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유동의 철학> 세미나 후기

요요
2022-03-04 10:35
411

아침에 일어나 <차이와 반복> 머리말을 펼쳐 보았습니다.  어땠는지 궁금하신가요? 당연히 술술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 놓여 있는, <들만철>과 <유동의 철학>에서 반복해서 읽은 구절들이 방향표지판 역할을 해주는게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제가 한 때 애정했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야전과 영원>의 라캉 장에서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해 읽고 또 읽다 보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라캉적 주체가 된다고, 읽기란 그런 것이라고 말합니다. 알 수 없는 것을 읽을 때마다 저는 그 말을 생각하며 힘을 냅니다. 들뢰즈를 읽는다는 것도 그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들뢰즈의 개념과  들뢰즈의 사유와 부딪치는 과정을 통해 나에게 없던 새로운 세계가 구성되는 경험을 하게 되기를, 그리고 들뢰즈의 철학을 기존의 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로 변형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유동의 철학> 1장과 2장을 읽고 뭘 질문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미리 <유동의 철학>을 한 번 훑어 보았는데도 질문을 하기 위해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저는 처음 만나는 문장들이 제 눈앞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하는데,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뭘 질문해야 하는지 고르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늘 느끼지만 메모와 질문을 위해 잠시 책을 덮고 읽은 것을 돌이켜보고, 내 속에 떠오르는 어떤 아이디어를 익히는 과정, 그 때 비로소 제가 읽은 것과  만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군요. 여기에서도 '읽는다는 것' '과' '쓴다는 것'이 있구나! 혹은 그동안 내가 읽고 생각한 것들에서 무엇인가를 절단채취하여 그것들을 하나의 면에 배치하는 콜라주가 있구나.ㅎㅎ 읽고 익히는 것, 그것이 지속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차이나는 반복, 차이화의 프로세스로서의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많은 분들이 말했습니다. 세미나 전에 올라온 무려 여섯 페이지나 되는 질문지라니!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질문을 길게 쓰는 거야? 세션님은 말했지요. '질문을 이렇게 길게 쓰면 ㅇㅇ다', 라고.ㅋㅋ 아,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세션님의 그 말을 받아 지원님은 또 '길게 쓴다는 것과 ㅇㅇ'이라고 변주를 했습니다. (세미나의 분위기에 새로운 계열을 추가하는 이런 유머, 좋아요.^^) 여섯쪽이나 되는 질문을 다 다루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세미나 시간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여울아님의 강력한 경고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여간 마지막 아렘샘의 질문까지 도달하는 신공을 발휘하는 첫번째 세미나였네요. 우리가 논의하지 않고 건너 뛴 몇개의 질문이 있지만 아마도.. 앞으로 세미나를 통해 차이나는 반복으로 반드시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 올 것이라 믿습니다.^^ 논의 테이블에 올려졌던 질문들 역시 그러하겠지요.(하여.. 질문을 둘러싼 세세한 논의는 건너뛰겠습니다.ㅋ)

 

철학학교에서 새롭게 같이 공부하게 된 한스님, 서삼풍님, 세션님, 지원님, 다나님, 오이도님그리고 토용님, 진달래님, 인디언님, 반갑고, 앞으로 같이 하게 될 시간이 기대가 됩니다. 뭔가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횡단면이 마구마구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ㅎㅎㅎㅎ

 

그리고.. 첫 세미나인만큼 앞으로의 세미나 진행과 관련한 몇 가지 결정이 있었습니다.

1. 예습분량을 미리 공지한다.

2. 각자가 집중해서 읽고 메모를 올릴 부분을 나눈다.(이건 정군샘에게 전권을 부여하기로^^)

3. 수요일 정오까지 자기가 맡은 부분의 메모를 올린다. 메모는 각자 예습분량에 대한 일종의 미니강의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A4한 장을 넘기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길지 않게!!(음.. 제 생각에는 이 시간을 지키는 게 최대 난코스...ㅋ)

4. 가능한 다른 멤버들이 올린 요약문을 읽고 세미나에 참여한다.(이런! 생각해보니수요일 정오 이후에 순서에 맞춰서 메모 합본파일이 만들어져야겠군요.)

