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차명식의 의료인류학 2 : 민족의학이라는 고대의 유산

명식
2020-05-0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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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길드다> 청년들이 <길위기금>으로부터 고료를 받으며 글을 연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 명식의 <의료인류학>은 의료인류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그를 통해 작금 코로나와 마주한 한국사회를 바라보려 합니다.

 

 

 

의료인류학 2 : 민족의학이라는 고대의 유산 

 

 

  0. 민족의학, 과학과 미신의 위태로운 경계에서

 

  오늘날 서구의학이 보편적인 의학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본디 각 문화에 존재했던 의료체계들, 민족의학이라고 불리는 비서구세계의 의학들은 위기에 처해있다. 가령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이자 저명한 전통의학 연구가인 베르디무함메도프는 코로나에 맞서 약초를 쓰는 민간요법을 주장했다가 전세계의 조롱거리가 됐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정부가 코로나 대책으로 한의학 요법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하면 거센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이처럼 현대에 이르러 민족의학은 과학과 미신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로 밀려났으며 중대한 의료적 위기의 순간에는 그 불안정한 위치마저 박탈당할 위험에 처한다.
 

  그럼에도 의료인류학자들은 여전히 민족의학의 - 정확히는 비서구적 의료체계들이 갖는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들은 우선 이론적 측면에서 의료에 대한 이념과 실천이 한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또한 실천적 측면에서 토착 의료에 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만 해당 문화의 구성원들은 위한 보건계획의 설립과 보건 서비스의 제공이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료인류학자들은 비서구적 의료체계의 다양한 케이스들이 서구 의료체계의 거울상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과학과 보편의학이라는 지위 아래 감춰진 서구의료체계의 분명한 한계들이 비서구적 의료체계와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고 보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근거들에 입각해 의료인류학자들은 여러 비서구적 의료체계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그것들을 크게 두 가지 계열로 구분한다. 바로 퍼스널리스틱personalistic한 의료체계와 내츄럴리스틱naturalistic한 의료체계의 구분이다. 이번 편에서는 그 중 내츄럴리스틱한 의료체계를 중점적으로 말해볼 것이다.

 

 

 

  1. 내츄럴리스틱 의료체계 : 고대문명의 유산들

 

  비서구적 의료체계의 두 가지 구분은 병인론, 즉 병의 원인에 대한 관점에 근거한다. 예를 들어 퍼스널리스틱 의료체계는 병의 원인을 ‘인격적인’ 것에서 찾는다. 말 그대로 인격체로 묘사되는 특정한 존재들 - 신과 정령 같은 초자연적 존재, 선조나 유령이나 악령 같은 존재, 주술사나 샤먼 같은 자들이 거는 저주 - 에서 병의 원인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내츄럴리스틱 의료체계는 병의 원인은 비인격적인 것, 세계의 법칙과 체계에서 찾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 세계의 법칙이란 곧 ‘평형모델’을, 다시 말해 유지되어야 할 ‘세계의 균형’을 가리킨다. 즉 내츄럴리스틱 의료체계에서 병이란 세계의 균형이 깨어졌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하나의 거대하고 완결된 세계관을 요구한다. 균형 잡힌 세계란 무엇이며, 그 균형을 흐트러뜨리는 것들은 또 무엇이고,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세계를 구성해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남아있는 내츄럴리스틱 체계는 아주 깊고 방대한 뿌리를 갖는다. 고대 그리스, 고대 인도, 고대 중국이라는 인류의 찬란한 문명들이 저마다의 내츄럴리스틱 의료체계를 만들어냈으며, 현대의 내츄럴리스틱 체계는 이 문명들이 만들어낸 것의 단순화되고 대중화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그 중 하나인 체액병리학을 살펴보자. 체액병리학은 고대 그리스의 내츄럴리스틱 의료체계로, 그리스의 4원소론(흙, 물, 공기, 불)에서 유래하였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이 4원소론과 유사한 4성질론(열, 냉, 건, 습)을 만들어내어 보강하였으며, 4원소론과 4성질론이 통합되면서 히포크라테스의 4개의 체액 개념 - 혈액, 점액, 흑담즙, 황담즙 - 이 생겨난다. 혈액은 열과 습의 성질을, 점액은 냉과 습의 성질을, 흑담즙(멜랑콜리)는 냉과 건의 성질을, 황담즙(간샤크)는 열과 건의 성질을 갖는다.

