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처방전>18회 위암편

겸목
2023-02-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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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無事),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

-위암에 황정은의 에세이집『일기』를 처방합니다

 

 

황정은을 좋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무사(無事)는 누군가의 분투를 대가로 치르고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황정은, 『일기』, 창비, 2022년, 41쪽)

 

황정은의 에세이집 『일기』는 작고 예쁘다. 친구에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니 친구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런데 읽다보니 좋은 선물이었는지 불안해진다. 나에게는 불편하게 읽히는 책을 친구는 어떻게 읽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에게는 질책으로 다가오는 황정은의 말들을 친구는 어떻게 독해하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으로 나는 황정은의 『일기』를 여러 번 읽었다. 여러 번 읽으며 든 생각은, 내가 힘들게 읽은 만큼 황정은 또한 힘들게 썼겠구나 하는, 이상한 동질감이다. 독자가 작가를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나도 힘들게 읽고 그도 힘들게 썼으니 피장파장이라는 느낌이다.

 

무엇이 읽기에 힘들었을까? ‘징그럽다’는 그의 생생한 감정이다. 나의 무사(無事)함이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라는 것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무한 경쟁과 탐욕의 시대, 무사하고 무탈함을 바라는 것은 욕망의 기본값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은 ‘보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결코 보통의 대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다. 무사한 보통의 삶은 많은 비용을 치룰 수 있어야 가능하고, 무사하지 못한 사람들의 부당함을 모르는 척 해야 유지되는 ‘고요’이다. 이런 자책감을 불편함 정도가 아니라 ‘징그럽다’는 강렬함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말투가 내게는 따갑게 느껴진다.

 

『일기』에서 황정은 내내 자신의 까칠함을 드러낸다. 전자책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서는 곧 전자책도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일 텐데 그 노동의 과정을 잘 모르면서 ‘견딜 수 없다’고 말해도 될까, 망설인다. 이웃들의 공터에 대한 관심을 ‘안다’고 쓰려 했다가, “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내가 그걸 모른다는 것을 안다. 알아버린 것을 모르는 척, 안다고 말해야 할 때 나는 순진한 척을 하며 무언가를 단념하고 있고 그래서 안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늘 얼마간 책임을 지는 일로 느껴진다”( 『일기』, 29쪽)고 숨김없이 실토하고 있다.

 

난감한 상황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어’ 라는 비겁한 변명에 대해 황정은은 무지는 ‘게으름’이라고 ‘덮어쓰기’ 한다. 차별받았다는 생각으로 분노할 줄은 알지만 차별한다는 자각은 없는 삶에 대해서는 ‘무능력’이라고 단호히 말하고, 그런 자신의 태도에 대해 ‘정치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반박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 『일기』, 133~134쪽)

 

 

황정은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곤란함이 있다. 그의 윤리적 감수성은 베일 듯 날카롭고, 그 날카로움에 내가 피투성이가 안 될 자신이 없다. 알려고 하지 않는, 알지 않으려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상투적인 어른’이라 질책하는 황정은의 문장은 내게 매섭다. 황정은의 작품을 좋아하기 위해 나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룸메이트, 내 인생의 피해자 1

