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마지막 후기

무담
2019-11-19 01:23
498

일주일을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지난 주 과학세미나 발제를 하고도 후기 쓸 짬을 내지 못했다. 어느 덧 내일(오늘?)이 양자역학 첫 시간, 지금 반장님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톡이 밤을 새서라도 후기 올릴 것을 재촉한다. 어찌 거역하랴, 후다닥 후기 작성 모드로...

 

그런데 기나긴 시간이 흐른 후에 뒤늦게 올리는 지각대장 후기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있다. 바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느니 어쨌느니 구박하는 것은 수많은 물리계가 있고 이들이 주고받는 수많은 상호작용이 널려있는 넓은 우주에서, 그 넓은 우주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그것도 조금은 특별한, 그러나 당연히 있을법한 특별함이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함을 지닌 우주의 한 모퉁이에서, 주위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다보면 엔트로피가 점차로 증가하는 성질을 가진, 즉 엔트로피 가계부에 날마다 흑자를 적어대고 있는 그런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함을 지닌 우주의 한 모퉁이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람에 엔트로피 증가 과정이 열적 시간의 경과로 나타나게 되고 그 열적 시간을 시간의 흐름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그런 상태에서 어디에 있는지, 무엇에 가까이 있는지, 누구에 가까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의 속도를 대충 일률적으로 맞추어 생각하여 자신의 시간 속도를 타인에게까지 덤터기 씌우는 우리의 생활 습성 내지 고정 관념까지 생겨난 그런 까닭에 베일에 쌓여있는 무담의 시간 흐름 속도를 무담의 시간 흐름 속도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시간 흐름 속도에 맞추어 구박하는 일일 뿐이다. 시간의 흐름은 저마다 다르니 다음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에 후기가 홈피에 올라와 있다면 적어도 사건 사이의 순서 관계가 뒤틀리지 않은 정도의 흐름은 맞추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우주의 본질적 특질이 아니며 일부 물질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엔트로피 증가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이정도 해명을 했으면 무담의 시간은 실은 거의 흐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따라서 후기가 늦었다는 둥 구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다들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미안한 점은 후기가 늦은 데 대한 구구한 변명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말이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과학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분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을 글을 읽고 또 읽으면 조금은 이해갈 것 같기도 하지만 노상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온 우리들의 감각으로 어찌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과학세미나 멤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험한 여행을 함께 한 것 같은 진한 동료애를 느끼게 된다.

 

이 책의 3부는 앞서의 두 번의 세미나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종합 정리하면서 약간 부연 설명하는 느낌이다.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 갑자기 과학자의 탈을 벗고 철학자의 모습을 내비치더니 마침내는 수필가로 변신하여 마무리 짓는 저자의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이공계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도도님은 저자의 막판 배신에 당황스러움을 넘어 분노의 감정까지 감추지 못했다. 이와 대조적로 반가움과 흐뭇함을 숨기지 못하시는 분도 있었으니 저자가 불경까지 인용해가며 펼치는 무아론에 환호하는 삼단님. 과거는 흘러가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 없으니 있는 것은 현재 뿐이라는 옛 신학자의 말씀. 곰곰 생각해보니 존재하는 것은 지금뿐이니라, 이런 말씀 같은데... 곰곰님, 지금님, 이 해석이 맞나요?

 

(집에서 후기를 쓰다보니 발제문 파일 최종본이 회사 컴퓨터에 있네요. 엔트로프가 알맞게 증가하여 이 몸이 회사에 있게 되면 그 때 첨부할게요. )

(자누리님, 본인이 쓴 글에는 본인이 댓글 못 다나요? 위의 글을 댓글로 달려 하니 권한 없다고 나오네요.)

댓글 4
  • 2019-11-20 22:35

    책내용을 늦은 후기의 변과 섞어서 재미난 후기를 올려주셨네요.
    무담샘만이 쓰실 수 있는 뭔가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듯한 포스가 느껴집니다 ㅎㅎ

  • 2019-11-20 23:53

    시간에 대한 아주 탁월한 정의를 내려주셨습니다. 과학책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제게는...

  • 2019-11-24 16:48

    ”무담의 시간 흐름 속도를 무담의 시간 흐름 속도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시간 흐름 속도에 맞추어 구박하는 일을” 한 일인으로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네요 ㅠ
    무담샘과 같은 상호작용속에서 같은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ㅋㅋ
    연극 연습에 바쁘실텐데 후기 감사합니다 ^^

  • 2019-11-25 17:33

    이 책 같이 읽고 배우고 싶었는데 결석해서 안타깝습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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