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에코프로젝트 첫번째시간 과제 올려요

달팽이
2022-03-15 12:06
290

처음엔 너무나 시적인 대화들이 낯설어 읽기가 어려웠는데

읽다보니 좀 익숙해지면서 그 과장된  표현이 재밌어지네요

제가 뽑은 구절은 104쪽 극작가 펠릭스 리폴데스가 읊은 시입니다.

"언젠가 그런 시간이 온다. 아직 멀었다고들 생각하지 마라.

그때는 하늘에서 황금빛 별들이 떨어지고,

그때는 잡동사니가 쓸려 버려진다.

사랑스러운, 오래된, 친숙한 잡동사니,

수천 세대의 표시이자 기적들이.

그들이 깨어서 본 것, 그들이 꿈에서 생각한 것,

어머니, 아이, 시간, 공간!

구석의 어떤 거미줄도 그냥 넘어가지 않네,

육체가 지닌 것, 정신이 소유한 것, 

가슴이 느낀 것,  위장이 소화한 것도

신랑 이름은 죽음, 신부 이름은 무."

옮긴이 해설에서 이 시를 ,

세상의 종말에 관 한 것으로,  산업화와 그로 인한 환경파괴에 대한 작가의 비판과 경고를 현대의 독자들에게 보다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쓰고 있네요

전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존재의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요 구절을 발췌해보았습니다.

 댓글로 과제 올려주시고요

과제는 요런 식으로 처음 올리는 분 아래에 댓글 다는 방식으로 올려주셔요~~

 

 

댓글 9
  • 2022-03-15 12:43

    <피스터의방앗간 >중에서  저는, 

    방앗간 물이 오염되어 물고기들이 죽고. 심한 악취로 더 이상 방앗간을 운영할 수 없게 된 양아버지 피스터가 냇물오염 원인을 밝혀달라 요청합니다.아담아셰는 누구보다 가슴아파하고분개하지만 한편 화학에 관심이 있던 그 자신도 산업화 속에 돈을 벌고자하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나 자신 어떤 솟아오르는 샘물을,수정처럼 맑은 시냇물을,장대한 강물,요컨대 목가적인 독일 제국의 어떤 물길을 최대한 빨리,최대한 파렴치하게. 오염시킬 확고한 의도가 있지만,그런 나 같은 사람도 저 사람 좋은 늙은 남자에게 그의 방앗간 물을 깨끗한 상태로 보존해주기 위해서라면 내 심장이라도 내주고 싶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 )그의 소원이라면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뭐든지 들어줄 거야.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 가지 면에서만 그의 뜻을 들어줄 수 있을거야.누가 그의 시냇물을 흐리게 하는지 알아낼 거야. 최후의 박테리아까지 학술적으로 알려 드릴 거야! 문서상으로도,그걸 들고 법원에 갈 수 있게 해줄 거야!그의 물을 들여다볼 거야.그 어떤 박사도 나보다 더 확실한 진단을 내려주지는 못할걸. 빈둥거리며 놀던,그의 옛 피후견인이자 총아인 아담 아셰보다는.''(p82)

  • 2022-03-15 21:02

    그것은 가엾은 나의 아버지가 제기한 처음이자 마지막 소송이었다. 아버지는 가혹하고 적대적인 이 세상에서 여러 해를 살았음에도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그는 방앗간 주인으로나 주막 주인으로서 언제나 선량하고 온순하게, 이 세상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그 자신이 거대한 전투에 임하기에 앞서서, 독일이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넘어가는 소용돌이 속에서 쓰라린 분노를 머금고 자신의 방앗간 도끼를 벽에서 떼어내기에 앞서서, 다정하고 선량한 자신의 모든 성향을 뒤바꿔야만 했다. 당시에 나는 변호사를 찾아간 부활절 전까지 학창시절 내 공부방에서 점점 더 상심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한 주 한 주가 지나갈수록 아버지의 걸음걸이는 점점 더 힘겨워보였고 마음도 점점 더 무거워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설탕생산이 끝나는 2월부터는 방앗간 물이 다시 맑아지고 아버지의 대지와 집안의 공기가 깨끗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10월에는 그 곤경이 다시 시작되고, 크리커로데가 아무벌도 받지 않으면서 해마다 반년을 그에게서 없애버리고 빼앗아갈 것이라는 확신은 그의 영혼과 정의감을 너무 많이 갉아먹었다. 그래서 그는 예전처럼 여름을 위해 흥겹게 주막을 청소할 수도, 사순절을 위해 기분을 돋우는 초록색 자작나무 기둥을 집 앞에 세워놓을 수도 없었다. -p130

     

    -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의 전환은 현재의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사회의 변화를 불러왔을 것이다. 그것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 문제들을 발견했을 때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책을 읽다보면 저자 스스로도 오락가락하는 지점을 엿보게 되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 당시의 모습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원전사고이후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앞에서도 살아야하는 것처럼 선거는 끝났고 우리 역시 다시 일상을 살아야 한다. 과거의 역사를 두고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어떻게 살지가 더 시급한 일이다.

