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역학세미나 시즌2] <노자와 황로학>1회 후기-황로학에서 생긴 질문들

기린
2021-06-07 11:05
248

꽤 오랫동안 동양고전을 공부했다지만, 황로학 분야는 문외한에 가깝다. 유학 중심으로 공부한 탓도 있지만,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언저리에서 헤매다 멈춘 공부 탓도 있다. 그나마 『한비자』를 읽던 시기에 『노자』와 관련된 최초의 주석서로 「해로 解老」 「유로 喩老」 가 있다는 것을 안 정도였다. 이번에 인문의역학 세미나를 하면서 알게 된 황로학은 “중국 고대 사상사에서 戰國 중후기 이후 西漢 시대를 거쳐 東漢 시대까지 이어지면서 거의 400여 년 동안 유행하던 하나의 사상적 조류”였다. 黃老 라는 말은 황제와 노자의 첫 글자를 취해서 만든 합성어다. 이 합성어는 漢代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고, 사마천의 『사기』에서 그 최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황로학의 연원을 한나라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기보단, 전국 말기 제나라의 직하학궁에서 다양한 학파 다양한 계층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토론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황로학이라는 하나의 종합적이고 통섭적인 성향의 사상이 탄생” 했다는 추론을 제시한다. 이렇게 탄생한 황로학이 중앙에서 득세했던 시기는 한 제국의 초기 약 70년 정도이다. 秦漢 교체기를 보내면서 황폐해진 경제상황을 회복하기 위해서 백성들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었다. 또 한제국 초기 미약한 중앙정부로써 여러 지방 제후들과 상호 공존할 필요성, 진나라 법가 사상의 가혹한 집행에 대한 거부감 등이 작용했다. 이러한 시대상에 적합한 사상 체계로 자연주의, 방임주의, 그리고 무위정치 사상을 지닌 황로학이 급부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집권층에서 無爲自然의 道를 숭상하는 황로학을 선호하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저자는 전국시대 말기에 유행하다가 한제국 초기의 통치이념으로 등장하게 된 황로학을 “중국 역사상 최초로 도가 사상이 한 시대의 통치이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한무제가 즉위한 후 유가 사상을 제국의 통치이념으로 채택하면서 정치적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양생 사상으로 변모하게 된 과정까지를 이어 서술하고 있다.

 

한제국 초기의 저술로 알려진 『회남자』를 통해 계승된 황로학은 無爲정치를 통해 한제국이 길이길이 번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위정치는 바로 『노자』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회남자』는 노자의 무위정치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파악했다. 이것은 한 대에 번성했던 음양가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한대인들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증대함에 따라 추상적 이론 체계의 형성보다는 구체적 현실의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 “우주의 발전과 변화의 문제를 밝혀보려는 시도” 로써 음양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추세에 힘입어 황로학 역시 “이전의 도가들이 천착했던 존재의 문제보다 생성의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회남자』가 “인간의 생명체계를 形 氣 神의 3요소로 구성되는 것으로 파악, 이들 형기신 3요소는 상호 유기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본 것도 이러한 음양사상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래서 노자의 최초 주석서로 알려진 『한비자』 「해로 解老」 「유로 喩老」에서 욕망을 다스려서 궁극적으로 통치자의 治國에까지 나아간 양생사상(통치자가 욕망을 다스려 마음을 고요해지면 올바른 판단으로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이 『회남자』에서 “형기신 3요소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가 조화로운 상태에 있도록 하는 양생 태도를 요구”하는 사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자의 무위사상이 한제국 초기 중앙 정부의 미미한 권력을 보완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는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사상도 시대 상황으로부터 홀로 떨어져서 지속될 수 없다는 이치를 새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도가의 무위 사상은 어떻게 수용되고 있을까?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인문약방에서도 ‘양생’을 담론화 하려는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럴 때 오래된 사유로써 황로학에서 비롯된 양생 사상을 지금을 살아가는데 유의미한 사유로 지속시킬 수 있는 언어를 찾아낼 수 있을까? 황로학 자체가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유들을 융합한 사유라는 데서 공부의 방향성을 재점검 해보게도 된다. 어디서나 사유를 횡단하는 역량에서 판가름 나는 것인가.

댓글 4
  • 2021-06-08 18:57

    무위만을 얘기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결국 무위와 유위의 조화일텐데... 그건 어떻게? 

    너무 뜬구름 같다가도 생활밀착적일 것 같다가도..

    이 셈나가 끝날 때 쯤 뭐라도 한 가지 정도 얘기할 수 있음 좋겠다 싶습니다~~

  • 2021-06-09 11:38

    요새 다시 동력이 딸려 멍해지는데... 그래도 여럿이서 같이 읽으니 좋아요. 일단 황로학과 (혼자)내적친밀함이 생긴데는 성공이지만, 아직도 모호한 그 말들을 어떻게 삶과 연결시킬지가 고민입니다. 좀 더 꼼꼼하게 공부해서 내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할텐데요 ㅜㅜ

  • 2021-06-10 18:31

    처음엔 뜬구름같았지만 현재까지 무위와 유위에 대해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유위' 란 내가맞다고 고집해온 나의 생각들이예요. 무위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기에 언제든 원점으로 갈 수 있어야한다는..

    근데 어떠한 충돌에 의해서 깨닫더라도 원점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 듯 해요. 

  • 2021-06-11 18:06

    황로학에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기린샘의 후기를 읽으니 동양고전과 관런되어서 그런지 샘의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제자백가 세미나 하다보면 언젠가 황로학도 할텐데 그때 많이 가르쳐주세요. 같이 공부하면 더 좋구요.

    고전동학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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