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1장 후기2 죽음과 전체성의 문제

요요
2021-10-29 11:47
372

여울아님의 재미난 후기와 달리 저는 2편1장의 발제문을 다시 써보았습니다.^^

 

하이데거는 1편에서 현존재의 실존에서 출발하여 차곡차곡 논리를 쌓아가며 ‘현존재의 존재는 염려(Sorge)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2편 초두에서부터 1편의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1편은 현존재에 대한 예비적 분석이었으니 이제 본격적 분석에 들어가겠다고 하는군요. 저는 1편 마지막 두 절(41절, 42절)에서 실재성과 진리 문제를 논하는 것을 읽으면서 이제 하이데거가 뭔 소리를 한 건지 좀 알 것 같다 싶었는데.. 하하 그건 그야말로 예고편이었던 것이지요.^^

 

이번 주에 우리가 읽은 2편 1장은 현존재의 전체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예비적 분석에서는 현존재의 평균적 일상성을 다루었는데 거기에는 죽음이 빠져있었기 때문에 ‘현존재의 존재는 염려’라는 테제가 과연 전체성의 시야에서 볼 때도 맞는지 아닌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죽음을 누구나 겪는 생의 마지막 순간, 1회적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현상으로서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니 2편1장은 하이데거의 눈으로 본 ‘죽음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결론적으로 죽음은 현존재 누구나 건너뛸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지 숨이 다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미완→완결도 아니며 미성숙→성숙도 아니며 마침도 아니며 중단도 아닙니다. 생물학적 의미의 ‘끝나버림’도 아니고, 인간적인 의미에서 ‘삶을 다함’도 아닙니다. 말장난 같지만 아무튼 우리는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현존재의 죽음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현존재의 죽음은 ‘종말로 향하는’ 가능성입니다. 즉 현존재는 실존적, 실존론적으로 항상 이미 죽음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만큼 삶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없는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죽음이야말로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현존재의 존재가능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삶의 현상입니다. 죽음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을 통해 우리는 염려에서 발견한 실존성(존재가능과 기투성), 던져져 있음(피투적 현사실성), 빠져있음(퇴락)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하이데거를 따라 살펴본 결과, 죽음이라는 현상도 1편에서 검토한 염려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염려의 구조 속에서 살면서 불안을 회피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존재는 일상성의 삶 속에서는 죽음과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려 합니다. 1편에서 불안이 맡고 있던 역할이 죽음으로 바통터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실존은 존재가능인데, 그 존재가능을 가장 탁월하게 밝혀주는 것이 이제 죽음이 됩니다.

 

현존재는 죽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여기에서 실존의 양태가 달라집니다. 하이데거는 죽음의 실존론적 분석을 통해 ‘가능성으로 미리 달려가 봄(선구)’을 이야기합니다. 현존재의 실존과 관련되어 논의되던 기획투사가 죽음과 관련해서는 ‘가능성으로 미리 달려가 봄’으로 표현이 바뀐 느낌입니다. 현존재는 피투성과 기투성을 함께 갖고 있는 존재입니다. 죽음은 피투적인 것이지요. 일상에서 그 피투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죽음과의 관계에서 기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현존재의 존재가 존재가능이므로, 우리는 죽음과의 관계에서도 기투하며 살고 있습니다. 대개는 도피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하이데거는 '죽음으로의 선구'야말로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극단적 존재가능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말합니다. 미리 달려가 봄을 통해서 현존재는 ‘죽음을 향한 자유’ 속에 있는 자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전체성의 문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현존재에게는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 봄을 통해서만 전체적 현존재를 실존적으로 앞서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놓여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체적 존재가능으로 실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놓여 있다(353쪽)”는 것입니다. 결국 현존재의 염려의 구조에서 전체성이란 ‘전체적 존재가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셈입니다. 

