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차 - 노년의 섹스, 주책일까? 놀이일까? (키케로 <노년에 대하여> 2차시)

문탁
2022-03-28 15:09
416

2차시 세미나 후기에 달린 여러분들의 성의있는 댓글에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적지 않은 인원의 줌 세미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까? 나아가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맞추지 않고도 도반이 될 수 있을까? 여러가지 걱정이 많았는데, 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뭐 두 번 밖에 하지 않았으니....ㅎㅎㅎ

 

 

3회차 세미나에서는 아스케시스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푸코는 고대의 아스케시스는 우리가 금욕,고행으로 떠올리는 자기포기와 거의 관련이 없다고 말합니다. "정반대로 askêsis를 통해 자기를 구축하는 게 관건"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충만하고full,  완수되고perfect,  완결되며complete,  자족적인 seft-sufficient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 위하여 자기가 자기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 나갈 것인가의 문제였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뭘 버리는 게 아니라 뭘 획득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하 물론 획득해나가야 할 게 연금, 부동산...이런 건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서 고대의 ascesis는 제거하는 게 아니라 장비를 갖추고 소유합니다. 고대의 ascesis가 장비로 갖추고 소유하는 바를 그리스어로 parakeuê라 불리며 세네카는 이 말을 종종 라틴어 instructio로 번역합니다....자기와 자기의 충만한 관계 구축에 도달하는 것이 관건인 순간부터 ascesis는 parakeuê의 구축을 그 임무, 전술, 도구로 삼습니다. parakeuê는 무엇일까요? 생의 사건들로 열리고 목적화된 개인의 준비를말합니다. 요컨대 ascesis의 관건은 발생하는 바 그 자체에 적합할 수 있는, 오직 그것이 발생하고 일어날 경우에만 대처할 수 있는 장비, parakeuê를 만드는 것입니다."(푸코, <주체의 해석학>, p348)

 

 

  무슨 말인지 아리송하시지요? 이러다가 3회차에서도 갑분철학강의를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그리고 이번에는 노년과 쾌락도 이슈가 되지 않을까요?

이 점과 관련하여 키케로와 좀 다른 이야기(그런데 맥락이 다른 것이지 내용이 단순히 다른 것은 아니에요. 이 둘을 구별하는 건 중요하구요) 를 소개해볼게요.

 

  "노년의 섹슈얼리티는 정치적 의제다. 여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2002) 가 불러일으켰던 회오리바람 덕분에 한국에서도 노년의 성은 이제 완전히 기이하고 낯선 주제는 아니지만, 여전히 그냥 손잡고 다정한 배려와 온기를 나누는 정도의 친밀함이 아니라 키스하고 섹스까지 원하는 사랑의 관계는 그야말로 말 그대로 외설이고 미성숙이다. 주책이라고 손가락질당하기 십상이다.....

  (물론)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성적 욕망이나 섹슈얼리티에 특권적 위치를 부여하는 것은 다양한 친밀성의 흐름을 오히려 막는다. 그러나 삶의 단계를 성적 에너지와 실천에 연동하는 것, 그 결과 노년에게서 모든 열정적 '놀이'와 일탈적 행동을 박탈하는 것은 심각한 억압이다. 나이든 여성들의 사랑과 섹슈얼리티 실천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종/인구의 재생산'과 무관하기에, 그야말로 '완전한 소비'고 놀이고 자유의 분출일 수 있다. 그래서 젠더화된 연령 차별주의에 맞서는 힘 있는 대항 실천이다" (김영옥,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의 페미니즘>, p70)

 

 

머리 빙글빙글 도시나요? ㅋㅋㅋ

 

그럼 내친김에  디어드리 피쉘 감독의 다큐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도 한번 보실래요?

다큐 소개는 요길 보시구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52668

원제목의 풀네임을 유투브에 치시면 바로 시청도 가능합니다.

