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2차 세미나 후기

겸목
2022-02-2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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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치약국의 책처방> 세미나의 장점은 무엇보다 아주 새로운 조합의 사람들과 함께 세미나를 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해오신 분들, 일리치약국에서 지지고볶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 그리고 나와 다른 세미나를 하는 분들, 또 줌이라서 함께 할 수 있는 먼 곳에 사시는 분들 등등 새로운 조합의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같이 읽는다는 건 묘한 설렘을 자아낸다. 약간 어색하고 뻘줌한 느낌을 포함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감동이 있다. 아! 저 사람은 저런 걸 느꼈구나, 아! 저 사람은 요즘 저렇게 살고 있구나,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등등 줌으로 만나지 못했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 있다.

 

2번째 시간에는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뒷부분을 읽으며 각자에게 꽂힌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복수의 참가자들에 동시에 pick된 구절도 있고, 누군가에게 꼭 박힌 한 구절도 있었다. 내가 꽂힌 문장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쪼개기'다. "내 욕망을 하나씩 미세하게 관찰함으로써 쪼개고 쪼개서 인과를 찾아가는 거예요. 내가 어떤 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왜 원하는지를 묻고 또 묻는 거죠. 그럼, 인정욕망, 질투, 소유욕, 뭐 이런 덩어리들이 나오겠죠. 그리고 조금 더 파들어 가면, 식욕, 성욕과 같은 것들이 나올 거고요. 한마디로 인과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인과론을 이런 방식으로 쓰지 않았죠.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는 거고, 나를 둘러싸고 고정시키는 덩어리가 잇으면 그 덩어리를 만든 뭐가 있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덩어리로 둔 채 그냥 ‘이건 나야’, ‘나는 원래 이래’, 이렇게 퉁치고 그걸 절대 쪼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월이 지날수록 그 덩어리를 더 뭉치게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내가 왜 이러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어디서부터 쪼개야 할지도 모르게 되는 거죠. 그게 바로 무명입니다. (303쪽)" 불교의 연기설을 아주 쉽게 설명하며 고미숙샘은 우리가 왜 인과를 파악하지 못하고 '무명'과 '무지'에 빠지는지 보여주는데, 구체적으로 '쪼개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연기설이 말해주듯, 많은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함께 작용한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갈 수록 명확한 인과관계에 대해 유보적이 된다. 그보다는 더 많은 것들이 함께 연동되어 있는 것을 봐야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 한켠에는 '나태함'이나 '방만함'도 있다. 고미숙샘의 소개로 맛을 본 '숫타니파타'와 불교공부가 나에게 준 인상은 '불교는 매우 논리적이고 학구적인 학문/종교'라는 점이다. 고미숙샘은 그래서 불교를 '청년'의 이미지로 설명하신다. 왕성하게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청년의 구도의 모험. 그리고 그 길로 걸어간 사람이 싯타르타다.

 

그 다음으로 나에게 꽂힌 구절은 "지혜와 자비는 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혜가 있어야 자비를 베풀 수 있고, 자비가 한량없이 이루어지려면 지혜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하면 ‘우주의 파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동도 멀리멀리 퍼지는 그런 파동이 있고, 그냥 소음 같은 파동이 있을 거 아니에요. 부처님의 이 진리는 그 파동만으로 사람을 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한 번 부르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나무아미타불’을 온 마음을 다해 단 한 번만 염송해도 아미타불이 바로 구해 준다고 하죠. 이게 바로 진리의 파동에 담긴 자비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412쪽)" 이다.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이 구절을 인상적으로 읽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불교는 학구적이지만, 학구적이지만은 않은 것이다. 세미나에서는 '주지파'냐 '영성파'냐 '무당파'냐 농담처럼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지혜와 자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공존의 문제라는 것! 말은 멋진데, 이것이 구현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직 내게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무슨 책을 공부할지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자비'의 영역은 그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아침에 인터넷뉴스를 보며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터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전쟁은 결국 약자들에게만 폭력을 남기지 않는가 하는 걱정.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는 곧 잊어버렸다. 내 마음은 가족, 친구, 동료들에 대한 배려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마음에서 우주로' '자리이타'라는 말은 어렵다. 어제 tv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기뻐했고, 그들의 감정이 나에게까지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간절함과 진심은 전해지고, 느껴진다. 이런 느낌일까? 

 

<동의보감>과 사주명리학과 주역과 <숫타니파타>를 듬성듬성 연결짓고 있는 것 같아,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이 책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을 마치며 물음표를 남발하고 있다. 물음표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독서였다. 이번주 목요일 <책처방>3차 세미나에서는 오랫동안 불교를 공부해오신 요요샘과 마을약사 둥글레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시간을 갖는다. 아주 원대하고 심오한 것부터 아주 자잘하고 하찮은 것까지 한 번 물어봅시다~ 목요일 저녁 8시에 줌에서 만나요^^

 

 

 

 

 

댓글 5
  • 2022-02-22 14:54

    저는 오랜만에 고미숙샘의 신간을 정독하는 시간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일리치약국의 한 구절에도 썼지만 

    "내가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건 내가 지금 굉장히 불만족스럽다는 뜻입니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충만함, 그 충만함에서 자연스럽게 솟구치는 이타심"

    나의 상태를 점검할 때 한번쯤 되새겨볼 수 있는 문장 하나 건진 것만으로도  충분한 책 읽기였다니까요^^

  • 2022-02-22 15:02

    지난 수업에 제 마음과 같아서 겸목 샘 발제문 들으며 공감 만발이었어요.
    다시 보고 싶은 데, 겸목 샘 발제문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마지막 3강 흥미진진  기다려집니다.
    자잘하고 하찮더라도 저만의 질문을 찾아서 난상토론에 퐁당^^

    • 2022-02-22 15:19

      지난주 세미나 공지글에 댓글로 올라가 있어요

  • 2022-02-22 16:53

    <동의보감>이 유, 불, 선(도교)을 통합한 책이라고 하니 불교와의 연결도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제 경우엔  <동의보감>이라는 창으로 <숫타니파타>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듬성하게 연결되어 보이지만 각각을 잘 알지못하면 연결하는 게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2022-02-23 07:45

    지난 세미나 참석을 못해 아쉽지만, 책읽으며 제가 어디에 꽂히나보니, 우월감, 열등감, 자기 충만 등등 역시 내가 잘났다라는 생각에서 못벗어나더라고요.. 그리고 <숫타니파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부분도 혼자서 자~알 해야한다는 알아듣는걸 보니. 이런 신구의을 보니 저의 양생포인트가 뭔지 알겠더군요. 함께하는 배치속에서 배워야한다는것을~!
    그리고 겸목샘이 꽂힌것처럼 '욕망을 쪼개라' 이부분. 이건 양생 실전용인거 같아요. 근데 쪼개서 보려면 공부해야겠죠?^^

    아침 출근길 주저리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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