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영화인문학 시즌1> F.W. 무르나우 <마지막 웃음(1924)>

띠우
2021-05-15 23:32
772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카메라

 

F.W. 무르나우의 마지막 웃음(Der Letzte Mann/1924)

 

영화가 탄생한 1890년대는 사회적으로 산업 자본주의의 확대 속에 노동 계급이 성장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대규모의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현대적 의미의 ‘대중’이 등장한 시기였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과학기술은 사람들의 노동 시간을 줄어들게 만들었다. 계급투쟁으로 인해 약간의 여유자금을 갖게 된 노동자들은 고향과는 다른 대도시의 일상을 견디기 위해 오락거리가 필요해졌다. 그러나 이들이 귀족이나 자본가들의 문화생활을 따르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는데, 때마침 등장한 영화는 단돈 1프랑으로 누릴 수 있는 놀라운 볼거리였다. 우리가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의 특수효과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리면 기술에 대한 놀라움이나 관심이 쉽게 이해가 된다. 영화는 지금도 콘서트나 발레, 뮤지컬 등에 비해 관람료가 싸고, 첨단 과학 기술의 영향을 받으며, 폭넓은 대중 예술이기에 늘 현대적인 성격을 띤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 영화는 <마지막 웃음(1924)>이다. 작년에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일출(1927)>을 만들었던,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 F.W 무르나우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이다. 초창기에 영화를 찍은 사람들은 카메라 초점을 맞춰 눈앞의 사물을 원래 크기대로 보이게 찍었다. 그러다 깊이가 깊어지면 전면에 있는 사물이 좀 더 강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원근법을 활용하게 된다. 독일 표현주의 감독들은 주제전달을 위해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를 조절하거나 카메라 높이와 앵글을 달리함으로써 원하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특히 무르나우는 다양한 카메라 기법을 시도한다. <마지막 웃음>의 도입부에서 카메라는 자전거 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회전문까지 다가가다가 멀어지면서 그 주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제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효과가 발생한다. 영화 곳곳에 선보이는 페이드, 디졸브, 이중인화, 거울을 이용한 왜곡 등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역동적인 움직임을 낳는다. 이 작품이 영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도전적인 카메라 기법들 때문이다.

 

-실험적인 카메라 기법의 도전-

 

1920년대 유럽사회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의 혼돈을 그대로 맞이하는 중이었다. 그중 독일은 전쟁 이후 몇 년 동안 발생한 많은 문제들에 직면해 있었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폭동과 내란이 연이어 일어났고, 국제적으로는 전쟁배상금을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예술의 탄생은 혼란스런 시대 속에서 등장하기 마련이다. 무르나우는 도전적인 카메라 기법을 쓰면서도 소시민의 이야기를 주제로 함으로써 독일 사회의 현재를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하층민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노인문제, 계급문제, 차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독창적인 카메라 기법을 통해 드러내 보인다. 공동체가 사라지며 도시의 삶에 적응해야 하는 주인공은 타자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가 강하게 집착하는 호텔 유니폼은 권력중심의 사회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후 나치즘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독일 역사를 보면, 당시 무르나우가 느꼈던 불안감은 예견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는 좋은 영화를 보게 되면 그 이야기 속에 차츰 빠져든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동적인 관객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좋은 영화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같다). 곧 자신이, 자신에게 보여지는 어떤 특정한 프레임 속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보여지는 영화 장면에 자신의 시점을 개입하게 된다. 어떤 감독은 의도적으로 자기 시선을 카메라에서 분리해냄으로써 수동적인 관객의 뒤통수를 한 대씩 치기도 한다. 당신이 바라보는 것은 누구의 시선이며, 어떠한 프레임 속에 움직이고 있느냐고 되묻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영화를 본다는 것은 보여지는 것에 대한 우리들의 해석이 개입되는 과정이며, 이 해석은 볼 때마다 달라지기도 한다(아이다호를 다시 보니 키에누 리브스가 다시 보이는 것처럼). 표면적으로 <마지막 웃음>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하류층에 속하는 주인공은 호텔 유니폼을 입는 것과 동시에 상류층과 연결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에 대한 강한 자부심으로 살던 주인공이 나이와 체력의 한계로 화장실 일자리로 쫓겨나게 되면서 사건은 발생한다. 불안과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그를 향해 비웃고 멸시에 찬 시선을 보낸다. 이를 불쌍히 여긴 감독에 의해 주인공은 백만장자로 인생역전을 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데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하다. 왜 주인공이 부자가 되어서 잘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웃어도 사람들의 시선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 주인공을 둘러싼 시선들 -

