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Mamma mia ⃰ !! 딸의 결혼

먼불빛
2023-03-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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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의 제목처럼 정말 머~~~얼고도 가까운 존재, 원수인가 싶으면서도, 친구 같고, 친구인가 싶다가도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며 얽히는 그런 이상야릇, 복잡 미묘, 통제 불능의 관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내 안의 절대 타자. 딸은 그런 존재다.

 

싸우는데 이유는 없다. 그냥 5분만 같이 붙어있으면 사사건건 시시각각 그 모든 것이 싸워야 할 이유가 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도 궁합이 있다고 했는데 딸과 나는 유독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성격, 옷, 음식, 스타일, 취향 그 모든 것에서 우리는 어긋났다. 성격상 그녀는 빨랐고 단순 직선적이었지만, 나는 매사 느리고 신중했다. 나는 데면데면하고 냉정한 데 반해 딸은 언제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공감해주길 원했다. 이런 어긋남이 아마도 우리가 가장 많이 싸운 이유일 것이다. 나는 모든 자식의 문제가 부모 문제라는 걸 인정한다. 수많은 날을 두고 반성했지만, 언제나 부족한 건 엄마인 내 쪽이다.

 

 

디어마이프랜즈 드라마에서 엄마(고두심)과 딸(고현정)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며 싸우는 장면 캡쳐

(드라마 디어 마이 프랜즈 캡쳐)

 

 

비교적 자유분방한 딸은 학교나 직장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찍부터 엄마인 나와 떨어져 지낼 기회가 많았다. 물론 거기에는 서로의 충돌을 피해 보자는 이유도 없지 않았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한 번, 19살에 친구와 자취방을 얻으면서 한 번, 제주도로 취업하면서 한 번,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남친과 동거하겠다면서 한 번. 총 네 번에 마지막 한 번은 동거와 결혼으로 이어지면서 엄마인 나와의 동거에는 잠정적 마침표를 찍은 꼴이 되었다.

 

내가 딸과 심정적 분리를 하게 된 시기는 딸이 19살 되던 해 가을이었다. 딸이 친구와 함께 자취하겠다고 했고, 친구의 엄마와 나도 의논한 끝에 흔쾌히 승낙했다. 멀리 지방에 사는 친구 엄마의 각별한 부탁도 있고 해서, 이사 당일 이것저것 필요한 살림 도구를 챙겨 일찍 도착한 자취방에는 이미 딸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딸은 심드렁하게 “엄마~ 나하고 친구들이랑 해도 되니까 엄마는 돈만 주고 가~” 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딸의 눈빛, 친구들의 분위기에서 내 역할은 짐과 돈만 던져주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직은 엄마의 품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딸은 벌써 ‘엄마 없이 혼자 할 수 있다’고 내게 독립 선언을 한 꼴이다. 품 안에 있을 때나 자식이라더니. 뭔가 가장 애착하던 어떤 것을 갑자기 일시에 빼앗겨버린 듯한 서운함이 몰려왔다.

 

“응... 그래... 여기...” 하며 돈을 건넨 후 얼른 그 자리를 빠져나온 나는 조조 영화관을 찾아서 들어갔다. 눈물 콧물 쏙 뺀다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면서 내내 울고 또 울면서 마음을 달랬었다. 그렇다고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이 쉽게 끊어질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린 계속 끝없이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번 결혼식에서 전혀 울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그때 이미 너를 보냈고,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단다. 딸아….’

 

 

뭐가 그리 쉬울까?

 

 

그렇게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냈던 딸이 집 밖에서의 개고생을 두어 번 겪더니 아예 집으로 들어왔다. 한 번씩 집을 들고 날 때마다 딸은 달라졌다. 송곳처럼 뾰족하던 태도가 조금씩 누그러졌고 나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서른이 넘도록 한집에 있을 때는 이제 진짜 독립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잔소리에도 꿈쩍을 않던 딸이 절친으로부터 소개팅을 받은 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말 외출이 늘고, 외박이 잦아지더니 몇 개월도 안 되어 급기야 나에게 남친과 동거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체 니들은 너무 빠른 거 아니니?”

