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읽기 <오만과 편견> 첫번째 메모 - 윤수민

윤수민
2020-11-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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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편하게 읽어내려갔던 작품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장대한 양과 책의 무게가 조금은 버겁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책장을 펼친 이후부터는 그러한 생각들이 가뿐하게 뛰어 머릿속에서 떠나갔다. 그래서 해야할 일이 산더미임에도 불구하고 첫 시간까지 읽어와야 할 분량보다 조금 더 읽다가 겨우 책을 덮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주된 서사를 이끌어가는 엘리자베스가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장면들이다. 심리학 서적을 읽는 듯한 묘사와 정확히 꿰뚫어보는 그의 시선이, 그리고 그 못지 않게 대단히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각각의 인물들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듯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다.

 

 시대적 배경에서 봤을 때, 이 책 속의 여성들, 특히나 상류층 가문과 돈과 명예를 중시하는 집안의 딸이자 아내이자 자매인 이들. 그리고 그런 만큼 격식을 차리고 과장된 억양과 경직된 분위기가 전체적인 흐름을 맡고 있는. 이러한 점들은 분명 지루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은 그들의 삶을 깊고 날카롭게 바라본다. 앞에서는 웃고 서로에 대한 찬사를 나누지만 속으로는 비웃고 배아파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재미를 느끼게 한다. 또한 단순하게 그 인물을 비난하거나 칭찬하지 않는다. 애정과 가치관을 비롯한 생각과 깊이를 중요시 여기는 엘리자베스와 재산과 명예라는 실리를 생각하며 호감을 느끼지 않는 상대임에도 청혼을 수락하는 샬럿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샬럿이 '속물'이고 엘리자베스는 '낭만주의자'라고 쉽게 그들을 일축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따졌을 때, 마냥 우리가 샬럿을 비난할 수 있는가. 엘리자베스의 뛰어난 직관력과 관찰력 또한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엘리자베스는 위컴의 말만을 듣고 다아시를 판단해버리는 경솔함이 있다. 나에게도 그러한 면이 있어 다시금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성급한 판단을 내린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도한 현실에 대해서도 함께.

 

 무엇보다 엘리자베스가 마음에 든다. 사실 인상깊은 구절이 너무 많다. 모든 묘사의 장면들이 생생하고 너무도 친숙하다. 그리고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그의 모습,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점들이 닮고 싶고 또 (감히 이야기하자면) 닮고 싶은 만큼 나와 닮은 점들도 몇가지 있는 것 같아 반갑다. 아직은 서론에 불과한 1부를 읽고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콜린스의 청혼에 세네번의 거절을 정확하게 하는 장면은 정말 시원하다. 엘리자베스와 제인을 제외한 다른 여성 인물들의 답답함들이 있으나 단순히 비난할 수 없음을 알기에 가만히 읽어나가고 있다.

 

 보통은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노래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 집중이 잘 된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나의 경우는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오로지 그것만을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노래도 가사와 음들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었다. 얼마 전 아는 사람으로부터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 1900년대의 시인이자 가수 Molly Drake의 앨범 전곡을 들으며 책을 읽는 것이다. 그것도 아침 또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면서 읽어야한다. 어떠한 책을 읽을 때는 결코 누워서는 읽을 수 없어 바른 자세로 앉아 읽어야 할 때 가 있고, 또 어떠한 경우에서는 특정한 장소와 시간, 예를 들면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밤의 공원 앞 벤치나 학교의 쉬는 시간 마다, 또는 모두가 잠든 밤과 새벽에 방을 밝히는 형광등 대신 작은 조명을 키고 읽어야하는 책이 있다. <오만과 편견>을 읽는 나의 방법은 이것인 것이다. 각각의 책들을 음미하는 방법이 다른 만큼 그 책만의 특별함이 생겨나는 것이 나에겐 작은 행복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각자 다른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것처럼 책도 이렇게 읽었을 때 그 깊이와 온도, 추억이 다르게 생겨나고 그만큼 애정이 더욱 더 묻어나는 것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조금씩 책을 읽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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