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可曰否 논어>31회 - 자연인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고은
2018-10-16 00:18
374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자로가 말하였다. “벼슬을 하지 않음은 의(義)가 아니다. 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거니, 어찌 군신의 의를 폐할 수 있을까. 제 한 몸 깨끗할 요량으로 대륜을 어지럽히는 일이로다. 군자가 벼슬을 하는 것은 그 의를 행하는 것이니, 도가 행하지 못해지지 못하는 것은 이미 알 것이니라.” (「미자,7」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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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갑작스레 입소문을 타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케이블TV 프로그램이 있다. 산 속에서 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취재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다. 사회에서 매일 같이 분노할 일이 생기기 때문일까? 세속에서 벗어나 자연을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도 은둔하는 지식인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초나라에 많았다는데, 그래서인지 『논어』에서 공자가 은자(隱者)를 만난 에피소드는 모두 주유하던 중, 초나라 근처가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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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나라에서 제나라로 돌아가던 적에 자로는 어째서인지 공자 무리에게서 떨어져 뒤쫓아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팡이를 짚고 삼태기를 어깨에 걸친 노인을 만났다. 노인에게 공자를 보았느냐 물었더니만 공자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 역시 초나라 근처엔 범상치 않은 인물이 많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 곡식을 분별하지도 못하는데 누구를 선생님라고 하는 겁니까?” 어쩐지 이 노인의 예리한 이 지적은 사회생활에 치여서 자신의 몸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작물을 직접 기르지는 못하고 먹기만 잘 하는 우리를 향하는 듯하다. 노인의 말마따나 사회에 생활하는 것 보단 자신의 몸을 챙기고 흙을 만지며 숨어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로는 뼛속까지 공자의 제자이다. 그는 노인의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자로는 비록 노인을 알아보아 공손히 인사했지만 그와 같은 삶을 살지는 않을 듯이 보인다. 물론 자로도 의(義)를 지키며 사는 삶은 결코 쉽지 않다. 온갖 질서가 흐트러지던 때인 춘추시대 한복판에 살았으니 더 말하여 무엇하랴. 어쩌면 이 노인과 같이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도가 행해지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것, 사회로부터 거리를 두고 생활하는 것, 의(義)를 지키려고 애쓰지 않으며 사는 것은 자로에 따르면 좋은 선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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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를 받은 노인은 자로를 데려가 하룻밤 재워줬다. 그냥 재워준 것이 아니라 닭을 잡고 기장으로 밥을 해 먹이고, 자신의 두 아들을 보여 인사하게 하였다. 자로는 그런 노인을 보고 의구심이 들었던 듯하다. 비록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노인은 정말 사회를 떠났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노인의 경우만 보더라도 인간은 사회적인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의 관계, 이를테면 임금과 신하의 관계 같은 것에서는 거리를 두어 “제 한 몸 깨끗할 요량으로” 피해있는 것이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어떤 자연인들은 그를 찾아온 사람들을 아주 기쁘게 맞이하고, 슬프게 떠나보낸다.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 살 수 있는 인간은 정말 극소수일 것이다. 대부분은 관계없이 삶을 지속하지 못한다. 세속을 떠나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망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훗날 자로는 비록 복잡한 일에 휘말려 죽음을 당하기는 하였지만 제 한 몸 깨끗할 요량으로 삶을 살지는 않았다. 도리어 어지러운 세상에서 도가 지켜지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매순간을 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자로의 삶이 제 한 몸 위해 숨어 살던 노인의 삶 보다는 멋져 보인다.
댓글 1
  • 2018-10-16 11:07
    아래 줄친 부분 번역 수정해 주세요~~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자로가 말하였다. “벼슬을 하지 않음은 의(義)가 아니다. 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거니, 어찌 군신의 의를 폐할 수 있을까. 제 한 몸 깨끗할 요량으로 대륜을 어지럽히는 일이로다. 군자가 벼슬을 하는 것은 그 의를 행하는 것이니, 도가 행하지 못해지지 못하는 것은 이미 알 것이니라.” (「미자,7」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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