짐짓 언짢은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결혼 보단 동거가 낫지 싶었다.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서로 만날 수 있는 시간대가 늦은 밤밖에 없고, 더 이상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다닐 체력도 안 되고 힘이 드니 서울에 있는 남친의 집에서 함께 살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사람이 좋고, 결혼해도 괜찮을 정도의 사람이며, 동거하면서 천천히 지켜보고 결혼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인 나는 이렇게 빨리 결정할 문제인가? 얘들은 뭐가 왜 이리 쉽지?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오만가지 염려와 걱정이 앞섰지만 나는 노파심을 접고 동거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서른 중반이 넘는 딸년을 붙잡고 피임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리고도 잔소리.

“술버릇 잘 봐야 해”

“엄마, 오빠 술 한잔도 못 마셔”

“아…. 그래...”

“많이 싸워 봐야 해”

“그래? 싸움이 안 되던데…. 오빠가 감정 고저가 거의 없는 사람이야.”

“흥…. 무슨 얼어 죽을 ‘오빠’는….‘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돈 씀씀이도 잘 지켜보고, 집안일은 잘해? 당연히 분담은 하는 거지?”

“엄마 한번 만나볼래?”

“아니 됐거든, 니네 연애에 엮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 1년이라는 기한을 이야기하며 그 이전에는 보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딸은 왜 1년이야? 물었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왜 1년이라고 했을까? 그냥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관계에 신중을 기하기 위한 잠정적 유보 기간, 딸이 겪어내야 할 사람과 시간에 불필요하게 엮이지 않으면서도 잘 지켜볼 수 있는 그런 거리를 갖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내가 동거하는 것도 아닌데 참…. 딸과의 ‘멀고도 가까운’ 관계는 어렵다.

 

 

평범한 결혼식

 

 

해가 바뀌고 코비드-19가 서서히 진압되기 시작하자, 결혼 이야기는 상대방 부모님으로부터 먼저 시작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철 지난 옷을 갖다 놓고는 며칠 쉬어 가고 하는 식이었다. 가끔 보는 관계가 나쁠 리 없다. 어느 때보다 애틋하기도 했고, 우리의 대화 시간이 늘어났다 흐흐. 5분 정도면 말다툼이 시작돼 서로 휑하니 돌아 각자 방으로 가고는 했는데, 웬일인지 딸은 나와 있을 때보다 한결 안정되고, 편안해 보였다. 평소에 내가 보지 못했던 딸의 모습이었다. 딸은 나와는 다르게 아이를 무척 좋아했고,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그리고 단출한 식구보다는 대가족 속에서 북적대며 살기를 갈구했다. 정말 종자가 달라도 너무 다른 종자다.

 

‘결혼’을 반대하는 나의 시선을 딸에게서 거두어야만 했다. ‘어쨌든 여전히 결혼’인 딸을 위해 나는 동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딸의 남친을 보아야 했다. 첫인상은 짙은 눈썹에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강단 있어 보였다. 묻는 말에 구김 없이 대답하는 것으로 봐서 성품도 밝고 무던해 보였다. 서로 잘 어울렸다. 딸에게서 보였던 안정감이 이거였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직관만으로 무엇을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딸의 안목을 믿는 수밖에. 이럴 때 딸은 ‘그냥 좋다고 하면 될 것을’ 이지만 나는 ‘음…. 글쎄’ 거나 ‘나쁘지 않아’이다. 우리는 이래서 싸운다.

 

상대방(사돈) 또한 지극히 평범한 집안이라 아주 노멀한 결혼식을 원했다. 모든 준비는 두 사람이 적정선에서 합의한 대로 따르기로 했고, 일체의 혼수라던가 답례, 이바지 등등은 생략하자고 상견례에서 이야기가 되었다. 상견례, 사돈, 사위. 장모…. 세상 낯선 인간관계가 맺어졌다.