선형은 대학시절 나의 룸메이트였다. 2학년 때부터 첫 직장에 다니던 때까지 5년을 같이 살았다. 그 사이 내가 1년 휴학을 해서, 선형과 나의 졸업년도가 다르다. 휴학생과 학생, 3학년과 4학년, 4학년과 직장인으로,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행동반경은 달라졌지만, 방 하나를 같이 쓰는 사이로서 흉허물이 없었다.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 엄마에게 말하기보다 선형에게 말하는 것이 더 미안했다. 웃기지만, 친구를 혼자 두고 떠난다는 생각이 죄책감처럼 달라붙었다. 물론 선형은 내 결혼소식에 크게 서운해 하지 않았다. 어쩌면 속 시원해 했는지도 모르겠다. 선형과 사는 5년 동안 내가 방청소를 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MT를 가서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해장국을 끓어놓는 내공에서 알 수 있듯이, 선형은 룸메이트를 없는 셈치고 혼자 잘 치우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 사이가 안 좋았을까? 그랬다면 5년을 같이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동아리였기 때문에, 우리 방은 늘 동아리 선후배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없어도 방에는 한두 명의 친구들이 어슬렁거렸고, 사생활이 없었다. 학년이 다르고, 수업을 듣는 과목도 달랐지만, 함께 해야 하는 동아리 일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운명공동체였다. 신입생 환영회, MT, 작품집 발간 같은 어지간한 일들은 둘이 후다닥 해치웠다. 성향과 기질이 달랐지만,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붙어 잘 굴러가는 것처럼, 우리는 티격태격하면서도 붙어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선형이의 배려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N분의 1의 법칙이 칼같이 적용됐다면, 우리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집안일이라고는 할 줄도 모르고, 할 생각이 없는 나를 ‘태생적으로 이기적’이라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한 선형이의 ‘K-장녀’다운 아량과 배포 덕분에 나는 간신히 얹혀살 수 있었다(선형이는 남동생이 둘씩이나 있는, 명실상부한 K-장녀다). 선형이는 ‘내 인생의 피해자 1호’인지도. 나의 대학생활은 룸메이트 덕분에 내 마음대로, ‘나 잘났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 수 있었다. 집을 나왔으니 간섭하는 부모도 없었고, 같은 집에 사는 룸메이트와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내 자존감의 원천은 부모의 무관심과 룸메이트의 인내심 덕분이다.

 

나같이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룸메이트도 거뜬히 감수하며 살아간 공덕으로 선형의 삶은 무탈하게 흘러갔다. 경상도 여자답게 말은 ‘뚝뚝’하게 했지만, 누구에게도 ‘모난’ 소리 하지 않는 친절한 사람이란 걸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나만 해도 나 좋을 땐 나 몰라라 지내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선형을 찾았다. 선형은 입으로는 싫은 소리를 해도, 산타클로스처럼 작은 선물들을 잊지 않았다. 립스틱, 원두커피, 와인, 수제비누 같은 걸 꼭 가지고 왔다. 이런 선물은 받을 때는 모르지만, 헤어지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돌아갈 때쯤 꺼내보면 부적처럼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됐다. 선형과 만나고 있으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기고만장하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안심이 됐다. 언제 찾아가도 밥 한 끼 사줄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후줄근해진 마음을 조금은 부풀어 오르게 한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선형은 작년에 위암수술을 받았다. 1기에 발견되어 다행이라고 하지만, 종양의 위치가 나빠, 위를 반 이상 절개했다. 늘 ‘받기만’ 하던 내가 드디어 무언가를 주어야 할 순간이 왔다. 나는 무엇을 주어야 할까? 따뜻한 말 한 마디, 정성들인 밑반찬, 알짜배기 의학정보…… 뭐든 들고 달려가려는 내게 선형은 말했다. “나중에 보자. 지금은 앉아 있기도 힘들고” 그 말투가 평소의 무뚝뚝함을 넘어서는 서늘함이라 나는 이내 수긍하고 말았다.

 

선형의 삶이 무탈하다고 했지만, 위암 수술 이후 생각해보니 전혀 무탈하지 않았다. 선형의 부모님은 20년 전쯤 한 해 걸러 모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후 치러져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 다음해 심장마비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해 선형의 어머니는 막 정년퇴직을 한 직후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모두 어느 정도 가족력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일찍 부모를 잃은 선형 남매는 알게 모르게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며 살아왔다. 그렇게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위암 진단과 수술을 마치고 나니 선형은 조금 억울했다고 한다. 모두들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하는 말도 듣기 싫고, 조심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맥이 빠지는 일이기도 했다. 수술 후, 선형은 평소와 달리 하루 다섯 끼를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언제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었다고 했다.

 

“부모의 이른 죽음을 보고, 죽음이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건 나쁘지 않아.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의 인생이 너무 짧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안 좋아. 자식이 결혼해서 자식과 똑 닮은 손자를 낳았는데, 그 얼굴을 봤으면 엄마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싶고, 그걸 못 보고 돌아가신 게 아쉽지.”

 

선형이 앉아 있을 체력이 생겼을 때쯤 우리는 만나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위암 수술을 마친 친구를 위로하고자 만났지만, 그 자리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나눈 얘기는 부모님의 죽음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건강관리를 해도 유전자의 힘은 강하고, 그걸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냉소적이 되기 쉬운데, 그보다 선형은 부모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때 자신도 경황이 없어 동생들을 살피지 못해 트라우마와 건강염려증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아쉬워해 했다.

