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철학학교] 3주차 <차이와반복>읽기 2 요약-메모 모음

정군
2022-03-1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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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8
  • 2022-03-15 21:06

    52쪽 첫번째 단락

    자연적 봉쇄의 세 경우 중 자연의 개념 부분.

    무한정한 (잠재적으로 무한한) 내포를 갖는 개념들을 자연의 개념들이라 간주하여 설명하는 단락입니다.

     

    앞단락에서 들뢰즈는 잠재적으로 무한한 내포를 갖는 개념을 가정해봅니다. 어떤 개념이 내포를 무한히 가지더라도, 그 개념이 개념의 차원에서 오직 하나의 사물만 가리키는 경우가 오지 않고, 언제나 둘 혹은 그 이상의 동일한 현실적 사물들, 즉 무한정한 복수의 대상을 포섭할 수 있는 경우를 마주하게 된다고 합니다. 자연의 개념이 이 개념에 일치하는 것으로, 아무리 많은 술어를 가지게 되어도 하나의 개념이 단 하나의 사물에 일치할 수 없음을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왜 자연의 개념들은 무한한 내포를 갖게 되는 것일까?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 하는 것입니다. 내포를 지니는 한에서 자연의 개념들은 항상 다른 사물 안 (인간의 정신)에 있게 됩니다. 즉, 고양이가 ‘나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게으르고, 집사를 소유하고 있으니 나를 스스로 고양이라 하겠다‘라고 말하지 않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게으르고, 집사를 소유한 너를 고양이라 부르겠다 (집사가 머리 쥐어뜯으며 이것을 쓰고 있건만 너희는 잠이 오냐!)‘고 한 것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자연은 ’외면화된 개념‘이라거나 ’자기 자신과 대립하는 소외된 정신’이라고 말해집니다.

     

    그러면 왜 자연은 반복하는 것일까요? 들뢰즈에 따르면 새로움은 정신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정신이 기억을 가지거나, 습관을 취하기 때문에 어떤 개념들 일반을 형성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훔쳐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들뢰즈는 자연이 ‘부분 밖의 부분, 일시적 정신’이기 때문에 반복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부분 밖의 부분, 일시적 정신‘은 공간이나 연장을 지칭하는 철학 용어(주25.)로, 즉 정신성 없는 물질적 사물들을 일컬는다고 하더군요. 즉, 정신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은 반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억을 결여한 자연의 개념들이 무한정한 내포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저는 이 단락을 이해했습니다.

     

     

     

  • 2022-03-16 00:00

    P50~51) 유념해야 할 것 한가지. 개념은 재현에서 가능해진다. 재현은 알다시피 들뢰즈에게는 부정어이다. 따라서 개념은 시종일관 씹힌다. 그렇다면 긍정어는? 들뢰즈가 사용하는 선택한 긍정어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비튼 단어인 이념(경우에 따라 이데로 옮기기도 한다)이다. 참고로 밑줄 그은 부분은 책에 나온 말들이다. 

    아무튼 50~51쪽에서 서술되는 개념의 모자람은 이렇다. 잠재적으로 무한한 내포를 갖는 개념을 예로 들어보자. 잠재적으로 무한하다는 것은 그 개념을 풀어내는 술어가 무한하다는 의미다. 이 부분은 개념의 자연적 봉쇄이니 자연중의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사과다. 사과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술어는 무한할 수 있다. 내포가 무한함(사과라는 주어에 무한한 술어들을 붙일 수 있다. 그걸 특징/특성/속성이나 혹은 다른 그 무어라 부르건…) 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0개의 바나나 사이에 끼어 있는 2개의 사과를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천 개의 사과들도 사과라 부를 수 있다. 이 경우를 들뢰즈는 개념이 자신의 내포를 무한정 확장해나가면서도 자체가 언제나 무한정한 복수의 대상을 포섭할 있는 경우와 마주한 셈이라고 한다. 이는 개념이 대상을 권리상 여타의 모든 다른 대상과 구별하 는데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과라는 개념은 여전히 구별 가능한 사과들에 대해서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전통적으로 개념이라 함은 대상과의 일치이다. 그런데 자연에서 개념과 일치하는 대상은 항상 여러개가 되어 버린다. 칸트는 이것을 알아봤다. 개념 안에서 아무리 멀리 나아간다 해도 당신은 반복할 있다. 다시 말해서 개념에 복수의 대상이, 적어도 대상이 대응하도록 만들 있다. (개념과 대상은 일치할 수 없다). 우리는 사과들 사이에 비개념적 차이들이 현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무한정한 종별화를 가능하게 하는 개념들 한편에 순수하게 시-공간적이거나 대립적인 어떤 비개념적 규정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 규정들은 단지 반복의 형태들일 뿐이다. 반복이 진짜였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개념적 차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반복은 개념 없는 차이이다.  그러니까 반복이 진짜고 개념은 부족하고 불충분한 개념이다.

