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겨울번개 들만철] <13장 베르그손> 후기

아렘
2022-02-22 23:11
347

번개 세미나의 마지막은 베르그손이었습니다. 언제나 다음 시간은 쉽다고 했지만,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던 5주였습니다. 교훈 아닌 교훈을 얻었습니다. 속지말자 튜터말, 맡지 말자 요약발제!!! 여러 질문이 있었지만 압권은 직관 아니었을까요? 샘들의 질문과 빼 먹은 정군샘의 질문에 직관이 모두 24번 등장했습니다.  본 텍스트를 읽는데 현저한 방해가 되니 무시했다는 저와 달리 거의 모든 분들이 직관에 매달렸습니다. 넘어갔나 싶으면 어김없이 다시 불려나오는 직관에 대해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대강 생각나는대로 정리를 좀 해 보겠습니다. 크게는 이 텍스트 내에서의 직관을 베르그손이 직관적으로 파악한 것, 그래서 그 직관을 개념적으로 풀어 낸 것이 지속, 기억, 생의 약동 같은 것들이라고 직관을 관통하지 않고 우회한 흐름이 한가지, 그 흐름을 더 이어나가 직관은 지속이라는 개념과 더불어서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중간 정거장을 거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스피노자 식의 직관은 아니라는 것, 무엇인가를 꿰뚫어 보는 것, 깨달음, 이거 느낌 아닌가를 거쳐 다다른 차이화 정도가 아닐까싶습니다.

 

그리고 기억과 절반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기억에 대해서는 대체로 손쉽게 합의가 이뤄진 것 같습니다. 회상-기억, 수축-기억, 여기서 조심해야 할 유용성이란 개념들을 논의하면서 우리가 엄청나게 많은 기억을 짊어지고 있음을 새삼 느꼈으니 성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반은 뭘까요? 칸트는 물자체는 알 수 없다고 해서 세상을 반으로 나눕니다.(인식론) 기존의 철학은 ‘왜 무가 아니고 무엇이 있는가’ 란 절반만 맞는 그릇된 문제 설정에 매달려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세상의 반만을 올바르게 드러냅니다. 베르그손은 그 나머지 절반을 철학 안으로 다시 데려오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절반 밖에 드러내지 못한다와 절반은 드러낸다로 다양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절반은 드러낸다로 읽으려는게 평소 소신입니다. 어설프게 남 욕 하는게 세상에서 제일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읽는 것은 들뢰즈라는 필터를 거친 간접 텍스트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베르그손이 과학을 폄하하지 않는다는 측면과 관념론과 실재론의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내는 그 베르그손도 그 생각을 많은 과학적 사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책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예상대로 ‘차이’였습니다.  여러 샘들도 이견이 없으리란 생각입니다. 그래서 들뢰즈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 저는 요요샘이 자주 말씀하신 아래 문구가 아닐까 합니다. ‘대상을 위해서 오로지 그 대상에만 합당한 하나의 개념을, 그러나 그 개념이 오로지 그 대상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더 이상 개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개념’ 을 재단 하는 것.  들뢰즈의  차이를 거쳐 우리가 길어낸 한 문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 얼굴이 익고 말을 건네기도 좀 익숙해진다 싶은데, 다음주 부터는 대부분의 샘들을 못뵙겠네요. 지독히 어려웠던 텍스트를 같이 물고 뜯어 주신데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나중에라도 서로 공부를 하다 다시 마주치고 물고 뜯을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인연이 빨리 닿으면 바로 ‘차이와 반복’에서도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매일 그 밥에 그 나물이 지겹기도 하지만, 사실 맛있으니 그 밥에 그 나물 타령 하는 것 아닐까요? ‘차이와 반복’에 그 밥에 그 나물의 일원으로 함께 하실 여러 샘들이 계시길 바래봅니다.

 

반갑고 뜻깊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댓글 5
  • 2022-02-22 23:46

    저는 '직관'과 관련해서 들었던 생각이 어쩐지 '신 없는 영성'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이쯤 어디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게 베르그손적인 의미냐 하는 것과는 별개지만요. 그건 아무래도 그 '영성'이 워낙에 희박한 저의 성향 때문에 들었던 생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그게 왜 그렇게 희박하냐 하면 그게 어쩐지 저한테는 '신' 또는 그에 준하는 어떤 신비함 같은,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과 늘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직관'이 요구하는 어떤 도약, 결국엔 일원적인 이 세계와 그 일부로서의 '나'에 대한 자각 같은 게, 저로하여금 비신학적-일원론적 영성, 달리 말하면 어떤 겸손을 불러일으켰달까요....(밤이기 깊었나 봅니다. 허허) 더불어서 또 달리 생각이 들었던 건 지난 학기에 읽었던 <존재와 시간>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하이데거도 지성으로서의 인식이라기 보다는 이런 '직관'을 말했던 게 아닐까? '앞서 달려가 봄'이라는 걸 '직관'의 다른 양태로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정줄을 놓은 가운데서도 선생님들 덕분에 이 '이걸로 호객이 가능한가' 싶은 텍스트에서 다섯편의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미나는 고통스럽지만 결국엔 쾌락적인 행위라는 걸 매번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

  • 2022-02-23 14:14

    아, 드디어 철학학교 겨울 번개세미나가 끝났습니다! 끝나서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지요!ㅋㅋ

    <차이와 반복>을 읽기 전 들뢰즈와 안면트기로 시작한 세미나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매우 벅찼습니다.