 

선형은 수술 후 6개월 정도 지난 후 다시 일에 복귀했고, 식습관 조절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아직 여행일정을 잡는 게 조심스럽다고 하지만, 그 밖의 일상생활에서 속도가 느려진 것 말고는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 언제나 안달복달하지 않고 그러려니 살아가는 선형의 모습이 의아했는데, 이번에도 선형은 호들갑 떨지 않고 이 고비를 넘길 것이다.

 

문제는 나다. 선형이가 서른의 초입에서 때 이른 부모의 초상을 치를 때 나는 문상객으로 조문을 다녀왔을 뿐이다. 막 아이들이 태어나 정신없을 때라고 하지만, 그애의 인생에서 ‘충격적’인 사건일 수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그 당시 막냇동생은 아직 대학생이었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남매가 어떻게 생활을 꾸리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준비를 하였는지 나는 세세히 알지 못한다. 처리해야 할 번거로운 일들에 나는 일손을 보태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수술 후 오지 말라는 친구에게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위로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요즘은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소설 문장을 쓰느라고 긴장한 뇌를 이리저리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쓴다. 하지만 어느 날엔 문득 용기가 사라지고 그런 날엔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다. 그럴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음악 한곡을 여덟 번 열 번 반복해 듣는 것이 어떻게 삶을 구할 수 있기까지 하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넷플릭스 오리지널2019)의 두 형사, 그레이스와 캐런은 한번도 만나지 못한 마리의 삶을 본인들의 일로 돕는다. 누군가의 애쓰는 삶이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구한다.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나며, 픽션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일기』, 20쪽)

 

선형이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애써 만들어낸 것이 다른 사람의 삶을 구한다. 나는 황정은이 애써 쓴 문장을 빌려 친구에게 그 시절의 무사함에 대해 ‘고마웠다’는 인사를 뒤늦게 해본다. 내가 위로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감사였다.

 

 

날카로운 윤리의식과 날렵한 상상력

황정은의 소설을 좋아한다. 황정은의 소설은 대개 비슷하다. ‘다크’하다. 그가 그려내는 빈곤의 모습은 평면적이지 않다. 빈곤을 다루되 예의를 갖추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무심한 듯 다정하고 단정한 그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그의 수고가 떠오른다. 황정은은 상투적이고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말들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기꺼이 알고자 하고, 제대로 인식하고, 정직하게 책임을 지고 발언을 하려는 그의 태도는 존경스럽다. 그러나 가끔 그의 문장들은 내게 매서운 질책의 말들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그만큼 정직하지 못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황정은의 책을 읽을 때 따라오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이런 후회와 자책감이다.

 

『일기』를 읽으며 황정은도 나처럼 후회하고 자책하며 글을 계속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황정은의 책을 좋아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아마도 그의 문장들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부끄러워하며 계속 읽어나가는 일일 것이다. 불편한 독서는 무뎌지려는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일기』의 뒷부분에 실린 「흔」이 만들어낸 파문은 오래도록 마음에서 요동쳤다. 자신의 상처를 탐문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과 같은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황정은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수치심은 당신의 몫이 아니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니라고.”(184쪽) 황정은은 자신을 옭아매는 것들에 함몰되지 말고 자신의 존엄함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상상의 힘을 잊지 말라고 거듭 당부한다.

 

가혹한 현실에 시달려 손상된 사람이라기보다는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며 현실 너머로 건너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상상이 현실을 밀어내며 엉뚱하게 팽창하는 순간을 나는 좋아했고, 그가 어른들 앞에서 비교적 의젓하고 무력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이 그 상상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앤이 하는 것처럼 앤처럼, 나에게도 상상력이 있다고 믿으며 상상으로 빠져든 시간이 내게도 있었고 그 상상들 중에 무언가는 내게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부럽기도 했다. (『일기』, 47쪽)

 

내게 황정은의 날카로운 윤리적 감수성이 부담스럽다면, 그의 상상력에는 조금 가볍게 편승하고 싶은 마음이다. 난관에 부딪쳐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이고, 용기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의 힘에서 나온다. 황정은이 사랑하는 빨간 머리 앤처럼 말이다. 지금 용기가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앤의 날렵한 상상력을 ‘공유’한다. 그러고 보니 오래도록 상상력을 발동시키지 않고 살아왔다. 녹슨 상상력에 시동을 걸어본다.

