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11회차 후기- 하이데거는 왜 밥맛이 되었는가

micales
2021-11-15 20:52
392

 

 나는 하이데거를 꽤 좋아했었다. 그 철저하고 논리정연한, 딱딱 맞아떨어지고 정곡을 찌르는 철학의 전개, 다른 것도 아닌 무려 '존재'의 의미르 밝히겠다는 당찬 포부(이게 철학이지!), 거기에다가 뭔가 좀 있어보이게 만드는 그의 악명높은 난해함, 어떤 철학서적을 읽든 거의 한 번씩은 꼭 나오는, 철학사에서의 그 유명함과 영향력(해설서에는 '당대의 젋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잡아끄는 그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 등등...나는 하이데거를, 그러니까 그의 주요 저서 <존재와 시간>을 철학학교에서 처음 시작할때, 1회차에서 읽었던 그의 사상의 요약(<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을 읽을 때도 가끔 내가 느꼈(다고 생각했던)던 '근본적인' 감정들, 이를테면 불안 등을 존재론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그에게 뭔가 앞으로 잘 될 것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세미나에서 말했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불안을 저는 느껴본적이 있거든요...그래서 그런지 앞으로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흥미로웠다. 첫 한, 두 달까지는. 그러나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볼 때, 씌였던 콩깍지가 벗겨지고 난 다음부터는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던 행동들 하나하나가 갑자기 미워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하이데거에 씌여 그와의 그 긴 여정을 하기로 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데거, 생각보다 별로다.

 

 하이데거는 굉장히 철저하다. 엄청나게 촘촘하게 설계한 논리의 구조를 책의 곳곳 깔아놓았다. 그래서 엄청난 밀도를 자랑한다. 처음에는 좋았다. 그 구조가 계속해서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기 전까지는. 철저한 건 좋은데, 안 질리게는 않되는 건지...이번 3장에서 그는 볼래적이고 전체적인 존재가능을 얘기하며 '앞질러 달려가보는 결단성'이 그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마솥샘의 말마따나, 그 전에 얘기한 것들을 또 합쳐서 이야기하는 식 아닌가? 물론 구조적으로 다르기는 하지만, 읽는 사람으로서는 같은 구조를 반복하는(이것도 하이데거에 따르자면 의미가 있기에 반복하는 것이지만) 이 '재해석', '순환'이 뻐나게 느껴지는 것은 어절 수 없다. 더군다나 결국은 다 뻔한, '현존재(라고 쓰고 인간이라고 읽는다)'를 가리키는 느낌이다. 어쩌면 문제는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하이데거가 제시하는 개념들 간의 근본적이고 미세한 차이들을 짚어내지 못하는 나에게 '탓이 있을 수도'.

 

 하이데거는 서론에서 야심만만한 태도로, '이전까지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존재', 내가 보여준다'라며 패기있게 존재일반구성틀을 밝히겠다고 한다. 이 얼마나 내가 가졌던 "심오한" 철학의 이미지에 잘 맞아떨어졌는지. 그런데 지금쯤 와서는 그에게 직접 묻고 싶다. '혹시 존재는 그래서 어디에 있는지...?' 존재로 시작해서 잘 유인(???)하더니 이제는 책이 거의 다 끝나가는데 아직까지도 현존재 이야기다. '현'존재가 아니라 '존재'와 시간 아니었나? 역시 제목만 보고서 책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탁월한' 존재자인 현존재를 먼저 구조를 밝혀 거기에서부터 존재를 가져와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전히 '존재'는 없다. 내가 그렇게 기대를 품었건만...아렘샘의 말에 따르자면 존재의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고 허무하게 책이 끝난다고 한다. 그럴 수가. 사실 하이데거가 현존재구성틀만 이야기 했음에도, 책은 충분히 깊다(사실 어려워서 못따라간다). 그런데 내가 쫓은 '존재'를 묻기에는 하이데거가 이미 '죽음', 즉 현존재, 세계-내-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물론 그것들뿐만이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건망증이라도 걸린 것 마냥 뒤돌아서면 그 전 주에 읽은 개념들을 까먹기 일수에다가, 읽기는 20쪽에 거의 3~4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시 읽으면 훨씬 더 쉽게 다가오겠지만, 도대체 내 자신이 다시 읽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현재는 현존재의 기투에서 나오는 순환이 문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같은 부분을 계속 읽고 또 읽는 '순환'이 문제니 말이다. 

