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나루터는 어디 있는가   장저와 걸익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었다. 공자께서 그곳을 지나가다 자로에게 나루터를 묻게 하셨다. 장저가 말했다. “저 수레에서 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로가 말했다. “공구이십니다.” 장저가 말했다. “저 분이 노나라 공구인가?” 자로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장저가 말했다. “그 분은 나루터를 알 것이다.” 자로가 걸익에게 나루터를 물었다. 걸익이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자로가 말했다. “중유라고 합니다.” 걸익이 말했다. “그대가 바로 노나라 공구의 제자인가?” 자로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걸익이 말했다. “강물이 도도히 흘러가듯 천하가 모두 그러하다. 누가 그것을 바꾸겠는가? 또한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곰방메로 흙 덮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자로가 돌아와 이 일을 말씀드렸다. 공자께서 실망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새와 짐승과는 함께 무리를 지을 수 없다. 내가 사람의 무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누구와 함께 하겠느냐?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너희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長沮曰 夫執輿者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 曰 是知津矣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輟 子路行以告 夫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羣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논어』「미자,6」   초(楚)나라를 떠나 제자들과 위(衛)나라로 돌아가던 공자 일행은 길을 잃었다. 공자는 하는 수 없이 근처 밭을 갈고 있던 농부들에게 길을 묻기로 했다. 자로가 농부들에게 다가가 나루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멀리...
나루터는 어디 있는가   장저와 걸익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었다. 공자께서 그곳을 지나가다 자로에게 나루터를 묻게 하셨다. 장저가 말했다. “저 수레에서 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로가 말했다. “공구이십니다.” 장저가 말했다. “저 분이 노나라 공구인가?” 자로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장저가 말했다. “그 분은 나루터를 알 것이다.” 자로가 걸익에게 나루터를 물었다. 걸익이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자로가 말했다. “중유라고 합니다.” 걸익이 말했다. “그대가 바로 노나라 공구의 제자인가?” 자로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걸익이 말했다. “강물이 도도히 흘러가듯 천하가 모두 그러하다. 누가 그것을 바꾸겠는가? 또한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곰방메로 흙 덮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자로가 돌아와 이 일을 말씀드렸다. 공자께서 실망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새와 짐승과는 함께 무리를 지을 수 없다. 내가 사람의 무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누구와 함께 하겠느냐?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너희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長沮曰 夫執輿者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 曰 是知津矣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輟 子路行以告 夫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羣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논어』「미자,6」   초(楚)나라를 떠나 제자들과 위(衛)나라로 돌아가던 공자 일행은 길을 잃었다. 공자는 하는 수 없이 근처 밭을 갈고 있던 농부들에게 길을 묻기로 했다. 자로가 농부들에게 다가가 나루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멀리...
진달래 2022.11.18 |
조회 328
논어 카메오 열전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 일을 증언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줍니다. 정직은 바로 그 가운데 있습니다.”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논어』 「자로」18   마지막 유랑지   공자는 노(魯)나라에서 쫓겨난 후 자기를 등용해줄 군주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주유했다. 첫 번째로 도착한 위(衛)나라에 잠깐 희망을 가졌으나, 곧 후계 계승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진(陳)나라와 채(蔡)를 지나며 공자는 초(楚)나라 소왕(昭王)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초나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공자는 섭공을 만났다. 섭공은 『논어』에 세 번 등장한다. 한 번은 자로에게 공자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고, 다음엔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섭공이 공자와 ‘정직(直)’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한다. ‘정직(直)’에 대한 공자와 섭공의 이 대화는 이후 『논어(論語)』 안에서도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섭공과 만난 공자는 그 길로 초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공자는 초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 초 소왕이 전투 중에 갑자기 죽었고 이후 초나라 정세가 급격히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공자는 다시 발길을 북쪽으로 돌렸다. 공자의 그의 제자들은 위나라로 가던 중에 노나라에서 돌아와도 좋다는 명을 받고, 14년의 긴 유랑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공자는 긴 유랑 생활 중에 현실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굽힌 적이 없었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 일을 증언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줍니다. 정직은 바로 그 가운데 있습니다.”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논어』 「자로」18   마지막 유랑지   공자는 노(魯)나라에서 쫓겨난 후 자기를 등용해줄 군주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주유했다. 첫 번째로 도착한 위(衛)나라에 잠깐 희망을 가졌으나, 곧 후계 계승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진(陳)나라와 채(蔡)를 지나며 공자는 초(楚)나라 소왕(昭王)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초나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공자는 섭공을 만났다. 섭공은 『논어』에 세 번 등장한다. 한 번은 자로에게 공자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고, 다음엔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섭공이 공자와 ‘정직(直)’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한다. ‘정직(直)’에 대한 공자와 섭공의 이 대화는 이후 『논어(論語)』 안에서도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섭공과 만난 공자는 그 길로 초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공자는 초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 초 소왕이 전투 중에 갑자기 죽었고 이후 초나라 정세가 급격히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공자는 다시 발길을 북쪽으로 돌렸다. 공자의 그의 제자들은 위나라로 가던 중에 노나라에서 돌아와도 좋다는 명을 받고, 14년의 긴 유랑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공자는 긴 유랑 생활 중에 현실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굽힌 적이 없었다....
