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경제학> 첫시간 후기

뚜버기
2022-05-28 11:07
264

이주 간의 방학을 마치고 에코프로젝트:천개의 텃밭 여름분기가 시작되었다. 여름분기는 조별 토론 후 전체 토론으로 이어지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하게 된다. 첫 번째 책은 케이트 레이워스가 2017년에 쓴 『도넛 경제학: 21세기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일곱 가지 방법』이다.

저자는 20세기를 이끌어간 낡은 경제학(더구나 상당부분 틀렸다)의 관념이 토대가 되어 신자유주의는 인류를 파멸의 끝으로 몰고갔다고 진단한다. 21세기 인류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나 우리 의식은 여전히 20세기 경제학에 머물고 있다. 그것을 뒤집기 위한 새로운 경제학으로 도넛 경제학을 제시한다.

도넛 경제학은 “치명적인 환경 위기를 막는 생태적 한계”를 넘어서지 않은 안에서 누구에게도 부족해서는 안 되는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사회적 기초”는 지켜져야 한다는 2중의 지표를 척도로 삼는 경제학이다. 생태적 한계의 아홉가지 경계선(기후변화, 오존층파괴, 대기오염, 생물다양성 손실, 토지개간, 담수고갈, 질소와 인의 축적, 화학적 오몀, 해양산성화)을 유지할 때 지구 환경은 인간의 살아가기에 적합했던 홀로세의 포근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인류세 시대에도 유지할 수 있다.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 사이에는 도넛과 비슷하게 생긴 최적의 공간이 있다. 발제자인 토토로는 “생태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공간”이다. 이 두 가지 경계선을 서로 연결된 복합사회-생태계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둘을 함께 고려해야만 문제 해결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도넛경제학의 모델을 구축하려면 사고부터 바꾸어야 하는 게 우선이다. 목표를 바꿔라. 큰 그림을 보라. 인간 본성을 피어나게 하다. 시스템의 지혜를 배워라. 분배를 설계하라. 재생하라. 성장에 대한 맹신을 버려라. 이 일곱가지 사고방식을 새로운 경제학으로 가는 방법으로 제안한다.

 

첫시간에는 여는글과 ‘목표를 바꿔라’, ‘큰 그림을 보라’까지를 다루었다. 일정상 참석 못하신 분이 넷이나 되어 두 조로 나누어 토론했다.

우리 조에는 발제자 토토로, 블랙커피, 사이, 참, 유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두 번째로 <<도넛경제학>>을 읽는 블랙커피와 토토로는, 이 책이 쉽게 읽히지만 다양한 영역에 걸쳐 심도있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특히 블랙커피는 현재의 생태·기후위기 상황을 단 간결하지만 분명하게 단 몇 줄로 요약해준 부분(이 추세로 가면 2100년엔 지구평균 기온이 거의 4도가 상승하게 될 거라는 끔찍한 상황)이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했다. 몇 줄에 정리되었지만 파국적 위기는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먼저 들이닥친다. 산업문명이 저지른 지구온난화 탓에 불타고 매말라 버린 아마존 습지와 그 안의 무고한 생명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무겁다.

사이는 메스컴에서 기후위기와 경제가 아무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다루는 방식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GDP 성장을 다루는 뉴스에서 바로 이어 기후문제를 다룰 때 기후위기의 가장 근본 원인이 성장지상주의 경제 이데올로기에 있음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어쩌면 모르는척하는) 것인지...도넛 경제학은 경제는 당연히 성장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장 최근의 맥락에서 쉽지만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사이쌤 말처럼 주변에 널리 알리고 싶은 책이다. 토론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지배적인 사고관념이다. 특히 경제는 성장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유쌤에 따르면 환경경영 분야에서도 해서 이익창출이라고 한다. 왜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이를 키워야 나눠먹을 게 생긴다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이런 생각들을 부추키며 확산시킨다. GDP를 척도로 모든 것을 비교하고 평가한다. 그에 따라 사람들도 안심했다가 마음 졸였다가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GDP가 일본을 추월했다고 연일 떠들어 대지만 그렇게 늘어난 부는 전체를 위한 부로 고르게 분배되기 보다는 한쪽으로 편중되고 있다. 경제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높지만 “GDP 성장이 경제의 목표”가 이상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는 한 답은 없다. 다양한 척도와 지표를 가지고 경제문제를 볼 때, 도넛 경제학이 제시하는 지표로 세상을 볼 때 여기서 넘어갈 수 있겠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도넛 안쪽의 안전하고도 정의로운 공간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 저자인 레이워스는 그것을 결정하는 핵심요소로서 인구, 분배, 열망, 기술, 거버넌스라는 다섯가지 요소를 꼽았다. 이 가운데 세 번째 요소인 열망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우리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리 오래 가지도 않을 인상을 심어주려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고,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쓰도록 계속해서 설득당하는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쉽지가 않다. 참쌤은 주말에 광화문에서 열린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에서 주최한 집회 <5/22 광화문에서 경쟁 교육 같이 뽀개실 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경쟁교육 제로를 위한 캠페인의 출범을 알리는 집회에 참가한 인원이 너무 조촐해서 그날 이후로 기운이 많이 다운된 상태라고 했다.