 

나는 결혼 비용을 굳이 소비하느니, 둘이 살 집을 좀 더 넓히길 바랐지만, 딸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로망’을 따라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했다. 멋지고 우아한 드레스, 웨딩 카펫, 그리고 새로운 일가의 탄생 같은 것들. 여전히 굳건해 보이는 결혼제도, 약간의 형식이 젊은 세대에 맞춰 변형되었을 뿐 결혼 시장은 더욱 커지고 거대해 보였다. 딸의 결혼 준비를 위해 찾아간 강남의 결혼 컨설팅 업체는 놀랍게도 박람회 광장처럼 펼쳐진 대규모 공간에 책상마다 커플들이 상담하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소위 결혼 패키지 상품인 ‘스‧드‧메’를 둘러싼 웨딩플래너들과 결혼 커플들의 각축장. 결혼 커플을 보기 힘들다는 말은 거짓말 같았다. 이렇게 많은 젊은 커플들이 여전히 결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말이다.

 

 

 

(사진 출처: pixabay)

 

 

어쨌든 딸은 결혼했다. 모든 준비는 당사자 둘이 하면 되었다. 그 옛날 결혼식처럼 정신없이 혼수 준비에 바쁘거나 집안이 북적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청첩장도 온라인으로 돌렸고, 내가 한 일은 가까운 친구, 친지에게 전화 몇 통 돌리는 것과 결혼식 당일날 메이컵과 입을 옷 정도를 신경 쓰는 것이 다였다. 식에 초청할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자주 만날 일이 없는 4촌은 이제 친척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즘 문화는 결혼 당사자 친구들의 청첩장 모임이 중요한 관례처럼 보였다. 청첩장을 주기 위한 시간 투자와 음식비용이 만만찮았다고 했고, 삼십몇 년간의 자기 인간관계의 점수를 매기게 되더라는 말을 했다. 우리 때는 결혼식 전날 함을 팔기 위해 신랑 친구들과 흥정하며 실랑이하던 풍습이 있었는데(음…. 이게 언제 적 얘기인가...). 청첩장 모임 이것도 MZ들의 결혼 신풍속도 중 하나일까? 결혼식 사회는 딸의 절친이 씩씩하게 진행했고, 딸은 혼자 음악에 맞춰 입장했다. 둘이 작성한 성혼 선언을 읽었고, 바깥사돈이 축사를 유쾌하게 했다. 노래를 전혀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삑사리를 내며 축가를 불러댔다. 사위가 내게 큰절을 올렸는데, 보통은 엄마들이, 가끔 아버지들까지 눈시울을 적시던데 나는 울지 않았다. 딸도 울지 않았는데, 사위가 울었다.

 

 

모녀가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딸의 결혼은 노년기에 접어든 내게 닥친 큰 변화 중 하나이다. 그동안 딸은 내 인생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이유이자 삶의 동력이었다. 이제 주민등록등본에는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해방감과 안도감이, 한편으로는 쓸쓸함이 교차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딸의 결혼은 뭔가 마침표를 찍었다기보다는 또 다른 시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지금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그 많은 엄마들이 갔던 길, 딸의 경력 단절을 염려하며 대신 아이를 봐주고, 살림해주면서 그렇게 노년을 보내버리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물론 딸에게 나는 아이를 전적으로 봐줄 생각도 없고, 그리고 내 노후를 기댈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없다. 여전히 일 가정 양립이 어려운 시대, 허둥댈지도 모르는 딸을 내가 과연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혹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운명의 장난 같은 일들이 내 딸만 피해 가라는 법은 없으니, 나는 엄마로서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니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할 시대, 내 노년을 나는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까?

 

며칠 전 모처럼 집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간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딸은 또 달라져 보였다.

“다음 생에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

“뭐야? 이 반성 모드는? 나 또 태어나야 해?”

“아니 갚아주고 싶어서지..ㅎㅎㅎ”

아니 왜 다음 생일까? 이생은 망했다는 건가? 하긴 모녀지간이 아니면 그 지난한 우여곡절의 관계를 어떻게 짐작하며 헤아릴 수 있을까. 앞으로도 우리 모녀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엮일 것이다. 하지만 엮일 때 엮이더라도 이 질긴 모녀 관계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서로의 삶 안으로 미끄러져 허우적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내가 잘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더 늦기 전에 내가 계획하고 있는 ‘나의 노년 프로젝트’를 딸에게 이야기해야겠다. 나의 이름으로 살고,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나의 언어로 말하는 그런 노년을 살아가기 위한 프로젝트. 그래서 딸에게 말하리라. 우리는 이제 주어진 역할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생을 살아 보자고 말이다. 만날 때마다 우리의 이야기 시간이 더 길어졌으면 좋겠고, 내가 잘 서고자 하는 나의 노년이 딸에게도 좋은 기운으로 가 닿았으면 좋겠다.