 

현존재가 진리 안에 있음이란, “달려가 봄으로써만 가능”해지고, 그럴 때 “열어 밝혀져 있는 것의 확실 존재(being-certain)”이고, 이 “확실존재는 달려가 봄을 요구”하는 것이 됩니다. 이 진리는 눈앞의 것의 진리와는 사뭇 다른, 아니, 눈앞의 것의 진리(대상과 인식의 일치)와는 급이 다른 진리가 됩니다. 눈앞의 것의 진리는 의식의 소여로서의 ‘명증함’을 요구하지만, 달려가 봄은 ‘확실성’을 갖는다고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확실함이 명증함보다 윗길이라고 하면서요. 기존의 진리관에 도전하는 이야기인 것 같긴 합니다..^^ 이야말로 현상학적 실존주의적 진리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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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성을 다루려면 탄생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렘샘이 말씀하셨는데.. 그 때는 생각을 못했지만 지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요.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탄생성’을 말했다는 것!(내용은 가물가물..ㅋ) 이 역시 아렌트 방식의 하이데거 극복의 시도였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불교에서는 생로병사 모두가 ‘고(苦)’라고 말합니다. 붓다의 깨달음을 한 큐에 정리하는 ‘사성제’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로 시작하지요. 그것을 니체는 허무주의라고 말했지만(제가 알기로는 비난이 아니라 인색한 칭찬 비슷하게ㅋㅋ), 붓다의 편에 서서 저는 ‘괴로움의 자각’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 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왜 ‘죽음’(혹은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 봄)을 변화 혹은 가능성, 본래성과 연관해서 생각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자려고 누웠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양 형이상학은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필멸과 불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구도를 가지고 있었구나! 하이데거 역시 그 구도를 충실히 따른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불멸(신)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오히려 죽음의 철학을 했다면, 필멸(인간)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삶의 철학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이렇게 되면 니체 비슷해지는 것 같긴 합니다^^)

 

 

 

 

 

 

댓글 3
  • 2021-10-29 14:08

    요요샘 후기 재밌습니다. 죽음이 왜?? 본래성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하이데거가 신부 되기 직전에 병을 앓고 그동안 준비해온 신학관련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험을 했잖아요. 혹시 그게 직접적인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제 이 질문이 나왔을 땐 1920년대 독일사회의 불안정성 때문인가 싶었거든요. 세계1차대전 이후 대공항이 시작되기전. 한편으로 키르케고르가 얼릴 때부터 많이 아프고 죽음의 공포로 인해 불안에 시달렸다고 하던 철학사 텍스트 한 귀퉁이도 떠오르네요. 당시 사회 분위기는 불안과 죽음이 셋뚜셋뚜 아니었을까요.. ㅎㅎ

  • 2021-10-29 15:26

    이번 파트를 읽으며 '어? 왜케 술술 잘 읽히지? 공부 내공이 쌓였나ㅋ' 했는데, 어제 세미나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읽으며 그냥 넘어간 문맥 속에 많은 질문거리와 생각거리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요. 세미나 중간중간 지금 논의되는 내용이 철학사적 맥락에서 어디쯤에 있다 블라블라... 동양과 서양철학을 넘나들며 전해주시는 내용들이 아직 익숙치 않지만 공부하다 보면 그 거리도 조금씩 좁혀지지 않을까요? 답정너 공부군요.

    아~ 넷플릭스에 올라온 곤도 마리에 여사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콘텐츠를 보고 싶은데... 우선 55절까지만 읽고 봐야겠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1-10-31 10:25

    아 정말 깔끔한 정리이옵니다! 확실히 '죽음'을 '염려'와 조응하는 것으로 놓고 앞서 다뤘던 관련 개념들을 집어보니 전체적인 구도가 더 잘 보입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삶의 현상으로서의 죽음' 부분인데요. 그걸 자꾸 어떤 '사건'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하이데거가 지적하는 '죽음'에 대한 세인적 이해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것인 듯 합니다.(물론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해야만 하는가 싶은 의문이 있지만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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