 

 

댓글 17
  • 2023-02-03 20:59

    18회로 <문학처방전>을 마칩니다.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오래된 친구에 대한 글로 마무리를 하게 되어 훈훈합니다. <문학처방전>을 읽고 '재미있다' 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3년 동안 게으르게나마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글쓰기' 경험해봤습니다. 고맙습니다. 황정은의 문장으로 인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기를. (....)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 2023-02-04 07:54

    그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문학처방전 읽는 동안 즐거웠어요^^

  • 2023-02-04 08:36

    생각이 납니다. 빨강머리 앤과 말괄량이 삐삐에게서 받은 힘이 있었죠. ^^

    문학처방전 팬으로서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마무리를 하게 된 걸 축하하고 싶네요. 겸목이 다른 글로 나아가게 될 거니까요. ^0^

  • 2023-02-04 08:42

    ㅋ 위로보다 감사를 먼저 했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겸목도 마이~~~~ 성장했을 것이네요^^ 애쓰셨습니다~~ 문학처방전을 쓰겠다는 발심의 순간에 함께 했던 저로서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 겸목의 순간에 또 함께 해서 좋습니다~~~~ 겸목의 글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 2023-02-04 09:07

    문학 처방전 너무 잘 읽고 있었어요!
    마지막이라니 아쉽네요ㅠ
    또 좋은 글 보여주세요~^^

  • 2023-02-04 09:28

    그간 문학처방전 덕분에 의미있게 책선물도 할수 있었지요~~
    친구분 덕분에 어린겸목샘의 이야기도 들을수 있었네요~^^
    감사해요~좋은글을 읽게 해주셔서^^

  • 2023-02-04 12:07

    겸목님의 친구 선형님을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선형님이 공을 들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애정하는 겸목이 될 수 있었구나, 고맙기도 하고요. 하하하
    겸목의 문학 처방전을 읽는 즐거움이 이 글로 끝이라니 아쉽지만, 또 다른 글로 돌아 올 겸목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2023-02-04 20:34

    그러게요.. 연재마감에 매우 섭섭한 또 하나의 일인입니다.'날카로운 윤리의식과 날렵한 상상력'은 '문학처방전'의 미덕이기도 했죠.

    마침 제게도 친구가 준 황정은의 '일기'가 있어요.
    문학처방전 덕분에 다시 한번 촘촘히 읽어봐야겠어요.겸목샘~~그간 많이 애쓰셨어요!^^

  • 2023-02-04 22:47

    문학처방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일기> 문장을 다시 대하니 저는 너무 평평하게 읽어 버렸던게 아닌가 싶네요...
    겸목샘도 건강하시기를...그래서 또 뵈요~

  • 2023-02-05 06:32

    황정은 작가는 십년 전 ‘라디오 책다방’ 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왜인지 그의 작품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겸목샘의 이번 문학처방전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유독 소설 읽기를 힘들어하는 편인 저에게, 겸목샘의 문학처방전은 마치 다 깎아놓은 과일을 먹기만 하면 되는 기쁨을 주었더랬습니다. 그 과일을 깎기까지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언제가 글쓰기 수업에서 지도받고 함께 공부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무사함에 빚지고 있는 모두(모든 것)에 감사하며…

  • 2023-02-05 06:52

    그 동안 겸목의 처방전 리스트에
    언급되었던 친구들이, 한켠 부럽기도 했다.
    그들이 겸목에게 특별한 편지를 받는 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겸목이 참 글을 잘 쓰는구나, 싶었다.
    그게 또 부럽기도 했다.
    무사한 일상이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꾸려진다면
    쉽게 읽히는 글에는 글쓴이의 고민과 애씀이
    더욱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겸목의 글이 그러했다.
    그런 글들은 참 고맙다.
    아, 생각해보니 쉽게 잘 읽히는 좋은 글을 좋아한다는 것
    그 역시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생각도 든다.
    난 편하게 읽을께, 고민은 당신들이 해주라.

    그러나 나 역시 겸목의 글을 부러워하기 전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건내고 싶다.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 2023-02-05 07:22

    샘 저도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읽겠습니다

  • 2023-02-05 19:52

    그간 수고 많았어요.
    다른 글로 또 보겠죠?

