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 2회 후기_맹하기에서 계추기까지

봄날
2020-07-20 01:38
456

월령에는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 문화 전반적인 것을 아우르는 거대한 시스템이 세워져있었다.

당대 내노라 하는 사상가들의 사유체계는 물론, 관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망라해, 일목요연하게 일년이라는 시간 속에 치밀하게 배치하고 있다. 아니 시간 속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권력을 세우는 방식으로 시간을 구성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날은 여름으로 간다.

여름은 만물이 성장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정치도 만물이 성장하는 방향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농사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농민들을 부역에 내보내거나 게으르게 놀도록 방치하면 안된다. 한편 이 시기는 사람에 있어서도 부단히 배워야 한다. 배움에 도움을 주는 스승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 맹하기의 스승은 부모와 동급이다. 이때의 배움은 '본성에 도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쪽염색의 경험으로 미루어 염색하기 좋은 시기는 중하기이다. 해의 길이가 긴 시기. 쪽염색에 필요한 것이 쨍한 햇빛이다. 그런데 맹하기에 '쪽을 베지 말라'고 한다. 아직 푸른 빛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는 풀이다. '아는 것만 보인다'고 하고많은 내용 중에 쪽염색에 눈길이 꽂히다니...ㅎㅎ

 

음악에 대한 많은 기술은 '가무' 정도로 취급되는 오늘날의 음악과 춤에 비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무릇 즐거움에는 표준이 있고, 마음에도 역시 적절히 맞아야 하는 표준이 있는" 것처럼 음악은 자칫 우울하거나 광기어린 것이 되기 쉽다고 경계한다. 음악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그 풍속을 알고 정치를 알고 임금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임금들은 반드시 음악에 기탁해 교화했다"(139p)고 한다. 이때의 음의 표준은 자연, 즉 봉황의 울음소리나 대나무의 구멍에서 나는 소리를 기준으로 했다고 하니, 예술은 곧 자연의 산물이다.

 

가을은 사뭇 다른 내용과 형식을 제시한다. 자연과 더불어 양생과 곡물의 성장을 노래하던 시기와 달리 인간세상은 험악해지기 시작한다. 그것의 시작은 "매가 새를 죽여서 진열해 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171p) 살육의 기미가 시작된다. 이제 농사를 거두고 무사를 기르고 무기를 손질한다. 이 시기의 대부분의 내용은 군대의 불가피함을 강조하고 있다.그런데 군대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하는 근거가 좀 황당하다. "무릇 밥에 목구멍이 메어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천하의 음식을 못먹게 금지시키고자 한다는 이는 미혹된 일일 것이다. 배를 타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천하의 배를 금지시키고자 한다면 이는 미혹된 일일 것이다. 군대를 움직였다가 자신의 나라를 잃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천하의 군대를 폐지시키고자 한다면 이는 미혹된 일일 것이다. 군대를 폐지할 수 없음은 이른 비유컨대 물과 불을 없앨 수 없는 것과 같다."(176p)고 한다. 군대는 있어야 하며 그 군대는 '의로운 군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묵가'의 '지키는 전쟁'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세상사람들의 근심은 구수(救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도한 자들의 요행에 있다. 이러한 때에 구수를 하자는 주장이 나왔으니, 무도한 자들은 더욱 요행을 누리게 되고, 어진 선비들은 더욱 머뭇거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하를 크게 어지럽히는 것은 의로움을 따지지 않고서 성급히 구수를 옹호함에 있는 것이다."

 

아직 가을이므로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그저 전쟁과 군대의 타당함을 잔뜩 설파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계추기, 늦가을편의 마지막 부분에는 선비가 등장한다. 선비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장은 '싸우지 않고 투항케 하는 방법'이다. 비록 이로운 군대라 하더라도 전쟁은 쌍방간에 커다란 피해를 줄뿐이다. 지식인의 역할은 덕으로서 '싸우지 않고 제압하는 것'이다. 글쎄, 그게 가능할까? 날은 추워지고, 백성들은 농사일을 잊는다. 군주는 '의로운 군대'건 아니건간에 한 바탕 붙을 준비가 되어 있다. 멀리서부터 흙바람냄새가 나는 듯 하다....

 

댓글 1
  • 2020-07-21 15:40

    의로운 군대, 義戰에 대해서는 좀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통일의 기운이 넘치는 시대이니, 전쟁에 대해서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겠지만
    정말 의전이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질서가 혈연을 중심으로 짜인 것이라고, 집안 일이라고 우기면 할 수 없지만
    남의 나라 일에, 내가 고단한 백성을 구하러 왔다, 뭐 이런 논리가 가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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