 

 

그럼 수욜밤에 봬요

 

 

 

피에쑤 : 아참 지난 시간에도 영화 이야기와 마지막날 글쓰기 발표(오프라인)에 대해 이야기못했어요. 이번에는 세미나 시작할 때 이 이야기부터 할게요. 제가 또 까먹으면 누군가 일러주세요

 

피에쑤2 : 이번 메모는 황재숙샘, 김미정샘, 권영애샘이에요. 수욜 저녁 6시까지 이 글의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댓글 7
  • 2022-03-28 16:05

    공지 잘 확인했습니다~

    저빼고 다른 분들은 모두 아시는 것 같아 질문을 못했었는데요, 담시간에 "씨앗문장 쓰기"라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씨앗이라는 말뜻으로 대강 짐작은 하지만, 대강이라서..^^)

    • 2022-03-29 08:37

      네^^

  • 2022-03-30 08:38

    노년에 대하여 두번째 파트 메모입니다. 

    나는 키케로의 말에 수긍하는가?

    이 책에서 키케로가 말하는 ‘쾌락’의 의미는 육체적 쾌락에 제한된 것 같다. 그렇다면 쾌락에서 해방된 노년에 감사한다는 말에 깊이 수긍한다. 욕망, 열망, 야망에 대한 갈구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자기 자신 곁에 있고, 소위 마음이 자신과 함께 사는 단계에 다다른다.”고 했는데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자아와 자신이 일체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거스르지 않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완전히 설득되지 못한 일종의 반항(?)으로 ‘쾌락’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사전적 의미에는 즐거움, 감성의 만족,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쾌락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나이듦에 대해 느끼는 박탈감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노래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늙어서 노래할 수 없다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던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가까이하기 어렵다면? 불행하다고까지 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감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카토가 말한 감사함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노년의 즐거움이라 한 것은 무엇일까?

    문득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의 말을 떠오른다. “나이가 드니 세상에 맛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 무기력하게 늙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노인이 되면 삶이 재미가 없어지는구나.’라고 생각되니 늙는 것이 두려웠다. 그때의 엄마 나이는 아니지만 나도 나이 들어보니 엄마의 감정이 조금은 이해된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했던 것만큼 삶이 재미없거나 무력하지는 않다. 즐거움이 박탈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명예나 소유, 열망에서 나온 산만한 가지들이 정리가 되면서 단순하고 간결해지니 (아닌데 내가 그리 되고자 추구하고 있는지도...) 여유를 누리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것이 카토가 말한 노년의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키케로는 죽음이 멀지 않은 노년을 불행하지 않다고, 아니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사후 세계가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케로의 말 중 깊이 와 닿는 것들이 있다.

    “마지막이 다가오면 지나간 것은 사라져버린다네. 덕과 옳은 행위로써 자네가 이룬 것만이 남는다네.”

    “올바르게 산 경우라면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삶이란 자연이 잠시 와서 머물도록 한 것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현재를 올바르게 살고 영원한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며 사는 노년이라면 잘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2022-03-30 09:36

      제가 파일로 만들었어요

  • 2022-03-30 08:59

    노년에 관하여 메모(12~23)

    2022.03.30. 황재숙

     

    나는 노인들에게는 쾌락에 대한 바람조차 없다고 믿네. 바라지 않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는다네.……바라는 자들에겐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화가 나겠지만, 포만감을 느끼고 물린 자들에겐 결여되어 있는 것이 더 기분 좋은 일이라네. 나는 바라지 않는 것이 더 즐거운 것이라고 말한다네.……욕망, 야망, 다툼, 불화, 열망, 이러한 것들과의 전쟁이 끝난 후 마음이 자기 자신 곁에 있고, 소위 마음이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몰두할 수 있는 학문(농사, 예술,)이 있다면 노년은 더없이 즐겁다네.

    : 「노년에 관하여」 P.77

     

    지난 1월 후원하는 수행처에서 일년등을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등을 다는 게 복을 비는 행위로 여겨져 매년 무시해 왔는데 이번에는 마음을 바꿔 달아 보기로 했다. 선원 재정에 보탬이 되는 일로 가볍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등 안에 넣을 자신의 서원을 알려달라고 하여 고민 끝에 ‘탐진치 소멸’을 적어 보냈다. 자주 듣기도 하고 나도 가끔 입에 올리는 말이지만 탐욕(원함), 성냄(불만족), 무지(어리석음)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그래, 소멸은 못 하더라도 이 말을 올해의 과제로 삼아 조금 줄여라도 보자.

