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선> 시즌 3 에세이 2차

미르
2021-12-25 18:27
368
공부의 끝, 그리고 계속되는 공부
 
반년 전 쯤 공부가 끝났음을 알았다.
'아...이제 더 배울 것이 없구나. 더 이상 얻을 것도 해야 할 것도 없구나.'
 
초기 경전의 반복 문구로 정말 지겹도록 본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마쳤다.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안다.'  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자유롭고 편안했다.
 
이 생에 해야 할일 은 다 마쳤으니 무엇을 하고 놀면 재밌을까 궁리를 해본다.
'아 문탁에 같이 놀 사람들이 있지? 거기 가서 놀자.'
 
무엇을 하는가 보니 이번 시즌 주제는 선? 대승기신론? 내가 제일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네?
 
93년 성철스님이 입적하면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표현이 엄청 유행했다.
그때 나는 100% 중생이었으므로 선은 그들만의 말장난 또는 대중에게 관심이 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되었다.
 
그 뒤로 내가 제대로 불법의 본질에 대해 배운 것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었다.
즉문즉설을 들어보니 깨달음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스님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수행이나 고행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쉽고 재미난 것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왜 한국 불교는 알 수 없는 말장난과 어려운 한문으로,
그리고 3000배 같은 것을 시키며,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더 고생시키는 것인가에 대한 강한 원망이 들었다.
 
그리고 그 원망은 초기경전 니까야를 읽으면서 한층 더 강화되었다.
아니 부처도 식자층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입말인 빠알리어로 동네 무식쟁이 아줌마, 아저씨도 알아들을수 있게끔
쉽게 말했는데 도대체 왜 한국에서는 이런짓들을 하고 있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말장난이 난무하는 선이나 어려운 한자들이 난무하는 대승기신론은 나에게 쓰레기이자, 사라져야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뭐 같이 놀 사람이 여기밖에 없는데 일일이 따질 처지가 아니다.
장난감은 별로지만 사람들이 재미나니 같이 잘 놀았다.
그리고 대승기신론이 끝날때쯤 충격을 받았다.
내가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이 전부 대승기신론에 있었던 것이었다.
 
직접 알게된것은 아니고 법상스님의 법문을 통해서였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싫어하는 한국 불교와 선을 피해 노장사상, 밀교, 정토회, 초기불교 니까야, 위빠사나 명상등 다양한 것들을 경험했다.
그 뒤에 통찰이 생겼고, 우연히 법상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내가 얻은 통찰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와~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네?' 라는 생각에 놀랐고, 그 뒤에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겨서 자주 들었다.
전에는 선이나 대승기신론을 제대로 배운적이 없었으니 그가 사용하는 모든 단어나 내용이 대승기신론의 것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알게되었다. 그가 말하는 모든 내용이 대승기신론에서 나왔음을...
 
내 생각과 같다며 좋아했던 이야기가 모두 내가 싫어하는 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같은 것을 놓고 좋다고 하고 싫다고 하고 있었다.
본질의 자리에서는 좋을것도 싫을것도 없으며, 다 내가 지은 상일 뿐이라는 것을 제대로 공부 시켜주는 또 한번의 체험 사례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현실이 싫어서 더 나은 인생의 보물을 찾아 여행을 떠났는데 돌고 돌아 처음 있던 제자리로 가게 되고
처음 내가 있던 자리에 보물이 있었다는 그런 흔한 영적 순례 스토리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자기 자리에 있는 그 보물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고, 여행을 통해 성장하고 안목이 갖춘 다음에야 볼 수 있게 된다는..
 
하지만 보물을 찾았다고 해서, 공부가 끝났다고 해서 해피엔딩은 아니다.
소설이나 이야기에서는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대충 마무리하며 끝이날 수 있지만
실제 인생은 이야기처럼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부는 끝났지만 인생은 계속 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인생은 그 때부터 시작이고, 진짜 공부도 그때부터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끝난것을 '유치원에 입학했다' 라고도 표현한다.
하지만 이전과 같이 노력하고 힘써야 하는 '유위'의 공부가 아니고 놀다보면 저절로 공부가 되는 '무위'의 공부다.
이미 공부가 끝났기에, 아무런 얻을것이 없기에 지금도 이미 충분히 편안하고 자유로운데,
놀다보면 저절로 공부가 되고 더 편안해지고 더 자유로워진다.
 
어떤 노스님이 그랬다고 한다.
자기가 젊었을때 공부가 끝나서 끝인줄 알았는데 그 뒤로도 계속 깊어지더라.
그때 이미 행복으로 충만했는데 그 행복이 계속 더 깊어지더라.
몇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더 깊어지더라.
 
아직 유치원에 입학한지 반년밖에 안된 병아리라 몇십년은 가보지 않았지만 공감가는 말이다.
지금도 충분히 자유롭고 편안해서 좋은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같이 놀다 보면 자동으로 배움이 일어나고 더욱 깊어진다.
더욱 깊어질수록 더 자유로워지고 더 편안해진다.
이 자유로움과 편안함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얼마나 더 큰 자유로움과 더 큰 편안함이 있는걸까?
 
사대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온이 본래 공하다.
번쩍이는 칼날에 머리를 내미니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 같구나.
 
四大元無主
五蘊本來空
將頭臨白刃
猶似斬春風
 
승조스님의 위 게송에 대해 글을 쓴 기자가 다음과 같이 궁금해한다.
'얼마나 공부해야 이토록 소름끼치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게 다 비슷한거 같다.
좋아는 보이는데 얼마나 걸리나? 얼마나 해야하나?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다. 
너무 오래 걸리면 뜻있는 사람이나 하지 내가 할것은 아닌거 같고, 별로 오래 안걸리면 한번 해볼만 하고
 
초기 경전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면 얼마나 걸리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사리뿟다나 제자들의 표현은 한결같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자에게 내가 대답해주고 싶다.
'별로 공부 많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가성비 좋으니 어서 유치원 입학하세요.
댓글 6
  • 2021-12-26 20:27

    올립니다~

  • 2021-12-26 20:31

    저도 올립니다..^^

  • 2021-12-26 21:35

    올립니다.

  • 2021-12-26 22:09

    올립니다

  • 2021-12-27 01:24

    올립니다.

  • 2021-12-27 08:24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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