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컴 노킹 (Don't Come Knocking) 후기

문정
2020-07-24 23:56
432

작년 7월에 이어 올 7월에도 파지사유에서 필름이다 선생님들과 영화 인문학 선생님들과 영화를 봤다.  

 

돈 컴 노킹 (Don’t Come Knocking).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인데, 꽤 난해하고 설명이 부족한 스토리이지만 가끔씩 웃음을 주는 어이없는 영화다. 퇴물배우 하워드가 우연히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는데, 영화의 비주얼은 상당히 밝고, 시원시원하다. 영상미도 있다.  

 

‘가족애’ 를 생각하면 대부분 감동적이고,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하고 그럴 것 같은데 ‘돈 컴 노킹’ 에서 하워드와 얼, 스카이 그리고 도라가 재회하는 방식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띠우쌤 글 ‘내가 니 애비다? 어쩌라고!’ 가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가슴을 퍽하고 치는 감동은 없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꽤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분노를 느끼며 자기 방의 가구를 2층에서 창문 밖으로 마구 집어 던지는 얼과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어 보이는 얼 여자친구 (보다 보면 귀여움). 하워드와 얼이 주먹을 쥐고 싸우는 장면은 오히려 감동적으로 극적인 재회를 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감 있었다. 30년만에 나타나서 미안해하고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였다면 현실감이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후련한 기분이 들지 않아서 감독 인터뷰 영상 2개를 유튜브에서 찾아봤는데, 하나는 얼과 감독이 서로 인터뷰하는 영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감독 혼자 하는 인터뷰였다. 두 인터뷰 모두 영화에 관한 얘기는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재밌는 얘기들은 좀 있었다.  

 

얼이 감독한테 물어본다: 이 영화가 현대의 남성들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나요? 감독은 여기서 두 남자가 (하워드와 얼) 속수무책 (helpless)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성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이 여자들 보다 뒤쳐져 있다고 덧붙인다. 여자들은 갈등상황에서 말로 더 잘 해결한다고. 하워드가 얼에게 “내가 네 아빠다!” 해서 둘의 존재를 서로 알게 된 날, 둘이 몸싸움한 장면에서도 그 둘은 속수무책이다.  

 

감독은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가지가 무엇이냐? ’는 질문에 첫번째는 촬영할 장소를 찾아보는 것, 두번째는 편집, 마지막은 자신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라고 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사실 본인은 자기 작품이 비판받는게 두렵다고. 그렇지만 자신의 작품이 관객들의 머리 속에 어떤 식으로든  자리잡는게 좋다고 말한다. 어제 영화보고 이야기 나눌 때, 감독이 우리랑 같이 있었으면 재밌었을 것 같았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 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감독과 하워드역의 샘 셰퍼드가 같이 했다. 사실 감독이 생각하고 있던 다른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샘의 역할은 은행원이었다. 그런데 샘은 그게 정말 자기와 맞지 않는다 생각했고, 또 좋아하지도 않았다. 대신 감독의 다른 처음 아이디어인 아버지의 부재와 처음 보는 아들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같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기린쌤이 하워드랑 하워드 엄마랑 나이차이가 많이 안 나 보인다고 하셨는데, 인터뷰어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 촬영 당시에 하워드 엄마역 배우 나이가 80이 넘었다고 한다. 인터뷰가 그렇게 길지도 않아서 감독의 의도나 연출, 스토리, 해석에 관한 얘기는 하나도 없었지만 재밌었다.  

내년에는 어떤 영화를 보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필름이다 파이팅! 치정극 파이팅! 

 

댓글 4
  • 2020-07-25 05:51

    와.. 우리도 1년만에 문정의 리뷰를~~
    글구 문정아, 너, 글도 점점 잘 쓰는 것 같아.
    지성이 점점 덧붙여지는 듯. 더 멋져질 듯^^

    피에쑤 : 나의 20자평. "찌질 중년남성....동,서가 따로 없구나"

  • 2020-07-25 15:08

    후기쓰는 문정이 모습을 눈앞에 보이는듯~
    문탁에서 문정이 보니까 기분이 업되더라~
    건강 잘 챙기고~ 미모도 잘 챙기고~ ㅎㅎ
    엄마도 좀 괴롭하고ㅎㅎㅎㅎㅎ

  • 2020-07-27 12:20

    와우~~ 그 할머니가 80세가 넘었다고? 이야~~ 과학의 혜택일까? 화장술의 효험일까?
    영화보고 따로 자료 찾아보고^^ 문정양이 글 쓰는 프로세스를 아네~~~
    덕분에 영화에 대한 이해가 좀 업그레이드~~~~
    문정^^ 글 잘 읽었다~~~

  • 2020-07-31 07:30

    문정이 후기 읽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ㅋ
    일년만에 영화를 같이 본 거였군요.
    문정~~독일 잘 들어가고 영화 또 같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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