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식물> 5회차 후기 - 하이데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식물의 사유> 1차시)

문탁
2022-02-15 10:18
358

1.

<어바웃 세미나>의 마지막 책, <식물의 사유>는 성차의 페미니스트 철학자 루스 이리가레와 식물철학자 마이클 마더가 주고 받은 편지를 모아 놓은 서한집입니다.  이 상호서한집은 이리가레가 마이클 마더의 <식물 생각하기>를 읽고 나서 그에게 말을 건네면서 시작되었는데 두 사람 모두 식물을 통해(식물과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 서양 형이상학, 그것에 기초한 서양 문화를 넘어서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좁힐 수 없는 차이도 드러냈는데 제 식으로 말한다면 이리가레의 관심은 윤리적 구체를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이냐에 있고, 마더의 관심은 포스트 휴먼의 철학을 새롭게 구성하는 데 있어 보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합니다. 열여섯 개의 주제를 두 사람이 함께 다루는데 편집은 1부는 이리가레 편지를 쭉~ , 2부는 마더의 편지를 쭉~ 배치했네요. 목차를 보니까, 대충 여정은(프롤로그 에필로그를 빼고) 1장에서 7장까지는 '피난처'로서의 자연(식물) 이야기, 그리고 8,9장은 식물에서 치유받고 힘을 낸 후 다시 인간 동반자에게 돌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10장에서 16장까지는 다시 자연 속(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인가요?) 에서 인간-비인간이 함께 살고 돌보는 이야기로 구성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우리세미나에서는 1장에서 7장까지의 이야기를 주로 나눴습니다.

 

 

 

 

2.

겁먹었는데 생각보다 읽을만했다는 감상으로 세미나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리가레가 더 어려울 줄 알았는데 마더 부분이 더 어려웠다는 인상평도 나왔습니다. 사실 이리가레 부분은 우리한테 익숙한 이야기가 많았죠. 그녀가 요가와 베다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할 줄 저도 정말 몰랐습니다 . 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호흡, 원소....이런 평이한 단어들로 풀어지는 식물철학 이야기가 오히려 낯설었습니다. (3장 보편적 호흡을 공유하기/ 4장 원소의 생성적 잠재력) 아니, 식물 이야기에 왜 호흡과 원소를 끌어들이지?

 

아, 물론 기린님은 '보편적 호흡을 공유하기' 챕터가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마이클 마더는 심한 계절적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그는 그것이 '꽃가루'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공기의 오염과 문화적 질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식물의 자연적 호흡과 우리의 호흡을 공유하자고 제안하네요. 기린님은 이런 이야기가 무척 맘에 드셨던 모양입니다. 저는 왜 그런지 알죠. 기린님도 비염이 심해 고통받거든요.^^

 

호흡의 문제를 철학적 과제로 제기한 사람? 저는 바로 장자가 떠오릅니다. 장자 철학에서 기와 기의 순환, 그리고 깊은 호흡은 매우 중요한 테마이죠. 장자철학이 양생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핫한 서양철학자 이 두 사람은 왜 호흡을? 그리고 나아가 원소를? 네, 맞아요. 식물을 제 5원소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은 이 두 사람이 하이데거를 경유해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에서 서구 형이상학을 넘는 대안을 찾고자 한다는 것을 모르면...음...그냥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넘길 수도 있습니다. 

 

고중세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론. 가장 안쪽 구가 4원소로 만들어진 지구이며,

그 바깥의 천구들과 천구 위의 천체들은 제5원소 아이테르로 되어 있다

 

- "확실히 <검경>은 나의 여성적 정체성과 '물러남(step back)'-하이데거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덕분에 수행할 수 있었던 서구 전통 비판에 해당합니다."(19)

-"하이데거의 용어로 말하자면, 당시 나는 '굽이(a band)'나 '전환(a turn)'이 필요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29)

-"어떻게 베다의 빈터를 하이데거의 빈터와 연결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한 두 경우 모두에게 공기의 역할, 그리고 공기와 관련된 나무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 어떻게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58)

_"나는 요가 선생님의 조언을 서구 사회의 잘못을 몽땅 고쳐줄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다른 출발점으로, 하이데거가 말한 다른 '시작'으로 받아들였습니다."(203)

