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리뷰1] 나와 그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작은물방울
2022-05-09 09:52
365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김안젤라, 창비, 2021년)

잘못 알았다. 제목만 읽고 다이어트에 관한 책 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17년간 폭식증을 앓고 있는 이가 겪었던 경험과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마른 몸에 대한 선망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통과해 갔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글을 읽는 동안 내 주변에서 보았던 폭식 후 입에 손을 넣어 화장실에서 토를 하던 친구들이 떠올랐고 그 모습을 일부러 모른 척했던 나도 발견했다.

 

처음 폭토(폭식 후 토를 하는 행위)를 알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 얘의 이름과 나의 이름은 거의 비슷해서 출석을 부를 때 그 얘의 이름 다음에 내가 호명되었다. 그 얘의 첫 인상은 ‘귀엽다’였다. 그 아이의 꿈은 VJ였고 최대한 빨리 잘생긴 남자친구를 만들기였다. 봄처럼 발랄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 얘는 어느 순간부터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았다. 가끔 소풍 오듯 학교를 왔는데 볼 때마다 살이 빠져있었다. 입학 할 때 나와 비슷한 키와 몸집을 가졌었는데 초여름쯤, 만나니 나의 손목 굵기의 팔뚝을 드러냈다. 한눈에도 너무 마른 그녀는 더운 날인데도 불구하고 긴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난 슬쩍 드러난 팔목에서 이상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짙고 검은 멍자국! 난 남친의 폭력을 떠올렸지만 그녀의 입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무언가를 먹고 나면 토를 해야 한다고... 먹었는데 토하지 못하면 손이 점점 깊숙하게 들어간다고... 깊숙하게 넣은 손 때문에 손목이 이빨에 걸려 매번 멍이 든다고.....

 

그리고 대학교 4학년 때. 연극 동아리 선배였던 그녀는 집안 형편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나와 함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함께 술로 미래의 걱정을 덜어내던 그녀가 어느 날부턴가 모래주머니를 차고 또는 랩을 감고 등산을 하기 시작했고 기름진 안주 대신 오이만 집어 먹었다. 써클룸에서 삼겹살을 굽는 날.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킨 날....나는 화장실(동아리 방은 5층이었건만 그녀는 3층 화장실에 있었다)에서 오래 동안 게워내려 노력(?)하는 그녀의 소리를 들었다. 중성적인 매력을 가졌었던 그녀는 이제 여자처럼 보인다거나 예뻐졌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남자 배우 말고 여자 배우해도 되겠다는 말(당시 동아리에 남학생들이 없어 키가 크거나 몸집이 있는 여학생들이 남자 배우를 맡았었다.)을 들었다. 그런 소리를 하는 상대방의 입을 소주잔을 부딪쳐 닫도록 만들었던 그녀였건만... 힘이 없어서였는지 희미하게 웃었다.

 

애니타 존스턴은 <달빛 아래서의 만찬>에서 본인이 만난 섭식장애 환자들은 특별히 더 까다롭거나 반항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몇몇은 다른 이들보다 똑똑하고 재능있고 창조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스스로를 무능력하고 초라하며 재미없는 존재라고 여겼다고 한다.

존스턴의 말처럼 나는 똑똑하고 재능 있고 창조적인 아이였다. 그리고 스스로를 무능력하고 초라하며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스스로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오로지 외모뿐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얼마나 다양한 재능과 매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만이 내가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114~115쪽)

 

종종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리 길이를 5센티만 늘려준다고 하면 영혼을 팔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두꺼운 하체는 콤플렉스였다. 다리가 길고 가늘어 청바지가 어울리는 체형을 한 번만이라도 가져본다면 못할 짓을 없을 것 같았다. 폭식증을 앓지는 않았지만 마른 몸매를 항상 꿈꿨다. 억지로 식욕을 통제하는 약을 먹어본 적은 없었지만 칼로리 높은 술을 먹을 때면 밥을 포기했고 종종 안주도 포기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먹는 안주는 마른 멸치이다.)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 이유도 건강보다는 몸매였다. 언제나 스타일리쉬해야 한다는 강박은 떠나질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스타일리쉬해야 할 것들은 몸뿐만이 아니었다. 삶의 깊은 굴곡은 인생의 재미를 줄 만한 허들정도가 되어야 했고, 부모에 대한 원망과 가난은 삶의 어둠을 드리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어른이 될 만한 시련이 되어야 했다. 어린 시절들의 아픔은 씩씩하고 사랑스런 캔디가 되기 위한 조건정도여야지 우울함이나 그늘을 만들 정도는 아니여야만 했다. 그래서 난 캔디처럼 보기 괜찮은, 불편함을 유발시키지 않는, 들장미 소녀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피나는 연기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초라하고 무능력하고 매력없게 만드는 이유는 많았다. 며칠 전 친정엄마에게 들었던 ‘너를 잘못 키웠다’라는 말은 또 다시 나를 좌절케 했다. 엄마는 우리를 이혼 가정의 자녀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게 키우겠다는 책임감이 과했다. 언제나 엄마에게 나는 부족한 아이였고 천덕꾸러기였고 부끄러운 아이였다. 밑이 빠진 독처럼 나는 매번 인정을 갈구했지만 그녀에게는 매번 부족했다.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타인을 통해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매번 나를 취약하게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폭식을 하고픈 마음과 다를 것이 없는 폭주로 나를 더 망가뜨리고 싶었다. 아마 나의 알콜의존증은 이와 맞닿아 있으리라.