     

    치밀하지도 정합적이지도 친절하지도 않은...아직까지는 그럴듯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제 서론이니 치밀하기를 정합적이기를 바랄 때가 아니다. 뭐 따라가 보는 수 밖에...

  • 2022-03-16 00:46

    75-77쪽 

    반복되는 하나의 '음(note)'

     

    기타를 잡고, 가장 굵은 6번 줄을 튕기면, 기타는 E(미)음을 낸다. 그걸 계속 쳐보자. EEEEEE……. 이때 '그것들은 E음이군'이라고 할 때의 'E'음과, '첫번째 E와, 두번째 E와, 세번째 E와……'라고 할 때의 E들은 같은 음일까, 다른 음일까? 하나는 ['독특한 주체'—뒤의 E들 하나하나들]이고 다른 하나는 ['단지 겉봉투, 추상적 결과'—앞의 E] 하나다.(74쪽) '다름은 같음의 반복 안에서 발생한다'의 말의 의미도 바로 이것이다. 겉봉투-E 안에서 E의 심장들이 뛴다.
    이 예를 조금 더 이용해 보자. E의 끝없는 반복은 우리를 E에서 '대단히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끈다. 기타줄과 피크가 만나는 각도는 매번 다르다. 단 하나의 추상적인 음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것들이 그것들 속에 있다. 이 모두를 '다 같은 미'라고 하는 순간 '차이'는 '이념의 외부로 추락하는 차이', '개념 안의 같음의 형식 아래로 전락하는 차이'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들은 모두 'E'로서' 이념의 내부에 존재'한다. 그렇게 ['동일성을 띤 요소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반복'-E]는 [잠복해 있는 주체-E들]에 의존한다. 말하자면 여기서 이념-재현관계는 역전되는데, 언제나, 어디에서나 반복되는 E들이 음계 안의 이념 E를 구축한 한 것이 된다. 이념E는 '분비된 것'이다. 따라서 이 반복은 '근사적이지도, 은유적이지도' 않다.(75-76쪽)

     

    그렇게 '반복'은 '일반성'과 구별되며, 그것은 '반복' 안의 두 가지 구별(내면적-외면적)에 대응한다. 들뢰즈가 '반복'의 분석론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 '일차적인 것은 반복이다'로 보인다. 더불어, 바로 그러한 '반복'은 '차이의 질서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을 덧붙인다.

  • 2022-03-16 01:04

    서론 52~54쪽 

     

    명목적 개념과 자연의 개념 외에 자연적 봉쇄의 경우가 하나 더 있다. 자유의 개념이다.

    어떤 개념이나 표상이 무한한 내포도 있고, 기억도 있으나 자기의식을 결여한 것이 있다. 결핍된 것은 의식의 대자적 차원이자 재인의 차원이다. 기억이 결여하고 있는 것은 재기억이거나 철저한 되새김이다. 의식이 표상과 나 사이에 어떤 관계를 설정할 때 나는 어떤 자유로운 인식능력으로 사유하고 과거로서 재인한다.

    의식이 앎을 결여하거나 기억내용에 대한 철저한 되새김을 결여할 때, 즉자적 상태의 앎은 대상의 반복에 불과하다. 앎은 연기된다. 앎은 인식되는 대신 반복되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반복은 여기서 자유로운 개념의 무의식, 앎이나 기억내용의 무의식, 표상의 무의식으로 드러난다.

    프로이트의 억압과 저항이 이런 봉쇄의 설명을 가능하게 해준다. 억압과 저항으로 반복 자체는 ‘강제’, ‘강박’이 된다. 재인 안의 자기의식은 미래의 인식능력이나 미래의 기능으로, 새로운 것의 기능으로 나타난다.