    그래도 같이 공부해준 샘들 덕분에  다섯편의 글을 읽었으니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내용은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듯 곧 잊어버리겠지만 그게 어디로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하니 그것도 안심입니다.^^

    같이 공부했던 샘들, 또 다양한 공부장면에서 반갑게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2022-02-23 16:33

    당일 후기에 당일 댓글이라니... 집중력과 체력이 대단들 하세요. 이번 글 역시 다 읽어가기조차 벅찼는데 급히 정해진 새로운 텍스트를 읽는 속도보다 빠르게 요약해 올려주신 아렘샘 덕분에 길찾기가 조금은 수월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새벽에 연달아 발췌문 통신을  보내주신 정군샘께도 (저 역시 깨 있었지만) 바로바로 답은 못했어도 무척 감사했고 두 개 다 열심히 읽어보았어요. 역시 고맙습니다.

    처음에 들뢰즈도 읽고 철학사도 보고... 책 표지도 이쁜 걸? 하고 신청했는데 정말이지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웠다고, 이것은 호객이 불가능한 책이라고 타박했지만, 간만에 밀도 높은 글을 읽으니 다른 텍스트가 좀 쉽게 느껴지며 잠시 눈이 밝아진 느낌이 듭니다. ㅎㅎ 힘들었지만 압축적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 이번에 세미나로 처음으로 함께한 분들과 조금은 더 가까워진 듯한데 또 그러자마자 끝나는 것 같아 아쉽네요. 어디서든 또 뵙기를요.

  • 2022-02-23 19:37

    처음 접하게 된 문탁에서 멋진 세미나를 가지게 되어 무척 좋았습니다.  이렇게나 찐한 세미나라니... 5번의 짧은 모임에서 이토록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줄 몰랐네요. 플라톤/스피노자/흄/칸트/니체/베르그손... 음,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는데! 실용적인 지식에 익숙해 있던 저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식은  마치 미로를 헤매면서 뜻밖의 선물을 수확하는 느낌입니다. 이 작은 세미나를  열정적으로  끌어 주신 정군샘, 아렘샘, 요요샘, 호수샘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

    명상 세계에 기웃거렸을 때는 관념을 버려야 실재에 도달한다는 믿음도 있고 수련의 욕망을 불태웠는데  인문학이라는 세계를 접하다 보니 남다른 느낌도 드네요. 수행 논서들도 지도에 불과할 뿐 자리에 앉을 때는 다 버려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읽어보니 철학과 명상이 만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시대가 변한 걸까요? 접근 방식이 단순했을까요?  강도를 보여준다는 것, 차이를 드러낸다는 것이 어쩌면 존재의 비밀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정갈한 요약과 후기, 참고 자료까지 따뜻한 배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짧고 굵게 끝나서 아쉽기도 하지만 조만간 다시 찾아 뵐께요. 고맙습니다!!

  • 2022-02-23 22:13

    마지막 세미나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당일 후기' 를 읽으니 맘 같아선 당장에라도 '차이와 반복' 세미나를 신청해야할  것만 같습니다ㅋㅋ. 사실 너무 늦게 철학의 세계에 입문하여 늘 철학적 사유는 제 뒷목을 잡고 있는지라 가급적이면 무조건 함께 읽자주의여서 '번개 세미나'를 보자마자  쒼나게 신청했더랬습니다.  뭐 문탁의 세미나가 어디 한번이라도 수월한 적이 있었겠습니까마는 이번 '들만철'은 특히 제 머리를 여러번 쥐어짜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무림의 고수님들 덕분에 약간 '심봤다' 기분이라고 할까요?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교차하는 '전장'에 감히 끼어들지는 못하지만 '구경꾼'의 특권을 맘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또 구경만 하시다가도 예상 밖 질문들을 던지시거나 다른 식의 읽기를 투척하시는  샘들 역시 저의 공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정군샘의 '약'에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했지만, 고백하자면 들뢰즈의 이런 방식의 접근에 매우 끌렸습니다(그럼 결국 낚인건가요?!ㅎ).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이런 방식의 '역사 다시쓰기'가  느무 멋져 보였어요. 자신의 관점으로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고 새롭게 정립해가는 그의 의지와 실천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기분으로는 '들만철' 나머지도 막 읽고 싶습니다ㅎ

    '배움의 연쇄'가 주는 묘한 흥분감을 세미나 내내 느꼈다는 걸 넘 장황하게 늘어놓았네요...함께 이 시간을 만들어주신 모든 샘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든 무탈하시기를 요청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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