 

“다 잘될 것이다, 그리고 다 잘될 것이다, 모든 사물의 존재 방식 또한 다 잘될 것이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파커 J. 파머/247p. 노리치의 줄리안이라는 중세 영국의 여성 은수자가 쓴 <신성한 사랑의 계시>에서 인용)

댓글 14
  • 2023-03-27 19:39

    딸의 결혼식을 치르며 이런 느낌이셨군요^^ 큰일 치르셨네요!

  • 2023-03-27 20:59

    ‘나는 그때 이미 너를 보냈고,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단다. 딸아….’요 부분에서 찡했어요~예상밖에 사위가 울었다는 대목도 재미있었고요,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갈 두 여성의 앞날도 응원하게 됩니다~!

  • 2023-03-28 08:26

    애쓰셨네요. 공감가는 대목이 많은걸 보니 먼불빛님과 같은 시대 사는게 맞군요~~
    노년 프로젝트 다 잘되기를요^^

  • 2023-03-28 09:01

    '그래. 결혼보다는 동거가 낫지 싶다' ㅎㅎ

    가족의 구성에 대한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으면...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바라봅니다.

    늘 응원합니다. 먼불빛샘^^

  • 2023-03-28 09:28

    뭉클울컥 하며 읽게 되네요
    먼불빛샘 애쓰셨고 또 응원합니다!
    다음글도 설레며 기다려요^^

  • 2023-03-28 10:03

    10년 전 저 결혼할 때, 엄마한테 통보만 하고 제 맘대로 다 했을 때 엄마의 난처해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ㅎㅎ
    딸 입장에선 꽤나 파격적인 결혼식 (혼자 입장, 여사친의 사회, 혼수, 답례 생략 등)을 했다고 생각했을텐데 먼불빛샘 눈엔 오히려 다른 면에서 거대해보였다는 것도 너무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자식 입장에서 바라본 부모 이야기는 많은데 부모 입장에서 하는 성인이 된 자식과의 이야기, 소중합니다. 뭉클하게 읽었어요. 계속 기다릴게요!!

  • 2023-03-28 12:35

    모든것이 다른 딸, 공감받기를 바라는딸과
    데면데면한 엄마~. 공감을 넘어 동감입니다^^.
    결혼시키며 오간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며
    새로운 장으로 넘어간것 같아요~.
    축하드리며, 노년의 프로젝트도 잘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 2023-03-28 17:48

    뵌적은 없지만... 와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세요? 글이 너무 재밌고 생생하고 썜도 멋지시고. 앞으로 글만 쓰시며 지내셔도 내내 바쁘실 것 같아요. 글 많이 쓰시면 좋겠어요. 계속 잘 읽겠습니다^^

  • 2023-03-29 05:56

    먼불빛님^^ 이멀고도 가까운 모녀 관계~~ ㅋ 팔십 중반을 넘어가는 저의 모친이 떠오르는 군요^^ 먼불빛님의 노년프로젝트를 응원합니다~~

  • 2023-03-29 22:06

    집을 들고 날 때마다 딸이 달라졌다는 부분에서 울컥했습니다. 딸을 바라보는 먼불빛님의 눈빛에서 저희 어머니가 생각난 건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함께 살게 된 칠십대 후반이 되신 어머니를 보며 엄마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이제 제가 하게 됩니다. 아마도 노년 프로젝트에 언제나 딸은 연대자 중 한 명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2023-04-05 22:47

    물흐르듯 흐르는 샘의 이야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질긴 모녀 관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먼불빛님은 질색이시려나요? ㅎ) 제 엄마도 제가 결혼하셨을 때 먼불빛님과 같은 마음이셨으려나..생각도 들고요.