    • 2022-03-16 14:27

      앎은 연기된다... 여기서 연기는 acting(영문책은 안 찾아봤어요..)이더라구요. 그럼 여기서 배우는 누구일까요?

      윌리엄즈 책 117p에서 독자는.. 배우다. 라는 문장이 있던데, 독자가 앎을 연기하는 건가요?

  • 2022-03-16 07:10

    구판 66-67쪽

    5절에서 들뢰즈는 두 가지 반복을 말한다. 하나는 벽지의 패턴과 같은 모티브의 반복(copy & paste) 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역동적인 구성 과정 속에 있어나는 불안정과 비대칭의 반복이다. 후자가 예술가들이 하는 반복이다. 들뢰즈는 비대칭성 속에서 나타는 어떤 소통, 작은 변화, 감각 등을 '기호'라고 했다.

    여기서 계속 '인과성'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인과성은 말그대로 원인-결과이다. 그런데 반복에서 왜 원인-결과가 나오는가. 사과를 그리면서 '예술적이면서' '비대칭적으로' 반복한다고 할 때, 여기서 기호는 붉은 색에서 변화할 수 있으면서, "강도의 포위 내에서 변화와 이념의 명석함 내에서의 변화"(제임스 윌리엄스)가 진행되면 역동적인 것이 된다. 가령 사과를 그리는데 새벽, 아침, 정오, 오후, 해질녘에 따라 그린다면 그림자의 위치, 사과의 색상 변화 등이 포착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린 단지 색상의 변화 뿐 아니라, 시간 변화, 온도, 신선도 등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이 운동은 비대칭성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한에서 원인이 된다. 즉 이 운동이 비대칭성의 원인이다.

    들뢰즈는 두 가지 반복을 비교한다. 첫번째 '복붙' 반복은 총체적 결과에만 관련된다. 결과일 뿐이다. 두번째 반복은 작용중인 원인(비대칭성의 원인)에 관련되고, 계속 '진화'하는 반복이다. 앞의 것은 가만히 있고, 시간에 따른 변화 없다. 후자는 내적 차이의 반복이다. 이 차이는 한 특이점에서 다른 특이점으로 운반한다. 후자는 재현적이지 않고, 어떤 이념을 창조하는 역동성이 있다.  

     

  • 2022-03-16 07:17

    (p.68~70) 명목적 개념

    명목적 개념의 동일성의 사례로 단어의 반복이 있으며, 각운이 있다. 이러한 단어의 반복은 두 가지 의미로 취해진 한 단어가 두 의미 사이의 역설적인 유사성이나 동일성을 담보하는 것과 단일한 의미로 차용된 한 단어가 주변의 가까운 단어들에게 어떤 인력을 행사하고 엄청난 중력을 전달하는 기법이 있다. 전자의 예제로 루셀의 동음이의어의 반복을, 후자의 예제로 페기의 이음동의어의 반복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되풀이되는 평범한 단어들의 수평적 반복을 특이점들의 반복으로 대체하고, 단어들의 내면으로 다시 상승이 일어나는 어떤 수직적 반복으로 대체한다. 이들은 명목적 개념이나 구두적 재현이 보여주는 결핍에 의한 반복이나 불충분성에 의한 반복을, 언어학적이고 문체론적인 이념의 과잉에서 오는 어떤 실증적 반복으로 대체했다. (어떻게 언어는 반복이 자신을 긍정할 때면 언제나 드러나는 죽음을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가?)

     

