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젝트>거대한 전환 3회차 과제

블랙커피
2022-04-12 16:01
252

“… 사회적 재난이란 문화적 현상이지 인구 통계나 소득 수치 등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 그런데 사회 계급의 역사에서 그 정도로 파괴적인 산사태는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다양한 인종의 다른 민족들이 서로 부딪혀서 벌어지는 문화적 접촉의 영역으로 오면 이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 양쪽의 경우 모두 접촉이 벌어지는 순간 약한 쪽에게는 궤멸적인 타격이 가해지며, 그렇게 타격을 입은 쪽의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질이 현저하게 낮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그 원인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적인 착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자들이 원래 살고 있었던 문화적 환경이 붕괴되는데 있다. 물론 그러한 문화적 환경이 파괴당하는 경로가 경제적 과정일 수 있으며, 또 약한 쪽은 그 경제적 열등성으로 인해 거의 어김없이 항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희생자들이 인간적 파멸을 겪게 되는 직접적인 이유가 경제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러한 인간적 파멸을 겪게 되는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는 그 사회의 여러 제도들 속에 묻어 들어가 있는 법인데 바로 그 사회의 여러 제도들이 회생할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사회적 단위는 민족일 수도 있고 계급일 수도 있다. 또 그 파괴의 과정이 이른바 ‘문화적 갈등’이라는 것에서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고 단일한 사회 내에서 한 계급이 갖는 위치에 변화가 벌어지면서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하다. 그러한 사태가 온다면 그 제도들 속에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묻어 놓았던 이들은 자긍심과 도덕적‧정신적 좌표를 모두 잃어버린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421~422)”

이번 주에 읽은 부분에서는 사회적 재난을 경제적 현상에서만 보기보다, 그 저변에서 작동하고 있는 사회 전체의 상황으로 심도있게 보려는 폴라니의 시각이 많이 다가옵니다. 인간의 삶이 과연 무엇인지....

특히 "문화적 진공상태"라는 새로운 용어를 통해 문화적 저질화의 원인을 설명한 부분에서 오늘날의 세대문제, 빈민문제 등도 생각하게 되네요.  

댓글 11
  • 2022-04-12 16:56

    영국은 예산과 통화문제에서 계속 엄숙주의에 붙들려 있었고, 그래서 파시즘 국가들과의 전면전에 코앞까지 몰리게 된 나라들에조차도 제한적 지원만 제공한다는 전통적 전략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민주 국가들에서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황소고집을 피우면서 위태로운 국제 정세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한다는 모든 주장들을 완강하고 격렬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 책에서 보여지는 입에 착 붙는 어휘들(아가리. 떼거지. 부랑자. 황소고집......) 때문에 경제학 책이지만, 생동감 있게 읽힙니다.(폴라니도, 번역가도 훌륭하십니다) 

    암튼, 팬데믹 이후,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았고 나라마다 돈을 풀어 지원금을 주었습니다. 그와중에 우리나라는 일부 '황소고집' 행정가들이 곳간을 지켜야 한다며 굉장히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기도 했고요. 

    누군가에게는 지원금이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구원이 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엄청난 유동자금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정부 주도의 개입과 보호 제도는 항상 부작용, 혹은 반작용을 동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의 보호정책도 중요하고, 경제적 풍요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공동체 내에서 사회와 문화를 지켜가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특히 13장)

  • 2022-04-12 22:31

    이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끝나게 된 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경제적인 여러 힘들이 작동해서 나타난 결과의 덕분으로써, 참을성 없는 세력들이 그 시대에 어쩔 수 없었던 어려움들을 심히 과장하면서 마구 개입해 들어오는 짓에도 불구하고 이 경제적 힘들은 우리에게 이토록 큰 혜택을 가져다주는 과업을 묵묵히 수행해왔다는 것이다. 만약 산업혁명에 대해 이러한 수정된 역사가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면 보호주의 운동은 어떤 객관적 정당화도 가질 수 없게 되며, 자유방임은 오히려 모든 혐의와 비난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사회적 · 문화적 파국의 성격을 이렇게 평가하는 물질주의적 오류는 시대의 모든 해악들이란 우리가 경제적 자유주의에서 이탈해버린 탓이라는 전설을 강력하게 지지하는것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430쪽)