  • 2022-03-15 21:35

    피스터의 방앗간 책에 쓰여 있는 ‘독일 최초의 생태 소설이자 환경문학의 문제작’이라는 소개를 보았을 때 지금 뉴스에서 보이는 엄청난 환경의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거나 환경을 지키기 위한 엄청난 투쟁이 묘사될 줄 알았다. 생각보다 소설은 차분하게 흘러갔고,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에 대해 수용하는 태도로 비쳤다.

    피스터 방앗간, 크리커로데, 그리고 베를린. 각각 공간으로 대표되는 의미가 있다. 피스터 방앗간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그림이다. 에미와 에버트는 중간중간 ‘그림들은 다 어디갔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방앗간을 존재하지 않은 그림으로 만든 원인인 크리커로데의 악취는 새 시대, 산업의 발전, 혁명, 진보, 성과로 대표된다.

    재판하는 과정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재판의 승리는 피스터 방앗간을 지키지 못하고 “마로니에가 도끼에 찍혀 쓰러진”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아버지 피스터가 “크리커로데 앞에서 방앗간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지.” 209쪽 라는 말에 승자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우리가 소음의 세상, 교육학적 실험의 세상, 넝마 세탁과 돈벌이의 세상에서 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도 가망 없어 보이는 푸른색 입술에 다시 예전의 선한 미소가 감돌았다.” 203 쪽 ‘산업화 시대를 지나 지금은 돈별이 세상인 ‘자본주의’에 사는 내가 피스터 방앗간의 아들이었다면 어떤 마음일까. 나 또한 이 자본주의에 휩쓸려 대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며 비난하거나, 개인은 어쩔 수 없다며 체념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 피스터는 왜 아들이 “피스터 방앗간의 아버지 피스터와 같이 되는 것과는 다른 목표” 가 있었을까? 산업화의 시대 변화의 기운이 예측되어서 방앗간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것일까? 결국 에버트는 철학 교사가 되었다. 또한 마지막 (스물두번째 종이)에 부제목으로 나온 ‘그리스어가 어디에 필요한지 대하여’에 대해서는 결국 에버트가 이런 상황에 대하여 ‘계속 쓰는’ 존재가 되기 위함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또 다른 의미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 2022-03-15 22:49

    앗, 제가 픽한 부분들을 이미 올려주셨네요. 선착순이 중요한 건가요? ㅎㅎㅎ

    생각에 잠기게 하는 질문. “그 그림들 다 어디 갔지?”(38) 

    “… 여기 이 벽들에 걸려 있지 않으면 그 그림들을 다시는 볼 수가 없어요. … 예술가의 아내에게는 거울이나 그런 걸 걸 수 있는 공간이 금세 하나도 안 남게 될 거예요. 나중에는 그림들을 겹쳐서 벽에 기대어 놓게 되고, 점점 더 공간이 협소해진다고 느끼게 되겠지.” … (39) “바뀌는 건 단지 윤곽과 색채뿐이에요. 액자와 캔버스는 그대로 있고 말이야. 그래, 나의 불쌍한 당신, 우리 자신도 잠시 왔다가는데, 만약 모든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삶의 공간이 너무 제한적일 거예요!” (40)

    전체 내용 곳곳에 나오는 이 질문이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지속적으로 나오긴 하는데, 정작 그 그림들을 찾는다거나 어떻게 하겠다거나 하는 모습은 없고 제대로 질문하고 있기는 한 건가 의문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러다 다시 앞쪽을 들춰보니 사람은 잠시 왔다가는 존재이고, 인생은 무상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 그림들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줄 알았는데, 그 그림들이 모두 그대로라면 삶의 공간이 좁아지고 제한적이 될 것이라는 말을 맺는 부분이 희망적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피스터의 방앗간과 그 주위에 비가 내린다. 그저께와 동일한 액자와 대지. 하지만 이것은 그저께와 같은 그림일까?"(40)    