  • 2022-03-16 07:59

    파일로 올ㅇ려요

  • 2022-03-16 08:00

    파일로요

  • 2022-03-16 08:21

    서문 5절 3번쨰 단락. 구판 p67-69

    반복의 이중성(정태적 반복과 동태적 반복)은 대칭과 리듬에 대한 연구에서 나타난다. 대칭은 등차적 대칭과 등비적 대칭으로 나뉠 수 있고 리듬이론은 박자-반복과 리듬-반복으로 나뉜다. 이것들에서 반복의 이중성인 정태적 반복과 동태적 반복의 관계를 확증해볼 수 있다. 1. 대칭의 연구-그림 42 참조할 것. 등차적 대칭은 정태적 대칭, 등비적 대칭은 역동적 대칭으로 후자는 전자의 중심부에 있다. 즉, 정태적 반복은 동태적 반복을 전제하고, 동태적 반복은 정태적 반복의 능동적 기법이자 실증적 절차이다. 그림 42에서 보듯 동태적 반복은 오각형과 그 안에 내접하는 별모양들의 크기가 감소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2, 리듬이론의 경우—박자-반복과 리듬-반복은 구별되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리듬 반복이다. 박자-반복은 시간의 규칙적 분할이며 동일한 요소들의 등시간적 회귀로, 리듬을 감싸는 봉투 그리고 외피일 뿐이다. 계량적으로 동등한 악절이나 음악적 여백들 안에서 음가들은 비동등성과 통약 불가능성을 창조하는데 이는 다-리듬을 가리키는 특이적 순간들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동등하지 않은 것이다. 음가들의 비동등성이야말로 가장 실증적이며 훨씬 근본적인 것이기 떄문이다. 박자-반복은 리듬=반복의 겉모습이거나 추상적 효과에 불과하다,

  • 2022-03-16 09:24

    헐벗은 반복과 옷입은 반복(구판 73-74쪽) ; 이해하기 힘들고 반복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일단 요약 올립니다.

    우리는 하나의 이름으로 된 동일한 대상들을 만날 때, 반복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 가지를 구별해야 한다;
    이산적 대상들, 반복되는 대상들, 그리고 비밀스러운 주체( 반복의 진정한 주체)
    다시 말해서, 우리는 다음을 해야 한다; 반복이 대명사적으로 이해해야 하고, 반복되는 그 놈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반복자(반복하는 영혼)이 없이는 반복 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들뢰즈는 반복되는것(대상)과 반복하는 것(주체) 보다는 
    두가지 형태의 반복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가지 반복(1반복 과 2반복)을 설명한다.
    '반복이 개념없는 차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반복이 차이' 이다. 그러면서 반복과 차이를 섞어서 쓴다.
    1 반복; 옷벗은 반복   2 반복; 옷입은(가장한, 가면을 쓴) 반복
    1 반복; 차이는 하나의 개념아래 재현되는 대상들 사이의 차이이다. 
    2 반복; 차이는 시공간에서 창조적 운동으로 펼쳐진다.
    1 반복; 같음의 반복(개념의 동일성, 재현의 동일성)
    2 반복; 반복은 자신 안에 차이를 포함한다. 이념의 타자성 안에.
    1 반복; 부정적 반복.    2 반복; 긍정적 반복
    1 반복; 가언적, 정태적, 결과적, 외연적, 일상적, 수평적, 공전적, 대칭적, 물질적, 살아있지않은, 정확한 반복
    2 반복; 정언적, 동태적, 원인적, 강도적, 특이적, 수직적, 진화적, 비대칭적, 정신적, 죽음의 비밀을 포함하는, 진정성의 반복 이다.

  • 2022-03-16 09:57

    서문 3절 p46

    반복과 일반성: 세 번째 구별(개념의 관점에서)

    행동의 관점, 법칙의 관점에서 반복과 일반성은 서로 대립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제 개념 혹은 재현의 관점에서 그 둘 간의 대립을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권리상의 문제(quid juris)를 제기해 보자. 권리상의 개념은 실존하는 특수한 사물의 개념일 수 있고 그런 한에서 무한한 내포를 갖는다. 무한한 내포는 외연=1의 상관항이다.  여기서 내포의 무한성은 잠재적인 것이나 현실적인 것으로 가정된다. 이런 조건에서 술어들은 개념의 계기들로서 보전되고 자신들이 귀속되는 주어 안에서 어떤 효력을 지니게 된다. 무한한 내포들에 의해 재기억, 재인, 기억과 자기의식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개념과 그것의 대상 사이의 관계를 보자면 라이프니츠주의의 원리들을 생각할 수 있다. - 식별 불가능한(동일한 ) 두 개체는 없다 -  어떤 차이의 원리에 따르면 모든 규정은 마지막 심급에 이르러서는 개념적  규정이거나 한 개념이 현실적으로 갖는 내포의 일부이다.  어떤 충족이유율에 따르면 특수한 사물마다 오직 하나의 개념이 상응한다.  식별 불가능자들의 원리에 따르면 개념마다 오직 하나의 사물만이 상응한다.  이 원리 전체들은 차이를 개념적 차이로 풀이하거나 재현이 전개되는 과정을 매개 과정으로 풀이한다.  