  • 2023-04-08 23:45

    글을 읽으며 서로 다른 성향의 두분이 서로 용신 관계일 수 있겠다라 생각이드네요~^^;;
    시간이 지나며 변하는 모녀의 관계가 재미있네요~~

  • 2023-04-12 20:26

    이리 글을 맛깔라게 잘 쓰시다니요.. 먼불빛님의 책 출판을 고대해봅니다.~~

  • 2023-05-08 23:49

    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따님이 굉장히 똑순이일 듯합니다. 오죽하면 동거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까요. 좋은 남자를 골랐을 거라고 믿음이 갑니다!

인문약방 에세이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새봄 2023.09.03 조회 170
인문약방 에세이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천유상 2023.09.03 조회 100
인문약방 에세이
    따스함과 자유   『먼길로 돌아갈까?』(게일 콜드웰, 문학동네, 2023)는 게일 콜드웰이 마흔 둘에 폐암으로 죽은 캐럴라인 냅과의 우정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그들은 우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말도 추가하고 싶다. 이들의 사랑은 희생, 인내, 고통 보다 자기 긍정, 성장, 자유와 연결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5,6년이었다. 둘 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았으며, 독신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들이 만들어낸 사랑과 우정의 경이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게일은 친밀한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자연스러운 관계가 주는 따스함과 오롯한 자유로움 둘 다를 원했던 그녀는 따스한 관계가 만족되면 자유를 잃었고, 자유를 얻었다 싶으면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처리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캐럴라인도 게일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자신의 자율을 침해 받는 것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따스함과 자유가 공존하는 관계를 구현해낸다.       게일과 캐럴라인은 닮은꼴이다. 게일은 소아마비를 이겨냈고, 캐럴라인은 거식증의 물살을 헤쳐 나왔다. 두 여성은 알코올중독이라는 자기 파괴의 늪에서도 과감하게 살아나와 존재를 파산시키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개를 통해서 터득하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술이든 사람이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과 자립을 지켜내기 위해, 그런 힘을 지니기 위해 분투했던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공유한 명제는 “삶은 고되고 때로 가장 치열한 싸움은 고독하게 치러야 하지만,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상처를 입고 나올지라도 여전히 숨을 쉴 수 있다는 믿음”(119쪽)이었다.       이런...
    따스함과 자유   『먼길로 돌아갈까?』(게일 콜드웰, 문학동네, 2023)는 게일 콜드웰이 마흔 둘에 폐암으로 죽은 캐럴라인 냅과의 우정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그들은 우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말도 추가하고 싶다. 이들의 사랑은 희생, 인내, 고통 보다 자기 긍정, 성장, 자유와 연결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5,6년이었다. 둘 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았으며, 독신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들이 만들어낸 사랑과 우정의 경이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게일은 친밀한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자연스러운 관계가 주는 따스함과 오롯한 자유로움 둘 다를 원했던 그녀는 따스한 관계가 만족되면 자유를 잃었고, 자유를 얻었다 싶으면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처리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캐럴라인도 게일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자신의 자율을 침해 받는 것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따스함과 자유가 공존하는 관계를 구현해낸다.       게일과 캐럴라인은 닮은꼴이다. 게일은 소아마비를 이겨냈고, 캐럴라인은 거식증의 물살을 헤쳐 나왔다. 두 여성은 알코올중독이라는 자기 파괴의 늪에서도 과감하게 살아나와 존재를 파산시키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개를 통해서 터득하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술이든 사람이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과 자립을 지켜내기 위해, 그런 힘을 지니기 위해 분투했던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공유한 명제는 “삶은 고되고 때로 가장 치열한 싸움은 고독하게 치러야 하지만,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상처를 입고 나올지라도 여전히 숨을 쉴 수 있다는 믿음”(119쪽)이었다.       이런...
윤아 2023.08.29 조회 168
인문약방 에세이