-"나는 다른 글에서 인간의 삶은 죽을 때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며, 식물이 제때 열매를 맺는 식으로 목적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상세하게 논한 바 있습니다."(224)

-"이 시련을 겪으면서 우리들은 원소의 힘과 원소가 인간의 자연 정복에 가하는 한계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이데거가 옳았으며, 우리가 얼굴에서 죽음을 볼 때에야 흔들리며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이데거와 달리 다른 종류의 관심, 죽음을 향하지 않는 다른 관심을 생각해 보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 관심은 우리의 생명과 식물의 생명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239)

 

  문제는 우리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도 모르고 하이데거도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우라질, 작년부터 하이데거는 왜 이렇게 곳곳에 출몰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읽은 한병철 <땅의 예찬>의 땅도 내가 아는 땅이 아니라 하이데거의 '땅'이고, 마이클 마더가 "우리의 세계가 (함께 공동으로) 식물들의 세계를 만나 공유할 수 있는가?"의 질문을 던질 때, 그 세계도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니고 하이데거의 '세계' 같습니다.  화분 몇 개 있는 문즈가든 때문에 시작한 식물세미나인데 이렇게 하이데거까지 만나게 될 줄 진짜 몰랐습니다. 

 

 

3.

세션님은 이런 인문학자, 철학자들의 식물 사유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식물을, 식물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런 접근은 세션님이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 그러니까 흄볼트, 윌라스, 다윈 등 18,19세기의 소위 박물학자들이 식물을 연구했던 방식과 너무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곳에서의 식물은 결코 인간들의 "피난처"가 아닙니다. 그 식물들은 때론 놀랍고 때론 무섭습니다. 심지어 인간과 식물은 적대적인 것으로까지 느껴집니다. 그런데 왜 요즘은 모두 식물/숲/자연에서 위로, 위안, 치유를 얻는다고 난리 부르스를 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혹은 자연에 대한 또 다른 인간중심주의적 전유일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생각해보면 맞습니다. 우리가 읽었던 <숲은 생각한다>, 아마존 숲의 루나족이 아마존 숲에서 위로를 얻지는 않을테니까요. 우리가 지금 열광하면서 읽고 있는 <향모를 땋으며>의 옛 인디언들도, 그들의 숲이 삶의 피난처였다고는 말하지 않을 겁니다.  수십년 전 새만금의 습지에서 삶을 영위하던 어민들 역시 새만금에서 치유된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그러니 세션님은 질문합니다. 식물, 자연으로 서구 형이상학을 해체하겠다는 기획이 식물, 자연을 다시 형이상학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서 치유받는다고 말하지 않느냐? 나도 동네 광교산 갈 때마다 마음이 안정되고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그럼 그 이유가 뭘까? 

 

그러면서 제가 혹시 그 이유가 피톤치드 때문 아닐까? 라고 말했다가 모든 사람의 비웃음만 샀습니다. 에라이....ㅋㅋㅋ

 

 

 

다음 주는 마지막 세미나입니다. 다음 주가 된다고 우리가 갑자기 하이데거를 가지고 식물 이야기를 하는 저자들의 글이 막 잘 읽히진 않겠죠.  그래도 꼼꼼히 읽어옵시다. 다음주 발제는 자누리샘입니다. (자누리샘, 미안^^)

댓글 2
  • 2022-02-15 18:19

    저는 기린샘이 말씀하신 걷기의 리듬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만약 숲에서의 산책이 정말 큰 치유의 역할을 한다면 그건 피톤치드 ㅋ와  더불어 발-심장-뇌로 이어지는 자극의 리듬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산에서 걷다보면 늘 평소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마구 생각나곤 하거든요. 피곤했던 컨디션도 오히려 좋아지고요.

  • 2022-02-15 19:33

    저의 가까운 친구는 서울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바다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치유를 얻더라고요. 넘실거리는 파도에도 피톤치드 같은 치유의 물질이 나오는 걸까요? 식물과 동물 이외에 자연-피난처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미생물이나 사물, 작은 입자나 원소도 그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호흡과 리듬에 영향을 주는 조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첨부하신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 이미지가 나이테로 보이는 것은 세미나의 부작용일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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