  • 2023-02-05 20:15

    잘 읽었습니다. 황정은 작가의 <일기>가 무척 읽고 싶어지네요. 산다는 것은 준엄한 일이고 살아남는 것 또한 그런 일이겠지요. 좋은 친구를 두신 것 같아서 부럽습니다.

  • 2023-02-06 06:18

    다른 분들의 처방을. 통한 제 마음의 치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겸목샘!!

  • 2023-02-06 10:11

    양생과 글쓰기에 글을 올리면서 처음 겸목의 연재글을 보고
    한 편씩 찾아서 아껴가며 매일 매일 읽기 시작했는데, 마감한다고요?
    이거슨 반칙입니다!
    하지만 고생했습니다. 수고로움에 감사합니다

  • 2023-02-06 17:09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선형님에게 애틋한 마음이 생겨요. 그리로 겸목의 뒤늦은 감사의 인사에 울컥합니다. ^^:

    '나의 무사(無事)함이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라는 것'을 당분간 곱씹게 될 것 같아요. 최근 들어서 누군가의 분투를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겸목의 처방전을 선물로 받고, 처방전대로 실천도 해보고 종종 아껴 보게 됩니다. 겸목의 분투로 저의 무사함을 지켜갈 수 있어서 고마워요.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

인문약방 에세이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새봄 2023.09.03 조회 170
인문약방 에세이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천유상 2023.09.03 조회 100
인문약방 에세이
    따스함과 자유   『먼길로 돌아갈까?』(게일 콜드웰, 문학동네, 2023)는 게일 콜드웰이 마흔 둘에 폐암으로 죽은 캐럴라인 냅과의 우정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그들은 우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말도 추가하고 싶다. 이들의 사랑은 희생, 인내, 고통 보다 자기 긍정, 성장, 자유와 연결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5,6년이었다. 둘 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았으며, 독신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들이 만들어낸 사랑과 우정의 경이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게일은 친밀한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자연스러운 관계가 주는 따스함과 오롯한 자유로움 둘 다를 원했던 그녀는 따스한 관계가 만족되면 자유를 잃었고, 자유를 얻었다 싶으면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처리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캐럴라인도 게일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자신의 자율을 침해 받는 것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따스함과 자유가 공존하는 관계를 구현해낸다.       게일과 캐럴라인은 닮은꼴이다. 게일은 소아마비를 이겨냈고, 캐럴라인은 거식증의 물살을 헤쳐 나왔다. 두 여성은 알코올중독이라는 자기 파괴의 늪에서도 과감하게 살아나와 존재를 파산시키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개를 통해서 터득하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술이든 사람이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과 자립을 지켜내기 위해, 그런 힘을 지니기 위해 분투했던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공유한 명제는 “삶은 고되고 때로 가장 치열한 싸움은 고독하게 치러야 하지만,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상처를 입고 나올지라도 여전히 숨을 쉴 수 있다는 믿음”(119쪽)이었다.       이런...
    따스함과 자유   『먼길로 돌아갈까?』(게일 콜드웰, 문학동네, 2023)는 게일 콜드웰이 마흔 둘에 폐암으로 죽은 캐럴라인 냅과의 우정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그들은 우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말도 추가하고 싶다. 이들의 사랑은 희생, 인내, 고통 보다 자기 긍정, 성장, 자유와 연결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5,6년이었다. 둘 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았으며, 독신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들이 만들어낸 사랑과 우정의 경이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게일은 친밀한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자연스러운 관계가 주는 따스함과 오롯한 자유로움 둘 다를 원했던 그녀는 따스한 관계가 만족되면 자유를 잃었고, 자유를 얻었다 싶으면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처리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캐럴라인도 게일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자신의 자율을 침해 받는 것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따스함과 자유가 공존하는 관계를 구현해낸다.       게일과 캐럴라인은 닮은꼴이다. 게일은 소아마비를 이겨냈고, 캐럴라인은 거식증의 물살을 헤쳐 나왔다. 두 여성은 알코올중독이라는 자기 파괴의 늪에서도 과감하게 살아나와 존재를 파산시키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개를 통해서 터득하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술이든 사람이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과 자립을 지켜내기 위해, 그런 힘을 지니기 위해 분투했던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공유한 명제는 “삶은 고되고 때로 가장 치열한 싸움은 고독하게 치러야 하지만,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상처를 입고 나올지라도 여전히 숨을 쉴 수 있다는 믿음”(119쪽)이었다.       이런...