    노동 · 토지 · 화폐라는 허구 상품들에 대응하는 시장들은 분명히 구별되고 별개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사회에 가져오는 여러 위협은 언제나 서로 엄밀하게 구별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31쪽)

    ㄴ자본주의 사회는 이 허구 상품에 올인하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돈은 더 많은 돈을 불러일이키고,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살아남는다는 환상을 키워오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물질적인 오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많습니다. 경제 정책은 부작용을 일이키고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정책이 대응됩니다. 오류 없는 시스템은 가능하지 않지만, 폴 칼라니는 과연 자본주의 혁명을 지나 3차 혁명 그리고  4차 산업을 어떻게 볼지도 궁금합니다. 

  • 2022-04-12 22:32

    p428 어떤 경우에는 아예 착취의 정반대라고 할 만한 것이 문화적 충격과 사회의 붕괴를 촉발시킨 예도 있었다. 1887년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정부에 의해 강제로 토지 배당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우리의 금전적 계산에 따르자면 개개인들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라는 종족을 거의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역사에 기록될 만큼 두드러진 문화적 저질화와 타락을 낳고 말았다. 중략
    즉 이러한 참상을 구원하는 기적을 일으켰던 것은 경제 발전이 아니라 사회적 장치의 복구였던 것이다.
    폴라니는 초기 자본주의 빈민들이 처한 상황과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일들 사이의 유사성을 들어 사회적 재난이란 문화적 현상이지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지역적으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저질의 인간으로  떨어져버린 진정한 원인은 '문화적 진공상태'  에 놓이게 되었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앞에서 진작 나왔지만,  내게는 쉽게 수긍할 수 없었던 '인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 관계 속에 깊숙이 잠겨있다'는 폴라니의 말이  조금 구체적으로 와 닿은 사례였다.

  • 2022-04-12 23:24

    412쪽에 .. 사실상 자유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시장에 맞선 보호주의 운동의 원인을 여러 사회 분파 세력들의 움직임에서 도출하려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농업 관세의 발흥을 반동적 지주들의 정치적 책동으로 설명하는 점에서도 양자는 동일하다. 여러 형태의 독점 기업들이 커져 나간 것을 산업계의 거물들이 이윤에 눈이 멀어 벌인 짓으로 그 원인을 설명하는 점에서도 양자는 동일하다. 전쟁의 원인을 사방에서 날뛰는 대기업들에게로 돌리는 점에서도 양자는 동일하다.

     이러한 협애한 계급 이론 때문에 자유주의 경제학의 세계관이 강력한 지지를 얻고 말았다. 자유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사회 현상을 적대적으로 맞서는 계급들로 설명하는 점에서는 매일반이다. ~

    413쪽에.. ~ 시장 사회의 성격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서 보호주의가 맡은 기능이 무엇인가에 대해 포괄적으로 조망할 가능성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 핵심이 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상황이다. 

     

    저는 위 내용에서 이어지는 이후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도 대략.. 그렇게  '협애'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별 고민없이 이렇게 다운로드된 생각들에서 자유롭게,  칼 폴라니 처럼 쉽게 결론내지 않고.. 스스로 연구하고 사고하고 싶다는 바람에 한숨이 나기도, 힘이 나기도 합니다. 

    경제라는 말이 들어오면 .. 사회, 사람을 어떤 선입견에서 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을 느낀 부분은 

    419쪽에.. 어떤 계급이 전체 역사의 드라마에서 얻게 되는 배역은 그 계급이 사회 전체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 주어지는 것이며, 그 계급이 성공을 거두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계급이 스스로의 이익이 아닌 다른 계급들의 여러 이익을 얼마나 폭넓게 또 다양하게 끌어안을 수 있고 또 거기에 봉사할 수 있는가이다. 

    이네요. 

    이런 이야기를 종교에서도 할 수 있고 윤리 도덕에서도 할 수 있을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서 보니 더 감동적이네요. 