    “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왔다/<중략>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6쪽)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는 그녀의 작품 활동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종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다. 1960년대 서구 가부장제 사회를 ‘난파선’으로 명명하며 위험한 심해에 들어가 그녀가 응시하고자 한 ‘잔해’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시 속의 자아는 불편한 잠수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달고 내려가 검은색으로 변한 바다 속으로 몸을 옯겨 놓는다. 그곳에는 중력이 없고 산소가 없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권력이 없고 너와 내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롭다. 스트레스를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는 익사자의 시체, 고장난 나침반, 물먹은 일지. 그곳에서는 이 모두가 그녀 자신이며, 우리이다. 여기에서 길어올린 ‘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레즈비언이며 가부장제에 부역한 이혼녀이고 세 아이의 엄마였던 미국여성 시인인 그녀의 글속에서 자유롭게 횡단하고 있다. 그녀의 에세이 <뿌리에서 갈라지다>와 <피,빵 그리고 시>에서는 자신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제치는 그녀의 소심함과 용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유대인이면서 미국 주류 사회의 토큰이 되고자 했던 그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수치스럽지만 꼭 써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표현된다. “내가 유대인인 것은 기독교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까”(288쪽) , “유대인으로서 나의 양가감정이 대체 어디서...
    “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왔다/<중략>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6쪽)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는 그녀의 작품 활동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종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다. 1960년대 서구 가부장제 사회를 ‘난파선’으로 명명하며 위험한 심해에 들어가 그녀가 응시하고자 한 ‘잔해’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시 속의 자아는 불편한 잠수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달고 내려가 검은색으로 변한 바다 속으로 몸을 옯겨 놓는다. 그곳에는 중력이 없고 산소가 없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권력이 없고 너와 내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롭다. 스트레스를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는 익사자의 시체, 고장난 나침반, 물먹은 일지. 그곳에서는 이 모두가 그녀 자신이며, 우리이다. 여기에서 길어올린 ‘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레즈비언이며 가부장제에 부역한 이혼녀이고 세 아이의 엄마였던 미국여성 시인인 그녀의 글속에서 자유롭게 횡단하고 있다. 그녀의 에세이 <뿌리에서 갈라지다>와 <피,빵 그리고 시>에서는 자신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제치는 그녀의 소심함과 용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유대인이면서 미국 주류 사회의 토큰이 되고자 했던 그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수치스럽지만 꼭 써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표현된다. “내가 유대인인 것은 기독교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까”(288쪽) , “유대인으로서 나의 양가감정이 대체 어디서...
꿈틀이 2023.08.29 조회 69
인문약방 에세이
      지난 시간 세미나에서 현모양처와 관련된 나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셨다. 그때는 단순히 현모양처가 아이 옷을 잘 입히는 게 아니지 않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난 우리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엄마이고 애를 자율적으로 키웠다고 자부하고 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내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난 왜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을까? 노력도 안 하면서 왜 그토록 줄기차게 애기하고 다닐까?       난 기억력이 안 좋은 편임에도 기억나는 몇 가지들은 음식에 대한 것이 많다. 엄마 심부름으로 아빠 드릴 보신탕을 사러 심부름 하던 기억. 비린 것을 싫어하는 엄마가 생선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해주시던 생선조림. 가족이 많다 보니 항상 음식은 부족했고 엄마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의 엥겔지수는 상당했을 것이다. 애들은 서로서로 같이 잘 켰고 엄마는 때에 맞춰서 밥을 해주는 것으로도 엄마의 소임을 다 하신건데 거기다 돈까지 벌어오셨다. 물론 엄마의 고단한 생활은 어린 자식들에게 폭발한 적이 많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명절에도 엄마의 주방은 빛을 발한다. 육형제의 장남인 아버지 형제들과 그 가족까지 모두 모이면 30명은 족히 되는 대가족의 음식준비의 대장인 엄마는 작은 엄마들을 지휘하며 요리를 만드시고 그 모든 행사가 끝나시면 그것으로 아빠에게 유세를 하셨다. 나이가 90을 바라보는 지금도 엄마는 아빠의 밥을 챙겨주시는 것으로 아내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신다. 배우자가 정말 원하는 게 무언지 궁금하지도 묻지도 않으신다. 엄마에게는 가족을 위해 차리는...
