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시즌3> 켄 로치의 '미안해요, 리키(2019)’

띠우
2020-12-07 22:48
357

영화와 정치

 

다시 카메라를 든 감독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켄 로치 감독

 

요즘 정치시사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야의원들은 논리없이도 목소리를 키워댑니다. 대부분 현실적인 정책은 없고 확실치 않은 시시비비만 있을 뿐이죠. 대의민주주의를 앞세워 정치인들이 하는 말 중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국민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비아냥대며 국민이 심판할 거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반사적으로 속이 뒤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들에게 나의 삶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무기력해지면서 기분전환 겸 영화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 고르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나름 취향은 있어서 아무 영화나 보기는 싫고, 내용도 연기도 마음에 드는 영화를 넷플릭스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에서 찾는 것도 일이니까요.

 

 

그러다 켄 로치 작품과 같은 영화를 고르면 마음은 더 심란한 쪽으로 기울게 마련입니다. 그는 이 땅에 존재하지만 배제되고 있는 소외된 삶을 끊임없이 포착해가는 감독이기 때문이겠죠.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배제한 채 시행되는 신자유주의 복지시스템의 이면을 다루었다면, 이번에 보게 된 <미안해요, 리키>에서는 요즘 들어 심각한 상황을 보고 있는 ‘플랫폼 노동’의 이면을 비추고 있습니다. 플랫품 노동은 임시직 위주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와 맞물려 돌아갑니다. 기존 노동 시장이 정규직구조 바탕이었다면, 긱 경제에서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공급되는 프리랜서 혹은 근로자를 중심으로 시장이 돌아가지요. 이는 공유경제라는 말로 둔갑하기도 하여 우리의 눈을 가리기도 합니다.

 

주인공 리키는 한때 건축업에 종사했지만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해고된 중년 남성입니다. 영화 초반, 그가 자기 장점을 성실함이라고 내세웁니다. 전개될 이야기에 어두운 그늘이 벌써 드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택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영국 뉴캐슬이지만, 사람들이 삶을 꾸려가는 방식은 인도의 방갈로르든 중국 상하이든 용인 수지든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어디나 택배 노동자가 있고 놀봄 노동자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사는 공간이나 언어가 우리와 분명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삶 자체의 비루함과 막막함은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만나는 택배차들의 운전자가 바로 그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플랫폼 관리자 멀로니는 리키가 고용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서 작성이나 출근카드도 필요없는 ‘자기사업자’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스스로 얼마나 성실하게 배송하느냐에 따라 배송수수료가 달라진다고... 영화 후반부에 밀어닥친 리키의 불행 앞에서도 멀로니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합니다. 신자유주의 구조 속에서 성실하게 사는 멀로니와 리키, 영화가 흘러갈수록 저는 이들 중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리키는 아내 에비의 차까지 팔며 택배 사업에 뛰어듭니다. 빚을 갚고 가족들이 머물 집을 마련하고 싶지만 리키에게 돌아온 현실은 차갑기만 하죠. 하루 14시간, 6일의 쉴 틈 없는 노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2분만 자리를 비워도 울려대는 택배 단말기는 빈 물병에 볼일을 보게 만들고 가족들은 서로에게 거칠어집니다. 어쩌면 제가 딛고 있는 현실 기반 역시, 단 한 번의 균열로 무너져 내릴지 모르겠네요.

 

 

한편, 사회복지 차원의 서비스 노동자인 애비는 밤늦게까지 수많은 가정을 돌아다니며 노인과 장애인을 간병해야 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집들을 방문하기 위해 산 자동차마저 리키의 배달을 위해 팔았으니 애비의 노동 강도는 더 세질 수밖에 없죠. 간병에 정성을 들이려 해도 과도한 하루 간병 할당량으로 인해 그녀는 시간과 몸, 마음마저 착취당합니다. 거기에 그녀는 가족도 돌봐야 하죠. 일탈로 치닫는 아들에 대해 리키는 강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애비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성애를 바탕으로 하여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남편의 사고 이후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애비는 유리조각처럼 부서져 내립니다.

 

 

 

사고로 인해 대체기사를 구하지 못하면 물어야 하는 벌금과 벌점, 대출금은 폭행당해 몸도 가누지 못하는 리키를 다시 일터로 내몹니다. 분노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앞서 드리워졌던 그늘아래 폭우가 쏟아집니다. 리키의 성실함이 그의 절박함과 맞물리면서 우리나라 상황이 겹쳐집니다. 현대 사회를 반영하는 가장 동시대적인 예술로서 “모든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했던 고다르의 말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는 이미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일뿐 정치를 움직이는 힘을 즉각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중매체라는 영화의 특성상 소비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한 편의 영화가 우리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많은 사람들이 토론을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면 정권의 정책과 어떤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보수 정권은 여전히 (노동자의) 배고픔을 무기로 사용한다. 단 1인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영화나 책, 음악 등 문화로 토론을 시작할 수 있지만 변화를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정권의 생각을 영화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에 반대하는 의견은 커지고 있다."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겠다던 켄 로치가 다시 카메라를 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정치’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치적’입니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리키 같은 긱(gig)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려면 당장 무료급식소로 달려가 보라"고 합니다. "자원봉사자, 여러 기관들의 연대를 볼 수 있다"며 그는 "개인 중심으로 고립된 삶의 방식은 큰 문제이며, 그게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고 함께 활동하기 어렵게 한다고 조언합니다. 코로나 시대, 플랫폼 서비스는 더더욱 늘어가겠지요 앱이나 문자를 통해 주문하고 비대면으로 모든 일이 끝나버리는 사회, 두렵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일상이. 그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요. 

 

 

영화의 원제인 <쏘리 위 미스드 유(Sorry We Missed You)>는 택배기사들이 부재중인 집에 붙여두는 메모입니다. 우리말로 <미안해요, 리키>라고 번역한 것은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리키 가족을 떠올리면 이해가 됩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인간 혹은 인간다움을 놓치고 있다는 비아냥처럼 보인다면 억지일까요. 영화가 끝난 후에도 리키나 에비가 분노조차 마음껏 하지 못한 현실이 우리 앞에 그대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과로사하는 젊은이들 앞에서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런 때일 수록 우리는 서로 만나기 위해 삶의 새로운 방식을 발명해야 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잃어버리는 인간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플랫폼 서비스로 혼자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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