윤아 2023.08.29 조회 168
인문약방 에세이
    “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왔다/<중략>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6쪽)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는 그녀의 작품 활동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종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다. 1960년대 서구 가부장제 사회를 ‘난파선’으로 명명하며 위험한 심해에 들어가 그녀가 응시하고자 한 ‘잔해’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시 속의 자아는 불편한 잠수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달고 내려가 검은색으로 변한 바다 속으로 몸을 옯겨 놓는다. 그곳에는 중력이 없고 산소가 없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권력이 없고 너와 내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롭다. 스트레스를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는 익사자의 시체, 고장난 나침반, 물먹은 일지. 그곳에서는 이 모두가 그녀 자신이며, 우리이다. 여기에서 길어올린 ‘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레즈비언이며 가부장제에 부역한 이혼녀이고 세 아이의 엄마였던 미국여성 시인인 그녀의 글속에서 자유롭게 횡단하고 있다. 그녀의 에세이 <뿌리에서 갈라지다>와 <피,빵 그리고 시>에서는 자신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제치는 그녀의 소심함과 용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유대인이면서 미국 주류 사회의 토큰이 되고자 했던 그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수치스럽지만 꼭 써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표현된다. “내가 유대인인 것은 기독교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까”(288쪽) , “유대인으로서 나의 양가감정이 대체 어디서...
    “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왔다/<중략>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6쪽)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는 그녀의 작품 활동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종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다. 1960년대 서구 가부장제 사회를 ‘난파선’으로 명명하며 위험한 심해에 들어가 그녀가 응시하고자 한 ‘잔해’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시 속의 자아는 불편한 잠수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달고 내려가 검은색으로 변한 바다 속으로 몸을 옯겨 놓는다. 그곳에는 중력이 없고 산소가 없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권력이 없고 너와 내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롭다. 스트레스를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는 익사자의 시체, 고장난 나침반, 물먹은 일지. 그곳에서는 이 모두가 그녀 자신이며, 우리이다. 여기에서 길어올린 ‘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레즈비언이며 가부장제에 부역한 이혼녀이고 세 아이의 엄마였던 미국여성 시인인 그녀의 글속에서 자유롭게 횡단하고 있다. 그녀의 에세이 <뿌리에서 갈라지다>와 <피,빵 그리고 시>에서는 자신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제치는 그녀의 소심함과 용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유대인이면서 미국 주류 사회의 토큰이 되고자 했던 그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수치스럽지만 꼭 써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표현된다. “내가 유대인인 것은 기독교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까”(288쪽) , “유대인으로서 나의 양가감정이 대체 어디서...
꿈틀이 2023.08.29 조회 69
인문약방 에세이
      지난 시간 세미나에서 현모양처와 관련된 나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셨다. 그때는 단순히 현모양처가 아이 옷을 잘 입히는 게 아니지 않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난 우리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엄마이고 애를 자율적으로 키웠다고 자부하고 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내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난 왜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을까? 노력도 안 하면서 왜 그토록 줄기차게 애기하고 다닐까?       난 기억력이 안 좋은 편임에도 기억나는 몇 가지들은 음식에 대한 것이 많다. 엄마 심부름으로 아빠 드릴 보신탕을 사러 심부름 하던 기억. 비린 것을 싫어하는 엄마가 생선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해주시던 생선조림. 가족이 많다 보니 항상 음식은 부족했고 엄마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의 엥겔지수는 상당했을 것이다. 애들은 서로서로 같이 잘 켰고 엄마는 때에 맞춰서 밥을 해주는 것으로도 엄마의 소임을 다 하신건데 거기다 돈까지 벌어오셨다. 물론 엄마의 고단한 생활은 어린 자식들에게 폭발한 적이 많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명절에도 엄마의 주방은 빛을 발한다. 육형제의 장남인 아버지 형제들과 그 가족까지 모두 모이면 30명은 족히 되는 대가족의 음식준비의 대장인 엄마는 작은 엄마들을 지휘하며 요리를 만드시고 그 모든 행사가 끝나시면 그것으로 아빠에게 유세를 하셨다. 나이가 90을 바라보는 지금도 엄마는 아빠의 밥을 챙겨주시는 것으로 아내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신다. 배우자가 정말 원하는 게 무언지 궁금하지도 묻지도 않으신다. 엄마에게는 가족을 위해 차리는...
