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에세이 DAY 후기

가마솥
2021-12-21 13:35
383

                                                             전교 1등은 비본래적이었나?

 

     죽음보다 찐한 감동의 하이데거 에세이......

    서양철학사 개괄을 끝낸 철학학교에서 다음 강좌로 하이데거를 공부한다고 선택했다. 하이데거? 서양철학사 책에서 서너 페이지밖에 다루지 않았는데......일단 궁금했다. 읽은 철학책이 별로 없으니 인터넷으로 검색부터 한다. 한 문장이 눈에 띈다. ‘죽음의 철학자 하이데거!’  오호! 멋있다. 구미가 당긴다.

예비적으로 추천한 책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문탁님이 존경하는 ‘이반 일리치’? 어려운 책 아닌가? 읽었다. 단숨에 읽힌다. 아주 쉽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하다. 결국, 죽기 전에 인생을 되돌아 보고 회개하여 세상살이에서 묻은 때를 벗는 것으로 끝난다. 뭐야? 결국, ‘차카게 살자’라는 거야? 책 표지를 보니, 조그맣게 ‘똘스토이’라고 적혀있다. 그 ‘일리치’가 아니었다. 아이구 무식하기는......그렇지만 다행이다. 하이데거라면 이렇게 간단할 리 없을 것이니까.

    역시 간단하지 않았다. 무슨 새로운 개념들이 그렇게 많은 지, 그 개념 정의를 여러번 읽어서 간신히 이해해도, 문장에서 그 단어가 나오면 덜컹 거리기 일쑤이다. 개념을 이해하려고 주 교제인 이기상 번역본을 접고 박찬국, 소광희 해설서를 펼치면 그 분들의 용어가 또 다르니 첩첩산중이 따로 없다. 발제를 하고도 잘 모르겠다. 요약하는 수준으로 써서 올린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다. 세미나내내 ‘잘 모르겠어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나온다.

정군님이 왜 그런지 다른 철학자를 등장 시켜서 의견을 내지만 난 그 철학자도 모른다. 아렘님은 특유의 독화살로 하이데거를 마구 마구 해체시킨다. 이해를 했어야 딴지라도 걸어보지,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의 교수님, 요요님이 나서서 ‘그것은 이렇고요 저것은 좀 그래요’ 해야 정리가 좀 된다. 세미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에세이 날, 감동의 도가니이었다. 현상학적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다. 우선 대게, 그렇지 않고서야 하이데거를 읽지 않은 청중들이 5시간 동안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용어들을 듣고 있었겠는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의와 미소님은 자본주의 첨병인 백화점에서 하이데거를 보았고, 매실님은 하이데거 분석으로 여성주의를 풀어 내었으며, 여울아님은 싫어하는 역사를 역사성으로 해석하였고, 재하님은 패기있게 ‘찝찝한’ 기분으로 하이데거를 째려보았고, 요요님은 그의 ‘존재’론을 이해하기 쉽게 (선)불교의 ‘존재’와 대비하였다. 마지막으로 분명하게 드러난 현상으로 보면, 에세이를 읽는 동안 나는 목이 메이는 것을 은폐하려고 웅변하듯이 읽었고, 초빈님은 훌쩍 훌쩍 쉼표를 넣어가며 읽었으며, 봄날님을 마지막 문장을 읽고 방을 뛰쳐 나갔고, 무사님은 ‘내 에세이를 보이지 마라’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에세이 데이를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인 내게 전교 1등의 무게, ‘후기를 쓰시오’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참관자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공동현존재에게 물었다.

“하이데거 어땠어요?” “그래서, 하이데거는 어떻게 살래요?”

“본래적 자아를 찾아서......” “근데, 꼭 죽음으로의 선구를 해야 하나요?”

“그게, 가장 불안을 없애는 근원적인 방법이라고 하이데거는......” 설명하려다 보니, 어째 대화가 까칠하다. ‘심려’를 호출해 본다. 그렇군. 당신의 비젼 세미나 에세이 마감이 하루 남았는데, 한 줄도 못쓰고 있는 공동현존재에게 나의 후기감을 찾으려고 묻고 있으니 까칠할 수 밖에.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 하자.