     

    저 그리고 13장 끝까지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 조금 과장하면 글을 읽는 희열같은게 느껴지네요.  12장 끝에 저도 끄적여 놓았어요. '글을 잘 쓴것인가 번역을 잘한 것인가.. ' ㅋㅋㅋ

     

  • 2022-04-12 23:35

  • 2022-04-12 23:38

    398p-

    기득권 자본 세력이 자유로운 영업활동이란 인간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아니 될 신성불가침이라는 터부를 만들어놓았다...... 사회조직의 세속 종교 교리로서.... 경제적 자유주의... 그 원리가 비록 어떤 부분에서 실패를 겪게 되었고 또 그 실패가 제아무리 극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그 원리 자체가 권위의 파산을 겪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원리가 부분적으로 빛을 잃어버리게 되면 오히려 그 원리에 대한 사람들의 신앙이 더욱 강화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왜냐하면..... 자유방임 원리의 신봉자들이 앞으로 나서서 당신들이 자유방임 원리에 원인과 비난을 돌리는 모든 어려움들은 사실 여러 원리들을 완전하게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사실상 오늘날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것이다. 

    => 지금은 경제적 자유주의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법칙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수많은 저항과 반대활동 속에서 견고해지고 있는, 인류 역사에서 보면 새파랗게 젊은 사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412p-
     
    통속적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의 발전을 설명하는데 조야한 계급이론의 설명이 되고 말았다. 무수한 시장들을 만들어내자는 사회적 압력과 그를 둘러싼 여러 세력들의 지형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도 이윤에 눈먼 한 떼거리 금융가들의 움직임으로 모두 설명하려 드는 것이다. 제국주의라는 엄청난 사건조차도 자국 정부를 꼬드겨 대자본의 이익을 위한 전쟁으로 끌어넣으려는 자본가들의 음모로 설명해버렸다. .... 이러한 협애한 계급이론 때문에 자유주의 경제학의 세계관이 강력한 지지를 얻고 말았다. ......이들은 19세기의 보호주의는 계급적 행동의 결과이며 그러한 행동들이 노렸던 으뜸가는 목표는 각 계급의 성원들이 경제적 이해를 충족시키는 것이 틀림없다고 단언하면서, 이로부터 각각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철통같은 논리를 짜내고 있다. 이렇게 둘은 시장사회의 성격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서 보호주의가 맡은 기능이 무엇인가에 대해 포괄적으로 조망할 가능성을 완벽하게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 시장에 맞선 (사회의) 보호주의의 원인을 계급적 이익과 경제적 착취로 설명하는 맑스주의자들의 협애하고 조야하기 짝이 없는 이론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다. 폴라니는 자유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사회현상을 적대적으로 맞서는 계급들로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매일반이라며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들 때문에 시장/시장사회에 대한 빅픽쳐를 그리지 못하게 했고, 그에 대해 근원적으로 고민할 가능성을 막아버렸다고 주장한다. 사회 전체의 상황, 공동체 문화, 사회  제도적 맥락 속에서 그 원인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폴라니의 관점은 그들보다 한층 '거대'해 보인다. 그런데 그는 왜 비주류인가요?   
     

  • 2022-04-12 23:47

    자유주의자들의 행태 자체가 자유무역의 유지에서 정부개입을 배제하기는커녕 그것을 실로 적극적으로 요구했으며,자유주의자들 자신들도 노동조합 관련법이나. 반독점법들의 경우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정규적으로 국가의 강압적 행동을 요구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이중적 운동에 대해 자유주의자들과 서로 충돌하는 두해석을 내놓고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책은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될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 탐욕스런 공장주들,반동적 지주 계급 등에 의해 교살당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우리들은 19세기 후반 시장경제의 확장에 맞서서 나타났던 '집단주의적' 반동이란 전면적 보편적인 것이었으며,이것이야 말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유토피아적 원리에 사회적 재난이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 둘 중 어느쪽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역사적 증거들이 결정적인 해답을 주고 있음을 우리는 보았다. (P410)

  • 2022-04-13 00:34

    경제적 자유주의와 자유방임에 맞서서 생겨났던 반대운동은 자생적 반응이 띠게 되어있는 모든 특징들을 어김없이 갖추고 있었다. 또 제기된 문제의 성격을 점점 깨달을수록 그 해법은 개인주의적 형태에서 ‘집단주의적’ 형태로, 자유주의적 형태에서 반자유주의적 형태로, ‘자유방임’에서 개입주의적 형태로 옮겨갔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세한 분석의 결과 심지어 경제적 자유주의의 근본주의적 신봉자들조차도 발전된 산업사회의 조건에서는 자유방임이라는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도 밝혀졌다(p408).

