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곤란한 감정>에 대한 다소 곤란한 세미나

문탁
2021-11-02 06:23
283

1. 양생프로젝트 남은 일정을 약간 조정했다. 강-강-약보다는 강-약-강이 나을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다소 곤란한 감정>이라는 텍스트를 <숲은 생각한다>보다 먼저 읽었다. 그러나!!!! '약弱'으로 생각하던 이 텍스트는 우리에게 다소 곤란한 감정을 주었고, 세미나도 다소 곤란하게 흘러갔다.

 

2. 이유는 아마 처음에는 낯섬 때문이었으리라. (나도 그랬다) 이 책은 뭐지? 뭘 쓰려고 하는 거지? 감정에 대해 왜 이렇게 쓰지? 이 문체는 도대체 뭐야?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상해서 이 책은 잘 읽히지 않았다. 그리고 또, 감정이 워낙 내감의 영역이다 보니까 작가의 접근 혹은 규정에 대해 사람에 따라 공감정도가 달랐다. 어쨌든 이 책은 “쉬운데 잘 안 읽히는 책”이었다.

 

 

 

3. 그런데 이 책에 대한 우리의 독서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맥락을 충실히 따라가려고 애쓰는 그룹과,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동의가 되지 않는 그룹이었다. 각각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둥글레

“처음엔 이 책이 너무 안읽혔다. 이렇게까지 시시콜콜하게 감정에 대해 말을 해야 할까? 감정불평등이라고? 우울에 대해선 너무 과한 정의인데… 등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장수를 넘기며 그가 인용한 책들을 보며 그의 성실한 독서를 생각하다 문득 작가의 태도가 느껴졌다. 딱! 이거라고 단정하지 못하고 한 번 또 한 번 더 곱씹어보는 그의 태도. 이게 그가 말한 ‘우울’이구나! ‘당신과 결부되고 싶’은 그는 감정을 되돌아 보고 재해석한다. 그의 시시콜콜함의 미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코투

“이 책은 다소 생소했다. 감정사회학이라니?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생득적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감정을 문학이나 예술이 아닌 사회학에서 다룬다고? 그러고보니 감정이란 그냥 가만히 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관계에서, 그리고 특정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학적 대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민

“책을 읽다 말고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나 평을 찾아봤다. 대체로 책을 읽은 뒤에 만족도가 높았다....나는 안읽혀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가가 좋았다. 이 책이 좋았다는 평들을 읽으면서 내게 이 책이 구렸던 이유를 알게 됐다. 나는 이 저자가 쓴 글 속에서 내가 별로 해당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다. 이 감정들을 내가 안 느낀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별로 상관없는 사람이 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은데 자기 얘기를 한 권 분량으로 들려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읽으면서는 이 사람 이런 글 써서 대충 먹고 살 만하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중년 남자라서 이런다는 (그리고 여자들은 트위터에나 쓸 것 같은 말을 이 아저씨는 책을 내네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은

감정은 계속 나에게 사적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편하지 않았다. 책 표지처럼 뭔가 흐리멍텅했다. 작가가 말하는 우울함이 하나도 공감되지 않았고, 그저 그의 남성성만이 더욱 부각되었다. 하지만 뭔가 너무 편협한가 싶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도 저번 주에 세미나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마음이 풀려서 이번에 읽을 때는 조오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었다....그렇지만 여전히 아쉽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우울증에 관한 책과 자꾸 비교가 된다.

 

 

4. 그렇다고 우리 세미나에서 중년층이 이 책에 보다 협조적이었고 청년층이 이 책에 보다 비협조적이었냐하면 꼭 그렇진 않았다. 그믐은 청년층 못지 않게 계속 ??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그의 문제의식은  “뭐 이렇게까지”였다. 그런데 그의 특유의 무심함이 청년들과 긴장상태를 만들기도 했다. 청년들은 웃으면서, 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다. “아니, 그러시면 아니되어요” ㅎ

 

5. 후기랍시고 쓰면서 변죽만 울리고 있다. 막상 세미나에서 오간 이야기의 구체성이 없다. 그런데 솔직히 메모까지 했는데도 오간 이야기를 뭘, 어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걍 내 소감만 다시 이야기한다. 난 이 책을 첫 주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주 읽었을 때 느낌이 달랐다.