 다른 면에서 보면, 내가 (지난 시즌에서는 진리에 대해 그러하였듯이)'철학'이라는 것에 너무 큰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하이데거가 (다행히도?)깨트려줬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이 무언가 크고 "심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지루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야 제대로된 철학을 맛보았으니, 아직도 갈 길은 멀다(지금 당장 세미나도 안 끝났는데).

 

도대체 3장 후기를 써야했는데, '우선 대게' 실망감이 들어 하이데거에 대한 불평만 (또) 늘어놓고 말았다. 실존의 불가능성보다도, 나에게는 '비본래적'으로 책 해독의 불가능성이 '일상적'으로('은폐하면서') '열어밝혀지는' 듯하다.

댓글 8
  • 2021-11-15 21:25

    ㅋㅋㅋ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이렇게 불평의 대상이 되는 하이데거선생이라니!

    철학책을 읽으며 크고 심오한 무엇인가를 얻게 되기를 내심 기대하지만

    크고 심오한 것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지루한 읽기와 사유하기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 2021-11-16 18:12

      생각보다 철학이라는 것이 더 힘들다는 걸 깨달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철학은 환상적으로 한 번에 얻어지는 무언가가 아닌, 꾸준함과 지루함을 견뎌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야, 처음으로 철학 원전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 같습니다(이 말을 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ㅎ).

  • 2021-11-16 01:17

    읽기 전의 기대와 읽는 와중에 느끼는 소회에 있어 재하샘과 차이가 나는 것은 나이와 기운의 차이에서 오는걸까요? 제가 읽는 하이데거는 의외로 존재에 대해 기대한 것보다 많은 얘기를 해준다고 느꼈거든요. 우리가 존재가 뭐냐고 묻는 말에 하이데거가 반드시 답을 해야 한다면, 정군샘이 한 문장으로 요약을 해 주셨듯이 존재의 의미는 염려고 그 염려를 가능하게 해주는게 시간성이겠지요.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시간성. 이렇게 분명하게 손에 움켜쥐려는 순간 다 빠져나가겠지만요. 뭔가를 분명하게 잡아내려하면 할수록 내 편견은 더 억세질테고, 그렇다고 뜬구름 사이로 몽상을 즐길 수도 없고… 철학 원전이 그래서 어렵지만 읽을만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아무튼 이 정도면 enough 라고 느낀다면 그때마다 뭔가 얻어 걸리는게 있겠지요. 제가 이리 느낀다면 그러니까 이건 기운과 나이 차이때문일까요?

    참 재하샘이 부럽기도 해요. 20여페이지 세네시간 걸린다고요? 저는 더 걸려요.

    • 2021-11-16 18:16

      아렘샘의 말을 듣고 나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확실하게 하나의 답을 얻으려는 저의 강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읽어나가면서 무언가 더 깨닫는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당장 이번 주 분량부터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세네시간이 걸려도 또 책 덮으면 내용을 다 잊어먹어서 다시 읽습니다. 말이 세네 시간이지, 휠씬 더 걸려요

  • 2021-11-16 08:21

    재하, 글 잘 쓰는구나^^

    지난번 가마솥님과 다르게 재하 글 읽어보니 또 하이데거가 땡기네...ㅎㅎㅎ

    • 2021-11-16 18:17

      감사합니다! 하이데거가 어렵다고 불평은 하고 있는데, 아마 철학학교 다음 시즌도 또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 2021-11-16 19:10

    밥맛이라고 해서..맛있다고 할줄요. (ㅎㅎㅎㅎㅎㅎ) 

     

    하이데거나 철학에 대한 기대만큼 뭔가를 찾고자하는 재하샘의 열정도 느껴집니다. 🙂  

  • 2021-11-16 21:30

    저는 ... 매번 어떤 책을 집어들 때마다, 그리고 펴서 읽을 때 마다 '우오오오' 하곤 합니다. ㅎㅎㅎ '이거구나! 여기에 있구나' 뭐 이런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그러다가도 금새 '흠....음....' 하기도 하고요. ㅎㅎㅎ 요즘은 그게 약간 바뀌어서, '이럴 수도 있구나, 저럴 수도 있구나' 합니다. 이게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래서 철학 공부를 왜 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의 목록을 늘려가기 위해서(?)라고 답합니다. 말하자면 무언가를 '손 안에' 쥐는 게 아니라 어떤 '상태'에 이르고 싶습니다. 재하님 글을 읽다보니 다시 묻게 됩니다. 철학공부 왜 때문에 합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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