      지난 시간 세미나에서 현모양처와 관련된 나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셨다. 그때는 단순히 현모양처가 아이 옷을 잘 입히는 게 아니지 않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난 우리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엄마이고 애를 자율적으로 키웠다고 자부하고 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내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난 왜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을까? 노력도 안 하면서 왜 그토록 줄기차게 애기하고 다닐까?       난 기억력이 안 좋은 편임에도 기억나는 몇 가지들은 음식에 대한 것이 많다. 엄마 심부름으로 아빠 드릴 보신탕을 사러 심부름 하던 기억. 비린 것을 싫어하는 엄마가 생선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해주시던 생선조림. 가족이 많다 보니 항상 음식은 부족했고 엄마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의 엥겔지수는 상당했을 것이다. 애들은 서로서로 같이 잘 켰고 엄마는 때에 맞춰서 밥을 해주는 것으로도 엄마의 소임을 다 하신건데 거기다 돈까지 벌어오셨다. 물론 엄마의 고단한 생활은 어린 자식들에게 폭발한 적이 많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명절에도 엄마의 주방은 빛을 발한다. 육형제의 장남인 아버지 형제들과 그 가족까지 모두 모이면 30명은 족히 되는 대가족의 음식준비의 대장인 엄마는 작은 엄마들을 지휘하며 요리를 만드시고 그 모든 행사가 끝나시면 그것으로 아빠에게 유세를 하셨다. 나이가 90을 바라보는 지금도 엄마는 아빠의 밥을 챙겨주시는 것으로 아내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신다. 배우자가 정말 원하는 게 무언지 궁금하지도 묻지도 않으신다. 엄마에게는 가족을 위해 차리는...
시소 2023.08.29 조회 75
인문약방 에세이
    출생의 비밀 잠결에 엄마와 외할머니의 말소리를 들었다. “남의 자식 키우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울하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곧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잠결이지만 나는 놀랐다. ‘이런 일이 우리 집에? 나에게?’ 나와 여섯 살 차이 나는 언니가 가출을 했다. 언니네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을 찾아왔고, 엄마에게 “계모라서 애한테 너무 신경 안 쓴 거 아니냐고” 모진 소리를 하고 갔다. 살기 바빠서 내 새끼고 남의 새끼고 간에 건사하지 못한 건 맞지만, 본인 또래의 여자에게 계모소리 들은 것을 엄마는 분해했다. “지가 뭐라고!” 언니는 가출청소년이 되었고, 우리 집은 문제아가 있는 문제 가정이 되었다. 당시는 밤 9시만 되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청소년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라는 ‘계몽적’ 멘트가 나왔던 시절이다. 뉴스에서는 ‘문제 청소년은 문제 가정에서 나온다’는 캠페인을 자주 내보냈다. 나는 우리 집의 문제가 걱정스러웠지만, 그것보다는 이걸 사람들이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우선이었다.     언니의 가출은 계모 때문일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한다. 그러나 언니네 담임선생님 말고 언니의 가출을 엄마와 연관 지어 생각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계모라서가 아니라 우리 집이 가난해서 언니는 가출했다는 것이 좀 더 맞는 말이다. 가난과 돌봄의 공백은 이어진 문제이고,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언니는 격렬하게 맨몸으로 겪어냈다. 언니의 가출은 두 달 정도 지속되었다. 돌아왔지만 우리와 살지 않고 혼자 사는 고모네 집으로 갔다. 거기서 학교에 다녔는데, 몇...
    출생의 비밀 잠결에 엄마와 외할머니의 말소리를 들었다. “남의 자식 키우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울하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곧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잠결이지만 나는 놀랐다. ‘이런 일이 우리 집에? 나에게?’ 나와 여섯 살 차이 나는 언니가 가출을 했다. 언니네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을 찾아왔고, 엄마에게 “계모라서 애한테 너무 신경 안 쓴 거 아니냐고” 모진 소리를 하고 갔다. 살기 바빠서 내 새끼고 남의 새끼고 간에 건사하지 못한 건 맞지만, 본인 또래의 여자에게 계모소리 들은 것을 엄마는 분해했다. “지가 뭐라고!” 언니는 가출청소년이 되었고, 우리 집은 문제아가 있는 문제 가정이 되었다. 당시는 밤 9시만 되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청소년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라는 ‘계몽적’ 멘트가 나왔던 시절이다. 뉴스에서는 ‘문제 청소년은 문제 가정에서 나온다’는 캠페인을 자주 내보냈다. 나는 우리 집의 문제가 걱정스러웠지만, 그것보다는 이걸 사람들이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우선이었다.     언니의 가출은 계모 때문일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한다. 그러나 언니네 담임선생님 말고 언니의 가출을 엄마와 연관 지어 생각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계모라서가 아니라 우리 집이 가난해서 언니는 가출했다는 것이 좀 더 맞는 말이다. 가난과 돌봄의 공백은 이어진 문제이고,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언니는 격렬하게 맨몸으로 겪어냈다. 언니의 가출은 두 달 정도 지속되었다. 돌아왔지만 우리와 살지 않고 혼자 사는 고모네 집으로 갔다. 거기서 학교에 다녔는데, 몇...
