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학교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5회차 후기 '공동 존재의 다리를 놓다'(feat. 여울아샘의 두문암기법)

무사
2021-10-04 12:05
402

세미나 중간중간 "어렵다", "재미없다", "억지스럽다"며 푸념을 잔뜩 늘어놓았는데 후기를 쓰려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아직은 내 앎이 하이데거가 1급(?) 철학자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정도로 얇아서겠지? 우선 대개 끝까지 가보면 뭐라도 보이지 않겠는가? 횔덜린처럼 '존재'에 손을 살짝 대고 오진 못해도 말이다.  

 

전반기 때 <서양철학사> 세미나를 했다면 조금 달랐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강의를 들을 때 비교 대상으로 살짝 스친(물론 강의 중간 중간 나오기는 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철학자였을 뿐이다.

 

    '들뢰즈에게 <차이와 반복>이란? 하이데거에게 <존재와 시간> 정도의 위치에 있는 저작이다. 들뢰즈의 존재론이 가장 정교하게 구축되어있는 깃발같은 책, 들뢰즈가 '나는 독창적인 사상가다' 임을 외치는 책이 <차이와 반복>이라면 하이데거에게는 <존재와 시간>이 그 비슷한 위치일 것이다'라는 정도만 기억납니다. 

 

딱히 공부하고 싶다는 감흥이 들었던 철학자는 아니었다. 온라인 세미나라는 방식과 정군샘의 떡밥(^^)에 혹해 신청은 했지만, 혹독한 분열의 과정을 겪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분열의 터널 속에 갇혀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쯤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철학책을 읽는 태도에 대한 성기현샘의 코멘트를 기억나는대로 떠올려보자. 그때, 철학공부를 열심히 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철학책은 신문기사(정보 습득)나 소설(줄거리 파악)이 아니다. 철학책은 ② 논증을 통해서 ① 개념의 ③ 유효성을 입증하는 책이다. 

 

① 개념

철학책은 개념에 대해 공부하는 책이다.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개념의 정의와 구조, 구조의 구성요소, 구조하에서의 기능을 알아야 한다. 개념은 구조와 떡잔디처럼 얽혀 있다. 

 

    이를 테면 세미나 때 나눴던, 데카르트의 '연장(extentio)'과 같은 용어겠죠? 연장이란 '물질, 물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어떤 공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네요. 

 

② 논증

철학자는 다른 철학자의 개념을 겨냥하면서 자신의 개념을 내놓는다. 누구의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그 개념의 쓸모를 알 수 있다. 논증의 맥락 속에서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테면 데카르트의 '주체', '실체' 같은 개념을 겨냥하며 하이데거는 '현존재', '실존'의 개념을 분석하고 있고요.

 

③ 유효성

고생고생해서 개념, 구조, 구성요소, 논증을 파악했어도 써먹지 못하면 소용없다. 좋은 개념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 개념을 알기 전과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유효성이 있다는 것은 세상, 삶,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특별한 가치가 있다. 

 

    이를테면 에세이 쓰기가 바로 우리가 배운 개념들의 유효성을 끄집어내는 과정일테고요.

 

이처럼 철학책을 읽는 것은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느리게 읽는 연습, 분석적으로 읽는 연습,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는 연습, 일상어와 철학적 개념(용어)을 구분하는 연습 등

 

지난 시간까지는 두개의 번역본과 강독서, 영역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부딪치는 개념(용어)으로 인해 혼동을 느꼈지만, 소광희 번역본을 기본서로, 이기상 번역본, 박찬국 강독서, 영역본은 참고서로 정하고 단권화하고 있다. 개념정리 노트도 한권 마련했다. 개념을 정리해나가지 않으면 도통 따라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4장에서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의 방식으로 있는 존재자로서 ‘현존재의 평균적 일상성의 양상하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살펴본다. 세계-내-존재인 현존재가 몰두해있는 세계, 그 일상성에 있어서 현존재는 누구인가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주체-타자의  관계가 아닌, 다른 현존재를 만나게 되고, 공동 현존재로 함께 실존한다. 일상적 주체인 세인과 현존재는 칼로 나누듯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일상적 세계에 몰두해있는 세인이 현존재가 되려면 존재물음을 가져야 한다. 3장에 이어 4장에서도 하이데거는 데카르트를 위시한 서양 근대철학 전체를 비판하면서 '나는 독창적인 사상가다'를 드러내고 있다. 

 

이 장에서 내가 픽한 멋진 문장은,

일상적인 평균적 공동 존재가 서로 친근해지는 과정 중 '감정이입'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 있었다. 감정이입이라는 현상은 '독자적인 세계-내-존재인 서로에게 ‘처음으로 공동 존재의 다리’를 놓는 것'이라는 표현이다. 세인 사이에 놓은 다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여울아샘의 두문암기법

'사배, 타심, 자염'

 

시간의 흘러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사배, 타심, 자염'은 잊지않을 것 같다.

