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식물세미나> 1회- 소설로 시작한 식물에 대한 몇가지 궁금증들

기린
2022-01-13 22:53
351

<어바웃 식물세미나>의 첫 책으로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게 되었다. 문탁에 온 이후 초반기 문학 세미나 했을 때를 제외하면 세미나에서 소설책을 읽은 적이 없던 터라 조금은 설레기도 했지만, 막상 메모 담당이 되니 뭘 쓰나 좀 난감하기도 했다. 김초엽 작가의 단편들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첫 장편이라 조금 기대를 했는데,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첫 감상은 좀 밋밋하다 였다. 세미나 첫 시간이라 자기소개를 곁들여 참가 동기 등을 밝힌 후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 더스트 사태가 일어나 지구에 사는 인류들이 멸종의 위기를 겪는 와중에 더스트에 내성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돔 밖에서 공동체를 꾸렸다. 주인공 지수는 엔지니어인데 사이보그의 팔을 고쳐주면서 사이보그인 레이첼이 온실에서 가꾼 식물을 공동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사람들은 그 식물을 키우면서 공동체를 꾸렸다. 레이첼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급속한 성장 속도로 덩굴을 형성하며 더스트를 분해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모스바나라는 식물 재배에 성공한다.

 

 나의 메모에서는 사이보그인 레이첼과 인간 지수 사이에 감정선을 묘사하는 부분이 너무 단선적으로 읽히는 데 실제 사이보그를 이해하는 작가의 관점 자체가 인간중심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으로 읽힌다고 했다. 현주님은 레이첼이 배양해서 만들어낸 식물이 엄청 빠른 속도로 숲으로 뻗어나가는 설정 등이 식물의 실제 속도를 감안하지 않는 인간 중심의 관점 아닌가 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의견에 대해 사이보그라는 설정, 여성으로 설정된 지수를 엔지니어로 그린 점 등은 작가가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을 염두에 둔 설정으로 볼 때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난 시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의견도 있었다.

 

동은님은 식물 세미나인 만큼 식물에 관심을 두고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주체로 인식하기가 어려웠다는 메모를 했다. 소설을 읽은 후 식물과 맺고 있는 관계가 여전히 불균형하다는 인식이 남았다고 했다. 식물 세미나인 만큼 앞으로 남은 커리를 읽으면서 식물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 균열을 내다보면 불균형에 대한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라는 의견이 있었다.

 

 이 세미나에 신청하게 된 동기를 밝히는 과정에서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의견 등을 들은 자누리님은 사람들은 왜 식물의 이름을 알려고 하는지에 의문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숲을 가까이 하며 자랐던 어린 시절에 숲에서 나는 소리 등으로 식물들을 느꼈을 때 꼭 이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고 했다. 그래서 논의는 반려견 등의 동물은 이름을 붙이는데 반해 식물은 종으로 통칭해서 부르는 차이는 왜 생길까 궁금하다는 데 까지 이르렀다. 까닭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딱히 공감을 얻지 못하던 찰나, 경덕님이 매일 지나치는 길에서 새 눈이 올라오는 나뭇가지를 들여다보며 그 변화를 관찰하다보면 식물에 대한 관심이 곧 앎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의견을 밝혔다. 일면 공감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았다.

 

 소설책이기는 하지만 식물을 알아가는 세미나에서 첫 커리로 선정되어서인지 사건이나 등장인물들의 행위보다는 식물을 둘러싼 의견이 주로 다루어졌다. 세미나 말미에 참님이 레이첼이 모스바나를 만드는 과정에서 돌연변이로 인해 푸른빛을 띠게 되었는데, 지수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 현상을 제거하지 않은 일화를 들며, 이 소설이 사이보그와 인간 사이에서도 형성되는 관계의 결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첫 세미나이고 줌으로 진행되었고 처음 만나는 세미나회원 분들도 있어서 다들 조금은 서먹한 분위기였던 것도 같다. 오랜 만에 세미나에 온 세션님께 의견을 물었더니 오늘 나눈 이야기와 관련 내용을 앞으로 계속 얘기할 거라고 한 마디로 일축해서 세션이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동시에 앞으로 만날 식물의 세계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지 좀 더 궁금해졌다.

댓글 5
  • 2022-01-14 08:25

    김초엽의 <지구끝의 온실> 메모입니다

  • 2022-01-14 11:10

    설레었고 반가웠고 궁금하고 떨렸고,  여러 생각들이  쉴새 없이 들고 나던 월욜 첫 시간이였어요. 