겸목 2023.08.29 조회 100
먼불빛의 웰컴 투 60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먼불빛 2023.08.24 조회 215
인문약방 에세이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문탁 2023.07.20 조회 178
인문약방 에세이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문탁 2023.07.20 조회 70
인문약방 에세이
      나의 곤경노트 - 법이 폭력이라고?   무사     법이 무사 폭력이우까?!   폭력을 응징하는 법이 폭력이라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폭력을 휘둘러 왔다는 말이야? 나는 강하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버틀러의 문제의식은 18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2005년 가을이었고, 입대한 지 3년차였다. 관할 지역 남성 지휘관이 여성 장교를 강제추행한 사건이었다. 나는 수사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입회 임무를 맡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해주려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그 후배는 물었다. “선배가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날돕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냐” 고. 나는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2차 피해를 막고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처벌되었고, 후배는 전역했다. 그리고 다른 유사한 사건들에 치어 나는 곧 이 일을 잊었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타인에 대하여 부당하거나 불법한 방법으로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법에 따른 힘의 행사(체포, 구속, 사형 등)나 법이 허용한 힘의 행사(정당방위 등)는 법질서를 위반하는 폭력에 대한 합법적인 억압에 해당한다.(<법률학 사전>, ‘폭력’ 편) 이처럼 법과 폭력은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법과 폭력이 별개가 아니라고 말하는 버틀러의 주장 앞에 멈칫했다. 내가 수 십 년간 공부하고 다뤄 왔던 법에는 나름 양심이 있고, 일부 감정도 있다고 믿어 왔다. 피해 전부를 보상 받거나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법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경우도 많았다. 법은 단순히 법전 안의 글자만은 아니다.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일반인의 법감정’이나 판사가...
      나의 곤경노트 - 법이 폭력이라고?   무사     법이 무사 폭력이우까?!   폭력을 응징하는 법이 폭력이라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폭력을 휘둘러 왔다는 말이야? 나는 강하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버틀러의 문제의식은 18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2005년 가을이었고, 입대한 지 3년차였다. 관할 지역 남성 지휘관이 여성 장교를 강제추행한 사건이었다. 나는 수사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입회 임무를 맡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해주려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그 후배는 물었다. “선배가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날돕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냐” 고. 나는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2차 피해를 막고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처벌되었고, 후배는 전역했다. 그리고 다른 유사한 사건들에 치어 나는 곧 이 일을 잊었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타인에 대하여 부당하거나 불법한 방법으로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법에 따른 힘의 행사(체포, 구속, 사형 등)나 법이 허용한 힘의 행사(정당방위 등)는 법질서를 위반하는 폭력에 대한 합법적인 억압에 해당한다.(<법률학 사전>, ‘폭력’ 편) 이처럼 법과 폭력은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법과 폭력이 별개가 아니라고 말하는 버틀러의 주장 앞에 멈칫했다. 내가 수 십 년간 공부하고 다뤄 왔던 법에는 나름 양심이 있고, 일부 감정도 있다고 믿어 왔다. 피해 전부를 보상 받거나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법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경우도 많았다. 법은 단순히 법전 안의 글자만은 아니다.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일반인의 법감정’이나 판사가...
문탁 2023.07.20 조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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