첫 주에는, 통념적으로 감정을 매우 사적이고 고유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조차 일정한 사회적 맥락과 배치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이것은 늘 내가 강조하는 것이기도 했다!)을 말하고 싶은 것이구나. 근대 ‘이성’의 시대에서 무시되고 천시되던 감정이, 그래서 사회학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 이제 일상의 연장선상에서 ‘감정의 사회학’으로 연구되는구나. 재밌는 시도고 필요한 일이다!! 정도의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두 번째 책의 후반부를 읽을 때는 과잉의 느낌이 강했다. 심지어 모든 것을 감정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고 해석하고 싶은 ‘감정 환원주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성〉감성의 시대가 가고 이제 이성〈감성의 시대가 되었구나! 그런데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자기(自己)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은 것 아닐까? 라는 의문! 신자유주의의 문제, sns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문제, 청년빈곤의 문제, 페미니즘 리부팅, 신체성의 강조.... 아주 많은 맥락에서 우리는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을 터인데... 저자의 방법론이 단조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인상평이다. 어짜피 지금은 정동의 시대이다. 양생의 관점에서 감정을 다루는 일은 인문약방의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내년 양생프로젝트의 주제를 정했다. 바로바로 “감정”!!! (나는 개인적으로 올 후반기의 ‘마음’ 공부를 확장시키는 차원에서 내년에는 감정, 후년에는 인지과학을 공부하면 좋겠다고, 저으기^^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조은의 메모에서 한줄을 인용한다.

 

 

 "나는 감정을 무시하는 게 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상담을 하면서 감정을 대하는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보다는 내가 내 감정을 대하는 것에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감정을 ‘잘’ 대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열심히 나를 이야기하는 중이다."

 

 

조은이 친구들과 읽고 있다는 책, 나도 읽으려고 구입했는데 초희에게 먼저 빌려줬다

조은이 친구들과 읽고 있는 책. 나도 읽을 예정. 우선 초희에게 먼저 빌려줬다

 

 

6. 부족한 부분은 세미나회원들이 채워주세요.

댓글 2
  • 2021-11-02 07:57

    저는 이 책 재미있게 읽은 편이라 대부분이 이상하다고 해서 쫌 놀랐어요. 아, 이런 시시콜콜한 분석도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뭐 이렇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떠들어대나...라는 반응이 새삼 흥미로웠습니다. 

  • 2021-11-04 00:06

    한 꼭지 한 꼭지를 소재로 옴니버스 식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어 본다면, ㅋㅋ

    아... 이미 있나요 ?

    감정을 들여다볼 줄 알고, 차분히 생각을 해볼 수 있다면 좋겠는데,

    복잡한 거 싫고, 머리 아플까봐 미리 겁내고 도망가는 습이 베어있어  '감정'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거리를 두고 

    싶은, 그래서 이미 벽을 치고 책을 들지는 않았나하는 급 자기 반성이 됩니다.... 쩝

     

    아... 그래도 어려울 거 같아요... 도망가야지 🐌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76
[11주차공지]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1 - 불구crip의 정치를 향해! (6)
관리자 | 2023.10.16 | 조회 225
관리자 2023.10.16 225
375
[10주차공지] 애나 칭 - 세계끝 버섯(#3)- 닥치고, 야생귀리 채집!! (리스펙, 르 귄^^) (7)
문탁 | 2023.10.13 | 조회 256
문탁 2023.10.13 256
374
<9주차 후기> 애나 칭, 세계 끝의 버섯 #2 - 세계 끝의 돼지 (5)
경덕 | 2023.10.11 | 조회 229
경덕 2023.10.11 229
373
[9주차공지] 애나 칭 - 세계끝 버섯(#2)-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쓸 수 있을까요? (6)
문탁 | 2023.10.04 | 조회 277
문탁 2023.10.04 277
372
<8주차 후기> 애나 칭, 세계 끝의 버섯 #1 (4)
서해 | 2023.09.25 | 조회 241
서해 2023.09.25 241
371
[8주차공지] 애나 칭 - 세계끝 버섯(#1)- 패치자본주의 혹은 패치인류세 (6)
문탁 | 2023.09.20 | 조회 347
문탁 2023.09.20 347
370
<7주차 후기> <트러블과 함께하기> 뒷부분 (7)
겸목 | 2023.09.18 | 조회 239
겸목 2023.09.18 239
369
[7주차공지]-해러웨이 - 트러블과 함께하기(#2)-우리는 포스트휴먼이 아니라 퇴비다! (7)
문탁 | 2023.09.14 | 조회 287
문탁 2023.09.14 287
368
<6주차 후기> 트러블과 함께하기 _ 1,2장 (3)
모로 | 2023.09.12 | 조회 230
모로 2023.09.12 230
367
[6주차 공지]-해러웨이 - 트러블과 함께하기(#1)-가이아여신 대신 테라포밍을 (10)
문탁 | 2023.09.07 | 조회 271
문탁 2023.09.07 271
366
<5주차 후기> 종과 종이 만날 때 8장~12장 (8)
스프링 | 2023.09.04 | 조회 264
스프링 2023.09.04 264
365
[5주차 공지]- 해러웨이 <종과 종이 만날 때> (#3) -끝까지 입니다 (5)
문탁 | 2023.08.31 | 조회 281
문탁 2023.08.31 28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