고마워요. 여울아샘~ 뭔가 우리만의 암호가 생긴듯합니다. 

 

   "당신이 철학학교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세미나를 함께 했었다고? 기억에 없는데? 그렇다면 암(구)호를 대보시오"

   "(문어) 하이데거"

   "(답어) 사배, 타심, 자염"

댓글 5
  • 2021-10-04 13:30

    무사님~ 그 노트 함 보고 싶어요. 개념정리를 도대체 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정리가 될 때까지 놓치 않는 분들 덕분에 어찌 어찌 가고 있는 중입니다~~~

    참, 철학의 개념, 논증, 유효성도 읽어나가면서 도움 많이 될 것 같습니다~

    • 2021-10-04 13:35

      노트 이제 마련했어요 ㅋ

  • 2021-10-05 08:01

    오~ 개념노트 앞으로 공유합시다!!

    무사님이 재미없다고 해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이번주 세미나 파트를 읽어나가다 보니 하이데거 개념으로는 그것이 바로 '기분'이더군요.

    걱정할 일이 아니라, 그 기분을 통해서 열어밝혀지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같이 찾아보아요.

    후기 읽다가 '암호를 대시오'에서 빵 터졌습니다.ㅋㅋㅋ

     

    무사님은 '감정이입'을 픽하셨네요.

    저는 '공동존재', '공동세계'를 픽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이런 사유는 새롭거나 낯설게 느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미 평균적 일상세계에서 친숙하고 익숙해진 개념이어서 그런가봐요.

    마음 한편에서 과연?이라고 물음이 올라오긴 하네요.ㅋ

    이 개념들이 우리의 세인적 삶에서 여전히 눈앞의 것으로만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존재와 시간> 4장을 읽으면서 주체나 자아가 아니라 공동존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하이데거가 변화시킨 현대 철학의 풍경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2021-10-07 22:28

      요요샘의 개념 응용력을 배우고 싶어요. ㅎㅎ 

      암만 해도 하이데거 개념이 입에 안 붙네요. 

      아직 외국어보다 어려워요. 

      하이데거에게 기획투사해서 이해를 해야하는데... 

       

  • 2021-10-07 22:31

    무사샘이 개념노트 만든다고 해서, 구글 드라이브로 하이데거 개념어 위키를 만들어보자! 고 할랬다가...

    책 읽을 시간에 허덕거려 바로 포기했어요.  ㅎㅎ

     

    그런데 검색해 보니 네이버에 존재와 시간 개념어 사전이 있더군요. 

    와 좋다! 하고 봤는데... 

    https://terms.naver.com/list.naver?cid=41908&categoryId=41967&so=st4.asc

     

    요점정리형 개념정리가 아니라 풀이식... 개념어사전은 이런게 아닌데 말이죠. 흑흑. 

    세줄요약 이런거 원하는데 말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74
[2023철학학교시즌4] 라이프니츠 읽기 [접힘과펼쳐짐] 2주차 질문들 (12)
정군 | 2023.10.25 | 조회 350
정군 2023.10.25 350
773
[2023철학학교시즌4] 라이프니츠 읽기 [접힘과펼쳐짐] 1주차 후기입니다. (10)
가마솥 | 2023.10.20 | 조회 267
가마솥 2023.10.20 267
772
[2023철학학교시즌4] 라이프니츠 읽기 [접힘과펼쳐짐] 1주차 질문들 (11)
정군 | 2023.10.18 | 조회 328
정군 2023.10.18 328
771
[2023 철학학교] 라이프니츠 읽기 첫 시간 세미나 공지
정군 | 2023.10.02 | 조회 255
정군 2023.10.02 255
770
[2023철학학교시즌3] 에세이데이 후기 (16)
세븐 | 2023.09.24 | 조회 581
세븐 2023.09.24 581
769
[2023철학학교시즌3] 에세이를 올려주세요! (11)
정군 | 2023.09.18 | 조회 434
정군 2023.09.18 434
768
2023 철학학교 시즌4 라이프니츠 『형이상학 논고』읽기 모집 (15)
정군 | 2023.09.18 | 조회 1489
정군 2023.09.18 1489
767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정치론 3 후기 - 스피노자는 남자다 (6)
진달래 | 2023.09.11 | 조회 352
진달래 2023.09.11 352
766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7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3.09.06 | 조회 356
정군 2023.09.06 356
765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6주차 후기 - '다중'과 '주권자의 죄' (8)
가마솥 | 2023.09.01 | 조회 467
가마솥 2023.09.01 467
764
[2023철학학교시즌3] 스피노자 읽기 6주차 질문들 (11)
정군 | 2023.08.30 | 조회 423
정군 2023.08.30 423
763
[2023철학학교 시즌3] 스피노자 정치론 1,2장 후기 (5)
아렘 | 2023.08.25 | 조회 339
아렘 2023.08.25 339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