진달래 2022.09.18 |
조회 733
논어 카메오 열전
남자(南子)와 공자의 만남   공자께서 남자(위영공의 부인)를 만나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맹세하며 말씀하셨다. “내가 잘못된 짓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옹야,26)   남자(南子)는 위나라 영공(靈公)의 부인으로 송(宋)나라 사람이다. 춘추시대 군주의 부인을 부를 때는 자기 나라의 성을 붙여서 불렀는데 예를 들어 애강(哀姜)의 강(姜)은 제(齊)나라의 성으로 제나라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남자(南子)의 자(子)는 송나라 성(姓)이다. 위(衛)나라는 『논어』에서 노(魯)나라 만큼이나 중요하게 등장하는 곳으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14년간의 주유 생활 중 거의 베이스캠프와 같은 의미를 지닌 곳이다. 공자가 머물렀을 당시 위나라 영공은 나이가 많았다. 영공의 후비였던 남자(南子)는 노쇠한 남편을 대신해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군주만큼 권력을 가진 남자(南子)가 위나라에서 등용되기를 원하는 공자를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벼슬을 구하는 사(士)라면 당연히 그 나라에 힘 있는 귀족에게 줄을 대어 군주를 만났기 때문이다. 공자가 영공을 만난 것과 남자(南子)를 만난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를 자로가 싫어했다고 하고, 거기다 공자가 “내가 잘못된 짓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予所否者 天厭之)”라고 했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다. 공자 후대의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다. 『논어』에 남은 이 한 문장은 이후 수많은 추측들을 불러 일으켰고, 그렇게 공자와 남자(南子)의 만남은 공자 일생에 가장 흥미로운 스캔들이 되었다.   영화 <공자> 중에서   자로가...
남자(南子)와 공자의 만남   공자께서 남자(위영공의 부인)를 만나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맹세하며 말씀하셨다. “내가 잘못된 짓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옹야,26)   남자(南子)는 위나라 영공(靈公)의 부인으로 송(宋)나라 사람이다. 춘추시대 군주의 부인을 부를 때는 자기 나라의 성을 붙여서 불렀는데 예를 들어 애강(哀姜)의 강(姜)은 제(齊)나라의 성으로 제나라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남자(南子)의 자(子)는 송나라 성(姓)이다. 위(衛)나라는 『논어』에서 노(魯)나라 만큼이나 중요하게 등장하는 곳으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14년간의 주유 생활 중 거의 베이스캠프와 같은 의미를 지닌 곳이다. 공자가 머물렀을 당시 위나라 영공은 나이가 많았다. 영공의 후비였던 남자(南子)는 노쇠한 남편을 대신해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군주만큼 권력을 가진 남자(南子)가 위나라에서 등용되기를 원하는 공자를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벼슬을 구하는 사(士)라면 당연히 그 나라에 힘 있는 귀족에게 줄을 대어 군주를 만났기 때문이다. 공자가 영공을 만난 것과 남자(南子)를 만난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를 자로가 싫어했다고 하고, 거기다 공자가 “내가 잘못된 짓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予所否者 天厭之)”라고 했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다. 공자 후대의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다. 『논어』에 남은 이 한 문장은 이후 수많은 추측들을 불러 일으켰고, 그렇게 공자와 남자(南子)의 만남은 공자 일생에 가장 흥미로운 스캔들이 되었다.   영화 <공자> 중에서   자로가...