 

살아보니, 내가 스스로를 싫어했던 것은 사실 스스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자의식 과잉이었다. 나에게 너무 집착했다. 그냥 나를 좀더 무심하게 두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너무 노력하려고 하지도 않고, 완벽할 필요도 없이. 내가 나에게서 조금 거리를 두니 스스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게 됐다. 한순간에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다고 하지만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알게 되는 것들도 분명 있다. 날마다 작은 일상이 켜켜이 쌓여 깨닫게 되는 것들, 그런 것들은 한 순간의 깨달음보다 더 견고하고 단단할지도 모른다. 다 살아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다.(193쪽)

 

친정 엄마가 계신 인천에 다녀올 때마다 얼굴을 붉히는 것을 목격한 아들이 하루는 침대에서 같이 뒹굴다가 물었다.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제일 듣고 싶은 말이 뭐야?’ 좀 생각하다 '음.... 애썼다...라는 말이 듣고 싶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들은 나를 아기 대하듯, 등을 토닥이며 ’현명아~~ 참 애썼다~~‘라고 했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고 아직도 남아있는 아이 같은 모습(사실 참 따뜻했다)에 당황하여 화장실로 도망쳤다. 생각해보니 눈빛으로 몸짓으로 나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이들은 많았다. 굳이 못마땅해 하는 한마디만을 깊이 새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더 나아져야 나로 인정한다는 나에 대한 지나친 사랑일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인 김 안젤라는 17년간 폭식증을 겪었지만 아직도 완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언제가 다시 또 재발할 수 있다고.... 나에 대한 집착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순 없을 것이다. 25년 동안 나를 위로한 술도 하루아침에 끊을 순 없다. 하지만 천천히 시간을 공들이며 살다보면 언젠간 내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으리라 ’이 정도도 괜찮다고....‘ 그리고 폭토를 반복했던 대학 친구와 선배에게도 등을 쓸어주며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댓글 11
  • 2022-05-09 10:06

    잘 읽었어요~ 작은 물방울샘♥

  • 2022-05-09 11:17

    아들 잘 키웠네!!! 글두 넘 좋고! 물방울 보고싶다~~~~

  • 2022-05-09 18:18

    '참 애썼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우리는 참 많은 걸 무모하게 시도하고, 아프고, 다시 또 살아가요.  물방울의 글을 보니... 찬결이가 고맙고, 울컥 울음이 터져 나오는 내가 보여요. ^^  

  • 2022-05-10 06:42

    찬결이 보구싶다. 

     

    제가 찾아봤던 다이어트 영화 중, 대만 영화 <나는 살을 빼기로 결심했다>가 있는데 그것도 원제는 大餓, Heavy Craving, 이에요. 일종의 '헝거'이죠. 배고픔, 허기....폭식, 혹은 폭주.....도....어떤 맥락에서는 심리적 허기, 일종의 인정욕망과 관계된 것인가봐요...ㅠ.

     

    아참, 그 영화에서도 '폭토'가 나와요. 

     

  • 2022-05-10 09:07

    찬결아~~위로할줄아는 심성을 가졌당~👍 물방울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네요! 이대로도 괜찮은데 말이예요~!

  • 2022-05-10 10:42

    음... 다이어트라는 주제가 주는 감응이 있네요^^ 다음 글은 또 어떤 감응이 다가올까요...  

  • 2022-05-11 09:19

    아참 그리고 노년의 삶의 질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근육이 하체 - 대둔근, 중둔근, 허벅지 -인 거 알죠?

    어느날 무릎 나가고, 어느날 발가락 나가고, 어느날 허리통증 오고....그렇게 노화를 매일매일 느끼는 사람들에게 (예를 들어 나?!) 길고 날씬한 다리를 가질래? 두꺼운 하체를 가질래? 그러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두꺼운 하체를 가질래요, 그럴 것 같은디....ㅋ

    • 2022-05-11 17:55

      맞아요... 백퍼 동의해요 !!!

      • 2022-05-11 20:59

        흠흠 두분 다 내가 좋아하는 뒷태를 가지셨는데.. 어떻게 알았지? ㅋㅋ 

        근데 두꺼운 다리도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요~~ 모르셨쥬??

  • 2022-05-11 11:20

    눈물나ㅜ

  • 2022-05-13 09:26

    물방울과 찬결의 대화, 생생하네요.

    그리고 찬결이 어린 시절이 지나가는구나 싶어요...

    우리의 귀염둥이(이제 이런 표현 싫어하려나ㅋ)
    잘 있죠?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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