5. 세미나에서는 본문을 강독하고, 그 부분에 대한 요약과 질문을 주고 받으며 진행..

6. 어제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후기는 돌아가면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7. 세미나 영상 녹화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댓글 8
  • 2022-03-04 16:09

    요요님~ 3, 4번 메모가 아니라 줄임글, 요약문 1p 이내 말씀하시는 거죠??

    • 2022-03-04 18:28

      네네, 그런데 사실 같은 말이지만, 요약을 하다보면 거기에 또 살짝 뭘 더 붙이고 그러겠죠? 아무래도... '작은 강의안'을 쓰는 것이니까요. ㅎㅎㅎ

  • 2022-03-04 18:41

    저는 사실 고백하자면, '해설서'를 미리 읽는 것에 대해 늘 어떤 찜찜함 같은 걸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눈 감고 미리 만져보는 그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그게 벌써 어떤 '원본적 사유'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무엇을 먼저 읽든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 의미의 흡수가 아니라 어떤 '촉발-변용'의 확대에 있는 것이라면 어디로부터 출발해도 상관없다, 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ㅎㅎㅎ

    이제 <차이와반복>이라는 어떤 면 위를 횡단하게 될텐데요. 어쩐지 저는 입장이 입장인지라 긴장도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공부하는 한 사람인지라 설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엥간하면 잘 안 설레는데(들뜨기는 합니다만) 철학학교 세미나를 앞두면 자주 설렙니다. 아마 우리가 그 동안 세미나에서 서로를 크게 촉발해 왔기 때문에 제 의식이 그런 식으로 응축되어 있는 것이겠죠 ㅋㅋㅋ 이제 새로운 분들이 들어오면서 또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게 될텐데 어떨지 두근두근 하녜요. 특히 들뢰즈를 이렇게 읽는다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 재미*있자고 하는 공분데 부담은 최대한 줄이고, 자주 즐거우면 좋겠습니다!(어쩐지 저만 잘하면 될 것 같군요 ㅎㅎㅎ)

     (*'신체의 행위 역량을 확장하는 기쁨의 변용'을 함축하는 표현입니다.) 

  • 2022-03-05 10:37

    믿음직스럽고도 다정함이 가득 밴 후기 감사합니다. 저는 요요샘 후기를 읽고 좀 엉뚱하게도 힘든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을 다독이는 믿음직스러운 장군님....?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결전을 앞두고 출정연설을 했다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떠올렸어요. ㅎㅎ 어려운 텍스트를 앞에 두고 어제도 수고했고 앞으로도 함께하자는 스스로와 서로에 대한 요요샘의 격려가 아주 든든합니다. 저는 들뢰즈의 주저 중 한 권을 무려 강독하기로 하고서는 약간은 자꾸만 뭔가 모르게 저어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간만에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고 나서 다시 어쩐지 조금은 준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몇 번 되지 않지만 내가 어느 철학자의 해설서가 아닌 원전을 읽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돌이켜보기도 하고, 어느 철학자에 관해 내가 갖고 있던 단선적인 몇 가지 생각 내지 감상이 복잡하게 풍부한 것이 될 때의 느낌... 들뢰즈의 글에서 느끼는 이 강렬한 개성은 어디서 오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리다가 어느새... 무엇이든 시작하고 싶어지는 말끔한 새 책상을 마주한 상쾌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ㅎㅎ 이게 어쩐지 며칠 전(아니 어제 ㅎㅎ)에 읽었던 요요샘의 다정한 요청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감사할 일이 많을 것 같은 아주 설레는 기분입니다. 

    • 2022-03-05 16:40

      "전하, 신臣에게는 아직 열두쪽의 요약문이 남아있사옵니다."

      (어쩐지 꼭 해보고 싶은 드립이었어요.....(뿌듯))

  • 2022-03-05 13:50

    A그리고B 가 각자 특성의 교집합이 아니라 외부를 만든다고 했던 말이, 저는 확 와닿았는데요. 그간 세미나를 하면서 언제나 겪어온 것이더라고요.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서로 '통하는 것'을 확인하는 거보다 서로가 몰랐던 어떤 영역으로 같이 뛰어들 때 짜릿함이 느껴지고 그럴 때 관계가 식상해지지 않으면서 자꾸 기대가 되었던 거 같고요. 아마 우리 세미나에서도 그런 것들이 만들어지게 되겠죠!

