레비스트로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변환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변환은 <야생의 사고>에서 제시한 불연속적인 변환시스템인 토테미즘이 아니라 연속적이고 위상학적인 변환, 즉 변형이다. 모든 변환에는 잔여가 있으며 이는 비틀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카스투루에게 변환은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 자리에 머물고자 한다면 변형되기를 거부한다면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비교한다는 것은 변형과 변환에 기꺼이 노출되겠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인류학자의 비교연구는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인류학 책들에 매료되고 또  가능성을 찾고 상상력의 영감을 얻고 싶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 같다.  타자를 안다고 착각하지 않음으로써 타자의 삶을 그대로두라는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위계를 내려놓기, 안다고 착각하지 않기, 배제하지 않기를 말한다.  그런 가운데 접촉은 변환을 만들어 낼 것이다. 너로의 변환이 아니라, 변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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