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시즌3> 이창동 감독의 '시'(poetry, 2010)

청량리
2020-12-18 11:30
469

 

<영화와 종교>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詩)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해보니 잘 안 써진다. 그러나 사물의 이름이나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던 그녀의 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자가 참가하는 문예교실에서 김용택 시인(극중 김용탁)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럴 때 느껴지는 무언가를 적은 것이 바로 시(時)이다. 이창동 감독은 이제 영화가 시작인데, 떡밥처럼 숨기는 게 없다. 김용택 시인의 말은 감독의 전하려는 핵심이기도 하다. 미자는 식탁에 앉아 사과를 바라보고, 나무 밑에서 앉아 시가 떠오르길 기다리지만, 여전히 ‘진짜로’ 보지 못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것들은 자신의 시를 위한 사과이고, 나무일뿐이다.

 

이어서 영화는 죽은 이가 미자의 손자와 같은 중학교 여학생이며, 손자가 성폭행 가해자 중 한 명임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충격에 빠진 미자는 죽은 여학생에 대한 애도의 시를 써보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아마도 미자에게 여학생은 ‘애도’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김용택 시인의 관점을 빌리자면 그건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과’에 가깝다.

 

 

 

 

영화 <시>(2010)는 이창동 감독의 전작인 <밀양>(2007)과 함께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연장선에 놓여있다. 정치가 영화를 다루는 방식과 유사하게 종교 역시 영화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종교영화’는 대부분 특정 종교의 복음과 전도를 목적으로 하며, 신에 대한 믿음이 곧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강조한다.

 

원하는 돈을 못 받은 유괴범은 신애(전도연)의 아들을 죽이게 되고, 이미 교통사고로 남편마저 잃은 그녀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에 빠진다. 이때 그녀 앞에 교회의 문이 열리고 신애는 새 삶을 얻은 듯하다. 그녀의 믿음은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고, 어떻게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까? 유괴범을 용서하는 것이 자신에게 보여준 신의 응답이라 생각한 신애는 감옥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철창 너머의 그로부터 자신도 하나님을 만나 용서를 받았다는 신앙고백을 듣자 신애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를 용서하는 건 자신이어야 하는데, 자기편인 줄 알았는데, 남편과 아들을 데려갔고 자신마저도 구원하지 않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신애는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사과’를 깎아 먹던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위를 바라본다. “(하나님) 보고 있어요?”

 

신애는 구원받지 못하고, 미자도 아직 시를 쓰지 못한다. 여기에 유사한 실패의 반복으로 보이는 지점이 있다. 유괴범(밀양)과 여학생(시)을 진짜로 보지 못하고, 구원과 시의 소재로서 마주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인간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는 존재의 삶과 죽음이다. 어려운 난제 앞에서 종교는 평온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듯하다. 종교영화는 그러한 신앙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주로 유일신 사상인 기독교에 해당하겠으나, 불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거대한 핵무기(히로시마)에서 아주 작은 바이러스(코로나)까지, 굳이 전광훈 목사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그 해답을 ‘종교’에서는 여전히 못 찾고 헤매고 있다. 결국 풀리지 않는 난제의 ‘해법’이 아닌, 그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태도와 마주하려 할 때 성찰이 일어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창동 감독의 두 영화 <밀양>과 <시>는 ‘종교영화’가 아니다. <밀양>과는 달리 <시>에서는 기독교나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배경도 없지만, 그러나 두 영화 모두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시>에서 종교적 성찰의 문제를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시가 죽어가는 이 시대에, 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시일 수도 있고, 영화일 수도 있고, 우리의 눈에 미처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란 아름다운 것이다. 작지만 가치 있는 것,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자는 죽은 소녀를 떠올리기 위해 몸을 던진 다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애꿎은 모자만 개천으로 빠진다. 비까지 쏟아지자 미자는 온몸이 젖은 채 허망하게 휘둥거린다. 그때 미자에게 스치고 지나가는 뭔가가 있다. ‘연민’이었을까? 그날 미자는 자신이 간병하고 있는 김노인을 찾아가 그의 성적욕구를 해결해 준다. 애초에 합의금 5백만원을 바랬던 것일까, 아니면 죽은 여학생에 대한 마음이 김노인에게 전이된 것일까? 미자는 모든 껍데기를 벗고 마지막으로 시 한편을 남긴다.

 

 

 

 

<밀양>에서 신애는 결국 정신병원에 가지만, <시>에서 미자는 시 한편을 완성한다. 아무래도 이창동 감독은 존재론적 문제를 종교적(외부적) 구원이 아니라 내면적(종교적) 성찰을 통해 찾으려 하는 듯하다. 그런데, 왜 ‘시(詩)’였을까?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드러내는 것인데, 시야말로 그런 예술의 의미를 담고 있죠. 그래서 미자가 시를 쓰느냐, 소설을 쓰느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당연히 시를 써야 하죠. 그래서 예술을 한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고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예술과 종교의 공통분모는 여기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응시하며, 그러한 태도로 현실과 마주한다. 종교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개인의 구원으로 나아갈 수 없듯이, 예술도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다. 어쩌면 영화가 종교든 정치든 그 수단으로 포섭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그러한 현실에 바탕을 둔 예술성이 아닐까?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말했다. “한 예술가가 이야기하는 세계가 절망적이면 절망적일수록 그는 아마도 희망 없는 세계와 대치되는 이상을 그만큼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럼에도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드러내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바닥이 신발 바닥을,

혹은 발가락을 받아들이는 일

발바닥이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아는 일

 

나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한다

옷들이 공손하게 옷장 안에서 기다리는 일

비누가 접시 위에서 조용히 말라 가는 일

수건이 등의 피부에서 물기를 빨아들이는 일

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

그리고 창문보다 너그러운 것이 어디 있는가

 

 

<평범한 사물의 인내심> / 팻 슈나이더

 

댓글 2
  • 2020-12-20 23:30

    영화 밀양에서 신애는 퇴원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미용실에 들러서 머리를 자르지 않나요? (아마도 새출발을 하는 의미에서?)
    머리칼을 자르다가 미용사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의 딸이란 것을 알고 참다가 미용실을 뛰쳐 나오죠.
    집에서 다 못자른 머리칼을 자르려는데 송강호가 와서 거울을 들어줍니다.
    그리고 가느다랗게 흐르는 그늘진 수채에 한줄기 햇볕이 비추지요.(密陽)
    구원은 잘 모르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구체적인 그(송강호)에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푸코양생팀의 공부처럼 결국에는 자기구원으로 가야되겠지만 말입니다.

  • 2020-12-23 12:53

    그런데 송강호가 신애에게 신애 자신의 모습이 잘 보이도록 거울을 들어 준 것이 아마도 신애 자신을 잘 보라는 감독의 메세지였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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