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필사

달팽이
2022-05-30 10:28
200

세상의 다른 존재들을 스승으로 사유하기…

댓글 1
  • 2022-05-31 10:57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이어도 서식처 복원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는 선한 것의 결정권자를 자처하지만 선함을 판단하는 우리의 기준은 편협한 이익, 우리가 원하는 것에 휘둘리기 쉽다. 나는 달라낸 줄기를 내가 망가뜨린 보호책과 비슷하게 둥지 근처에 쌇고는 연못 반대편에 감춰진 바위에 앉아 어미가 돌아오는지 지켜보았다. 어미는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자기가 정성껏 고른 보금자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자기 가족을 위협하는 것을 보고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상에 풀려난 억센 파괴의 힘은 아메리카솔새의 새끼와 우리 아이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온다. 인간 거주지를 개선한다는 갸륵한 진보의 맹공은 내가 아메리카솔새의 보금자리를 위협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나의 보금자를 위협한다. 좋은 엄마는 무엇을 할까?

    빨간색 터보건 썰매를 연못 반대쪽으로 끌고 가 얕은 곳에서 작업을 재개한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자마자 갈퀴가 무거운 물풀 더미에 박혀 꼼짝하지 않는다. 나는 물풀을 천천히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앞서 파낸 미끌미끌한 대마디말과는 무게와 질감이 다르다. 조류 매트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풀밭에 내려놓은 다음 초록색 망사 스타킹처럼 보일 때까지 손가락으로 막을 펼친다. 물에 떠 있는 유자망처럼 촘촘한 망, 바로 그물말(속)이다.

    그물말은 ㅇ나전한 장소다. 물고기와 곤충에게는 어린이집이요, 포식자를 피하는 은신처요, 연못의 작은 것들에게는 안전망이다. '그물말'은 라틴어로 '물 그물'이라는 뜻이다. 어찌나 신기한지. 고기잡이 그물은 고기를 잡고 벌레그물은 벌레를 잡지만, 물 그믈은 아무것도 잡지 않는다. 품을 수 없는 것만 빼고. 엄마가 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살아 있는 끈의 그물은 품을 수 없는 존재를, 언젠가는 떠나갈 존재를 다정하게 감싼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나의 할 일은 순서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었다. 시계태엽을 뒤로 감아 이 물을 우리 딸들이 헤엄칠 수 있도록 바꾸는 것. 그래서 눈물을 닦고 그물말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긴 채 그물말을 연못가로 갈퀴질했다. p14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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