“하이데거는 비본래적/본래적 개념을 대비할 뿐이지, ‘어떻게 살아라’라고 가치를 제공하지 않아요. 진리를 찾는다고나 할까?” “그래서, 내가 서양철학이 안 땡긴다니까. 내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진리가 무슨 소용? 내년에 비젼 세미나는 들뢰즈한다는데......”

 

   어? 내가 말한 진리가 하이데거가 말한 그 진리이었던가?

   다시 안볼 것같은 『존재와 시간』을 다시 펼쳤다. 제1부에서 현존재의 존재는 “염려”라고 선언한 하이데거가 제2부 현존재와 시간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선, 전통적 형이상학에서 ‘진리’는 지성(판단)과 사물(대상)의 ‘일치’에서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판단을 통하여 존재자의 진리가 발견된다는 것은, 존재자가 그것이 있는 “그대로-그렇게”와 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존재자 자체가 이미 발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론적 근거가 부족하고, 그 전제의 근원을 존재 연관의 구조에서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발언이 참이다는 것은 발언이 존재자를 그 자체에서 발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발언은 존재자를 그것의 발견되어 있음에서 밖으로 말하며, 제시하고, “보게 해준다(아포판시스)”. 발언의 참임(진리)은 발견하면서-있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p.296)

 

자기를 앞질러 세계내부적인 존재자 곁에 있음으로서 이미 하나의 세계 안에 있음인 “염려”의 구조는 자체 안에 현존재의 열어밝혀져 있음을 간직하고 있다. 이 열어밝혀져 있음과 함께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발견되어 있음이 있게 된다. 따라서 현존재[거기에-있음]의 열어밝혀져 있음과 더불어 비로소 진리의 가장 근원적인 현상에 이르게 된다.(p297-298)

 

현존재는 열어밝혀져 있음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음으로 본질적으로 진리 안에 있다. 열어밝혀져 있음은 현존재의 한 본질적인 존재양식이다. 진리는 오직 현존재가 있는 한에서만 그리고 있는 동안에만 “[주어져]있다.” 존재자는 도대체 현존재가 있는 그때에만 발견되어 있고 그 동안에만 열어밝혀져 있다.(p.305)

 

   현존재가 진리를 전제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존재자들의 “존재 근거”로서 이해함을 말하고, 다른 존재자들은 이미 진리에 근거해 자신들의 존재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존재가 진리를 전제한다는 것은 현존재가 진리에 근거해 자신의 존재를 갖음을 말한다. 그런데 진리는 현존재가 실존할 때에만 있다. 실존하는 현존재는 “염려”로서 언제나 이미 “자기를 앞질러 있다”. 현존재는 자기를 앞질러 자기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문제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자신의 존재 가능성”에로 앞질러 “향해 있음”에 바탕해, 그는 또한 “세계-내-존재”로서 세계내부적 존재자 “곁에 있음”과 “함께 있음”을 문제 삼고 있다. 즉, 진리는 “실존한다”고 규정 짓는다.

하! 이것 또 당했다. ‘내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진리가 무슨 소용?’이라는 물음에 응답하려고 『존재와 시간』 제44절 진리 편을 또다시 펼쳤는데, 전통적 형이상학의 인식론적인 진리개념보다 자신의 현상학적 접근인 진리의 구조를 실존론적으로 분석한 것이 근원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끝내 버리니...

Naver 국어 사전을 펼쳤다.

진리 : 眞理 [질리] .(명사)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 .(명사) 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판단. 형식적 의미로 사유의 법칙에 맞는다는 의미에서의 사고의 정당함을 의미한다. .(명사)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첫 번째 정의와 두 번째, 세 번째 정의가 다소 느낌이 다르다. 맨 앞에 나온 진리는 ‘참된 (삶)’에 다소 가까운 반면, ②,③정의는 왠지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새롭게 개념지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진리를 찾는다는 것이 우리의 삶을 참되게(바르게) 바꾼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어째, 분석하는 방법이 하이데거를 닮아 간다.

 

   하이데거는 내게 무엇을 남겼나?

 

   노트북을 펼치고 하이데거 책들을 다시 펼치고 끙끙 거리고 있으니, 자신의 에세이 쓰기를 마친 나의 공동 현존재가 화장실 다녀온 홀가분한 표정으로 지나가면서 한마디 던진다.
“에세이 끝났는데, 뭐해요?”