    개념이 현실적인 대상에 부합할 수 없다는 것, 개념을 통한 재현이 반복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제임스 월리엄스의 차이와 반복 해설, p108)까지 이해했습니다.  

  • 2022-03-16 11:14
    1. 호수, 서론> 3절> 반복과 일반성: 세 번째 구별(개념의 관점에서) 54-55쪽

    들뢰즈는 자연의 봉쇄의 마지막 세 번째 사례에서 반복이 ‘자유로운 개념’의 무의식으로 드러나는 양상을 연극에 빗대서 설명한다. 주인공 안에는 주인공이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무한한 앎’이 있다. 이 앎은 의식의 표층으로 올라오지 않더라도 주인공 안에 ‘침잠해 활동’한다. 즉 이 앎은 인식(표상)되지 않더라도 반복하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앎은 연기된다’. 이것이 극적이게 되는 양상은 1) 앎이 억압되거나 2) 등장인물이 앎으로부터 배제되는, 다시 말해 자신이 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들뢰즈는 여기서도 연출자가 주의해야 할 점들을 덧붙인다. 이 앎은 연극의 무대와 희곡의 모든 부분을 관통해야 하고 주인공은 표상되지 않은 앎을 연기해야 한다. 그렇게 무대에서 반복과 표상은 어지러이 서로를 반영하다 마침내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서로 뒤섞이고 마주친다.

  • 2022-03-16 11:28

    49p

    개념의 인위적 봉쇄와 달리 자연적 봉쇄는 초월론적 논리학이나 실존의 변증법이 배후에 있다. 자연적 봉쇄의 경우에도 명목적 개념, 자연의 개념, 자유의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명목적 개념은 내포가 유한한 경우의 개념이다.  내포가 유한한 어떤 개념에 시간과 공간의 한 장소를  할당하고 이때의 외연을 1이라 하면, 하나의 유(類)나 종(種)이라면 내포의 증가없이 그 외연은 무한대가 된다.  그 분열의 결과 '이산적 외연'이라는 현상이 생긴다. 이 이산적 외연이야말로 사유안에서 이뤄지는 유사성의 질서 대신, 실존 안에서 참된 반복을 형성한다.

    그 사례로 에피쿠로스의 원자의 개념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언어학적 원자라 할 수 있는 '단어'를 들 수 있다. 단어는 필연적으로 유한한 내포를 지닌다. 단어는 유한한 단어들에 의해서만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어는 '말하기'와 '글쓰기'같은 언어활동, 즉 단어에 '지금 여기'의 실존을 부여한다. 그 '단어의 개념'은 분산과 이산을 통해 만회된다. "말하기와 글쓰기 안에 언어의 실재적 역량을 형성하는 어떤 반복의 기호를 통해 만회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명목적 개념이라 부르며, 유한한 내포, 혹은 유한한 술어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단어의 개념은 결코 주어진 현실적인 단어와 일치하지 않는다. 

  • 2022-03-16 11:38

    2022 철학학교 [차이와반복] 읽기_ [유동의철학]_3주차/47~48p요약글(여울아)

     

    개념의 내포와 “봉쇄” 현상

     

    개념이란 봉쇄되는 것이다. 봉쇄된다는 것은 무한한 내포를 갖는데 실패한다는 것이다.(윌리엄즈책 109p)
    개념을 술어로 규정해버리면 봉쇄 돼버리지만, 사물 안에서 그 개념어를 실재 사용할 때는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변화함으로써 무한한 내포를 갖게 된다. 들뢰즈는 개념의 논리적 사용은 항상 인위적 봉쇄에 직면하지만, 실재적 사용은 그 사물 안에서 개념의 술어가 변화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의 술어는 그 사물의 일부분이 아니다.

     

  • 2022-03-16 11:46

    61~62pg

    억압은 반복이 해요

     

    들뢰즈는 여기서 “억압하기 때문에…… 반복한다.”라는 정신분석의 사례가 제시하는 명제를 뒤집고 있다. 억압이 반복에 선행하거나 반복을 부추기는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반복이 우리의 표상에 일종의 억압으로 작용한다(“반복되는 것은 표상될 수 없다(60)”)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복은 동일성, 유사성을 재현하는 표상의 형식을 파괴하면서(“망각”하게 하면서) 특정한 사물이나 경험들을 ‘체험’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 죽음 본능이란 가면이고, 이행의 충동이다(“반복이란 것은 그야말로 자신을 구성해 가는 가운데 스스로 위장하는 것(58)”). 같은 의미에서 에로스 즉 사랑, 본능, 욕정은 타나토스라는 죽음, 위장-이행의 원리 안에서만 체험될 수 있다.