     

    키케로는 바라지 않는 것이 즐거움이고, 욕망이 사라진 후에야 마음이 자신과 함께 하는 좋은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바라는 게 많다. ‘탐진치의 소멸’을 올해의 과제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수행의 진보를 바란다. 바람직 한 일이다. 문제는 그에 따른 실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수행하기로 마음먹었으나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달 정도 잘 하다가 어느 날부터 흐지부지해지고 만다. 이렇게 바라는 것과 현재 내 모습 사이에 불균형이 생길 때 나는 괴로워진다.

     

    또 나는 몸과 마음의 건강도 바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상태에서 크게 나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이 엄청난 욕심이란 걸 안다.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걸 바라니 허황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 몸은 서서히 낡아갈 것이 분명하니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천천히 약해져 갈 때 가장 두려운 게 뭡니까?”라는 질문에 모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느 날 누군가 내 엉덩이를 닦아 줘야만 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소.”나도 그렇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손으로 먹고, 입고, 씻고, 배설하는 것, 그것은 스스로 하고 싶다. 그걸 바라기 때문에 나는 두려운 것이다.

     

    이 두려움은 일찌감치 부모님의 노병사 과정을 본 데서 생겨난 것 같다. 나는 늦둥이로 태어나 오래전에 부모님의 노병사 과정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1975년에 70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3년을 고생하셨다. 마지막 1년은 거동이 불편하여 전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어머니가 그 일을 도맡아 했는데 무척 힘들어하셨다. 어머니는 2002년 93세로 돌아가셨는데 특별히 아픈 데는 없었다. 아주 서서히 몸의 기능이 나빠졌고 90세가 넘으면서 정신도 흐릿해져 갔다. 그때부터 조금씩 돌봄의 손길이 필요해졌다. 나는 어머니 나이를 거꾸로 세어 나가기 시작했다. ‘혼자 목욕을 못 하는군, 4살?’, ‘숟가락질이 서툴러졌어, 3살?’, 그러다가 마지막 5개월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렇게 거꾸로 나이를 먹으면서 두 분은 소멸해 갔다.

     

    그런 경험 탓인지 나는 죽는 것보다 늙고 병드는 것이 두려웠다. 시인 도널드 홀도 80대에 쓴 글에서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늙는다는 것은 흰머리나 주름살이 생기는 걸 뜻하지 않는다. 걸음을 못 걷고, 자신의 몸을 씻지 못하고,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말한다. 누가 그런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겠는가? 그러나 원하든 원치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다. 지금 여기서 그 마지막을 걱정한다고 무슨 묘책이 생기겠는가? 어리석은 일이다.

     

    이 두려운 느낌을 피하거나 거기에 빠져들지 말고 관찰해보기로 하자. 느낌은 느낌일 뿐이다. 어떤 상황이 되면 일어나서 잠시 내 안에 머무르다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다. 미래의 일을 끌어와서 걱정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하자. ‘앞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도움을 받자.’,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좋지만 남의 도움을 잘 받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생각을 여기에 이르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정희진은 「나이 듦 수업」에서 ‘꼭 곱게 늙어야 할까’라고 말했다. 곱게 늙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추하게 될까 봐 겁나고 두려워진다. 그 욕심도 내려놓아 보자. 지은 지 10년, 20년 된 집과 50년, 60년 된 집이 같겠는가? 아무리 잘 돌본다고 하더라도 그 세월만큼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멋스러운 고택도 있지 않은가? 아니 그것도 욕심이다. 바라는 것이 없는 삶에 다시 초점을 맞추어 본다. 나는 지금 꽤 살만하다. 끝.

     

    ※ 노년의 주름진(아름답지 않은)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그린 황재형 선생님의 그림을 첨부합니다.

    • 2022-03-30 09:40

      사진 보이게 하고 역시 파일로 만들어 첨부해요

       

  • 2022-03-30 17:05

    나이듦과 자기서사 두번째 시간, 메모 올립니다. 혹시 몰라서 PDF 파일도 같이 게시합니다. 잠시 후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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