무한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사람들이 열망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도시화된 삶과 물질적인 욕망 그리고 필연적으로 경쟁교육을 불러 오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골병이 든다. 패스트푸드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학원으로 몰려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이상한 세상이다. 앞에서는 정의를 내세우면서 뒤로 자녀스펙도 놓치지 않는 소위 진보에 대한 실망감이, 더 제 욕심만 채우는 정권 선택으로 이어지는 요기경같은 정치다. 넝쿨쌤도 언급했듯이 선거에 나오는 후보들의 공약 수준도 우리들의 열망이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보여준다. 좋은 삶을 향한다는 것이 경제적 풍요와 똑같은 말이 되어버린 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레이워스에 따르면 “사회와 경제에 대한 민주적 거버넌스는 공적 논쟁에 참여하는 시민의 권리와 역량에 달려 있다.” 좋은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발언과 민주주의가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는 저자의 말에 다들 공감했다.

그런 점에서 남미의 상황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좋은 삶은 타인과 자연과 더불어 충만한 삶이라는 ‘좋은 삶(부엔 비비르)’라는 개념을 헌법에 포함시킨 볼리비아나, 대지의 어머니인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포함시킨 에콰도르의 헌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미에 우파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때 실패로 끝나나 싶던 부엔비비르 실험들이 최근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고 한다. 특히 칠레에 새로 들어선 정부는 기후문제, 양성평등, 좋은삶을 향해 강력한 행동력을 보여준다고 하니 매우 고무적이다. 에코앤양생실험실을 부엔비비르연구소로 하자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좋은 개념은 꿋꿋하게 밀고 갔어야 했나 싶었다.

 

레이워스는 큰 그림을 시작하기 위해 경제학의 등장인물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 주연, 기업과 금융, 무역이 주요배역이고 단역 국가가 등장하는 20세기 경제학의 공연은 중단해야 한다. 새로운 무대에는 지구와 사회, 경제, 가계, 시장, 코먼스, 국가, 금융, 기업, 무역, 권력이 등장한다. 새로운 주역으로 지구, 사회, 가계, 코먼스의 등장을 눈여겨 보게 된다. 사회는 시민들이 역량을 키우고 좋은 삶의 가치들에 대해 의제를 던질 수 있게 해주는 토대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발제자 달팽이는 강조했다. 여전히 이전 배역들도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사이쌤이 혼란스럽다고 한 것처럼, 거시경제의 측면에서 저자는 국가 주도 경제의 그림을 그리는 것인가 의구심도 든다. 스타트업의 성장에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언급은 기존 모델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지구 상엔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곳이 60% 정도 남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장소들도 차차 도시화 될 것은 기정사실로 가정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답답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모두가 존엄을 잃지 않고 피어나는 삶을 살 것인가가 저자의 목표인 것 같다.

 

전체 토론에서는 지금까지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으로서 2차적인 것으로 뒷전에 밀려 있던 영역 가정경제의 기여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저자의 제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띠우는 정당하게 보수로 분배되는 방식은 화폐가치에 포획되는 것으로 기존 모델의 사고방식으로 때문에 아니라고 보았다. 사람의 존재자체가 공유재?로서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가정 내의 독박돌봄을 시장가치로 환산하는 것이 아니라 코먼즈의 영역을 넓힘으로써 함께 돌봄의 다양한 방법들이 창안되는 길이 새로운 모델에 적합할 것이다. 버내큘러한 방식으로 스스로 조직하고 관리할 때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다. 코먼즈를 한껏 펼친다면 거기서 지속가능하게 자원을 관리하면서도 국가나 시장을 능가하는 놀라운 실적과 공평한 분배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주 쉰 뒤에 만나는 다음시간엔 3장과 4장을 나갈 예정이고 <<향모를 땋으며>>를 잘 읽자는 달팽이쌤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댓글 3
  • 2022-05-28 11:39

    뚜버기 샘의 후기...굉장히 정리가 잘 되었네요.

    역쉬~~~~!!!! 십년이상 (마을)경제를 공부하신 샘이라 이렇게 잘 정리하신걸까요...ㅎㅎ

     

    질문이 하나 생겼는데요.

    저자가 제시한 '안전하고 정의로운 도넛 공간'의 폭이 어느 정도일까..라는 의문이요.

    외적 한계와 내적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어떻게 측정할수 있을까. 수치로? 

    과연 도넛의 폭은 얼마로 유지해야 할까.

    굵은 도넛? 가느다란 도넛? 그런 질문이요.

    만약 도넛의 내, 외 한계선이 느슨하고 울퉁불퉁 가느다란 도넛이 된다면? 혹은 뚱뚱한 도넛이 된다면???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 2022-05-29 18:14

    첫 시간 빠졌는데 상세하고 생생한 후기 덕분에 제대로 공부가 되네요~!

    뚜버기샘, 고맙습니다~!!

  • 2022-05-30 09:47

    얼마전에 초딩딸과 초딩입맛 남편과 출출해서 도넛 카페에 갔었어요. 그런데 저에게 그저 맛있는 간식일 뿐이었던 도넛이, 이제는 경제학이 먼저 생각나고 "부수지 마! 안전하고 정의로운 도넛 세계"라는 책표지 문구가 함께 떠오르는, 그 무엇이 되었더라구요. 레이워스가 얘기한 시각적 효과, 이미지적 강조가 제대로 작동한 거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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