진달래 2022.07.26 |
조회 543
논어 카메오 열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루는 번지가 공자에게 인(仁)이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라고 알려 주었다. 번지는 다시 안다는 것(知)은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사람을 아는 것(知人)’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런데 번지의 얼굴을 얼핏 보니, 자기가 해 준 말이 무슨 말인지 영 감을 못 잡은 듯하였다. 공자는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 부정한 사람을 바르게 만들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말해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번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침 지나가고 있던 자하를 불러 물어보았다. 내가 이러이러한 것을 물었더니 스승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그 말을 듣고 자하가 말했다.   “훌륭한 말씀이군요!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리실 때 많은 사람 중에 선발하여 고요를 등용하시니 어질지 못한 사람이 멀리 사라졌습니다. 탕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많은 사람 중에 선발하여 이윤을 등용하시니 어질지 못한 사람이 멀리 사라졌습니다.”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樊遲退 見子夏 曰 鄕也吾見於夫子而問知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何謂也 子夏曰 富哉言乎 舜有天下 選於衆 擧皐陶 不仁者遠矣 湯有天下 選於衆 擧伊尹 不仁者遠矣) 『논어』 「안연,22」   번지가 안다는 것(知)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공자가 대답한 ‘사람을 안다는 것(知人)’은 『논어』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1편인 「학이(學而)」에는 첫 장에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人不知而不慍)”라는 문장이, 마지막 장에는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루는 번지가 공자에게 인(仁)이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라고 알려 주었다. 번지는 다시 안다는 것(知)은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사람을 아는 것(知人)’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런데 번지의 얼굴을 얼핏 보니, 자기가 해 준 말이 무슨 말인지 영 감을 못 잡은 듯하였다. 공자는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 부정한 사람을 바르게 만들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말해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번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침 지나가고 있던 자하를 불러 물어보았다. 내가 이러이러한 것을 물었더니 스승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그 말을 듣고 자하가 말했다.   “훌륭한 말씀이군요!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리실 때 많은 사람 중에 선발하여 고요를 등용하시니 어질지 못한 사람이 멀리 사라졌습니다. 탕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많은 사람 중에 선발하여 이윤을 등용하시니 어질지 못한 사람이 멀리 사라졌습니다.”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樊遲退 見子夏 曰 鄕也吾見於夫子而問知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何謂也 子夏曰 富哉言乎 舜有天下 選於衆 擧皐陶 不仁者遠矣 湯有天下 選於衆 擧伊尹 不仁者遠矣) 『논어』 「안연,22」   번지가 안다는 것(知)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공자가 대답한 ‘사람을 안다는 것(知人)’은 『논어』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1편인 「학이(學而)」에는 첫 장에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人不知而不慍)”라는 문장이, 마지막 장에는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진달래 2022.05.29 |
조회 316
논어 카메오 열전
공자는 양화를 피했다   양화가 공자를 만나고자 했다. 그런데 공자는 매번 그를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양화는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삶은 돼지고기를 선물로 보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선물을 한 사람을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 예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양화를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난처해진 공자는 꾀를 내어 자기도 양화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집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례를 하고 그의 집을 나서는데, 공교롭게도 막 집으로 돌아오던 양화와 마주치게 되었다. 공자를 본 양화가 그를 불렀다. “이리 와 보십시오. 제가 당신과 할 말이 있습니다.” 공자가 다가가자 양화가 말했다.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내버려 둔다면 인(仁)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나랏일 하기를 좋아하면서 때를 놓친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해와 달이 흘러가니,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나도 장차 벼슬을 하겠습니다.” (陽貨欲見孔子 孔子不見 歸孔子豚 孔子時其亡也 而往拜之 遇諸塗 謂孔子曰 來 予與爾言 曰 懷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 曰 不可 好從事而亟失時 可謂知乎 曰 不可 日月逝矣 歲不我與 孔子曰 諾 吾將仕矣) 『논어』 「양화,1」   양화(陽貨)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논어』에 이 한 편뿐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서로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선물을 주고, 또 인사를 가는 장면이 한 편의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했다. 양화는 「자한」편에 공자가 광 땅에서 죽을 뻔 했던 일(子畏於匡)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광...