    반복이 가하는 억압이란 아마도 충동들이 필연적으로 체험되는 보다 내적인 원리, 혹은 방식에 관계되어 있으며, 표상은 그 이후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 2022-03-16 12:07

    64-65 페이지

    5절

    두 가지 반복: 개념의 동일성과 부정적 조건에 의한 반복, 이념 안의 차이와 과잉에 의한 반복(자연적 개념과 명목적 개념을 사례로)

    반복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답하기 위해 알아야 할 부분 중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왜 반복은 개념이나 재현 안의 동일성 형식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는지 둘째, 어떤 의미에서 반복은 우월하고 월등한 어떤 ‘실증적positive' 원리를 요구하는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자연과 자유 개념 전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장식의 모티프에서의 반복을 생각해보면 절대적으로 동일한 개념 아래에서 하나의 도형이 계속 재생산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예술가의 작업 과정은 이와 다르다. 예술가는 한 도형의 표본들을 병치(juxtapose)하는게 아니라 매번 표본의 한 요소를 다음에 오는 표본의 *또 다른another* 요소와 결합하는combine 것이다. 이런 역동적인 구성 과정 속에서 불균형, 불안정, 비대칭 등이 발생하는데 이들은 총체적인 작용 안에서만 사라진다. (안정성을 갖춘다, 밸런스를 이룬다.)

    ‘신호signal’은 비대칭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불균등한 크기의 질서의 체계를 말하고 ‘기호sign’은 그 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의미한다.

    기호는 효과an effect인데, 이 효과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생산적인 비대칭을 표출하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무효화시킨다.

  • 2022-03-16 12:44

    70쪽~72쪽

    기호는 적어도 세 가지 관점에서 다질성을 포함한다. 첫째, 기호를 담지하거나 발산하는 대상 안에서. 이 대상은 불균등한 두 질서처럼 어떤 수준의 차이를 드러낸다. 둘째, 기호 그 자체 안에서. 기호는 자신을 담지하는 대상의 경계 안에서 어떤 다른 ‘대상’을 봉인하고 있으며 자연이나 정신의 어떤 역량을 구현하고 있다. 셋째, 기호가 재촉하는 응답 안에서. 응답의 운동은 기호의 운동과 ‘유사’하지 않다. 수영하는 사람의 운동은 물결의 운동과 닮지 않았다. 수영은 물결이 발신하는 기호를 내 신체의 특이점에 맞게 제대로 수신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결의 변화와 내 신체의 변화를 조합해 나가는 (다름의) 반복의 운동이다. 기호는 실재적 운동에 해당하는 반복을 의미하고, 이점에서 추상적인 것의 거짓운동에 해당하는 재현과 대립적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앞서 65쪽에서 서술한 신호-기호관계에서 등장한 기호에 대한 이해가 수영의 예를 통해 더 풍부해지고 있다.)

    기호와의 마주침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 때 만들어지는 공간의 경계로 인해, 그리고  배움이 개봉해가는 기호의 다질성으로 인해 배움의 과정에는 언제나 죽음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들뢰즈는 부연하고 있다. 죽음의 이미지와 관련하여 여기에서는 오이디푸스와 짜라투스트라의 경우가 예시로 덧붙여지고 있다. 

