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연극을 보다

작은물방울
2020-06-22 20:55
799

연극을 보고 온 뒤부터 아들은 궁둥이를 실룩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과자를 먹으면서 만화책을 뒤적이면서....

“네 이름은 무엇이냐~~~네 이름은 무엇이냐~~♬” 연극 전태일의 주제곡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묻는다.

“엄마 이 노래 좋지?” 뭐가 좋은지 몰라 난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날은 더웠지만 오랜만에 서울 나들인데다 또 오랜만에 보는 공연이라 설렜다.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새털과 새 신을 신고 나온 둥글레도 왠지 설레이는 듯 보였다. 중간에 청량리네 가족과 만나니 가족들과 소풍을 떠나는 것같은 기분인지 아이들도 들떠있었다.

 

어렵지 않게 구로 아트밸리를 찾았다. 한서는 오늘 보는 연극이 문탁 안에서 하는 문탁인들이 즐기는 연극이 아니라 커다란 극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는 연극이라는게 신기한지 청량리에게 묻는다. ‘여기엔 문탁 선생님들 말고 다른 사람들도 와?’

 

코로나 시국임을 상기시키는 여러 절차를 마치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낯익은 장소익 소장과 김은혜 선생님이 긴장된 얼굴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어서 인사를 생략하고 자리에 앉았다.

지난 축제 때 만났던 두 분은 연극에 출연할 전태일을 만나러 다닌다고 하셨다. 거기엔 가수도 있고 연극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그 때 나는 전태일이 한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60년대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2020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명의 전태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발로 뛰는 그들에게 술에 취해 인사조차 제대로 못했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송하다...ㅜ)

연극은 정직했다. 무대 장치와 조명에 현란한 기교를 부리지 않았고 하나의 장치가 여러 가지의 역할을 해냈다. 배우들도 그러했다. 사장이었던 배우가 전태일도 되고 태일의 바보회 친구가 되기도 했다. 무대장치는 거칠지만 참여자들의 시간과 땀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소품하나하나에까지  노가다의 힘이 느껴졌다.

우리들의 친구 세빈이는 시다, 대학생, 임산부, 아기엄마까지 일인 4역을 맡으며 연기와 노래의 신공을 펼쳤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가 보기엔 세빈이가 주인공 같았다. 어릴 적 세빈의 절친 찬결군도 ‘누나 능청스럽게 연기 꽤 잘하더라~’라며 칭찬을 했다. 세빈이는 연극이 끝난 후 문탁의 선생님들과 대배우같이 촬영했다. 세빈이는 물만난 물고기 마냥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배우로 즐겁게 살아가는 세빈이를 보니 왜 내가 뿌듯한 걸까?

연극이 끝난 후 동거인과 신림동 순대타운에서 소주를 마셨다. 연극은 미국에서 열리는 축제같은 시위와는 사뭇 달랐다. 무거웠고 진솔했다. 어찌 전태일을 머리에 빨간 띠를 매지 않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을까? 그래서일까? 난 전태일을 내 삶에 소환시키기 어렵다. 전태일의 삶은 여러 빛깔이 있지만 나에겐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전태일 평전> 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분신하는 모습만이 각인되어있다.

 

연극을 보고 난 후 아이에게 전태일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을 일부러 가볍게 물어봤다.

“엄마, 전태일은 그렇게 착하게 살았는데.....

왜 불에 타서 죽어야 했을까?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어야 하는 걸까?“

이미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하고 있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말이 나오지 않아 아이를 안아줬다.

잠시 그러고 있던 아이는 궁둥이를 씰룩 거리며 자기 방으로 만화책을 보러 간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댓글 6
  • 2020-06-23 00:35

    나는 전태일이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장면에서 전태일이 예수였구나!
    예수는 그렇게 우리 곁에 있는 거구나....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연극이 제의적이란 느낌도 들었고
    아...이런 게 나무닭의 스타일이구나....하는 느낌도
    눈물이 난 건 그런 느낌들 때문이었다.

    • 2020-06-23 08:09

      저도 그 장면에서 제일 울컥했어요^^
      이소선 여사의 여러 마음도 읽히고...

      • 2020-06-23 15:40

        저는 분신 장면이 제일 울컥했어요.
        눈물도 주르륵 ㅠ

        저는 보는 내내 장소익님이 생각나서
        그리고 우리의 다음 액팅스쿨도 생각나고 ㅠ

        하여간 마지막 사진을 찍지 못하고 온 것이 제일 후회되네요 ㅠ

  • 2020-06-23 09:08

    찬결이와 한서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역시 하늘나라는 아이들의 것이라고!
    눈맑은 아이들이 전태일의 아름다운 마음을 읽었군요...

  • 2020-06-24 08:23

    세빈이 프로필에 찍힌 "문탁 어린이낭송단 활동"이란 글을 보고 뭉클했어요.
    수많은 스타들이 말하는 어린시절 동기부여의 순간에 대한 스토리가... ㅋㅋ
    자신의 스토리에 문탁이 있었음을 잊지 않은,
    우릴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가워 하는
    아주 멋지게 성장한 세빈이가
    전해 준 전태일 이야기는 제 가슴에 오래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 2020-06-24 10:01

    연기를 보니, 훌쩍 커져버린 키를 보니, 점점...세봉이라고 놀리기가 어려워지네요 ㅋㅋㅋ
    많은 문탁식구들 덕분에, 저도 아이들도 오랜만에 '연극'을 봤습니다.
    단체사진을 보니, 저 사람들이 세봉이를 키우고, 겸서와 찬결이를, 한서를 키우는 구나 싶었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749
고은 북콘서트 알려드려요. 서울서 크게 하는 모양이에요. 와우^^
문탁 | 2023.06.14 | 조회 2171
문탁 2023.06.14 2171
1748
복사기가 바뀌었습니다~
진달래 | 2023.04.24 | 조회 1942
진달래 2023.04.24 1942
1747
[나이듦연구소 봄강좌]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 『대반열반경』(4강)
기린 | 2023.03.15 | 조회 1073
기린 2023.03.15 1073
1746
북드라망 한뼘 리뷰대회 참여, 어떠세요?
요요 | 2023.03.06 | 조회 2023
요요 2023.03.06 2023
1745
문탁 공부방회원들이 '읽고 쓰기 1234'를 시작합니다^^
요요 | 2023.02.26 | 조회 563
요요 2023.02.26 563
1744
범문탁 1년 공부 추수해요 - 에세이 데이(들)에 초대합니다 (1)
요요 | 2022.11.23 | 조회 2561
요요 2022.11.23 2561
1743
[10월 봄날의 살롱] ME TOO 이후 어떻게 살고 계신지
봄날 | 2022.10.16 | 조회 728
봄날 2022.10.16 728
1742
‘선집’에 살고 있습니다 (1)
우현 | 2022.10.14 | 조회 466
우현 2022.10.14 466
1741
[9월 봄날의 살롱] 기후위기, 우리는 어떻게 할까? (1)
봄날 | 2022.08.29 | 조회 2769
봄날 2022.08.29 2769
1740
7월28일(목) 오후3시, <봄날의살롱>이 열립니다~
봄날 | 2022.07.25 | 조회 2793
봄날 2022.07.25 2793
1739
5월 <봄날의 살롱>이 다가왔습니다!
봄날 | 2022.05.23 | 조회 3007
봄날 2022.05.23 3007
1738
5월 <봄날의 살롱> 에서 '연대로서의 읽기'를 제안합니다! (18)
봄날 | 2022.05.03 | 조회 3443
봄날 2022.05.03 3443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