    들만철 읽을 땐 뭔 말인지는 잘 몰라도, 들뢰즈의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무척 즐겁게 읽었어요. 들뢰즈 참 말로 사람을 홀리시더라는...... 그리고 명확하게 해석은 안 되지만 이상하게 거부감이 없이 쫙쫙 감기는 거에요. 아무래도 이미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어서인지 ㅎㅎㅎ  들뢰즈가 말은 어렵게 써놔도 알고보면 우리가 이미 겪거나, 어쩌면 (불교나 동양 철학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라고 느껴지는 부분을 언급해주는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 때문이었는지...  

    <차이와 반복> 펼치자 마자 머리 쥐어뜯으며 앓은 소리를 또 엄청 해대겠지만...일단 들뢰즈, '호호호'로 (요즘 나온 책 제목) 시작합니다. ㅎㅎ  

  • 2022-03-05 15:19

    그리고 이건 하나 제안인데,  인원도 많은 편인데 게다가 줌이기까지 해서 발언이 몇 사람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더 심해질 거 같거든요. 제가 하는 다른 세미나에서는 몇몇 사람만 이야기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해당 질문의 첫번째 답을 그 질문과 가장 근접한 페이지에서 질문을 한 사람이나 그 페이지 요약을 맡은 사람이 우선 대답을 하도록 '지정'을 해서 하고 있어요. 알든 모르든 일단 뭔 말이든지 하게요. 이렇게 하면 거의 전원이 세미나 시간에 최소 한번씩은 대답을 하게 됩니다.

    우린 질문은 안 하고 강독+해석이니까, 예를들어 10페이지 강독을 하면, 11페이지 한 사람이 10페이지 요약을 꼭 읽어와서 그 부분에 대해서 첫번째 코멘트를 하게 하는 건 어떨까요?

    줌에서 한마디 하려면 나름 '눈치게임'도 해야하고.ㅋㅋ 오디오를 부득이하게 꺼놓아야 하는 경우엔 타이밍 잡기가 참 애매하더라고요. 이러면 아무도 말 안 할 때의 어색한 공백도 줄이게 되고 누군가 말의 물꼬를 터주는게 수월해지고요. 건의해봅니다. 

     

     

    • 2022-03-05 16:39

      아!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요것은 정말로 말하는 사람만 말하게 되는 상황이 닥치면 '처방'삼아 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아직은 제대로 시작한 게 아니니까, 일단 초반엔 제가 광역 어그로를 시전하는 진행으로 버텨보겠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69
[2023철학학교시즌3] 에세이를 올려주세요! (11)
정군 | 2023.09.18 | 조회 406
정군 2023.09.18 406
768
2023 철학학교 시즌4 라이프니츠 『형이상학 논고』읽기 모집 (15)
정군 | 2023.09.18 | 조회 1383
정군 2023.09.18 1383
767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정치론 3 후기 - 스피노자는 남자다 (6)
진달래 | 2023.09.11 | 조회 335
진달래 2023.09.11 335
766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7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3.09.06 | 조회 334
정군 2023.09.06 334
765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6주차 후기 - '다중'과 '주권자의 죄' (8)
가마솥 | 2023.09.01 | 조회 434
가마솥 2023.09.01 434
764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6주차 질문들 (11)
정군 | 2023.08.30 | 조회 397
정군 2023.08.30 397
763
[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정치론 1,2장 후기 (5)
아렘 | 2023.08.25 | 조회 328
아렘 2023.08.25 328
762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5주차 질문들 (12)
정군 | 2023.08.23 | 조회 313
정군 2023.08.23 313
761
[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 4주차 후기(2종지와 3종지) (7)
여울아 | 2023.08.22 | 조회 331
여울아 2023.08.22 331
760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4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8.16 | 조회 321
정군 2023.08.16 321
759
[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읽기 3주차 후기 (5)
봄날 | 2023.08.15 | 조회 334
봄날 2023.08.15 334
758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3주차 질문들 (13)
정군 | 2023.08.09 | 조회 368
정군 2023.08.09 36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