  • 2022-03-15 23:34

    흠흠ㅡ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아니지만 큰 문제중 하나로군. 독일의 강과 송어가 노는 개천 대 독일의 배설물들과 다른 물질들. 독일 민족의 초록빛 라인장, 푸른 도나우강, 청록색의 네카우강, 노란 배저강 대 크리케로데 공장!  (141쪽)

     

    주인공과 달리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오염된 개천과 강을 보며 자라왔다. 청계천 주변으로 시커먼 오염 물질, 거품이 둥둥 떠 있던 한강, 하수도와 연결된 개천.....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한강 정화사업을 하고 하천 정비사업을 하더니, 지금의  탄천처럼 깔끔한(?)  그러나 인공적인 하천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옛 하천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그곳에서 생명이 자라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그러나 의심스러웠다. 저 물고기를 먹어도 되나?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요즘 걷고 있는 산책길 옆 하천의 모습이 생각났다. 고니 한마리, 오리 두마리, 자그만 물고기들, 그들을 노리는 고양이...

  • 2022-03-16 00:07

    드뎌 낼이 개강이군요!!! ㅎㅎㅎ

    제가 픽한 부분은 마지막 부분이네요.

    "… 그래서 지금 제일 위안이 되는 건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거야. 우리가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왜 크리커로데를 상대로 다시 일어설 수 없는지를. 주막과 여기 마로니에 아래에서 노인과 젊은이, 배운 이와 못 배운 이, 시민, 교수, 농민, 아내와 남편 사이의 모든 대화를 통해 …차츰 알게 되었단다. 우리가 왜 크리커로데 앞에서 더는 존재할 수 없는지를 말이야. 그리고 알베르티네 양, 죽은 내 친구 채색가 아셰의 아들이 결정적으로 그걸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지. 왜냐하면 저 애는 피스터 방앗간의 주막과 정원, 초원과 강, 태양을 내어주느니 차라리 자기 심장을 내어 줄것이라고, 내가 가장 굳게 믿었던 사람이거든! 그가 성장하는 모습과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내 자식으로 생각해왔다. 그리고 이상적인 것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면서 내 탁자 밑에 다리를 두거나 벤치 또는 풀밭에 몸을 쭉 뻗고 길게 드러누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내 오랜 친구 채색가 아셰가 남기고 간 환상가 아담 아셰처럼 말이다! 알레르티네, 돌아가신 네 가엾은 아버님도 그렇진 않으셨단다. 그런데 아셰가 새 세상과 새 유행의 편에 서서 여기왔기 때문에, 그리고 학문뿐 아니라 복식회계와 공장에도 자신의 정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크리커로데를 탐색한게 날 위한 것일 뿐만 자기 자신을 위해 다른 방식으로 너희의 베를린 방앗간 물에 맞서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에, 난 내 주장을 굽히고 말하려고 해. ‘그렇다면 사랑하는 하나님께서는 다가올 해와 시간을 위해 그게 최상이라고 여기시는 것이겠지.’ 알베르티네, 이 더벅머리의피조물이 산사나무 아래 들길에서 복된 잠에 빠져 고개를 꾸벅이던 모습과 후에 화학세제로 세탁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그리고 오늘 그가 자신의 본성과 행동, 재미와 진심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본 사람은 고백할 수밖에 없단다. 지정한 인간은 이제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깨끗한 공기와 푸른 나무, 꽃이 만발한 수풀, 샘과 개천, 강에서 넘실거리며 흘러나오는 맑은 물이 필요하지 않다고.… (209~210)"

  • 2022-03-16 00:37

    한 구절에 집약해서 메모를 써야하는지... 여러 구절들 써도되는지... 고민을 잠시 하다가.. 그냥 씁니다.ㅎ

    1. 모든 신선하고 청결한 것의 대명사로서 솨솨 소리 내며 흐르기도 하고 졸졸 흐르기도 하던 생기 있던 맑은 강이 이제 활기를 읽고 기어가는, 끈적끈적하며 푸르죽죽한 그 무엇이 되었던 것이다.....물이 닿는 강가의 덤불 줄기와 수면까지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에는 끈적끈적한 섬유질이 걸려 있었다. 무엇보다도 갈대의 모습이 보기 안 좋았다. 이런 면에서 많은 걸 참아낼 수 있는 오리들조차도 이 절기에는 언제나 아버지와 똑같은 감정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리들은 구역질을 하면서 아버지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방앗간 물을 우울하게 쳐다보면서 나지막이 수다를 떨고, 아버지처럼 한숨을 내뱉는 듯했다. (65)