 

  “인체는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을 포함한다. 이들은 체질을 구성하며 통증과 건강의 원인이 된다. 이 구성물질들이 힘과 질이라는 측면에서 정확한 비율로 충분히 혼합되어 있는 상가 건강한 상태이다. 통증은 이들 중 하나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많거나 다른 것과 섞이지 못할 때 발생한다.”
  “냉의 성질은 지닌 점액은 겨울에 증가한다. 비가오고 따뜻한 봄에는 혈액이 증가한다. 덥고 건조한 여름에는 황담즙이, 차갑고 건조한 가을에는 흑담즙이 늘어난다 (...) 의사가 명심할 것은 모든 질병은 그 성질을 가장 강하게 갖는 계절에 크게 유행한다는 것이다 (...) 의사는 질병을 치료할 때 그 형태, 계절적인 요인, 연령적인 요인을 헤아리면서 대립의 원리에 따라 긴장에는 이완을, 이완에는 긴장을 주며 치료해야만 한다.”

 - 히포크라테스의 저술들 중 발췌

 

  체액병리학은 이 네 가지 체액의 성질에 근거해 다혈질적 인간, 점액질적 인간, 담즙질적 인간, 우울질적 인간을 구분했다. 이 개인차와 계절과 연령을 염두에 두고 환자의 체액을 균형 잡힌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바로 의사의 역량이고, 식사의 종류와 내복약과 그 외 다양한 치료가 그 수단이 된다.

 

 

▲ 체액병리학에 따른 4가지 체질을 구분, 기록한 목판화

 

  히포크라테스의 저술들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에 보관되어 끊임없이 복사되고 또 복사되었으며, 또 한 명의 위대한 의사였던 갈레노스에 의해 이 도서관에서 집대성되었다. 이후 갈레노스의 지식은 로마제국의 동방 침공과 함께 동방으로 퍼져나가 이슬람 세계에 이르렀고, 아비센나를 비롯한 위대한 이슬람 의사들을 길러냈다. 이들 이슬람교도들은 또 아프리카 북부와 스페인, 이탈리아로 진군하며 체액의학을 가져가면서 다시 중세 유럽으로 발전된 체액의학을 재도입했고, 이 유럽인들이 대항해시대와 함께 중남미를 침공하면서 마침내 남미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체액의학은 남미 인디언들의 전통의학과 혼합되면서 남미의 민중들에게 퍼져나가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의학에 이른다. 이처럼 수백 년에 걸친 인류의 전쟁사 속에 체액병리학은 세계를 일주하였으며, 굳건한 자신들의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인도와 중국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세계에서 주요한 전통의학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인도에는 아유르베다 의학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 잡았다. 고전적인 형태의 아유르베다 의학은 1세기의 인도 문헌 ‘챠라카 삼히타’에 등장하는 것을 최초로 보지만, 그 이론 자체는 그보다 수세기 전의 것으로 추측된다. 아유르베다 이론에서는 그리스의 4원소론과 같은 흙, 물, 공기, 불과 함께 또 하나 에테르ether라는 요소가 등장한다. 우주는 이 다섯 개의 요소로 형성되며, 각 요소는 다시 5개의 미묘한 형태와 5개의 물질적 형태를 갖는다. 한편 인간의 신체는 3개의 체액, ‘도샤dosha'로 이루어지는데, 곧 점액과 담즙과 풍소wind or flatulence이다. 이 3개의 도샤가 평형을 이루었을 때 인간의 건강이 유지된다. 도샤도 연령과 계절과 관련되어, 점액은 청년기와 봄에 늘어나고, 담즙은 중년기와 우기에 늘어나며, 풍소는 노년과 겨울에 늘어난다.