      지난 시간 세미나에서 현모양처와 관련된 나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셨다. 그때는 단순히 현모양처가 아이 옷을 잘 입히는 게 아니지 않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난 우리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엄마이고 애를 자율적으로 키웠다고 자부하고 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내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난 왜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을까? 노력도 안 하면서 왜 그토록 줄기차게 애기하고 다닐까?       난 기억력이 안 좋은 편임에도 기억나는 몇 가지들은 음식에 대한 것이 많다. 엄마 심부름으로 아빠 드릴 보신탕을 사러 심부름 하던 기억. 비린 것을 싫어하는 엄마가 생선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해주시던 생선조림. 가족이 많다 보니 항상 음식은 부족했고 엄마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의 엥겔지수는 상당했을 것이다. 애들은 서로서로 같이 잘 켰고 엄마는 때에 맞춰서 밥을 해주는 것으로도 엄마의 소임을 다 하신건데 거기다 돈까지 벌어오셨다. 물론 엄마의 고단한 생활은 어린 자식들에게 폭발한 적이 많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명절에도 엄마의 주방은 빛을 발한다. 육형제의 장남인 아버지 형제들과 그 가족까지 모두 모이면 30명은 족히 되는 대가족의 음식준비의 대장인 엄마는 작은 엄마들을 지휘하며 요리를 만드시고 그 모든 행사가 끝나시면 그것으로 아빠에게 유세를 하셨다. 나이가 90을 바라보는 지금도 엄마는 아빠의 밥을 챙겨주시는 것으로 아내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신다. 배우자가 정말 원하는 게 무언지 궁금하지도 묻지도 않으신다. 엄마에게는 가족을 위해 차리는...
시소 2023.08.29 조회 75
인문약방 에세이
    출생의 비밀 잠결에 엄마와 외할머니의 말소리를 들었다. “남의 자식 키우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울하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곧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잠결이지만 나는 놀랐다. ‘이런 일이 우리 집에? 나에게?’ 나와 여섯 살 차이 나는 언니가 가출을 했다. 언니네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을 찾아왔고, 엄마에게 “계모라서 애한테 너무 신경 안 쓴 거 아니냐고” 모진 소리를 하고 갔다. 살기 바빠서 내 새끼고 남의 새끼고 간에 건사하지 못한 건 맞지만, 본인 또래의 여자에게 계모소리 들은 것을 엄마는 분해했다. “지가 뭐라고!” 언니는 가출청소년이 되었고, 우리 집은 문제아가 있는 문제 가정이 되었다. 당시는 밤 9시만 되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청소년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라는 ‘계몽적’ 멘트가 나왔던 시절이다. 뉴스에서는 ‘문제 청소년은 문제 가정에서 나온다’는 캠페인을 자주 내보냈다. 나는 우리 집의 문제가 걱정스러웠지만, 그것보다는 이걸 사람들이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우선이었다.     언니의 가출은 계모 때문일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한다. 그러나 언니네 담임선생님 말고 언니의 가출을 엄마와 연관 지어 생각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계모라서가 아니라 우리 집이 가난해서 언니는 가출했다는 것이 좀 더 맞는 말이다. 가난과 돌봄의 공백은 이어진 문제이고,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언니는 격렬하게 맨몸으로 겪어냈다. 언니의 가출은 두 달 정도 지속되었다. 돌아왔지만 우리와 살지 않고 혼자 사는 고모네 집으로 갔다. 거기서 학교에 다녔는데, 몇...
    출생의 비밀 잠결에 엄마와 외할머니의 말소리를 들었다. “남의 자식 키우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울하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곧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잠결이지만 나는 놀랐다. ‘이런 일이 우리 집에? 나에게?’ 나와 여섯 살 차이 나는 언니가 가출을 했다. 언니네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을 찾아왔고, 엄마에게 “계모라서 애한테 너무 신경 안 쓴 거 아니냐고” 모진 소리를 하고 갔다. 살기 바빠서 내 새끼고 남의 새끼고 간에 건사하지 못한 건 맞지만, 본인 또래의 여자에게 계모소리 들은 것을 엄마는 분해했다. “지가 뭐라고!” 언니는 가출청소년이 되었고, 우리 집은 문제아가 있는 문제 가정이 되었다. 당시는 밤 9시만 되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청소년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라는 ‘계몽적’ 멘트가 나왔던 시절이다. 뉴스에서는 ‘문제 청소년은 문제 가정에서 나온다’는 캠페인을 자주 내보냈다. 나는 우리 집의 문제가 걱정스러웠지만, 그것보다는 이걸 사람들이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우선이었다.     언니의 가출은 계모 때문일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한다. 그러나 언니네 담임선생님 말고 언니의 가출을 엄마와 연관 지어 생각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계모라서가 아니라 우리 집이 가난해서 언니는 가출했다는 것이 좀 더 맞는 말이다. 가난과 돌봄의 공백은 이어진 문제이고,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언니는 격렬하게 맨몸으로 겪어냈다. 언니의 가출은 두 달 정도 지속되었다. 돌아왔지만 우리와 살지 않고 혼자 사는 고모네 집으로 갔다. 거기서 학교에 다녔는데, 몇...