    이제가 지금의 사는 집에 이사오기 전만 해도 주변에 집들이 듬성듬성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발을 위해 나무들은 거침없이 베어 없어지고 산은 순식같에 붉은 산이 되어 버립니다. 고라니들은 터전을 잃고 집 주변에 자주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차에 치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내 사람들의 욕심이란 무섭기도 하고 안타깝고 가슴한켠이 섭섭했습니다. 아직은 덜 정리된 듯한, 덜 개발된듯한 주변 호숫가를 산책하다보면 갈대와 오리들이 있습니다. 개발과 정리란 말로 이 존재들이 책의 필사된 것 같이 보기 안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 오염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인상적으로 마음이 쓰였습니다.

    2. "설탕이 너무 많아요. 설탕이 너무 많아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설탕이 너무너무 많아요!"(80)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달콤하게 유혹하는, 중독될 것 같은 설탕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3. 너도 알지, 생업은 너무 지독해. 게다가 우리가 누리는 이런 가정의 목가도 권태를 물리치기에는 부족하고. 밤마다 낡은 바지와 속치마, 연회복, 무대의상, 전 연대의 제복 세탁으로부터 최고의 아내와 차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게 존재의 전부는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그리스어 지식을 조금씩 되살려서 틈틈이 호메로스를 읽고 있어. 그렇다고 해서 지울수 없는 태양에서 온 케케묵은 인용구를 소독기계 위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건 아니고(213).

    현재의 나를 대변해 주는 말 같아서 이 구절이 와닿았네요.

  • 2022-03-16 01:19

    저는 아담 아셰에게 관심이 갔습니다.

    "그래요,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우리 전공 분야의 학자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는 어르신의 물레바퀴에 붙어 있는 것만 조사했어요. 그리고 정원을 따라가면서 파이프에서 물방울을 조금 채취했고요.당연히 시냇물을 따라 위로 거슬러올라가 오물의 근원까지 추적할 거예요. ...(중략)...그런데요--이 문제에 있어서 저는 이쪽 편에 있어요. 그리고 특히 어르신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행하게 될 이 업무가 제게는 아주 부차적인 것에 불과할지도 몰라요."(112)

    "...이제 부자가 되는 걸 더는 미룰 수가 없게 됐어. 나중에 식구들에게 잘 좀 말해줘. 오늘 저녁에 출발할 거야. 세상의 흐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내맡기지 않는 게 진정 기품 있는 사람이 지녀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거든."(132)

    요즘 세상의 아담 아셰는 누구일까? 그들은 이웃의 어려움에 기꺼이 힘을 보태줄까? 그것이 자신의 삶과 부딪치지는 않을까?

     

  • 2022-03-16 08:00

    책을 읽고 책의 첫 부분을 다시 읽게 되네요.

     "아, 19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인 지금 다시 한번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다면! 

     다시 한번 히포그리프에 안장을 얹고 올라탈 수 있다면! 

     아, 옛 사람들, 그들이 알았더라면, 백 년 전 사람들, 그들이 예감할 수 있었더라면!

     후손이 어디에 가서 '예전의 낭만적인 땅'을 찾게 될지를! "

    이제는 결코 바그다드에 가서 찾지 않는다. 바빌론 술탄의 황궁에서 찾지 않는다.

    바빌론에 안 가본 사람도 사진과 사진을 토대로 만든 목판조각, 영사관의 보고, <쾰른 신문>의 전보를 통해 그곳에 대해 제법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굳이 직접 가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동양으로 가지 않는다. 히포그리프와 함께 지구를 한 바퀴 돌았고, 이제 그 말을 쫓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 기적들은 우리 집 대문에서 열 걸음도 채 안 되는 곳에 놓여 있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떨어진 곳에. 그때는 이웃 마을에 기차가 서지 않았다. 경지 정리를 한답시고 목장과 밭에 둘러친 울타리를 철거하기 전이었고, 거위들이 놀던 목초지가 농부에게 분배 되어 별 소출도 못 내는 호밀밭으로 바뀌기 전이었다. 시냇물을 끼고 있는 목초지는 건재했고, 그 시냇물은...... (P9~11)

    "순 설탕이야!"
    아셰가 소리쳤다.
    "바보들은 저기에서 세상을 달콤하게 만들 수 없어.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지상의 고통을 곱씹으면서 새로운 문 앞에 서 있어."(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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