 

 

▲ 아유르베다 의학의 기본 원리

 

 

  이 시점에서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아유르베다 의학 이론 또한 체액병리학의 이론과 유사한데가 있다. 실제로 이미 6세기 초에 페르시아와 인도가 서로의 의학지식을 국가 차원에서 교류한 기록들이 남아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인도 민족주의자들은 그 상호 교류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이 두 의학은 그 전파와 전승 과정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체액병리학의 발전사에는 뛰어난 몇몇 의사들과 그들이 남긴 대량의 문서기록이 있었다. 이 문서기록들이 일종의 대학, 교육기관, 연구센터의 설립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 기관들이 체액병리학 발전의 거점이 되었다. 그에 비해 인도의 아유르베다의 의학은 오직 뛰어난 기술을 갖춘 개개의 기술자들이 자신들의 제자를 한 명 한 명씩 훈련시키는 형태로 전승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랬던 아유르베다 의학이 오늘날에는 인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백 개가 넘는 대학과 매년 수천 명에 달하는 학생, 수십 만 명에 달하는 의료인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도 의학은 현대에조차도 아유르베다 의학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전통 중국의학이 남아있다. 이는 중국 우주론의 중심적인 개념인 음과 양의 힘, 이 두 힘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그에서 비롯하는 인간의 신체와 기능, 나아가 세상의 삼라만상을 근간으로 한다. 중국의학에서 음양의 균형은 곧 건강의 기본이 되며, 외적이거나 내적인 요인으로 음양의 조화가 흐트러질 때 병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한편으로 고대 중국의 의사들은 수, 화, 목, 금, 토의 5개 요소가 인간의 체내에 존재하며 모든 생리학적 과정과 특정 내장의 기능에 관련되었다고 믿었다. 이 다섯 가지의 조합은 또한 전 우주를 아우르는 것으로 계절, 방향, 색, 감정, 신체의 혈, 음식의 맛, 내장 등 수많은 현상들이 이 다섯 요소의 조합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로써 인간 신체의 원리는 곧 세계의 원리와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한다. 이에 대해 서구의 연구자들은 중국 의학의 극한에 이른 ‘철학적 우아함’은 실로 놀라운 것이나, 동시에 경험적 관찰과 실험에 의한 의학의 진보를 방해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상 세 가지 의료체계가 내츄럴리스틱 의료체계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파고들어보면 이들 세 의료체계가 자리 잡은 문화에서도 퍼스널리스틱 의료체계의 특성들이 일부 나타남을 부정할 순 없다. 초자연적 존재나 주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한 의료행위들은 이들 문화권에서도 여전히 관찰되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세 개의 의료체계가 갖는 특성을 포착하는 것이다. 세 개의 내츄럴리스틱 의료체계 - 체액 의학, 아유르베다 의학, 고대 중국의학은 모두 ‘균형’이라는 키워드로 병과 건강을 이해하며, 인간의 신체와 세계의 질서를 동일선상에서 이해하려 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세계적 혼란 - 질병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2. 뉴 노멀에 대한 질문들

 

  2020년 4월 현재, 인류는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300만 명의 감염자와 20만명의 사망자 앞에 문명의 질서는 흐트러졌고 주요한 개체들의 기능은 마비되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는 이 병에 맞서 ‘건강’을 되찾기 위한 투쟁에 임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인류가 되찾고자 하는 ‘건강’이란 무엇인가? 과연 어떤 조건들이 갖춰졌을 때 인류는 건강과 회복을 - 코로나19에 대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가?

