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필사

느티나무
2022-05-20 00:10
176

댓글 4
  • 2022-05-20 08:50

    자매가 준 오지브와어 사전을 넘겨보며 타일을 해독하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철자가 다를 때가 있고 글자가 너무 작은데다 한 단어에도 변이형이 너무 많아서 이런 식으로는 힘들 것 같았다. 뇌에서 끈이 묶여버렸다. 풀려 할 수록 매듭은 더 단단해졌따. 페이지들이 가물가물해지다 내 눈이 단어 하나에 안착했다. 물론 용언이었는데, "토요일이다"라는 뜻이었다. 어라? 나는 사전을 내팽개쳤다. 언제부터 '토요일'이 용언이었담? '토요일'이 체언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사진을 집어들고 더 뒤적이며 용언처럼 보이는 온갖 단어를 찾아보았다. "언덕이다", "빨갛다", "바닷가의 기다란 무래사장이다." 그러다 내 손가락이 '위크웨가마wiikwegamaa'(만灣이다)를 가리켰다. "말도 안돼!"라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 이유가 없잖아. 이 언어를 아무도 안 쓰는게 놀랍지 않군. 어찌나 복잡한지 배우는게 불가능한 언어야. 게다가 다 틀렸어. '만'은 분명히 사람이나 장소나 사물을 가리키는 체언이지 용언이 아니라고." 다 집어 치우고 싶었다. 나는 단어를 몇 개 배웠으며, 할아버지가 빼앗긴 언어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 기숙 학교 선교사들의 유령이 좌절하는 나를 고소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들이 말했다. "저 여자 곧 포기하겠군."

    그때 맹세컨대 시냅스가 번쩍하고 발화되는 소리가 들렸다. 전류가 팔과 손가락을 타고 내려와 내가 짚고 있던 페이지를 말 그대로 그슬렸다. 그 순간 만의 냄새가 풍기가 물이 호안선에 부딪히는 광경이 보이고 모래를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만'이 체언인 것은 물이 죽었을 때분이다. 체언으로서의 '만'은 인간의 뜻풀이다. 이 만은 호안선 사이에 붙들려 있고  단어에 갇혀있다. 하지만 용언 '위크웨가마'는 물을 해방시키고 생명을 선사한다. '만이다'라는 의미에는 살아있는 물이 지금 이 순간 호안선 사이를 보금자리 삼고서 개잎갈나무 뿌리와, 새끼 비오리 떼와 대화를 나누기를 마음먹었다는 경이로움이 담겨 있다. 물은 만 대신 개울이나 바다나 폭포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서도 해당 용언이 있다. '언덕이다', '모래사장이다', '토요일이다'는 만물이 살아 있는 세상에서는 전부 용언이 될 수 있다. 언어는 물, 땅, 심지어 날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유정성을 보는 만물에서 -소나무와 동고비와 버섯에서-맥박치는 생명을 보는 거울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숲에서 듣는 언어, 우리의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다. p90

     

    ---익숙해져가는 느티샘이 글씨가 정겹습니다. 그 덕분에 기분 좋은 금요일, 시작합니다~^^

     

  • 2022-05-20 21:48

    “…그리하여 이 연못에서는 우리 손자녀들과, 세월이 데려다줄 또 다른 아이들이 헤엄칠 것이다. 돌봄의 원은 점점 커지며 나의 작은 연못을 보살피는 일은 다른 물을 보살피는 일로 확장된다. 우리 연못에서 나온 물은 언덕 아래 우리 이웃의 연못으로 흘러든다.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느냐가 이웃에게 영향을 미친다. 다들 하류에 산다. 우리 연못은 개울로, 시내로, 넓고 중요한 호수로 흘러든다. 물 그물은 그 연결에 흘러들었다, 하지만 연못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좋은 엄마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좋은 엄마는 영양이 풍부한 부영양 할머니로 자란다. 그녀는 뭇 생명이 무럭무럭 자잘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 때까지 자신의 일이 끝나지 않음을 안다. 손자녀 뿐 아니라 새끼 개구리, 새끼 새, 새끼 기러기, 아기 나무 홀씨를 돌봐야 한다. 나는 여전히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148~149)”

  • 2022-05-21 09:28

    나는 진흑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진흙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 드는게 아니라 아예 진흑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 머리카락에 조류 가닥이 달라붙은 것을 보거나 샤워하다가 물이 완연한 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볼 때 말고는 진흙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나는 오니 아래의 자갈 바닥, 부들 옆의 차진 진흙, 깊은 바닥의 시원한 고요함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연못가에서 깨지락깨지락 시늉만 내서는 이런 변화를 성취할 수 없다. p136

    -토요일 아침에 여기까지 읽어봅니다. 아직 필사글이 위에 있으니  다시 댓글로ㅎㅎㅎ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드네요. 깨지락깨지락 시늉만 내는  삶부터 변화는 시작이라고~~~

  • 2022-05-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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