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내경과 생명과학] _내가 화가 나는 건 봄 때문이다

은유
2022-04-0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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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확실히 알았다.

근래 갑갑하고 미적지근한 기운덩어리가 위장과 식도의 위치를 오르락 내리락한다. 내 마음과 다른 상황이 오면 그 기운이 머리로 뻗치면서 말에 두서가 없어진다. 목소리가 올라가고, 한번 말해도 될 것을 두 번(아니 여러번) 말하고 삼켜도 될 말이 굳이 삼켜지지 않는다.

이것이 다 봄의 기운 때문이었다니!

 

일리치 약국의 세미나로 만나는 책 <황제내경과 생명과학>에서 좋은 핑계를 찾았다. 고미숙 샘을 통해 만난 <동의보감>이 전범으로 삼은 2500여 년 의학서 <황제내경>이라니 그 이름만큼이나 관록있어 보인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봄기운 탓이었다. ^^


 

<황제내경>의 기본에는 ‘내 몸을 하나의 소우주로 본다’는 개념이 깔려있다.

이는 동양철학에서 간간히 접하는 말이었으나 중년이 된 지금에서야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눈이 트이는 수준이다. 내 몸 속에 ‘나’라고 생각하는 것 이외에 무수히 많은 생명들, ‘충’이라 부르는 것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싹 소름이 돋으면서도 갑자기 내 몸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 살짝 웅장함이 밀려온다.

퇴근 후 밥짓기 힘들다는 이유로 저녁 맥주, 책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려 북맥(책+맥주)이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도 사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몸 속의 맥주를 좋아하는 미생물(‘충’이라고 하면 더 와닿는다!)들이 하는 거라는 깨침을 얻는 순간 맥주 마시겠다는 생각이 뚝 끊겼다. 내가 그 ‘충’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구나!

생각을 한번 더 끊어서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일까, ‘충’이 하고 싶은 것일까

 


이 책은 반복적으로 얘기한다. 정신(생각)은 유심일까 유물일까, 뇌가 생각하는 것일까, 꿈도 뇌의 활동인 것인데 한낮의 생각과 한밤의 꿈은 다른 것인가.

물론 저자인 남회근 할아버지는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 세미나 멤버분들도 저자의 안알랴줌식 서술에 분개하지만 덕분에 진짜 <황제내경>을 어서 읽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정기신, 꿈, 충. 이런 것들을 처음 접하는 공부 자리다. 내 몸을 탐구하는 공부를 스스로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프레임 밖으로 한 발 훌쩍 내딛은 느낌이다. 물론 지금 이런 이야기를 중딩 고딩 아이들에게 얘기하면 쿠사리먹기 딱 좋은 수준이다.

 


공부력 높으신 세미나 멤버님들의 설명력을 따라가겠다는 마음으로(멤버님들의 낄틈없는 난타전 말빨에 끼어보자는 마음으로 ^^) 열심히 출석하겠습니다 

저녁시간 불밝힌 세미나방, 한약 달이는 냄새 가득한 그 곳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참 좋아요 ^^

 

 

댓글 4
  • 2022-04-07 07:44

    봄철의 살리는 기운을 무시하면 간이 상하고 간이 상해서 화가 나는 거에요~~~~ 어여 살리는 기운으로 방향을 틀어주세요~~ ㅎㅎㅎ 

    은유샘 발제, 정리가 잘돼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어요~ 앞으로도 함께 공부 잘 해봐요!

  • 2022-04-07 08:46

    봄이라는 계절성도 나와 연결이 되어있으니 그에 화답해줘야하겠죠?^^ (잘 안된다는게 함정ㅋ)

     

  • 2022-04-07 10:36

    업무시간중에 후기 댓글을 달고 있는 나를 바라봅니다. 이 또한 봄기운 때문인가... 

    후기 중에 '북맥'이 뇌리에 와서 박히네요. 저는 '와북' (와인과 책) 이 취향인지라 ㅎㅎㅎ 

    요즘 꿈에서 너무 웃긴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깨고 나면 내가 왜 이런 꿈을 꾸는가 싶어요. 깨어있는 동안 웃을 일이 없어서 인가 싶기도하고...

    오랜만에 문탁 세미나에 참여하는데 다들 내공이 높으셔서 부족한 저는 열심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 2022-04-07 14:48

    후기를 넘 잘쓰신 거 같아요!

    저도 화 좀 덜내며 살고 싶어요 ㅠ 열심히 세미나 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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