    저는 ‘지수’ 보면서  구병모소설<파과>의  ‘조각’이

    떠올랐어요. 변화하는 지점이 비슷해서 였을까요? 🤔

    기린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후기도 메모도 잘 읽었습니다.(ㅎㅎ점점  차례가 다가오는 압박)

  • 2022-01-14 23:01

    사실 식물의 이름에 관해서는 '니 이름은 뭐니?' 보다는 '넌 어떻게 그 이름을 갖게 되었니?'가 보다 정확한 저의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종의 기원'때문에 어느날 풀과 나무가 보였던 거라서 그랬겠지요. 그렇다해도 두 질문은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전자는 조금은 지식의 대상으로써의 식물에 대한 호기심이 살짝 깃든 질문이라면 후자는 적어도 제게는, 우리 좀 알고 지내보자는 손내밈같은 거였거든요. 식물에 대해 혹은 식물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어떤 사유를 하면 좋은지는 앞으로 읽을 책들이 도움이 되지않을까 싶고요. 뭐 그때문에 셈나를 신청하기도 한 거니까요. 이 기회에 식물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있으면 좋겠네요. 어쨌건 셈나를 하며 함께 생각하니 벌써 재밌더라구요^^

  • 2022-01-16 19:20

    사실 <지구 끝의 온실>은 제가 식물 세미나를 신청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참고영상으로 올라온 고봉준샘 강의를 제가 편집했었거든요. 그러면서 식물이 예전에 굉장히 관심을 가졌던 신유물론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놀랐어요.(당연한데 예전엔 이 사실이 왜 별로 안놀라웠는지 zz) 저는 또래들 중에서 비교적 식물을 잘 구분할 줄 알았지만 식물에 대한 관심보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너무 컸어서... 식물세미나를 보자마자 호기심이 일고 하고 싶더라구요. 매일매일 필사하며 읽고 있는 <향모를 땋으며>도 너무너무 좋아서... 매일 즐겁습니다.

     

    <지구 끝의 온실>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기린쌤 후기에 쓰신 대로 저는 식물을 소설 속에서 어떻게 파악해야할지 관심을 두며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대상이 식물이었다가, 모스바나였다가, 온실이었다가, 레이첼이었다가 ..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쨌든, 작가는 지금 식물이란 존재를 너무 편파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들춰내고 싶은 건데, 여전히 그 식물이 무어라 하기엔 어려웠어요.

     

    세미나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가 [인간중심적]이라는 주제로 오고 갔습니다. 아직 책의 이야기는 너무 인간중심 아니냐는 거였죠. 그런데 저는 인간중심적이 아니라면 어떤 이야기가 오갔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설을 읽으면서 식물에 대해 생각할때 어쨌든 저는 계속 인간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됐거든요. 자아가 있느냐, 의지가 있느냐, 등등... 개별적인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만, 그렇지 않은 (레이첼이 말한) 식물의 집단적 고유성을 파악하는 일은 인간으로선 당연히 어려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기엔 너무나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하고 어렵다고 느꼈죠. 뭘 알아야 하는지 감도 안잡혔어요.

    (이번 세미나와는 관계가 없지만 <향모를 땋으며>에서 나오는 균류같은 것이 식물의 언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유정성의 언어 체계를 익히면 되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재미있게도 인간들이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는데요, 반려동물로 키우는 동물들에게 종에 대한 이름이 아니라 애칭을 붙혀주는 일과 식물의 이름을 붙혀주는 일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는 얘기였어요. 결국 이름을 알고 싶어하는 일은 어떤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일과 다르지 않고... 많은 분들이 식물세미나를 신청한 이유였던 [식물이 궁금해서, 어떤 이름인지 알고 싶어서]라는게 어쨌든 식물을 알고싶어하는 신호이지 않나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문탁쌤은 식물 이름을 분별하는데 지독히도(?) 어려워 하시지만 매일 물주고 분갈이 해주는 식물의 이름은 알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기억에 남네요. 결국 가까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중요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소설 속에서 묘사한 식물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식물은 기계와 같거든] 소설 속에서 식물과 기계는 대척점에 있는 존재이면서도 가장 가까운 존재입니다. 레이첼이 만들어낸 모스바나가 그렇고, 기계로 비유되는 식물이 그렇습니다. 저는 식물이 기계와 같다는 표현이 재미있었어요. 식물은 기계만큼이나 정밀하고, 정밀함을 넘어서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레이첼이 모스바나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모스바나는 더스트 폴 사태를 이겨낼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거죠. 그 식물의 유연함이 모스바나를 살아남게 했던 겁니다.

     

    소설에 대한 호불호나 평가와는 상관 없이 식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보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서 설렘 반 떨림 반 ...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마지막으로 제 메모를 첨부합니당

     

     

    KakaoTalk_20220111_095920182.png

  • 2022-01-16 23:38

    길 가다보면 담쟁이 덩굴이 담벼락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있거나 육교 밑에 울창하게 붙어 자라는 모습을 볼 때가 있잖아요. 최근에는 모스바나 생각이 나더라고요.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만져봤더니 생각보다 엄청 단단히 붙어있고 어디서부터 자라난 건지도 알 수 없어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향모를 땋으며>에 나오는 '유정성의 언어'와 '의인화'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요. (줌 배경이 다채로워 재밌습니다ㅎㅎ 식물, 우주, 호랑이...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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