겸목 2023.08.29 조회 100
먼불빛의 웰컴 투 60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먼불빛 2023.08.24 조회 215
인문약방 에세이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문탁 2023.07.20 조회 178
인문약방 에세이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문탁 2023.07.20 조회 70
인문약방 에세이
      나의 곤경노트 - 법이 폭력이라고?   무사     법이 무사 폭력이우까?!   폭력을 응징하는 법이 폭력이라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폭력을 휘둘러 왔다는 말이야? 나는 강하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버틀러의 문제의식은 18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2005년 가을이었고, 입대한 지 3년차였다. 관할 지역 남성 지휘관이 여성 장교를 강제추행한 사건이었다. 나는 수사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입회 임무를 맡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해주려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그 후배는 물었다. “선배가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날돕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냐” 고. 나는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2차 피해를 막고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처벌되었고, 후배는 전역했다. 그리고 다른 유사한 사건들에 치어 나는 곧 이 일을 잊었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타인에 대하여 부당하거나 불법한 방법으로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법에 따른 힘의 행사(체포, 구속, 사형 등)나 법이 허용한 힘의 행사(정당방위 등)는 법질서를 위반하는 폭력에 대한 합법적인 억압에 해당한다.(<법률학 사전>, ‘폭력’ 편) 이처럼 법과 폭력은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법과 폭력이 별개가 아니라고 말하는 버틀러의 주장 앞에 멈칫했다. 내가 수 십 년간 공부하고 다뤄 왔던 법에는 나름 양심이 있고, 일부 감정도 있다고 믿어 왔다. 피해 전부를 보상 받거나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법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경우도 많았다. 법은 단순히 법전 안의 글자만은 아니다.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일반인의 법감정’이나 판사가...
      나의 곤경노트 - 법이 폭력이라고?   무사     법이 무사 폭력이우까?!   폭력을 응징하는 법이 폭력이라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폭력을 휘둘러 왔다는 말이야? 나는 강하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버틀러의 문제의식은 18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2005년 가을이었고, 입대한 지 3년차였다. 관할 지역 남성 지휘관이 여성 장교를 강제추행한 사건이었다. 나는 수사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입회 임무를 맡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해주려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그 후배는 물었다. “선배가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날돕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냐” 고. 나는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2차 피해를 막고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처벌되었고, 후배는 전역했다. 그리고 다른 유사한 사건들에 치어 나는 곧 이 일을 잊었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타인에 대하여 부당하거나 불법한 방법으로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법에 따른 힘의 행사(체포, 구속, 사형 등)나 법이 허용한 힘의 행사(정당방위 등)는 법질서를 위반하는 폭력에 대한 합법적인 억압에 해당한다.(<법률학 사전>, ‘폭력’ 편) 이처럼 법과 폭력은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법과 폭력이 별개가 아니라고 말하는 버틀러의 주장 앞에 멈칫했다. 내가 수 십 년간 공부하고 다뤄 왔던 법에는 나름 양심이 있고, 일부 감정도 있다고 믿어 왔다. 피해 전부를 보상 받거나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법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경우도 많았다. 법은 단순히 법전 안의 글자만은 아니다.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일반인의 법감정’이나 판사가...
문탁 2023.07.20 조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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