 

차츰 영화가 예술로서 자리잡게 된 것은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단순재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웃음>은 대사뿐만 아니라 자막도 거의 없다. 영화는 당시 시대의 불안정함으로 인한 정신적인 분열이나 고뇌, 초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태를 자연스런 편집으로 연결하기에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카메라의 시선은 타자의 시선을 옮겨오고 있는데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말로 하는 우리는 이런 과정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감독은 동시대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객관적인 사실 전달만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을 빛과 어둠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더라도 사회구조를 둘러싼 근본적 모순이 변한 게 아니라 씁쓸하다. 끊임없이 주변 시선에 의해 자기를 검열하고, 인정받으려 하고, 헛된 꿈을 꾸는 사람들을 보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유니폼을 잃은 주인공이 보여주는 심리, 그것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카메라에 의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나는 순간, 카메라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은 융합을 이루며 시대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

 

- 대도시 한복판에 자리잡은 대형입시학원 -

 

움직이는 사진, 즉 영화가 가진 특이성은 (타자에 의해)보여지는 것과 (자신이)보는 것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된다. 내가 이 영화를 볼 때쯤 수험생이었던 아이가 수능공부에 대한 아쉬움을 이유로 대학등록을 포기하고 재수를 결정했다. 비싼 재종학원에 호기롭게 등록하더니만 며칠 만에 독학재수를 하겠다며 일부 학원비를 받아왔다. 뭐 이리 결정들이 쉬운지, 혼돈의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유니폼에 집착하는 주인공과 내가 겹쳐져 보였다. 사교육 없이 키워온 아이가 학원에 당연히 적응할 것이라거나, 본인 선택이니 빡세게 학원생활하면 결과도??(띠로리~~). 하,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지지고 볶고 있으면서도 어느새 나는 사회의 욕망구조에 빠져들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결국 영화를 통해 1920년대 독일 사회가 아닌, 2021년 한국의 도시민으로써 불안정한 나의 삶을 들여다본 셈이다. 좋은 영화란 보여지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시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타자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 속에서 나를 건져내어 서로의 좋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했으니 말이다.

 

<지켜봄으로써 당신은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 요기 베라>

 

 

 

 

댓글 1
  • 2021-05-22 17:29

     

    비싼 재종학원이 몰려있는 노량진으로 매일 같이, 

    그들과 함께 출근을 한다.

    7시가 채 되기도 전에 그들은, 나 역시도, 집에서 출발했을 것이고,

    어떠한 유니폼을 입기 위해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렇게 아침에 마주친 우리들은,

    점심에 김가네에서 김밥을 나눠먹는다.

    난 멸추김밥, 그들은 샐러드김밥.

    칼퇴하는 날에는 그들을 마주칠 수 없다.

    왜냐하면 9시가 넘어야 학원이 끝나기 때문이다.

    야근하면서 이어폰을 꼽고 우리들은,

    집으로 들어간다. 

     

    무르나우 감독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또다른 작품이었다.

    지금봐도 신선한 장면들이 돋보이는데,

    아마도 지용군이 함께 봤다면 감탄하며 무릎을 쳤을까?

    손 씻고 수건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며,

    그 옆에서 수건을 건내며 팁을 받는 당시의 모습들은 씁쓸했다. 

    이 영화는 애초의 의도대로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로 나아갔어야 했는데,

    얼렁뚱땅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버리는 장면들은,

    <하녀>에서 '사실 이건 뻥이지롱~'하는 김진규의 대사처럼 다소 허무했다.

    그럼에도 무르나우가 궁금하다면 꼭 봐야 하는 영화 중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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