    이중적 운동(경제적 자유주의, 사회의 자기보호)에 대해 경제적 자유주의자들과 우리들은 서로 충돌하는 두 해석을 내놓고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책은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될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 탐욕스런 공장주들, 반동적 지주계급 등에 의해 교살당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우리들은 19세기 후반 시장경제의 확장에 맞서서 나타났던 ‘집단주의적’ 반동이란 전면적·보편적인 것이었으며, 이것이야말로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유토피아적 원리에 사회적 재난이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한다(p410).

     

    -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폴라니는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유토피아적 원리에 사회적 재난이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에 맞서는 집단주의적 반동이란 결국 사회실재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연대할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겠지.

  • 2022-04-13 03:19

    P414 사회 변화가 일어난 방식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 변화를 현실에 이루어낸 사회 집단(들)을 설명의 준거점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외부의 여러 힘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며, 사회에서 그 내부의 세력들이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그 변화가 벌어지는 메커니즘일 뿐이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계급적 이익이라는 변수만을 가지고서는 그 어떤 장기적인 사회 과정에 대해서도 만족스런 설명을 내놓을 수 없다.

    -계급적 이익이 본질적으로 경제적 성격을 갖는다면 인간 사회가 경제적 요인들로서 조건지어진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까?

  • 2022-04-13 08:21

    오언은 뉴래너크에 모인 노동인민들에게 당신들이 저질의 떼거지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를 분석해준다. …아마도 ‘문화적 진공상태’에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보다 더 정확한 말은 없을 것이다. …본래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가 심어주었던 동기부여나 삶과 행동의 목적 따위는 이제 더 이상 희생과 노력을 바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적 진공 속에서의 삶이란 결코 삶이 될 수 없다는 점에 기꺼이 동의하는 이들조차도, 경제적인 필요와 욕구만 생겨난다면 그것으로 문화적 공백도 저절로 메워지고 아무리 끔찍한 상태에서도 삶을 살아갈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인류학적 연구 조사의 결과와 날카롭게 모순된다.

    ”개인들로 하여금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노동의 목표란 문화적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식량의 부족과 같은 외부적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것의 성격이 문화적 차원에서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면 단순히 그 배고픔에 대한 인간육체의 반응으로서 노동의 목적이 생겨난다고 할 수는 없다.” 424쪽

     

  • 2022-04-13 09:13

    사회적 재난이란 문화적 현상이지 인구 통계나 소득 수치 등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사회 계급은 동일한 지리적 구역에 살고 있는 동일한 사회 안에서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으로 존재하지만, 문화적 접촉은 상이한 지리적 지역들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사회 사이에 보통 벌어진다는 점이다. 양쪽의 경우 모두 접촉이 벌어지는 순간 약한 쪽에게는 궤멸적이 타격이 가해지며, 그렇게 타격을 입은 쪽의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질이 현저하게 낮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그 원인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적인 착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자들이 원래 살고 있었던 문화적 환경이 붕괴되는 데 있다.(중랴)

     인간의 사회적 존재는 그 사회의 여러 제도들 속에 묻어 들어가 있는 법인데 바로 그 사회의 여러 제도들이 회생할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사회적 존재의 단위는 민족일 수도 있고 계급일 수도 있다, 또 그 파괴의 과정이 이른바 '문화적 갈등'이 라는 것에서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고 단일한 사외 내에서 한 계급이 갖는 위치에 변화가 벌어지면서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하다. 그러한 사태가 온다면 그 제도들 속에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묻어 놓았던 이들은 자긍심과 도덕적, 정신적 좌표를 잃어버린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p4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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