공자는 양화를 피했다   양화가 공자를 만나고자 했다. 그런데 공자는 매번 그를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양화는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삶은 돼지고기를 선물로 보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선물을 한 사람을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 예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양화를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난처해진 공자는 꾀를 내어 자기도 양화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집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례를 하고 그의 집을 나서는데, 공교롭게도 막 집으로 돌아오던 양화와 마주치게 되었다. 공자를 본 양화가 그를 불렀다. “이리 와 보십시오. 제가 당신과 할 말이 있습니다.” 공자가 다가가자 양화가 말했다.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내버려 둔다면 인(仁)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나랏일 하기를 좋아하면서 때를 놓친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해와 달이 흘러가니,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나도 장차 벼슬을 하겠습니다.” (陽貨欲見孔子 孔子不見 歸孔子豚 孔子時其亡也 而往拜之 遇諸塗 謂孔子曰 來 予與爾言 曰 懷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 曰 不可 好從事而亟失時 可謂知乎 曰 不可 日月逝矣 歲不我與 孔子曰 諾 吾將仕矣) 『논어』 「양화,1」   양화(陽貨)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논어』에 이 한 편뿐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서로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선물을 주고, 또 인사를 가는 장면이 한 편의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했다. 양화는 「자한」편에 공자가 광 땅에서 죽을 뻔 했던 일(子畏於匡)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광...
진달래 2022.04.04 |
조회 337
논어 카메오 열전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했겠는가?”(求仁而得仁 又何怨) 「술이,14」 중   백이숙제 이야기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국(孤竹國) 군주의 아들들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맏이인 백이가 아니라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숙제는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했다. 이에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이라면서 나라 밖으로 도망을 갔다. 숙제도 왕위에 오르려 하지 않고 도망을 가, 결국 고죽국 사람들은 중간 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고죽국을 나온 두 사람은 서쪽의 서백창(西伯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서백창은 죽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막 은(殷)나라의 주(紂)왕을 치러 갈 참이었다. 백이와 숙제는 이에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간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효(孝)라 할 수 없습니다. 신하의 신분으로 군주를 치러 가는 것은 인(仁)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무왕의 곁에 있던 신하들이 그 둘을 죽이려고 했다. 이 때 강태공이 말리며 말했다.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義人)이다.” 전쟁에 나간 무왕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천하의 사람들이 주나라를 따랐지만 백이와 숙제만이 주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들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살다 굶어 죽었다.『사기열전』「백이열전」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첫 번째 편인 「백이 열전」 속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이다. 자기들의 뜻을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은 이 두 사람의 행동은 이후 지조 있고 청렴한 선비의 모범으로 칭송받았다....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했겠는가?”(求仁而得仁 又何怨) 「술이,14」 중   백이숙제 이야기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국(孤竹國) 군주의 아들들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맏이인 백이가 아니라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숙제는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했다. 이에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이라면서 나라 밖으로 도망을 갔다. 숙제도 왕위에 오르려 하지 않고 도망을 가, 결국 고죽국 사람들은 중간 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고죽국을 나온 두 사람은 서쪽의 서백창(西伯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서백창은 죽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막 은(殷)나라의 주(紂)왕을 치러 갈 참이었다. 백이와 숙제는 이에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간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효(孝)라 할 수 없습니다. 신하의 신분으로 군주를 치러 가는 것은 인(仁)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무왕의 곁에 있던 신하들이 그 둘을 죽이려고 했다. 이 때 강태공이 말리며 말했다.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義人)이다.” 전쟁에 나간 무왕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천하의 사람들이 주나라를 따랐지만 백이와 숙제만이 주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들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살다 굶어 죽었다.『사기열전』「백이열전」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첫 번째 편인 「백이 열전」 속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이다. 자기들의 뜻을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은 이 두 사람의 행동은 이후 지조 있고 청렴한 선비의 모범으로 칭송받았다....
진달래 2022.02.13 |
조회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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