 

  인류사의 과학적/문화적인 병의 정의에 입각할 때 그 조건은 언뜻 명백해 보인다. 하나는 이미 소아마비와 천연두를 극복하였듯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완벽하게 격멸하는 것이다. 아니면, 바이러스를 완전히 격멸하진 못하더라도 이미 독감이 그러하듯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 그것을 정상 상태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 중 하나의 방법을 택한 끝에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일상의 회복이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은 다시 일터로 가고, 공장들은 가동을 시작하며, 사람들과 물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품들이 쏟아지고 사용되고 또 버려진다. 이것이 회복되어야 하는 일상이다. 그리고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전까지 우리에게 이러한 ‘일상’이 곧 ‘정상 상태’를 의미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초래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것이 과연 ‘정상 상태’인가를 의심토록 만든다.

 

  코로나의 역설, 코로나의 아이러니. 이러한 키워드들로 검색했을 때 우리는 이미 수많은 ‘이상’들이 관측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곤돌라가 운행되지 않는 베네치아 수로에서 물고기 떼와 돌고래, 해파리가 포착되었으며…….”
  “코로나로 인적이 끊긴 인도 해변에는 80만 마리의 거북이들이 올라와 산란을…….”
  “코로나로 경제 활동이 끊기며 전 세계의 대기질이 대폭 개선되었고, 이로써 5세 미만 어린아이 4000명과 70세 이상 노인 7만 30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
  “주요 범죄도시와 내전국가들이 분쟁을 중단하고 해당 세력들이 방역을 위해 협력에 나서거나 휴전을 선언함으로써 범죄율과 전사자, 난민이 급감…….”
  “결과적으로 대기질 개선이란 요인으로만 따져도 현 시점에서 코로나로 인해 희생된 생명의 20배에 달하는 생명들이 살아나게 될 것으로 예측…….”

- 스탠퍼드대 지구시스템과학과 연구 중 발췌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27711)

 

 

 

 

  코로나 19는 일찍이 인류가 접한 바 없는 기묘한 바이러스이다. 압도적인 전염력에 비해 그 증상이 분명치 않으며, 사람에 따라 치명적이기도 하고 아무런 증상도 없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인류에게 있어 코로나 19의 체감은 시커멓게 변한 피부나 끔찍한 발진, 생명을 위협하는 고열이나 죽음에 이르는 설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주로 마비된 일상을 통해 다가온다. 문을 닫은 상점들, 금지된 모임들, 사람과 물자의 제한된 이동이 코로나 19라는 질병을 피부로 느끼도록 한다. 때문에, 코로나 19와 함께 신체의 질병과 세계의 이상은 하나의 겨냥선 위에 놓인다. 우리에게 무엇이 우리의, 세계의 건강인가를 고뇌토록 한다. 그렇다 - 일찍이 그리스, 인도, 중국의 의학이 그러하였듯이.
 

  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회복’하려 하는 것인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건강인가?

 

  자본주의 세계의 정상적인 상태는 끊임없이 나아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병폐로 규정하여 제거하면서, 지금껏 세계는 ‘완벽한 상태’를 - 건강을 추구하고 유지해왔다. 불황은 극복의 대상이었고 성장률은 언제나 양수를 유지해야만 했다. 헌데 그러한 인식이 지금 코로나19가 초래한 사태로 인해 새삼스런 충격과 함께 멈춰 섰다. 한편에는 코로나에 맞서 인명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지고 있는 의료진들과 멈춰선 경제활동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소시민들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세계를 멈춘 질병으로 인해 치유되는 자연과 감소한 범죄, 중단된 전쟁들이 있다. 무엇을 회복하고, 무엇을 사라지게 할 것인가. 이 혼란스러운 양자택일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온 병과 건강의 문제를 온통 흐리게 만들어놓는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정상 상태, 새로운 건강함에 대한 대답을 요구받는다. 뉴 노멀 - 그것은, 아마도 어떤 이데아적 영속 상태가 될 수는 없으리라. ‘끊임없는 성장’, ‘무한한 발전’, ‘변치 않는 황금비’, 그러한 불변의 천국을 믿기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강력한 아이러니를 목도했다.