  • 2022-03-16 13:43

    자료를 찾다가 들뢰즈의 반복 개념으로 미니멀리즘 음악을 해석한 논문이 있어 가져왔습니다. 비교적 쉽게 쓰여져 있고 예시도 재미있어요. 논문에 나오는 평양냉면...예, 너무 쉽게 설명해서 황당...ㅋ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과 필립 글라스 음악을 비교하면서 반복을 이해해보니 조금 구체적으로 알듯하네요. (하이라이트 표시해뒀어요)  

    (소나타 - 주제를 반복, 변형해가면서 주제 자체 강조하는 방식, 1.2주제의 대립,  그리고 마무리는 하나의 주제로 돌아옴  / 필립글라스 - 음형이 계속 변형되면서 반복되지만 그것은 주제가 아니고, 대립되는 주제가 없으며, 마무리가 없음(?)) 더 어렵나..요. (ㅎㅎ) 

    아래 음악 들어보시면 아실듯. 짧기도하고 난해하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곡입니다. 듣고 있으면 몽롱해지면서 그 안에서 '기호'가 생성되고 '마주침'이 만들어지면서 정념에 빠져든다고 해야할까요...) 
    글로는 이해가 어려운데, 음악이나 미술에 대입해보면 조금은 알듯 합니다. 

     

    • 2022-03-16 14:59

      잘들었습니다~ 단조로운데 격정이 느껴지는 연주였습니다~~ 저도 이 곡이 좋네요. 

    • 2022-03-16 15:47

      아무리 연습곡이라지만 저리 뚝 끝내버리는 센스..ㅎㅎ 제게는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곡이네요. 우리가 흔히 느끼는 감정의 흐름이 이 책에서 말하는 '반복'(너는 도대체 무어냐 ㅋ)이 보이는 양태와 비슷한 것 같아요. 특히 오늘 부분에 나오는 '자각되지 않은 앎'이라는 면에서요. 미니멀리즘 곡들은 대체로 감정의 한 국면을 덜렁 떼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고요:)

    • 2022-03-16 17:45

      와우! 저는 저런 식의 종결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흔히 표상하는 끝나는 느낌으로 끝나면, 음악이 펼쳐놓은 '시작도 끝도 없는 반복'을 파괴해 버리니까요.... 그러니까 말인즉 내적인 원리상 끝나면 안 되는데, 끝은 나야하니까 저렇게 끝날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래스 뿐만 아니라 라일리도 그렇고 라이히도 그렇거든요!

      • 2022-03-16 18:30

        네 그런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사실 일부러 유심히 듣지 않으면 어떻게 끝났는지 나중에 기억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저 머릿속에 계속 반복되고 있지요 ㅎㅎ 사실은 끝이 없는.... 근데 이렇게 댓글을 다는 것이 정군샘에게 낚시질을 하고 있는 기분입니다만....ㅋ

  • 2022-03-16 13:44

    논문 

    • 2022-03-16 15:00

      이 논문 재밌네요. 하일라이트도 직접 쳐주신 거죠? 땡큐~

  • 2022-03-16 16:37

    계속(벌써 두 번이나...)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죽음은 물질적 모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반면 죽음본능을 가면이나 가장복들에 대한 정신적 관계 안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반복이란 것은 자신을 구성해가면서 스스로 위장하는 것, 이 가면에서 저 가면으로 옮겨가며 변이형과 더불어, 그 안에서 자신을 형성한다. 반복되어야할 최초의 항이란 것은 없다.

    반복되는 것은 반복 안에서 형성, 은폐되기에 반복으로부터 고립되거나 추상될 수 없다. 위장하는 것과 위장되는 것은 같은 사태이다. 반복은 상징적이고 시뮬라크르는 반복 자체의 문자이다. 위장과 상징적 질서를 통해서 차이는 반복 안에 포섭된다.

    가면이야말로 반복의 참된 주체다. 반복은 본성상 재현이나 표상과 다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은 표상될 수 없다. 다만 자신을 지시하는 것을 통해 지시되긴 하나 이내 다시 가려질 뿐이다.

  • 2022-03-17 10:49

    62~63쪽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람은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쾌락원칙’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쾌락원칙은 죽음본능에 배치되지 않는다. 쾌락원칙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기본 원칙인데, 왜 사람들은 불쾌한 긴장, 기억을 자꾸 반복하려 하는가?

       프로이트는 이 문제에 답하면서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를 설명하였다. 그는 전이(轉移)라는 정신적인 기전을 말하지만 들뢰즈는 그 전이(轉移)는 여전히 반복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전이에 새한 성찰은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저편'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안정된 삶 속의 쾌락은 '차이'를 만났을 때, 불쾌감으로 변하게 되고, 그 불쾌를 넘어섰을 때, 우리는 새로운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쾌락원칙을 넘어서 존재하는 그 무엇'의 정체가 아닐까?

  • 2022-03-1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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