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읽기 <오만과 편견> 두번째 메모 - 윤수민

윤수민
2020-12-01 18:55
344

 

 콜린스 씨가 고집스러운 자기기만으로 그토록 집요하게 구는 모습에 엘리자베스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말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거듭 거절해도 그가 이를 계속 아양을 떨며 자신을 부추기는 것으로 여긴다면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리라 마음먹었다. 아버지라면 결정적인 답볍으로 여겨질 만큼 단호하게 거절할 테고, 아버지의 그런 언행은 최소한 우아한 숙녀가 부리는 가식이나 교태로 오인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 (145p~146p)

 

 엘리자베스가 세번, 네번이고 진지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음에도 콜린스는 자신의 청혼에 대한 거절을 그저 애교나 당기기를 위한 밀어내기 정도로 생각한다. 아주 오만하고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콜린스와 같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상대방의 X를 O라고 생각하며 저지르는 추태들. 그리고 그런 상대의 결정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끝내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내린 것이라며 후에도 과시하는 모습.(콜린스가 샬럿과의 결혼 후에 엘리자베스를 집에 초대하고 집을 소개시켜주며 보이는 모습들.) 무엇보다 슬펐던 건, 저 단락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또한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엘리자베스의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은 콜린스는 그 다음으로 그의 어머니에게로 가 그의 판단을 '고발'한다. 콜린스가 엘리자베스의 부모에게 갔던 이유는 그들에게는 그 결정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엘리바베스는 엄연히 다 큰 성인이며 자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주체임에도 결국 자신의 생각을 부정당하거나 그 뜻이 쉽게 타인에 의해 꺾여질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불균형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도 일곱 여덟명이 자신의 의사를 밝히자 또는 밝히지도 못하고 죽었다. 이들은 소수성을 가졌고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아주 오래전에 쓰인 저 글이 지금까지도 와닿는 이유가 한없이 슬프고 슬프다.

 

 

"(엘리자베스의 대사) 언니는 특정한 한 사람을  위해 원칙이라든가 진실성의 의미까지 바꾸는 사람이 아니잖아. 이기심을 신중함으로 여기거나 위험에 대한 무감각을 행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여기라고 언니 스스로든 나든 설득할 사람도 아니고."

/

"(제인의 대사) 활기 넘치는 청년이 언제든 신중하고 용의주도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거지, 종종 보면 우리를 기만하는 건 우리 자신의 허영심이야. 여자들이 남자들의 관심을 놓고 실제 이상의 의미를 상상하는 거지."

"(엘리자베스의 대사)그리고 남자들이 여자들을 그렇게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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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의 대사) 나도 빙리씨의 행동이 어쨌거나 고의였다고 여기지는 않아."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하지만 잘못을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힐 계획이 없었더라도, 실수할 수 있고, 고통이 따를 수도 있어. 분별력과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배려와 결단력이 부족할 때 그런 결과를 초래하지." (181~182p)

 

 자꾸만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책 속에는 이렇게 한꺼풀 벗겨진 사람들의 모습들과 실상을 낱낱이 묘사해놓았다. 단순히 연애 소설이자 그 시대의 결혼에 대하여 적어놓은 책이라고만 정의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설명이다. 어쩌면 그러한 큰 틀안에서 크고 작게 일어나는 상황들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반응과 태도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해도 부족하다 싶은 정도다. 처음에는 쉽게 이 책을 펼쳤지만 점점 고민해볼 지점들이 많아진다. 

 

 

 고전과 명작이라는 거대한 이름이 붙여지는 작품들이 있다. 우리는 보통 그러한 책들을 손으로 들어올리며 기본적이면서 꽤나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왜 이것이 수십년, 수백년 후에도 사랑받고 읽혀지는 책일까 라는 질문을. 그런 작품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는 끄덕임과 내 삶을 바꿀 만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의아함과 의문만을 가득 품고 실망하는 경우도 대다수다. 재미는 있었으나 사람들이 환호하는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나랑 잘 안맞는다 싶은 마음들이 들기도 하고. 그러나 내가 짧지만 진하기도 했던 지난 시간을 살아오면서 깨달았던 것 중 하나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분명 이것이 언젠가는 나에게 다가올 때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정말 언젠가는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문장과 단어가 있다. 평소에는 생각도 안나던 책의 내용과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인 등장인물의 대사가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책과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와닿을 문장을 위해. 그리고 언젠가는 죽도록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인물이 이해가 가는 어느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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