 

  이 순간 내츄럴리스틱 의료 체계들은, 그 대답에 대한 어떤 힌트를 제공한다. 그 체계들에서 말해지는 건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순환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헤아려 찾아내야 할 균형이다. 때로는 나아가야 하지만 때로는 물러서야 하며, 누군가에게는 충만한 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과도한 것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이르러야 할 것은 이전 상태로의 회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됨으로써 이를 수 있는 새로운 균형의 상태다. 바로 그러한 조화에 대한 사유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강제되고 있는 과제다.

 

 

 

  3. 우리는, 다시는

 

  우리에게 던져진 양자택일은 그 자체로 이미 깨어진 균형을 의미한다.
 

  언제부터 경제는 자연과 대치되는 단어가 되었는가.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개념이 되었는가. 굶게 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회복되어 가는 자연을 포기해야한다는 답에 이르렀는가.
  언제부터 범죄와 내전은 일상이 되었는가. 질병으로 인해 찾아온 평화가 이채로운 것이 되었고, 질병이 사라짐과 함께 다시 돌아올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는가.
  언제부터, 우리 신체의 건강은 공장과 상품과 돈을 돌리기 위하여 회복되어야 할 것이 되었는가. 그 거대한 체제의 유지가 곧 세상의 건강이며 우리의 건강으로 여겨지고 있었던가.

 

  사실 그 모든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병은 아니었던가.
  우리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이 모든 의심 위에서, 우리는 이제 다시 새로운 질서를 - 뉴 노멀을 이야기한다. 도래하지 않은 미지의 앞날에 대하여.

 

  사실, 한국은 그 새로운 균형을 - 뉴 노멀을 말하기에 가장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초유의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가 극도로 뛰어났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한국은 근대국가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행정력, 잘 갖춰진 보건 의료 체계,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과 행정의 결합에 더하여 민주대의정과 전제정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강제력까지 동원함으로써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코로나19를 완벽하게 제어한 몇 안 되는 국가가 되었다. 다시 말해, 한국은 기존의 체제 -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정상과 건강의 문제를 다루는 그 체제가 높은 수준으로 구축되어 있다면 구태여 우리가 뉴 노멀을 찾아내지 않더라도 이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 세계화의 시대에 초국가적인 영향들은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하며 한국 역시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 제아무리 한국이 국경 내의 상황을 훌륭히 통제했더라도 이미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세계 각국의 상황과 홀로 유리되어 안빈낙도할 수는 없다. 방역은 습관이 될 것인가? 재택근무는 새로운 일상이 될 것인가? 기본 소득은 상식이 될 것인가? 결국 한국 또한 새로운 대답의 모색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누구도 쉽사리 그 균형이 무엇인가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 모두는 이미 말하고 있는 그 사실은 우리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 “우리는,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 “폭풍은 지나가고 인류는, 우리 대부분은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 유발 하라리

 

댓글 2
  • 2020-05-01 10:16

    한의사협회가 대구에 한의사를 파견하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생각납니다.^^
    누가 의사이고, 병이란 무엇이고, 또 치료란 무엇인지..
    명식의 글을 읽으며 우리가 아무런 의심없이 병이라고, 치료라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이고 지역적인 어떤 사고방식과 행위양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 이전의 노멀과 이후의 뉴노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에 대한 이야기들에 앞서 정말이지 우리가 노멀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떻게 노멀로 자리잡게 된 것인지,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다 싶네요.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의료 인류학도 흥미진진하네요!! 양생팀에서 좀 더 깊이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ㅋㅋ

  • 2020-05-01 12:44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슬퍼해야 할까, 기뻐해야 할까,
    코로나 이전이 정상이고 노멀이고 좋았을까?
    코로나 이후는 더 위험하고 불확실하고 나빠질까?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경계 혹은 공포를 생각해본다.
    나쁨의 스펙트럼은 얼마나 넓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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