“전교 1등이 후기 써야 한데요. 걍 재밌게만 쓰려니 공부한 티가 안나서리......”

“무슨 소리? 에세이 후기는 엣지있게 간략하게 써야죠. 그나저나 애쓰네요. 혹시 비본래적 전교 1등아닌감? ㅎㅎㅎ”

 

아아!  그렇다.

나의 하이데거는 내게 ‘심려’를 남겼고, 나의 지갑에서 자동차를 뺏어 갔다. 그것은 본디 ‘비본래적’이란 말을 남기고......

 

뱀발 :

세미나 내내 

말을 못하고 끙끙 거렸지만,

서양철학사를 처음 읽을 때와 비교하면

책을 던지지는 않았습니다.

 

세미나 님들의 덕분에!

 

감사합니다.

댓글 10
  • 2021-12-21 13:52

    어째 어려운걸 더 어렵게 만들었구나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ㅎㅎㅎ

    사실 여러번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제가 가마솥샘의 공부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전체 '후기'를 누가 쓰지... 하는 고민의 답은 정해져 있었드랬죠! 

    한해 동안 멋진 모습 보여주셔서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 (본래적)공부왕 가마솥님께 불초 정군 드림

    • 2021-12-21 14:07

      재미있었어요.

      내년엔 들뢰즈 읽는다면서요? 

      두근두근.......

  • 2021-12-21 14:50

    '역시 전교 1등'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후기입니다. 저로서는 진행중엔 열등생, 막판엔 결석생 이미지를 굳혀 아쉬운 세미나였지만, 많이 배웠습니다. 샘들 감사합니다. 

    (열어 젖혀진 지갑의 향배가 열어 밝혀졌군요ㅎ)

  • 2021-12-21 19:51

    헐! 에세이2탄인가요?

    남들은 책을 다 치웠다는데.. 다시 책을 꺼내든 가마솥님,

    리스펙입니다.ㅋ

    문탁에 등장하기를 꿈꾸어왔던 진정한 공부벌레의 풍모를 보이시는군요.^^

    아! 이건 등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것, 아시지요?

  • 2021-12-21 20:21

    가마솥님 너무 사랑스러워요. 어쩜 이렇게 전교1등 다우실까... 

  • 2021-12-22 12:13

    엄청난 에너지의 마지막 후기 잘 읽었습니다. 내년에도 뵐 수 있기를…그리고 평창에서도 뵐 수 있기를…

  • 2021-12-22 12:50

    아, 하이데거에게 진리란 그런 것이군요. 있는 한에서만, 있는 동안에만 주어진 어떤 것. 잘 읽었습니다. 가마솥샘의 글은 언제나 눈물나게 재미있어요. 그날 무려 5시간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했고 덕분에 풍요로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 2021-12-23 15:15

    하이데거는 에세이 데이와 함께 쌩- 하니 안녕! 하고 딱 덮을라고 했는데 가마솥 샘이 복습시켜주시는 군요. 사실 저 부분을 이번 에세이에서 넣어볼라고 낑낑댔는데 소화해내지 못해 슬그머니 빼버렸거든요. 한학기 동안 세미나에만 열중하고 잡담을 나누지 못했지만 뒤풀이 때에 지덕체 또는 기술/음악/문 까지 섭렵하신 가마솥샘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존재와 시간> 따라가느라 가랑이 찢어지는 줄 알았고 그저 페이지 읽기에 급급해서 공부한게 영 성에 차지도 않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열어밝혀주신 양심으로 저같은 세인이 '우선, 대게' 끝낸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올 하반기에 세미나 두 개 병행하면서 진짜 이건 할 짓이 못된다, 내년엔 진지하게 할지 말지 고민해봐야겠다 하고 있었는데 세미나 아니고 강독으로 한다니...또 영업을 당해버렸네요? 

     

    아무도 읽진 않으시겠지만 파이널에세이에서 지적받은 부분을 찌끔 수정했습니다. 이것으로 홀가분하게 마무리하렵니다!! 하이데거 선생님, 우리 다신 만나지 마요!!  

    • 2021-12-23 16:12

      다시 잘 읽었습니다. 매실샘....

    • 2021-12-24 12:02

      매실샘.  잘 읽었습니다.

      "불안이 초래하는 가능성에서 단지 도망치지 않았다"  문장에서 하이데거를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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